내년 한화와 작별 수순…잇단 말썽에 한화그룹 ‘굿바이’?

▲ ‘구조조정 청부사’ 한화투자증권 주진형 사장이 파격적인 행보로 숱한 논란과 갈등의 중심에 선 끝에 결국 내년 임기 만료와 함께 한화그룹과 작별키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투자증권
‘구조조정 청부사’ 한화투자증권 주진형 사장이 파격적인 행보로 숱한 논란과 갈등의 중심에 선 끝에 결국 내년 임기 만료와 함께 한화그룹과 작별하는 것이 확실시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진다.
 
11일 증권가에 따르면 최근 한화그룹은 한화투자증권 주진형 사장과 관련해 나왔던 조기경질설이나 해임설 등에 대해서는 부인하면서도 주진형 사장에게 연임 불가 입장을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3년 9월 선임된 주진형 사장은 내년 임기가 만료된다.
 
최근 증권가에는 주진형 사장이 임원들과 만나 “그룹 측으로부터 경질 통보를 받았지만 임기를 채우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는 얘기가 돌면서 조기경질설이나 해임설 등이 강력히 대두된 바 있다. 결국 한화그룹 측이 “사실무근이며 조기경질이나 해임 등은 없을 것”이라고 해명하면서 논란은 잠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지만, 뒤이어 나온 한화그룹의 연임 불가 통보는 결국 어느 정도 한화그룹에서 불편한 시선이 있었음을 방증한다는 평가다.
 
이에 증권가에서는 벌써부터 파격 행보를 걸어 왔던 주진형 사장의 공과를 돌아보면서 한화투자증권이 끊임없이 논란의 중심에 섰던 점이 한화그룹과의 작별의 원인이라는 결론을 조심스럽게 내리고 있다.
 
특히 빅딜을 단행하며 부쩍 가까운 관계가 된 삼성그룹에 관한 한화투자증권의 입장이 결정타였다는 시각이 많다. 삼성그룹이 그룹 차원에서 막대한 공을 들였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서 한화투자증권은 국내 증권사 중 유일하게 두 번에 걸쳐 삼성물산에 대한 매도 리포트를 냈다. 그룹 수뇌부가 불편해 했음을 추측하기란 어렵지 않다. 최근 사의를 밝힌 한화그룹의 원로 김연배 전 한화생명 부회장이 주진형 사장을 방문했던 것도 이와 관련된 것이라는 얘기가 많다.
 
여기에 이미 그간 주진형 사장은 증권가의 관행을 깨는 돌출 행동으로 ‘이단아’로까지 불려왔다. SNS에서 강경한 목소리를 내는가 하면 임금 체계를 정리하는 등의 새로운 시도를 끊임없이 해 왔다. 때로는 증권가 전체에 쓴소리를 날려 업계의 따가운 눈총을 받는가 하면 ‘구조조정 청부사’라는 별칭답게 수 백여명을 내보내 갈등을 일으키기도 했다.
 
주진형 사장이 일관되게 고객 만족을 외치면서 시도했던 파격들은 때때로 고객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증권가 내에서 또 한화그룹 내에서, 심지어 내부에서까지 바람 잘 날 없었던 주진형 사장 체제가 결국 한화그룹과의 이별의 단초가 됐다는 것이 중론이 되고 있다.
 
◆주진형 사장, 칼잡이 아닌 금융전략가였나
1959년생으로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경제학박사 과정을 수료한 주진형 사장은 세계은행 컨설턴트로 금융계에 발을 들였다. 이후 삼성전자, 삼성생명 전략기획실 차장, 삼성증권 전략기획실장과 마케팅담당 상무를 거쳤다. 삼성증권 사장으로 있다 우리금융지주 회장으로 옮겼던 황영기 현 금융투자협회장의 러브콜을 받고 우리금융지주로 옮긴 주진형 사장은 이후 우리금융지주 전략기획 및 감사담당 상무와 우리투자증권 리테일사업본부장을 지냈다.
 
한화투자증권 사장에 취임하기 전까지 ‘구조조정 전문가’로 불려 왔던 이유는 우리투자증권에서의 행보 때문이다. 당시 우리투자증권과 LG투자증권의 통합 후 단행된 인원감축 등 조직슬림화를 주진형 사장이 주도했다고 알려지면서부터다.
 
주진형 사장이 한화투자증권 사장으로 취임했던 2013년 많은 우려를 한 몸에 받았던 것도 이 이미지 때문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한화투자증권은 지난해 수 백여명을 내보냈다. 업계에서 유치에 공을 들이고 있는 투자권유대행인 제도는 오히려 주진형 사장 체제 하에서 폐지 수순을 밟고 있다.
 
하지만 주진형 사장은 스스로가 ‘칼잡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실제로 주진형 사장이 걸어온 길을 보면 주로 마케팅이나 전략기획 분야에서 일해왔던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주진형 사장을 잘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가 금융전략기획 전문가라는 평가가 더 어울린다는 의견이 많이 나오기도 했다.
 
▲ 주진형 사장은 매도 리포트 비율 확대나 콜센터 기능 강화, 열린 주주총회 등 이색적인 시도로 고객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한화투자증권
◆잇단 파격에 고객들은 ‘호평’
2006년 우리투자증권 리테일사업본부장을 끝으로 증권가를 떠났던 주진형 사장이 2013년 한화투자증권으로 컴백한 후 보인 행보는 공과 과를 떠나 그가 이 같은 평가에 합당하다는 점을 여실히 증명한 것으로 보인다.
 
주진형 사장이 취임 후 보였던 파격적인 행보는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특히 일관되게 고객 지향성을 강조했던 주진형 사장의 행보 중 대표적으로 꼽히는 것은 매도 의견 보고서 확대다. 그는 실적이나 상황이 악화되도 좀처럼 특정 기업에 대해 매도 리포트를 내지 않던 국내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의 관행을 타파하고 잃어버린 신뢰를 되찾기 위해 매도 리포트 비중을 주문했다. 투자 위험종목을 분기마다 선정해 발표하게 된 것도 주진형 사장 취임 이후부터다.
 
지난 5월 금융투자협회 자료에 따르면 국내 증권사 33곳이 1년간 내놓은 매도 의견 비율은 0.3%에 불과했다. 87%가 매수 의견이었고 12.7%가 중립 의견이었다. 일부 증권사는 아예 100% 매수 의견을 내놓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주진형 사장의 독려 속에 한화투자증권은 이 자료에서 4.6%로 매도 리포트 비율 1위를 차지했다. 여전히 높은 비율은 아니었지만 한화투자증권의 방향성을 읽을 수 있다는 시각 속에 고객들 사이에서 좋은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콜센터 기능을 강화했던 점도 고객들의 호평을 이끌어냈다. 한화투자증권은 지난해 7월 단순 업무처리가 대부분이었던 콜센터 업무를 확 뜯어고쳤다. 전문 상담 인력을 배치해 영업점을 찾아 자산관리사(PB)에게 상담 받는 것과 동일한 서비스를 콜센터를 통해 제공했고, 직장인들을 위해 상담 시간을 기존 오후 7시까지에서 오후 10시까지로 확대했다. 콜센터를 통한 주문 수수료를 영업점보다 낮춰 고객들의 편의를 강화했다. 전화비용도 무료였다.
 
올해 3월 한화투자증권의 주주총회에서는 이색적인 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고객과의 눈높이를 맞추겠다던 주진형 사장이 무겁고 경직된 주주총회를 지양하고 토크쇼 형식을 도입해 편안히 앉아 주주들과 직접 대화를 나눴다. 주주들은 민감한 이슈에 대해 편안하게 주진형 사장에게 질문했고 주진형 사장은 마찬가지로 격의 없이 편안하게 대답했다. 한화투자증권의 주주총회는 금융권에 잔잔한 파장을 부르기도 했다.
 
◆직원들에게는 ‘재앙’…갈등 잇따라
▲ 반면 지나친 고객 지향성에 피로감을 느낀 내부 직원들은 잇따라 한화투자증권을 이탈했다. 이미 소위 찍힌 상태에서 나가는 사람만 있고 들어오는 사람은 거의 없다. SNS상의 잇단 돌출 발언도 그룹 수뇌부가 주진형 사장에 대한 신뢰를 거두는 계기가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진 / 시사포커스DB
하지만 지나치게 고객 지향성만을 강조하다보니 안팎으로 마찰이 끊이지 않았다. 대표적인 것이 투자권유대행인 제도를 둘러싼 갈등이다.
 
한화투자증권은 지난해 말부터 갑자기 투자권유대행인의 재계약 기준을 변경하고 수수료 규정을 대폭 손질해 올해 초 투자권유대행인들과 새로운 내용의 계약서로 재계약했다. 투자권유대행인은 지점 등에서 고객들에게 투자를 권유하고 거래가 발생할 경우 이에 따른 수수료 일부를 보수로 받는 영업전문직으로 위탁계약을 체결하는 일종의 계약직이다. 보수는 100% 실적제다.
 
재계약 내용은 유치자산 기준을 1000만원에서 4억원으로 대폭 올리고 연차가 올라갈수록 거래 발생에 따라 지급하는 수수료를 대폭 차감하는 것이 골자였다. 갑작스러운 통보도 문제가 되는 마당에 유치자산 기준이 갑자기 40배나 올라간 것에 대한 불만이 즉각 터져나왔다. 4년이 넘은 계좌부터는 수수료 자체를 지급하지 않겠다고 한 조항은 법적 위반 소지까지 거론됐다. 이 조항은 지난 4월부터 발효됐다.
 
한화투자증권은 “투자권유대행인들이 나갈수록 오히려 수익성이 악화된다”면서 이 같은 계약 조건 변경의 이유로 수익성 악화를 감내하고서라도 소액거래를 유도해 수수료만을 챙긴 뒤 계좌는 방치하는 투자권유대행인들의 행태를 방지해 고객들의 신뢰를 얻고자 했다는 점을 들었다. 하지만 투자권유대행인들은 단기적 성과를 내기 위해 투자권유대행인들을 몰아내고 낙전수입을 얻기 위한 조치라고 반발했다.
 
한화투자증권은 결국 내년 투자권유대행인 제도를 폐지하기로 결정했지만, 투자권유대행인 문제로 주진형 사장은 결국 오는 17일 공정위 국정감사에 증권사 사장으로는 유일하게 증인으로 채택됐다. 국회는 주진형 사장이 투자권유대행인 계약과 관련해 불법 행위를 확인하고 시정을 요구하겠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나가는 사람만 있다”…잇단 돌출에도 실적은 ‘제자리’
 내부의 갈등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취임 직후 350명을 희망퇴직으로 내보냈던 주진형 사장은 거부자들을 정리해고했다가 서울지방노동위원회로부터 복직 반정을 받았다. 구조조정이 지나치게 강압적이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정리해고 직후 직원들의 사기를 높인다는 명목으로 성과급 잔치를 벌였다는 논란이 제기돼 한화투자증권이 한바탕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한화투자증권은 매년 지급하던 임금 보전성 성과급이었다며 해명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냈다.
 
주진형 사장 취임 후 임원들과 애널리스트들의 대거 이탈도 이어졌다. 지난달 리테일 사업 개혁을 주도했던 이원락 한화투자증권 임원실 파트장이 떠난 것은 단적인 예다. 올해만 임원 4명이 퇴직했고 이달 초 기준 애널리스트들의 수는 지난해 말에 비해 8명 감소했다. 취임 직후였던 2013년 말의 38명에 비해서는 반토막났다.
 
증권가가 이직률이 높긴 하지만 한화투자증권의 경우는 나가는 사람은 많은데 들어오려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는 것이 문제다. 기업설명회에서 주진형 사장이 퇴사한 애널리스트들이 무능력했다고 표현해 반감을 사는가 하면 애널리스트들의 리포트를 첨삭했다는 얘기도 들렸다. 회전율 300%를 넘는 과다한 주식매매가 거래비용 부담 때문에 투자자의 계좌에 오히려 악영향이라는 판단 하에 성과급을 폐지한 영향도 있었다. 임직원의 자기매매 제한으로 실질적인 수입이 감소됐다는 분석도 나왔다.
 
언론사 편집장 출신이나 소설가를 채용해 사내 편집국을 갖춰 리포트나 IR 자료 등의 문서를 첨삭하고 직원들의 글쓰기 능력 향상을 꾀했던 것도 내부적으로 탐탁치 않은 반응이 나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각종 파격과 실험이 지속되다보니 내부에서는 피로감을 느끼고 증권가에서는 한화투자증권을 보는 시각 자체가 부정적으로 변했다는 얘기가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왔다.
 
이밖에 SNS에서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을 비판한다든지 정리해고를 단행한 본인의 연봉이 많지 않다는 식의 돌발성 글도 잇따라 화제가 되면서 기업 이미지 자체가 안좋아졌다는 점도 그룹 수뇌부의 판단에 악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온갖 화제를 일으키면서도 실적이 취임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도 연임 불가 결정의 배경으로 꼽힌다. 한화투자증권은 지난해 흑자전환에 성공한 데 이어 올해도 큰 폭의 실적 개선을 이뤄냈지만 이는 기준금리 인하에 따른 채권 투자 차익과 600여명이 넘는 인력 감축에 따른 비용절감 효과, 지난해 상반기 최악의 실적과 비교한 기저효과 덕이라는 평이 대다수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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