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노조는 국내에서 단일 사업장 기준 최대 규모라는 상징성을 갖고 있다. 귀족 노조나 강성 노조라는 불명예스러운 시선도 함께 받고 있지만 웬만한 노동 관련 사안에 있어서 노동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곳도 현대차 노조다. 노조 조합원만 5만여 명에 가깝고 현대차 임금협상은 한국 노사관계의 바로미터라고까지 불린다.
 
그만큼 우리나라에서 과거에 비해 자동차 산업의 규모가 커졌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런 현대차 노조가 올해도 파업 수순을 밟고 있어 4년 연속 파업을 눈 앞에 두고 있다. 이에 자동차 업계에서 있었던 굵직한 파업인 대우차와 쌍용차 파업을 되돌아본다.
 
국내 자동차 업계에서 일어났던 굵직한 파업들은 대체적으로 해고 등에 대한 대규모 인력 구조정에 대한 반발이 원인이었다. 또한 대부분은 결국 공권력이 생산 현장에 투입됐다는 공통점도 갖고 있다.
 
자동차 업계의 파업이라고 하면 2001년 대우자동차 부평 공장의 파업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대우자동차는 옛 대우그룹이 경영난 속에 2000년 최종 부도를 내고 법정관리에 돌입했는데, 회사를 살리기 위해 계획을 세웠던 감원 규모가 무려 6884명에 달했다. 올해 현대중공업이 1천여명을 조금 넘는 수준의 희망퇴직을 단행하고 노조의 반발이 극에 달했으니 당시 노사 분위기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생산직 근로자 2794명을 해고하려는 계획을 노동부에 제출했던 대우차는 2001년 2월, 사상 최대 규모인 1700여명을 정리해고했다. 노조가 즉시 총파업에 돌입했음은 물론이다. 농성 사흘 만에 김대중 정부는 공권력을 투입시켰다. 당시 의무경찰로 복무하던 필자 역시 부평 공장 인근에 투입됐다. 동원된 병력들은 주요 번화가 한복판에까지 물 샐 틈 없는 경비를 섰다. 도시 전체에 긴장감이 넘쳤음은 말할 나위 없다. 당시 MBC스페셜은 하루 아침에 일자리를 잃게 된 노동자들이 파업에 참가해 가족들과 함께하는 모습들을 방영해 큰 반향을 불렀다.
 
2001년의 대우자동차 부평공장 파업이 파업 규모에 비해 기간이 길지 않았음에도 자동차 업계의 파업에서 상징적인 의미를 갖게 된 것은 당시 시대상이 응축됐다는 점에서다. 세계를 호령하던 대우그룹의 몰락과 IMF 사태 이후 사회 전반에서 난무하던 정리해고 바람으로 갈 곳을 잃은 아버지들의 심정이 맞물렸다.
 
국민들은 공권력에 맞섰던 정리 해고 반대 투쟁에 많은 응원을 보냈다. 당시 대우차 노동자들은 곧 그 사회의 아버지들이었다. 대규모 구조조정의 원인을 제공했던 GM은 대우차를 인수하고 나서 수 년 후 1700여명 대부분을 복직시켰지만 아직도 부평공장은 그만큼 대한민국 역사에서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는 곳이다.
 
2009년의 쌍용차 평택 파업은 더욱 격렬했고 우리 사회에 더욱 많은 아픔을 남겼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직격탄을 맞았던 쌍용차는 판매격감과 신차개발 부진 등을 이겨내지 못하고 2009년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쌍용차가 한 번에 정규직 2646명과 비정규직 350명을 정리해고하는 안을 내놓자 노조는 공장을 점거하는 등 옥쇄파업을 시작했다. 사측은 평택공장 폐쇄로 맞섰다.
 
야당과 민주노총, 시민단체들이 가세했고 수 천여명의 점거가 장기화되면서 사측의 용역 경비원들과 격렬하게 충돌했다. 결국 공권력이 투입됐다. 진압작전 과정에서 양측의 유혈 폭력 사태가 야기됐던 것은 예고된 수순이었다. 양측의 폭력 사태는 지금까지도 파업과 진압의 정당성을 비판하는 잣대가 되기도 한다. 저항하는 측은 쇠파이프는 물론 볼트와 너트를 새총에 실어 날렸고 가스통과 죽창도 등장했다. 경찰은 곤봉과 최루액, 물대포 등으로 맞섰다.
 
이후 자살이나 질환 등으로 사망한 노동자만 24명이다.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에 대한 손해배상 및 가압류 금액은 약 47억원에 달하고 마지막 굴뚝농성은 올해가 되서야 끝이 났다. 노사는 올해 65개월 만에 해고자 복직 문제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쌍용차 파업의 의미는 대우자동차 부평 공장 파업과는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앞서 같은 해 벌어졌던 용산 참사에 이은 폭력 사태였다는 점에서 국민들은 쌍용차 사태를 기점으로 어느 쪽이 주도했는지를 가리지 않고 폭력 시위와 강경 진압에 대한 피로감을 드러내고 있다. 근로자들 사이에서는 불법 파업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노동계는 다른 활로를 찾기 시작했다. 정치권에서는 여전히 진압의 정당성을 놓고 여야가 대치하고 있다. 덩달아 분열 양상을 보인 지지자들의 대립 역시 봉합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쌍용차 사태가 남긴 거대한 생채기는 아마도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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