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화 두고 여권 내 이견까지…추진력 떨어질까

▲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두고 야권은 물론 각계각층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뉴시스
그간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놓고 여야가 극명한 입장차를 보였던 가운데 9일 여권 내부에서조차 이견이 나오고 있어 장차 미묘한 파장을 낳을 것으로 예상된다.
 
◆ 與 역사교과서 국정화 ‘현대사’ 방점 둬
 
광복 70주년을 맞아 ‘이승만 재평가’, ‘긍정적 역사 인식’ 등 그간 새로운 사관을 강조해오던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를 비롯해 원유철 원내대표 등 여당 지도부가 적극적으로 역사교과서 국정화 움직임에 나선 데 대해 새정치민주연합은 일찌감치 맞대응하며 제동을 걸어왔다.
 
앞서 지난 2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 나선 김무성 대표는 “교육의 근본은 칭찬이며,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사고와 태도를 갖도록 하는 것”이라며 “역사를 통해 미래를 만들어가는 의미에서 자학의 역사관, 부정의 역사관은 절대 피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그는 “중·고교는 학문의 자율성이 보장되는 대학과 달리 ‘건전한 시민 양성’을 목표로 하는 공교육의 현장”이라며 “학생들이 편향된 역사관에 따른 교육으로 혼란을 겪지 않도록, 철저하게 사실에 입각하고 중립적인 시각을 갖춘 ‘국정 역사교과서’ 도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특히 김 대표는 “사실왜곡이나 특정 사건과 인물에 대한 과대포장은 철저히 배격해야 한다”면서도 “우리 현대사를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굴욕의 역사’라고 억지 부리는 주장은 이 땅에서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해 ‘현대사’ 개정에 방점이 있음을 드러냈다.
 
이날 연설 뒤 기자들의 질의에도 그는 “결코 우파적 사상을 가지고서만 하자는 것이 아니다. 중립적인 것”이라며 야당에 대해선 “중립적 시각을 갖추고 철저하게 사실에 입각한 교과서를 만들자는데 왜 반대하는 것인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野 ‘국정화 저지’ 학계‧재야인사 공조 나서
 
그러자 다음날인 3일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내대표도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 나서 김 대표가 언급한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해 “정치적 목적을 위해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거나 숨기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맞불을 놨다.
 
이 원내대표는 이 자리에서 “정부여당이 역사교과서 국정화 작업을 시도하고 있고, 우리 미래세대에 대하여 긍정적 시각을 주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며 “일본의 역사왜곡을 비판하는 동일한 시각으로 이 문제를 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역사학자 E. H. 카아는 ‘역사의 해석은 다를 수 있지만 사실은 신성한 것이고, 역사가가 정확하게 역사를 기술하는 것은 미덕이기 이전에 하나의 신성한 의무’라고 했다”며 “국민들은 아직 2013년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 검정파동을 잊지 않고 있다. 친일과 유신독재를 미화하고 내용상 많은 오류가 있어도 검정을 강행하다가, 교육현장에서 외면당했었다”고 상기시켰다.
 
이렇듯 반대 입장을 명확히 드러낸 야당은 바로 다음날(4일) 오전 ‘한국사교과서 국정화저지 특별위원회’ 첫 회의를 국회에서 열고 독립운동가 후손, 원로 역사학자들과 함께 정부여당에 ‘시대착오적 생각’이라고 공세를 펼치며 발 빠른 대응에 나섰다.
 
이날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박근혜 정부가 세계적인 추세와 정반대의 길을 가려는 것은 ‘유신 독재’의 향수 때문이며 민주주의에 역행하겠다는 것”이라며 “지금은 국민을 통제할 때가 아니라 통합할 때다. 국정교과서로 돌아가려는 시대착오적인 생각은 버려야 한다”고 질타했다.
 
그는 국정 교과서 반대의 이유로 “일제조차 국정교과서를 썼다”는 점을 내세우며 “전세계에서 독재를 경험했거나 사회주의 국가인 북한, 러시아, 베트남 정도를 제외하고는 국정교과서를 사용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고 국정화 반대 입장을 못박았다.
 
문 대표는 또 “(국정교과서는) 1973년에 유신과 함께 시작됐다가 민주화 이후 단계적으로 폐지된 것”이라며 “단순히 교과서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역사학자들도 거의 국정교과서를 반대한다. 획일적인 교과서로 창조적인 생각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며 “저는 이 상황이 가벼운 문제가 아닌 비상상황이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뒤이어 이종걸 원내대표도 “국정교과서를 사용하는 국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소속 국가 중에선 1개국도 없다”고 설명한 뒤 “국정교과서에 대한 일반적 여론조사가 국민들에게 선호되고 있다는 점이 걱정된다. 박 정부가 무조건 밀어붙이는 단계까지 가 있는 실정”이라며 “우리 당이 결연한 의지로 막아내겠다”고 공언했다.
 
이날 당 국정교과서저지특위 소속인 유기홍 의원은 당 지도부에 학계·종교계·법조계 원로와 함께하는 원탁회의 소집, 국회 교문위 소속 의원과의 공동전선 수립 및 대책 마련 등을 요구하며 구체적인 대응 방안을 모색하자고 촉구했는데 이에 대해 문 대표는 원탁회의에 양심있는 보수인사를 끌어들일 생각까지 내비쳤다.
 
이날 동석한 여러 독립운동가 후손 가운데 안중근기념사업회 함세웅 이사장은 “시대정신을 담는 것이 역사다. 민족의 정기를 흐리려 하는, 더러운 그릇에 담고 깨려고 하는 것들을 이번 기회에 정리하고 맞서야 한다”며 공동 대응에 나설 것을 천명했다.
 
이에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도 “정부여당이 주장하는 ‘자학사관’은 대한민국이 독립운동, 민주화운동 위에 세워졌다는 것을 부정하려는 것”이라며 “정치권이 반대 입장을 수렴해 하나의 에너지로 폭발시켜야 한다”고 호응했다.
 
이 같은 반발을 보여주듯 지난 8일 김승환 전북도 교육감과 박종훈 경남교육감·장휘국 광주교육감·김석준 부산교육감·장만채 전남교육감·이석문 제주교육감 등 남부권 교육감 6인은 공동성명을 내고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는 우리 사회가 이룩해 온 민주주의의 중요한 가치인 자율성과 다원성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같은 날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이재정 경기도교육감, 이청연 인천시교육감, 민병희 강원도교육감 등 수도권 교육감들도 앞다퉈 반대 성명을 내며 공동전선을 이뤘다.
 
이에 호응해 9일 중부권 교육계도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중단을 요구하며 충청권 교육감 4명이 성명을 발표했고, 한국근현대사학회와 한국사학사학회 등 사학계 교육·연구자들까지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흥사단 강당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정 교과서는 정권이 원하면 얼마든 역사를 왜곡할 수 있고 정권에 따라서 교과서의 서술이 뒤바뀔 수 있는 위험한 제도”라며 사학계 1167명의 서명을 통해 반대 입장을 명확히 밝혔다.
 
또 이날 새정치민주연합 김태년 의원이 지난 4~8일간 전국 중·고교 사회과 교원 2만4195명을 대상으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찬반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를 공개하면서 응답자 1만0543명 중 77.7%인 8188명이 ‘반대’했다고 밝혀 정부여당의 국정화 강행이 난항을 겪을 것으로 전망됐다.
 
◆ 與 지도부 의견도 사분오열?
▲ 새누리당 김정훈 정책위의장은 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 뒤 기자들과 만나 “김무성 대표도 일단 우리 정책위와 교문위 소속 의원들을 중심으로 역사교과서 문제점에 대해 우리 내부적으로 의견을 수렴해보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사진 / 원명국 기자

 이 같은 각계의 반발을 의식했는지 새누리당 내에서도 의견이 갈리며 미묘한 분위기를 연출했는데 새누리당 김정훈 정책위의장은 이날(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 뒤 교육부의 중·고교 역사교과서 국정화 전환 고시 발표설과 관련해 기자들에게 “황우여 부총리와 통화를 해보려고 하지만, 정부가 그렇게 일방적으로 하면 안 된다”고 반대 입장을 드러냈다.
 
김 정책위의장은 일부 언론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당정 협의를 통해 잠정 결정했다고 보도한 것과 관련해서도 “정부와 협의해서 확정된 사실이 없다”며 “의견 조율도 아직 안해봤다”고 가능성을 일축했다.
 
그러면서 그는 “국정화 문제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법을 고칠 사안은 아니지만 이 사안을 정부가 결정해서는 안 된다”고 재차 정부의 일방적 고시 발표를 경계했다.
 
이 같은 모습은 김 대표와 원 원내대표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한 목소리로 적극 추진하겠다고 나선 것과 대비되고 있는데 김 대표는 이날 회의 뒤에도 기자들과 만나 “(국정화를 위한) 당정 회의를 했다는 것은 오보이고, 국정교과서로 가야된다는 주장은 제가 계속 얘기한 것”이라며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입장에 흔들림이 없음을 재확인해줬다.
 
원 원내대표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지금 국정교과서와 관련해서 이념 편향성이나 이런 것이 앞으로 심화될 우려가 있다고 보고, 어떡하면 공정하고 객관적인 방법을 찾을 것이냐 고민하고 있다”며 “앞으로 정책위나 당정협의를 통해 그런 방안을 찾아보도록 의견을 모아보겠다”고 밝혀 학계와 교육관계자들의 반발에도 국정화 추진은 예정대로 진행될 것임을 시사했다.[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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