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뜩이나 많이 뽑는데 전시행정 웬 말”…금감원 개입 의혹까지

▲ 3대 금융그룹 회장이 연봉의 30%를 반납키로 하는 등 금융권 전반에 CEO나 임원들의 연봉 반납 열풍이 거세지만, 당국의 압박으로 이뤄진 일종의 전시행정이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왼쪽부터 하나금융그룹 김정태 회장, KB금융그룹 윤종규 회장, 신한금융그룹 한동우 회장. 사진 / 시사포커스DB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 한동우 신한금융지주 회장,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 등 3대 금융지주 회장이 일제히 연봉의 30%를 반납하고 청년 채용 확대에 나서겠다고 밝힌 가운데, 이 과정에서 금융당국의 압박이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돼 뒷말이 무성하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주부터 3개 은행 회장을 비롯해 계열사 사장 등과 임원들이 일제히 연봉의 일정 수준을 반납키로 하면서 금융권에 연봉 반납 열풍이 불고 있다. 금융사들은 반납된 금액을 일제히 채용 확대에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계열사 사장 등과 임원들의 연봉 반납 수준을 구체적으로 보면 조용병 신한은행장은 30%를 반납하고, 카드·금융투자·생명보험·자산운용·캐피탈 등의 신한금융그룹 계열사 사장단은 20%를 반납한다. 기타 그룹사 사장과 부행장, 부사장들은 10%를 반납키로 했다.
 
KB금융그룹 역시 김덕수 KB국민카드 사장을 포함한 11명의 계열사 대표이사는 연봉의 20%를 내놓고 전무급은 10% 가량 반납한다. 하나금융 역시 계열사 대표이사와 전무급 이상 임원들의 연봉을 10~20% 정도 반납할 예정이다.
 
우리은행 역시 연봉 반납 수준을 조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고, 박인규 DGB금융 회장이나 성세환 BNK금융 회장, 김한 JB금융 회장 등 지방 금융지주 3사 CEO들도 지난 4일 각각 20% 수준의 연봉 반납 대열에 합류한다고 알렸다. 카드업계와 보헙엄계 역시 임금 반납을 고민하고 있는 분위기다.
 
이처럼 금융권이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유사한 시기에 연봉 반납에 나서고 있는 가운데 이 과정에서 금융감독원 고위 간부가 연봉 반납과 채용 확대에 나서달라고 압박했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의혹의 눈초리가 짙어지고 있다.
 
최근 한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금융감독원 고위 간부가 3대 금융그룹에 청년고용 확대에 적극 나서달라는 뜻을 전달한 것으로 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년고용 확대는 노동개혁에 총력을 쏟고 있는 박근혜 정부의 하반기 국정 최우선 과제다.
 
마참 최근 들어 현대차그룹이나 롯데그룹 같은 굴지의 대기업들이 잇따라 정부가 요구하던 임금피크제 도입을 결정하면서 정부와 재계가 보폭을 맞춰 나가는 것에 대한 의구심도 제기된 터다.
 
의혹의 진원지가 된 금감원은 즉시 “금융권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청년 일자리 창출에도 관심을 가져달라는 일반적인 당부는 한 바 있다”면서도 “해당 금융그룹에 청년 고용 확대에 적극 나서달라고 압박한 사실은 없다”고 일축했다. 금융위의 한 국장 역시 연봉 반납 얘기는 보도를 통해 처음으로 알았다며 압박 의혹을 부인했다.
 
▲ 의혹의 진원지가 된 금감원은 즉시 “금융권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청년 일자리 창출에도 관심을 가져달라는 일반적인 당부는 한 바 있다”면서도 “해당 금융그룹에 청년 고용 확대에 적극 나서달라고 압박한 사실은 없다”고 일축했다. 사진 / 시사포커스DB
◆굳이 채용 더 늘리는 이유는?…의문 증폭
하지만 연봉 반납은 그렇다 치더라도 3대 금융그룹 회장들이 굳이 일제히 채용 확대를 거론한 것은 미심쩍다는 반응도 나온다.
 
일단 연봉 반납으로 인한 채용 효과가 얼마나 될지에 대한 의문이 고개를 들고 있다. 신한금융그룹 한동우 회장의 연봉 반납액은 2억6000만원 가량, 하나금융그룹 김정태 회장의 반납액은 3억2000만원이다. 계열사 사장단이나 임원들의 연봉 반납액까지 포함되면 각각 신한금융 25억원, 하나금융 27억원, KB금융 20억원 등으로 추산된다. 세 은행의 반납액을 다 합쳐도 70억원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가뜩이나 올해 금융권이 채용 규모를 크게 늘리면서 오히려 과잉 채용이라는 논란까지 제기되는 가운데 세 금융사가 연 70억원이 모자라서 신규 채용을 하지 못했을 리는 없다. 국내 은행권 총 임직원은 지난 3월 말 11만8812명으로 소폭 늘었고, 3대 금융그룹의 올해 채용 규모는 지난해 2416명에서 올해 4283명으로 78%나 폭증했다.
 
반면 점포는 지난해 6월 말 7451개였던 것이 올해 3월 말에는 7356개로 줄었다. 초저금리 기조에 따라 수익성도 뚝 떨어지고 있다. 지금도 필요 이상으로 더 많이 뽑고 있는데 굳이 연봉 반납으로 신규 채용에 보태겠다는 얘기를 하는 것은 정부의 압박 없이는 나올 수 없는 ‘쇼’라는 얘기다.
 
여기에 3대 금융그룹이 총 연간 추가 채용규모를 300명 정도로 예상한 것도 뒷말을 낳고 있다. 은행권 일반 직원의 초봉은 3000만원 대 중반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1년에 세 금융그룹에서 200명 정도 채용하는 데에 그친다. 300명이라는 숫자는 72억원 가량의 연봉 반납분을 연 2400만원 정도로 나눠야 나올 수 있다. 결국 정규직보다 단기 인턴 등의 비정규직 채용에 더 많이 이 금액을 활용하겠다는 얘기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과거에도 유사한 사례가 있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이던 2009년에도 은행권은 ‘반강제적’으로 잡셰어링을 실시하면서 대부분의 은행들이 임직원의 연봉을 삭감했다. 다만 그 때는 신입 행원의 연봉을 깎아 채용을 늘린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행원과 총 임직원 수는 2009~2011년까지 오히려 전년에 비해 0.4%~3.2%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인턴이나 계약직 채용 등 비정규직 채용이 난무했기 때문이다.
 
이번 연봉 반납이 전시행정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일각에서는 금융당국의 입김을 통한 연봉 반납 확산이 낳을 또 다른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다. 근로자들의 임금을 삭감하거나 임금피크제 확대 등에 “경영진이 이만큼 고통을 분담하고 있다”는 식의 압박용 카드로 사용될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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