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우측 2번째서 박대통령 참관, 北 최룡해는 우측 끝

▲ 3일 중국 전승절 열병식에 참석한 박 대통령은 중국인들이 붉은 색과 더불어 좋아하는 황금색 의상을 입고 등장해 양복 일색의 각국 정상들 중 단연 돋보였다. ⓒ뉴시스
3일 박 대통령의 ‘항일전쟁 및 세계 반(反)파시스트 전쟁 승리 70주년 기념행사’의 하이라이트인 ‘열병식’ 참관을 통해 세계는 과거와 달라진 한중관계의 위상과 역대 최대 규모 열병식을 통해 세계에 ‘군사굴기’를 과시하는 중국의 위세를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날 70여분간 이어진 행사의 주제는 항일전쟁 승리기념 및 정신 고취와 민족부흥 실현으로 중국은 ‘항일’이라는 과거사를 내세워 한국을 중국과 더불어 일본과의 대척점에 세우는 모양새를 갖추는 한편 1980년대 덩샤오핑 이래 유지해 온 도광양회(재능을 감추고 때를 기다린다) 전략을 폐기하고 군사력 과시로 미국과 일본을 압박해 아시아에서 중국의 과거 지위를 회복하겠다는 야심을 드러냈다.
 
이번 행사를 사실상 ‘강한 중국’으로 선회하는 이정표로 판단한 미국은 중국의 군사굴기가 촉발시킬 동북아 군비경쟁을 우려하면서도 미국 주도 국제질서를 뒤흔드는 ‘중국’ 견제에 나서기 위해 전날(현지일자 2일) 오바마 대통령의 태평양전쟁 종전 70주년 기념 성명에서 “지난 70년간의 미·일 관계는 화해의 힘을 보여주는 모델”이라고 미일동맹을 강조함으로써 전쟁 가능한 보통국가화를 추진 중인 일본 아베 총리에 힘을 실어줬다.
 
◆ 中 전승절 열병식에서 드러난 중국의 메시지
 
중국은 이번 행사를 위해 1만 2천여곳의 공장 가동을 일시 중단시켜 스모그로 유명한 베이징의 대기 질을 회복시키는 한편 지난 6월부터 7개 군단에서 선발된 행사 참석 장병 1만 2천여명에 대한 열병식 준비 훈련을 실시하면서 대열의 ‘각’을 잡기 위해 중국 자체 GPS체계인 ‘베이더우’ 시스템까지 활용해 오차를 줄이는 등 여러모로 심혈을 기울여왔다.
 
행사를 앞둔 전날부터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베이징은 계엄 수준의 통제에 들어가 자금성, 왕푸징 등 주요 관광명소가 일시 폐쇄된 것은 물론 행사 당일 3시간동안 베이징 서우두 공항에서의 모든 비행기 이착륙이 금지되고 초중고 학생들의 개학도 7일로 미루는 등 중국이 이번 행사에 부여한 의미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케 했다.
 
이날 오전 10시(현지시간) 중국 내 56개 민족을 상징하는 예포 56문에서 70발씩 포탄이 발사되며 시작된 열병식은 리커창 중국 국무원 총리의 오성홍기 게양 선언과 함께 국기호위대 200여명이 일본과의 첫 전쟁인 1894년 청일전쟁부터 올해까지 121년임을 상기해 정확히 121걸음 이동해 게양이 이뤄졌고 곧바로 이어진 시 주석의 10여분간 연설로 서막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시 주석은 “인민해방군은 조국의 안보와 인민을 보장하는 동시에 세계평화를 수호하는 신성한 사명을 띠고 있다. 중국은 평화발전의 길을 갈 것이며 영원히 패권주의를 추구하지 않고 확장을 꾀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며 중국군 30만명을 감축하겠단 계획을 전격 공개했는데 대다수 전문가들은 과거와 다른 ‘대외적 과시’란 이날 열병식의 성격과 추후 남사군도 문제 등 아시아에서 미국과 충돌할 여러 현안들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의 이런 선언은 양적 규모를 줄이는 대신 질적 우위에 서기 위해 중국군 현대화에 나서겠단 뜻이라 해석하고 있다.
 
또 시 주석은 평화와 발전을 강조하면서도 “세계는 평화롭지 않고 전쟁의 ‘다모클레스의 칼’이 인류의 머리에 드리워져 있다”고 말했는데 그가 인용한 ‘다모클레스의 칼’은 한 올의 말총에 매달린 칼로, 절박한 위험을 상징하고 있으며 이는 중국군이 ‘세계평화 유지’를 명분으로 적극적인 역할을 확대하고 개입해나가겠단 의미로 풀이될 수 있다.
 
그는 ‘처음은 누구나 노력하지만 끝까지 하는 사람은 적다’는 뜻의 ‘미불유초 선극유종’이란 표현을 언급하며 중화민족의 부흥을 실현하기 위해선 세대를 이어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혀 이날 연설에 담긴 내용은 정세변화에 따른 임시적 대응이 아닌 장기적인 미래 전략으로 내놓은 것이라 판단할 수 있다.
 
연설에 이어 시 주석은 중국산 승용차 ‘훙치(紅旗)’를 개조한 차량을 타고 사열했는데 열병식이 진행되는 동안 일제가 패망한 1945년을 의미하는 45대의 오토바이가 선두행렬에 나타난 것을 필두로 27개 부대 40여종 500개의 무기와 장비가 등장했고 하늘엔 18종 200여대에 이르는 항공기들이 위용을 드러냈다.
 
이날 등장한 500개의 장비 중 84%는 대중엔 이번에 처음 공개된 것으로 알려지며 이 중 가장 주목되는 건 지난 2001년부터 중국이 ‘항공모함 킬러’로 배치했던 둥펑-21D로 미 해군의 주축인 항모전단을 위협하는 가장 큰 요소로 꼽히고 있어 이번에 실물을 처음 공개한 건 바로 미국을 겨냥한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날 행사에서 공개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DF-41, DF-31B 등 핵탄두를 탑재한 채 미국까지 타격 가능한 대륙간탄도 미사일은 미국을 극도로 자극할 수 있단 판단에 따라 공개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며 미 스텔스 전투기 F-22의 맞수로 떠오르는 중국판 스텔스기 젠-20도 개발이 완료된 지 불확실한데다 주요제원 노출을 우려해 등장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또 한가지 주목할 점은 이날 열병식에서 외국정상은 모두 시 주석의 오른편에 섰고 왼편엔 장쩌민, 후진타오 등 전직 중국 주석을 비롯한 중국 고위인사들이 자리했단 부분인데 얼마 전까지도 부패척결을 천명하며 장쩌민 측의 상하이방을 대거 숙청한 시 주석이 이날 불참할 것으로 예상됐던 전직 주석들까지 내보인 데엔 당 내부 갈등없이 원로들이 자신을 지지하고 있단 중국의 ‘통합’을 보여줄 의도가 숨은 것으로 파악된다.
 
이는 과거 토비로 칭했던 현재 대만의 국민당 정권에 대해 ‘하나의 중국’을 내세워 끌어들이려는 의도로 전승절 행사 참가 10개 항일부대 중 국민당 군대 소속 노병들까지 참석할 수 있게 바뀐 모습을 통해서도 ‘통합’의 메시지를 읽어낼 수 있다.
 
◆ ‘자리 외교’를 통해 본 한중관계의 변화
▲ 이날 열병식을 참관하는 텐안먼 성루에서 박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 오른편 두번째에 자리해 오른편 말석에 위치한 최룡해와 대비되는 모습을 통해 한중관계와 북중관계의 현주소를 뚜렷이 보여줬다. ⓒ뉴시스
 
박대통령이 우리 정상으론 최초로 텐안먼 성루에 올라 열병식을 참관했다.
 
이날 행사가 국제사회에 중국을 과시하기 위한 쇼라는 판단에 미국과 유럽을 위시한 서방국가 대부분이 일찍이 불참을 선언했지만 유일하다시피 참석한 서방측 국가란 점에서 우리나라는 행사 전날부터 시 주석과의 정상회담에 이어 당일에 서열 2위인 리 총리와도 면담을 가지는 파격적 일정을 진행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지난 2005년 야당 당수였던 한나라당 대표 시절 박 대통령과 일찌감치 저장성 당 서기로 방한해 인연을 맺었던 시 주석은 “박 대통령은 가장 중요한 손님 가운데 한 분이니 잘 모시라”며 박 대통령 전용 영접팀을 꾸려 수차례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선지 행사준비와 외빈 영접으로 바쁜 중에도 시 주석은 전날 외국 정상 중 유일하게 박 대통령과 특별오찬을 가졌고 이날 전승절 행사 후 열린 오찬 리셉션 때도 박대통령만 전용 대기실이 제공됐다고 한다.
 
다만 이날 열병식을 앞두고 당초 텐안먼 성루에서 시 주석 왼편(상석)에 설 것으로 예상됐던 박대통령이 시 주석 오른편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로 자리해 중국의 전통적 우방인 러시아에 대한 배려를 우선한 것이냐는 시각이 있었는데 사실 이날 열병식에 앞서 있었던 시 주석 내외와의 사진촬영이나 텐안먼 성루로 이동하는 과정에서의 박대통령 위치를 보면 중국이 러시아를 의식하면서도 한국을 특별히 고려한 흔적이 역력하다.
 
박 대통령의 위치는 열병식 착석에 이르기까지 4차례나 달라졌는데 열병식 행사장에 입장하기 전 자금성 단문(중국 황제가 드나드는 황궁 정문)에서 영접 나온 시 주석 내외와 기념 촬영시 시 주석의 오른편에 서 사진촬영을 했다가도 열병식 시작 전 진행된 정상 및 외빈들과의 단체 기념사진 촬영 때는 시 주석 부인인 펑리위안 여사를 사이에 두고 시 주석 왼편에 자리했고 시 주석 오른편엔 푸틴 대통령이 섰다.

이 단체사진 촬영 후 다른 정상들과 함께 성루로 이동했을 땐 시 주석 오른편엔 푸틴 대통령이, 왼쪽(상석)엔 박 대통령이 나란히 계단을 올라 한국을 배려한 모습을 보여줬다.
 
비록 성루에 오른 뒤엔 박대통령이 푸틴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 자리에 위치했지만 일각에서는 한미동맹이나 일본이 주장하는 ‘한국의 중국 경도론’ 등을 감안할 때 바로 옆보단 이 정도 위치가 오히려 가장 좋고 성루 위에 있던 60여명에 이르는 역대 최다 VIP 수를 생각하면 각별히 예우한 위치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이처럼 자리 배치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지만 확실한 건 전날부터 이어온 과정을 살펴 볼 때 시 주석이 이날 박 대통령을 푸틴 대통령과 가까운 거리에 앉힌 건 그만큼 한국의 위상을 고려하고 있단 의미이고, 이는 기존 중·러 밀월 관계를 지속적으로 강화하면서도 한·미·일 3각 동맹 체제에서 한국을 중국 쪽으로 확실히 끌어당기려는 정치·외교적 의도도 포함됐다고 볼 수 있다.
 
이밖에 이날 사열이 이어지는 와중에 박 대통령이 선글라스를 착용한 채 지켜보는 광경도 눈에 띄었는데 이에 대해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중국 쪽에서 차양이 없고 햇볕이 강할 수 있으니 미리 준비하라고 안내했다”며 미국을 의식해 표정관리하기 위한 조치가 아니었냐는 일각의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또 이날 북한을 대표해 김정은 제1위원장 대신 참석한 최룡해 조선노동당 비서는 당초 뒷줄로 예상된 것과 달리 앞줄에 자리하긴 했으나 오른편에서 가장 끝에 위치해 61년 전인 1954년 10월 당시 마오쩌둥 중국 주석 바로 왼편에 북한 김일성 주석이 자리하며 한국전쟁 직후 최고의 우의를 과시했던 북중관계를 완전 무색케 하는 격세지감을 보여줬다. 이를 두고 일부에선 최룡해가 박대통령과 거리를 두게끔 중국 측에서 고려한 좌석배치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한편 시 주석 오른편에서 5, 6번째에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내외가 앉았으며 이날 열병식에는 러시아·멕시코·쿠바·몽골·카자흐스탄·파키스탄·벨라루스 등 11개국이 사열부대를, 아프가니스탄·캄보디아·베네수엘라 등 6개국이 군 대표단을 파견했고 우리나라는 프랑스·베트남·태국 등과 함께 군 참관단(우리 군 3명)을 파견했다.[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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