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새내기, 신입생 환영회서 '음주 신고식' 여전해

새 학기가 되면 대학가는 술 취한 신입생들의 객기와 일탈이 넘쳐나고 부모들은 계열과 동아리, 출신고 동문회별로 밤마다 이어지는 술자리에 참석하고 인사불성으로 귀가하는 자녀들을 기다리느라 밤을 지새우기 일쑤다. 입시에서의 해방감과 대학생으로 누리고 싶은 자유, 낭만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 찼던 새내기들에게 폭음을 강요하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과 '개강파티'등은 목숨을 건 '서바이벌 게임'이다. 서바이벌게임에서는 총에 맞아도 일어설 수 있지만 음주 서바이벌게임은 한번 가면 끝이다. 입시지옥을 통과해 대학 문턱에 이른 꽃 같은 젊은이들이 한국사회의 엽기적 술문화 탓에 해마다 목숨을 잃고 있다. 물론 다른 나라 대학에도 술을 매개로 한 '통과의례'가 있다. 그러나 한국 대학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새내기 술 권하기'는 지나치게 강압적이고 과도하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끊이지 않는 신입생 음주사고 새내기 음주로 인한 사망사고 유형은 신고주 사발주를 마신 뒤 즉사하거나 폭음으로 잠든 채 사망, 귀가 중 음주운전 사망, 폭음 다음날 체력단련 중 사망, 며칠간 연속 음주로 심질환계 발작 사망 등 다양함을 더해 가고 있다. 올해엔 추락사고까지 가세했다. 설악권 콘도 밀집지역에는 지난 한달 동안 고려대와 중앙대, 삼척대 등 각 대학의 신입생 1만여명이 찾았으나 그릇된 음주문화로 인해 사고가 빈발, 축제의 장에 찬물을 끼얹었다. 지난달 말 이곳에서 열린 한 대학의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는 만취한 신입생이 콘도 4층에서 추락, 중태이며 그 이틀 전에도 같은 곳에서 술 취한 신입생 여학생이 베란다를 통해 옆방으로 건너가던 중 추락해 뇌사상태에 빠져 있다. 이처럼 대학생들의 음주사고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어 대학 음주문화에 대한 일대 각성이 요구되고 있다. 1인당 2병씩, 입학 후 두달은 술과 함께 대학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 끝난 콘도에서는 빈 소주병 2700여개가 수거돼 청소원들이 혀를 내둘렀다. 오리엔테이션 참석 학생이 1500여명인 점을 고려할 경우 1인당 대략 소주 2병을 마신 격이다. 일부 대학에서는 아예 술을 트럭으로 싣고 오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어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행사가 음주행사로 전락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오리엔테이션을 시작으로 신입생들은 요즘과 같이 입학 후 계속되는 학부와 학과 신입생 환영식, 각종 동아리 신고식, 학내행사 뒤풀이에 친구들간 모임까지 술판으로 이어져 두 달 동안은 술에서 깨기 힘들다는 얘기도 있다. 이에 경찰 관계자는 "학생들의 음주문화가 변화하지 않는 이상 매년 음주사고가 발생할 것"이라며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억지로 강요하는 선배들의 무리한 요구가 사라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했던 강원도 춘천시 모대학 이모(19)군은 "일정이 끝난 야간에는 어김없이 선배와 술자리가 이어졌다"며 "선배의 강요로 여학생까지 동석, 못 마시는 술을 통과의례로 밤늦도록 마셔야만 해 고통스러웠다"고 말했다 주류업계, 신학기 판촉 활동으로 음주 부추긴다 한편 일부 주류업체들은 미래의 주당에 대한 '입맛 선점'을 목표로 신학기 판촉 활동을 통해 대학생들의 음주를 부추기고 있으니 이 또한 한심한 일이다. 아직 기성 사회의 음주 패턴에 물들지 않은 대학생들을 자사의 '잠재 고객'으로 선점하려는 마케팅 전략에 열을 올리는 것이다. 24일 주류업계에 따르면 최근 알코올 21도 '산소주'를 출시한 두산주류 BG(대표 조승길)는 작년 12월 '산소주를 즐기는 대학생 모임'이라는 뜻의 '대학생산악회'를 만들었다. 백세주를 만드는 국순당(대표 배중호)은 지난 16~20일 서강대, 연세대, 한국외국어대 등 3개 대학의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사에 자사 제품 '삽겹살에 메밀 한잔' 250박스(5000병)와 삼겹살 4600명분을 제공했으며, 이달 말까지 건국대 등 2~3개 대학에 추가로 지원할 계획이다. 특히 서강대 행사에서는 '실전용 음주클리닉'을 열어 '음주 새내기'인 신입생들에게 선배에게 밉보이지 않고 술 거절하는 법, 술 적당히 마시는 노하우, 몸 상하지 않고 술 마시는 법 등을 가르쳐줬다. 술 잘 마시면 약, 넘치면 독 이같은 대학 문화에 대해 어른들은 술은 처음 배울 때가 중요하므로 제대로 알고 마시라고 충고한다. 밤새 마시고 토하면서도 또 마시는 선배를 영웅처럼 여겨,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억지로 마셨다가는 큰 변을 치루게 된다. 음주 후 습관적 구토는 무서운 결과를 낳는데 그 대표적 사례가 말로리와이즈 증후군이다. 심한 구토의 충격으로 식도 쪽 점막이 찢어지면서 출혈이 일어나는 질환인데, 이는 건강한 사람에게도 흔히 나타날 수 있으므로 과도한 음주를 피해야 한다. "80~90%는 자연 지혈되고 반복적인 재출혈이 없어 별다른 치료가 필요 없지만 내시경 소견상 출혈이 심할 경우, 드물게 식도 천공이 동반될 때에는 응급수술이 필요하다"고 전문의는 말한다. 만약 처치하지 않고 내버려두면 사태가 심각해질 수 있고 사망률도 5%나 된다고. 또한 음주 후 피가 위쪽이 아닌 아래로 쏟아질 수도 있는데 흔히 과음자들에게 나타나는 항문 출혈시 평소 있던 치질이 음주로 인해 심각해진 상황이므로 꼭 병원을 찾아야 한다. 음주 후 구토시 꼭 피를 흘리지 않더라도 구토를 하는 이가 누운 채 토사물을 올린다면, 주위의 도움이 필요하다. 전문의는 "만취는 반사신경을 둔하게 해 바로 누운 상황에서 구토할 때 기도 막힘에 적극적인 대처를 못하게 되므로 구토하는 이를 옆으로 뉘어 구토물이 기도를 막지 않고 흘러내리도록 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강권에 의한 술잔 거절할 줄 알아야 모 대학 관계자는 "새내기들이 대학 입학 후 지성의 세례에 앞서 과도한 술 세례를 받는 것은 현명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며 "술로 맺어진 관계는 술이 깨는 것과 동시에 사라져 버리고 과음과 허송세월로 지내기에는 대학 4년이 너무나 짧다"고 말했다. 사실상 첫 공식적 술자리인 대학 새내기 시절의 술버릇은 평생의 음주문화와 직결되기 때문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건전 음주문화에 대한 대학의 다채로운 교육과 캠페인이 필요하다. 선배는 술보다는 실력과 교양 및 풍부한 인생 경험으로 후배들을 리드해야 하며 새내기들 또한 강권에 의한 술잔은 단호히 거절할 줄 알아야 한다. 또 스스로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하는 것이 진정한 대학생활의 첫 걸음이다. 이성심 기자 lss@sisafoc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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