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억원 더 쓰고도 롯데에 밀려…심사 과정 의혹 잇따라

▲ 지난 달 LH는 화성 동탄2신도시 백화점 부지 입찰에서 롯데쇼핑 컨소시엄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현대백화점은 예정가보다 1000억원 이상 많은 4144억원을 써 냈음에도 롯데쇼핑 측이 써낸 3557억원에 밀려서 탈락했다. 사진은 롯데쇼핑 측의 조감도(왼쪽)과 현대백화점 측의 조감도(오른쪽). ⓒLH
지난달 경기 화성 동탄2신도시의 백화점 부지 입찰에서 탈락한 현대백화점과 사업자 선정 공모를 냈던 LH가 롯데에 대해 제기되는 특혜 의혹과 관련해 심사 과정을 놓고 한 판 벌일 태세다.
 
31일 현대백화점 등에 따르면 지난 달 24일 LH는 화성 동탄2신도시 백화점 부지 입찰에서 롯데쇼핑 컨소시엄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이 입찰은 지난 4월 LH가 KTX 동탄역이 들어서는 ‘동탄2신도시 백화점 부지 민간사업자’ 선정과 관련해 낸 공모에 따른 것이다.
 
해당 지역은 동탄2기 신도시의 핵심 상업지역으로 수도권에서 대형 백화점이 들어설 만한 마지막 금싸라기 땅이라는 평가를 받아 왔다. 이에 해당 부지를 놓고 대형 유통업체들 간의 치열한 경쟁이 펼쳐진 바 있다.
 
결국 롯데의 승리로 귀결됐지만 입찰에서 탈락한 현대백화점 측이 강하게 반발하면서 현재 특혜 시비가 일파만파 퍼지고 있는 상태다. 특히 현대백화점 측은 롯데 측 보다 600억원 가량 높은 금액을 적어냈음에도 탈락해 심사 과정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알짜배기 땅’ 입찰 유통공룡들 각축전
KTX 동탄역 인근 광역비즈니스콤플렉스 내의 중심에 위치한 해당 부지는 주상복합 아파트 1000여 세대와 백화점을 함께 지을 수 있는 연면적 33만㎡의 대규모 부지로 동탄2신도시 내에서도 최고의 알짜배기 땅으로 꼽혀 왔다. 특히 동탄2신도시에 입주할 예정인 28만여 명이 모두 입주하면 화성시 전체 인구가 80만 명을 뛰어넘게 돼 경기 남부지역 유통상권의 차기 중심지로 꼽히기도 했다.
 
이에 내로라하는 기업들이 입찰에 대거 뛰어들었다. 당시 공모에 참여한 곳은 현대백화점 컨소시엄과 STS 컨소시엄, 롯데쇼핑 컨소시엄이다. 이들 컨소시엄은 해당 부지에 몰린 뜨거운 관심 만큼 일제히 호화 진용을 갖춰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현대백화점 컨소시엄에는 현대백화점을 필두로 대우건설, 대상산업, 메리츠종합증권에 메가박스와 홈플러스, 드마리스 등까지 다양한 업종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STS 컨소시엄에는 부동산 개발업체인 STS개발의 주도 하에 유통 ‘빅3’ 중 하나인 신세계백화점 그리고 한화건설 등이 포함됐다. 롯데쇼핑 컨소시엄에는 롯데쇼핑을 대표로 해 롯데건설과 롯데자산건설 등이 참여했다.
 
이처럼 유통 ‘빅3’가 직·간접적으로 모두 참여했고 경쟁이 치열했던 만큼 대부분은 다른 부문에서 후보들이 모두 비슷한 점수를 받고 ‘누가 더 높은 금액을 써 내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릴 것으로 예측했다. 당초 LH 측이 내놓은 예정 가격은 주거부분 1017억원과 비주거부분 1909억원 등 총 2927억원이었다.
 
결국 최종 승자는 롯데였다. 롯데쇼핑 컨소시엄은 동탄2신도시 입주 시기 및 KTX 개통(2016년 6월)에 맞춰 백화점과 대형마트, 쇼핑몰, 동탄 역사를 조기 완공하는 사업 제안을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LH 측은 롯데의 선정 이유에 대해 “중심앵커블럭을 동탄 1·2 신도시는 물론 수도권 남부지역 랜드마크로 개발하겠다는 계획이 심사위원들의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이날 <시사포커스>와의 통화에서 “심사 과정의 불투명성을 밝혀달라는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이라며 “LH 측에 그 부분에 대해 명확한 답변을 달라고 요청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진 / 홍금표 기자
◆드러나는 의혹들…LH의 롯데 밀어주기?
하지만 선정 이후 후보들이 써낸 가격이 알려지면서 특혜 의혹이 강하게 제기되기 시작했다. 특히 현대백화점은 예정가보다 1000억원 이상 많은 4144억원을 써 냈음에도 롯데쇼핑 측이 써낸 3557억원에 밀려서 탈락했다. 100조원에 가까운 부채를 안고 있는 ‘부채 공룡’ LH의 선택이라고 보기에는 의아한 구석이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게다가 평가 점수표 내용이 알려지면서 이 같은 의혹은 더욱 짙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롯데 측은 입찰가격이나 사업수행능력, 토지비 납부 계획 등 객관적 평가 부문에서 모두 현대백화점에 뒤졌음에도 불구하고 재원 조달 계획, 사업성 분석 및 리스크 관리 계획 평가 등 주관적 부문에서 현대백화점을 따돌리면서 ‘역전승’을 일궈냈다.
 
심지어 재무 계획 부문에서 현대백화점은 2년 연속 적자를 기록 중인 STS개발이 주도하는 STS 컨소시엄에도 밀린 것으로 나타나 의문점이 증폭되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주관적 평가 부문에서 모두 꼴찌를 했다. 물론 신세계백화점이 STS 컨소시엄에 포함돼 있기는 하지만 주도적인 입장은 아닌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상식적으로 현대백화점 컨소시엄이 주관적 평가 전 부문에 걸쳐 꼴찌를 했다는 점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심사위원 선정 과정도 의문투성이인 상태다. LH는 입찰 심사 이틀 전 심사 안내를 하면서 입찰 참여업체가 심사 하루 전인 지난 달 22일까지 심사위원 후보군 100명을 확인하고 기피 신청을 하면 이를 바탕으로 최종 심사위원 10인을 선정한다고 밝혔다. 기피 신청은 일반적으로 심사나 재판에서 상대방과 관련이 돼 있어 보이는 등의 이유로 공정하지 않은 결과가 예상될 경우 해당 위원을 제외해달라고 신청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지난 달 22일 당일이 되자 LH는 보안 유지를 이유로 심사 당일인 지난 달 23일 기피 신청을 미룬 뒤 100명이 아닌 미리 선정한 10인 중에서만 기피 신청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LH는 기피 신청을 포기하라고 종용하는가 하면 결국 이뤄진 기피 신청에서는 심사위원들의 상세 내역이 아닌 소속과 직책 정도만 공개해 정보가 없는 참여 업체들이 아무도 기피신청을 하지 않는 결과를 불러 왔다.
 
심지어 LH는 이 중 한 명이 개인 사정으로 당일 참석이 어려워지자 LH 내부 직원을 심사위원으로 참여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심사 위원 선정 당시 LH의 감사실 직원과 LH 자문 변호사들이 참관인으로 입회해 공모 지침을 위반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LH 동탄 담당 직원이 윗분들의 결정으로 기피 신청 방법을 바꿨다고 얘기했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심사 과정 역시 급작스러운 변동을 겪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당초 LH 측은 심사 장소와 시간을 통보해주기로 했었지만 갑작스럽게 수원 라비돌리조트에서 심사를 진행하는 것으로 변경됐다.
 
◆현대百-LH 갈등 격화
‘의혹 종합세트’라고 불릴 만큼 광범위한 분야에서 이해하기 쉽지 않은 의혹들이 새 나오자 현대백화점 측은 심사 과정에 대한 정보 공개를 수 차례 청구하는 등 본격적으로 나섰다. 이에 LH는 지난 14일 “롯데쇼핑 컨소시엄이 그룹사 단독으로 구성돼 있어 안정적인 사업 추진이 가능하다”는 해명을 내놨다.
 
LH 측은 60점이 배정된 ‘출자자 구성의 신뢰성 및 적정성’에서 롯데 측이 그룹사 형태로 들어오고 출자금액이 커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반면 현대백화점 컨소시엄은 컨소시엄 구성이 복잡해 사업이 지연될 가능성이 있다는 평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해명이 오히려 더욱 화를 키우고 있다. 애당초 평가표에는 그룹사 단독 구성에 대한 평가 항목 자체가 없고 출자자 구성의 신뢰성을 논하기에는 지나치게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롯데쇼핑 컨소시엄에 포함된 한 설계사에 LH 출신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다는 주장까지 나오면서 특혜 시비는 더욱 거세게 불타오르고 있다.
 
업계에서는 LH가 입찰 가격을 열어본 뒤 현대백화점 측이 예상보다 많은 가격을 써내자 심사위원 구성 방식을 바꾼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롯데 측이 백화점과 영화관, 식당, 호텔 등에 주거 부문에 아파트를 지을 수 있는 건설사까지 각종 계열사들을 다 갖고 있다는 점에서 이미 LH 측이 롯데 측의 손을 들어주기로 했던 것 아니냐는 얘기다.
 
실제 LH가 공모한 PF 사업 중 가격을 가장 높게 제시한 사업자가 탈락한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부동산 업계에서도 그간 사업 계획이나 운영 방안 등이 아무리 좋아도 600억원 가까운 금액을 뒤집는 일은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이번 입찰 결과를 이례적으로 보고 있다. 공모형 사업은 곧 돈에 따라 성패가 갈린다는 공식이 깨진 셈이다.
 
▲ LH 측은 60점이 배정된 ‘출자자 구성의 신뢰성 및 적정성’에서 롯데 측이 그룹사 형태로 들어오고 출자금액이 커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LH 측은 조만간 관련 해명 자료를 추가로 더 내놓을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 / 홍금표 기자
◆법정 싸움 갈까…양측 행보 주목
현대백화점의 잇단 정보 공개 청구에도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오지 않을 경우 법정 분쟁으로 비화될 조짐도 감지된다. 업계 관계자는 “다 잡았다고 생각한 승리를 놓친 현대백화점이 LH와 롯데를 상대로 한 이 싸움의 무대를 법정으로 옮길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일각에서는 가뜩이나 롯데에 대한 냉기류가 감지되는 국회에서 국정감사의 주요 화두로 올라갈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국정감사 시즌 개막이 임박한 최근 국회에서는 형제 간의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지배구조 불투명성이라는 민낯을 드러낸 롯데그룹의 신동빈 회장 및 신격호 총괄회장 등에 대한 증인 채택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부채가 천문학적인 규모로 쌓여 있는 LH가 굳이 수 백억원을 외면한 사실 자체 역시 여야 의원들의 질타를 부를 것으로 보인다.
 
다만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이날 <시사포커스>와의 통화에서 “심사 과정의 불투명성을 밝혀달라는 요구를 하고 있는 것 뿐”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그는 “우리가 주장하고 있는 것은 심사위원 구성 방식이나 기피 신청 등의 절차가 투명하지 못했다는 것 뿐”이라며 “LH 측에 그 부분에 대해 명확한 답변을 달라고 요청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심사위원들의 롯데 밀어주기 의혹 제기나 구체적 항목에 대한 배점 등에 대한 항의까지는 아니라고 선을 그은 셈이다.
 
그는 “LH가 가장 높은 금액을 써낸 곳을 탈락시킨 것이 처음이지 않느냐”면서 “1~2억 차이도 아니고 600억 가까이 차이가 나기 때문에 심사 과정의 불투명성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의혹에 대한 해명을 받고 싶다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법적 분쟁 전망에 대해서는 가능성이 낮다고 선을 그었다. 이 관계자는 “현재까지 소송전 등의 법적 분쟁까지 검토한 바는 없다”면서 “(두 차례의) 정보 공개 요구에 대한 답변이나 향후 상황을 보고 나중에 참고할 만한 부분이기는 하지만 아직까지 그 정도로 극단적으로 생각하거나 내부 입장을 정리한 바는 없다”고 밝혔다.
 
아울러 LH 측은 조만간 관련 해명 자료를 추가로 더 내놓을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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