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수 없는 한 8‧25 합의사항 이행 집중할 듯

▲ 남북의 군사적 대치로 긴장감이 고조됐던 한반도의 긴장상황이 눈 녹듯 사라지게 됐다. 북한의 비무장지대(DMZ) 목함지뢰 도발과 서부전선 포격 도발로 초래된 상황을 논의하는 남북 고위급 접촉이 25일 극적으로 타결됐다. ⓒ뉴시스
그간 북한은 대남 관계를 자신들의 의도대로 이끌어 가려 하거나 대내적 결속이 필요할 경우 도발과 대화를 번갈아 혹은 동시에 제의하는 화전양면전술을 펴왔다.
 
이는 김정은 체제에 들어선 이후에도 지속돼 지난 4일 지뢰도발을 일으킨 이래 이에 대한 대응조치로서 우리 측이 10일 대북확성기 방송을 실시하자 북측은 타격 위협 발언을 해왔고 박대통령이 중국 전승절 참석 의사를 밝히며 친밀한 한중관계를 내외에 과시한 20일에 이르면 당일 오후 북한은 포격 도발을 일으켜 남북간 긴장 수위를 충돌 직전까지 몰고 갔다.
 
또 전형적인 화전양면전술답게 얼마 전 포격도발 사태 와중에도 선제적으로 대화를 제의하는 모습을 보여 우리 측은 당시 북측의 대화제의가 진정성이 있는지 그 의도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결과적으로 미‧중 모두에 압박을 받고 예상과 다른 우리 측의 강경하고 완강한 반응에 북측은 결국 갈등 완화를 위해 대화를 제의했다는 점이 남북 고위급 접촉 결과로 증명됐지만 이처럼 북측이 어쩔 수 없이 굴복한 형태로 이뤄진 남북관계 개선이 과연 언제까지 재도발 없이 이어질지도 미지수인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지난 25일 남북 고위급 접촉 공동보도문을 통해 관계개선의 물꼬를 튼 남과 북은 서로 향후 관계에 대한 어떤 복안을 가지고 이 같은 합의에 이르게 됐는지 최근 후속 행보를 통해 전망해 보고자 한다.
 
◆ 北 도발 주도한 ‘강경 매파’ 설 자리 잃나
 
지난 25일 새벽 2시를 기해 발표된 6개조의 남북 고위급 접촉 합의사항 이른바 공동보도문에 의거해 양측은 당일 정오부터 북측의 준전시상태 해제와 우리 측의 대북확성기 방송 중단으로 첫 합의 이행 조치를 취했다.
 
이후 우리 측은 남북 합의사항을 두고 북측의 선제도발에 정부가 이례적으로 강경 대응해 일궈낸 고무적인 결과라고 대대적으로 보도한 반면 북측은 26일 북한을 대변하는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를 통해 “남북 고위급 접촉 타결은 김정은 제1위원장의 지략과 영군술의 결실”이라며 김 위원장의 업적으로 칭송하는 등 사실과 다른 반응을 쏟아내고 있다.
 
더욱이 지난 25일 황병서 총정치국장은 “일방적으로 벌어지는 사태들을 일방적 판단하고 일방적 행동으로 상대를 자극하는 행동을 벌일 경우 군사적 충돌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며 합의문 상에서 스스로 유감을 표했던 지뢰도발까지 부인했다.
 
이에 부응하듯 김양건 당 대남비서도 27일 “북과 남이 원인 모를 사건으로 요동치는 사태에 말려들어 정세를 악화시키고 극단으로 몰아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며 북측 매체들과 한 목소리로 지뢰도발 사실 자체를 부정하고 나서 일각에선 이번 합의가 얼마나 유지될 것인지 우려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우리 정부는 합의문 내용 자체가 중요하다며 이 같은 북측의 발언들을 내부 선전용으로 치부하고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지만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적어도 북측이 이번 ‘유감 표명’ 굴복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또다시 대남 추가도발이란 강경책을 택할 확률은 현재 북한에 극히 불리한 국제 정세 등을 비쳐봤을 때도 미미하다는 것이다.
 
이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근거는 지난 20일 이후 공식 석상에서 자취를 감췄던 김 위원장이 28일 중앙군사위 확대회의에 등장해 스스로 이번 남북 고위급 접촉에 대해 “첨예한 군사적 긴장 상태를 해소하고 파국에 처한 남북관계를 화해와 신뢰의 길로 돌려 세운 전환적 계기로 된다”고 평가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조선중앙방송에 따르면 이날 그가 직접 주재한 회의에서 “당 중앙군사위 일부 위원들을 해임 및 임명했으며 조직(인사)문제가 취급됐다”고 전해 정확히 어떤 인사가 해임됐는지 아직 파악할 순 없지만 지뢰도발로 시작돼 남북긴장 상황을 촉발시키고 결국 북측의 사과로 끝맺게 한 데 대해 김 위원장이 문책성 조치를 취했을 것으로 사료된다.
 
우리 군 관계자는 이날 “고위급 접촉에서 북측이 지뢰도발에 유감을 표명한 것은 김정은 입장에서 패배했다는 인식과 다름없어 즉흥적이고 과격한 그의 성격상 가만있지 않을 것”이라며 “이번 지뢰도발과 관련해 누군가는 분명한 책임을 질 거라 본다”고 전해 이 같은 전망을 뒷받침했다.
 
만일 문책성 인사조치가 이뤄졌다면 현재 군과 정보당국에서 가장 주목하고 있는 인물은 작전권을 총괄지휘하는 리영길 총참모장과 대남도발 총책인 김영철 정찰총국장이다.
 
특히 천안함 폭침과 미국 소니사 해킹 사건 등의 배후로 알려지며 지난 2010년부터 중앙군사위 위원을 맡아온 김영철 정찰총국장은 지난 21일 이례적으로 외신 기자회견을 열고 비무장지대 지뢰도발을 부인한 인물이기도 한데, 우리 군과 정보당국은 그가 실질적인 대남도발기구의 수장으로서 지뢰도발을 기획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그 이유는 지난 4월 대장에서 상장으로 강등됐던 그가 최근 상장에서 대장으로 복귀하자마자 지난 4일 비무장지대 지뢰도발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에 우리 측에선 그를 유력한 도발 배후로 보고 이번 인사 조치에 포함됐는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다만 지난 4월 30일 숙청된 현영철 인민무력부장과 변인선 군 총참모부 작전국장을 중앙군사위원에서 제외하고 신임 위원을 임명하는 차원의 단순 조직 재정비였을 수도 있어 아직 이번 중앙군사위 인사이동의 성격과 관련해 섣불리 예단하긴 어렵다.
 
◆ 남북관계 향후 전망은?
 
▲ 홍용표 통일부 장관은 남북정상회담 가능성과 관련해 현재 논의된 바는 없다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사진 / 홍금표 기자
앞으로 남북관계는 남북 고위급 접촉에서 합의된 사항의 확실한 이행을 기초로 이 과정에서 쌓인 신뢰를 통해 회복에 탄력을 받을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벌써부터 5‧24조치 해제나 금강산 관광이 거론되는 데 대해 우리 정부는 기존의 원론적인 입장만을 밝히며 숨 고르는 분위기다.
 
이날 홍용표 통일부 장관이 국회 현안 보고 자리에서 5‧24조치와 관련해 “우리 장병 46명의 목숨을 희생시킨 북한의 천안함 폭침으로 비롯된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북한의 책임 있는 자세가 있어야 해제가 가능하다고 본다”고 밝힌 점에서 보듯 우리 정부는 남북관계의 주도권을 쥔 현재 이산가족 상봉 등 북한의 진정성을 확인하면서 속도조절에 나서겠단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 뿐 아니라 합의 이행사항의 하나인 남북 당국자 회담 개최에 대해서도 언론에서 남북정상회담 가능성까지 언급되는 상황에 대해 이날 홍 장관이 “현재 정상회담과 관련해 진행되고 있는 내용은 없다”고 확언하듯 확대해석을 경계하며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북한은 남북 고위급 접촉 결과를 계기로 관계개선에 박차를 가하는 모양새인데 27일 김양건 당 대남 비서가 “북과 남은 대화와 협상을 통해 서로의 불신과 대결을 해소하고 대담하게 관계개선의 길로 들어서야한다”며 “북과 남은 대화와 협상을 발전시켜 서로 관심사가 되는 문제들을 해결해 나아가며, 여러 분야에서 교류와 협력을 활성화시켜 나가야 한다”고 강조한 데에서 보듯 적극 남북간 교류 협력 재개를 촉구하고 있다.
 
아울러 그는 “그러자면 북과 남이 어렵게 마련해 완화의 길로 돌려세운 현 정세의 흐름을 잘 유지하고 관리해 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밝혀 적어도 남북간 합의사항을 북측이 일방적으로 파기하지 않고 확실히 이행할 뜻이 있단 입장을 우회적으로 전했다.
 
또 김 비서는 “북과 남은 더 이상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멀리 앞을 내다보면서..”라고 발언해 5‧24조치 해제조건의 전제로 우리 측이 천안함 폭침에 대한 사과를 내세울 걸 의식하고 이렇게 선제적 대응을 하기도 했다.
 
확실한 것은 앞으로 남북관계가 상당기간 긴장국면이 해소된 채로 유지될 것이란 부분이다. 북한이 예측하기 어렵고 감정적인 지도자에 의해 의사결정이 이뤄지고 있지만 현재 전통적 우방이던 중국과의 관계가 악화돼 있는 반면 한중관계는 어느 때보다 가까운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원칙에 의거해 북측에 깐깐하게 대응하는 데에 격분해 재차 실익없는 도발을 일으킬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관측되기 때문이다.[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