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임금피크제의 시대다. 삼성·SK·현대차에 이어 롯데 등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은 물론 LH를 포함한 거대 공기업들도 저마다 임금피크제 전면 도입 방침을 내놨다. 노동개혁을 올해 하반기 국정 운영의 화두로 던진 정부의 일사불란한 지휘 속에 대기업들과 공기업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속속들이 노동개혁의 풍랑 속으로 뛰어들고 있다.
 
특히 정년을 60세로 연장하는 안이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도입될 예정이라 임금피크제 도입에 참여하는 기업들이 늘어나는 속도는 연말이 다가올수록 가속화될 것이 확실시된다. 현재도 수 많은 기업들은 임금피크제 도입을 확정짓기 위해 노동자들과 불철주야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적지 않은 기업들은 수 년 전부터 임금피크제 도입을 확정해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노동계의 반발에 기업들이 내놓는 임금피크제 도입 이유를 보면 조금 궁색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정부는 물론이고 대다수 기업들은 임금피크제를 도입해 인건비를 절감하고 청년 채용을 확대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를 대고 있다. 그 말은 다시 말해 정년에 가까운 고연령의 직원들의 인건비 때문에 청년 채용 확대에 애로가 있다는 말이다. 정말 그럴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임금피크제 도입으로 청년 실업이 해결된다는 논리는 사실상 끼워맞추기와 착시 효과에 불과하다. 임금피크제는 원래 청년 실업을 해소하기 위해 설계된 제도가 아니다. 주요 대상인 중·고령 근로자들의 정년을 늘려주면서 고용 안정을 추구하면서도 기업들의 고용 안정 유지를 유인하기 위한 방안이다. 중·고령 근로자들의 정년을 늘리는 수준에서 인건비를 삭감하는 경우 기업들이 고용을 유지할 것이라는 논리에서 설계된 제도다.
 
하지만 저마다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면서 이 인건비를 아껴서 청년 채용에 확대하겠다고 한다. 이 논리가 전가의 보도처럼 쓰이면서 어느새 “아버지의 임금을 깎아 아들을 채용한다”는 세대간 갈등까지 야기되고 있다. 지난 달에는 국회 앞에서 청년 수 십여 명이 임금피크제 도입 시위까지 벌였다고 한다. 때마침 SK나 롯데처럼 물의를 빚었던 기업들은 임금피크제 도입과 신규 채용 확대를 패키지로 발표하면서 이 논리는 더욱 힘을 얻는다.
 
물론 아예 관련이 없다고는 볼 수 없다. 경총이 377개 기업의 올해 채용 계획을 조사한 결과 채용 규모가 지난해 보다 3.6% 줄었다고 한다. 5년 내 가장 낮은 수치다. 조사 대상 중 신규 채용을 아예 하지 않거나 채용 규모를 줄이는 기업들의 36.5%는 그 주요 이유로 정년 연장과 통상임금 문제를 꼽았다. 정년 연장이 내년으로 나가온 가운데 기업들의 심리가 위축되는 효과는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이 같은 기업들의 채용 심리 위축을 야기한 것이 중·고령 근로자들의 정년 연장 및 고임금이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신규 채용에 기업들이 부담을 느끼는 근본적인 원인은 우리나라 사회의 고용구조에 있다. 계약직이라는 이름 하에 운영되는 비정규직 비율이 지나치게 높고 정규직조차 인턴이네 수습이네 하는 과정을 거치고도 확실히 채용되기가 쉽지 않다. 지나치게 유연해진 고용시장에서 굳이 기업들은 정규직을 굳이 신규 채용할 이유가 없다.
 
이렇다 보니 청년들의 취업난은 더욱 심각해진다. 많은 청년층은 자영업과 공무원 시험에 뛰어들었다가 실패를 맛보고 좌절한다. 과연 임금피크제를 도입해서 절감되는 인건비로 수 만여 명 채용을 늘린다고 청년들의 채용 절벽이 해소될 것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공무원 시험은 한 번 치러질 때마다 수 십만의 청년들이 지원한다. 효과를 보려면 적어도 십 만단위로 일자리가 늘어나야 할 텐데 기업들이 임금피크제 도입으로 그만큼 채용을 늘릴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여기에 중·고령 근로자들에게 임금피크제를 적용하면서 절감되는 인건비에도 의문이 생긴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처럼 정년 보장이 철저히 지켜지는 나라라면 모르겠지만 중·고령 근로자들의 상당수가 고용 불안정을 호소하면서 비정규직으로 내몰리고 있는 실정이다. 명예퇴직 등을 빼고 나서도 우리나라 근로자들의 평균 퇴사 연령은 54세다. 임금피크제 도입으로 과연 얼마만큼의 인건비가 절감될 수 있을지, 또한 그걸로 얼마만큼의 신규 채용을 늘릴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우리 나라에 대기업들만 있는 것도 아닌데 너무 소수의 기업을 대상으로 결론을 내린 것 아닐까
 
임금을 올려줘도 만족하지 않을 판에 임금을 오히려 삭감당하게 생긴 노동계의 반발은 그래서 불붙 듯이 타오른다. 현대차 근로자들 같은 경우는 ‘귀족 노조’ 이미지는 차치하고서라도, 이미 사실상 60세의 정년을 보장받고 있다가 얻는 것 하나 없이 임금만 삭감당하게 생겼으니 “청년 고용을 위해 제 임금을 내놓겠습니다”라고 할 사람이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청년 채용 확대라는 목표를 달성하려면 지금이라도 정부는 임금피크제에 강력하게 드라이브를 걸면서 노사 갈등과 세대간 갈등을 야기하는 것을 중단하고 새로운 고용 구조 구축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는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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