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심 끝에 열병식도 참관 결단…아베‧김정은 불참, 고립 드러내

▲ 중국의 항일전쟁 70주년 기념 전승행사가 9. 3(목)부터 9. 5(토)까지 중국 베이징에서 열릴 예정인 가운데 박대통령은 전승절 주요 행사인 열병식까지 참관하기로 27일 결정했다. ⓒ뉴시스
최근 요동치는 증시와 경제 성장률 둔화 조짐으로 앞날에 먹구름이 드리운 중국은 내달 3일부터 열릴 항일전쟁 승리 70주년 기념행사(전승절)를 그간 부상해 온 중국의 위상을 대내외에 과시하고 군사굴기를 드러내 자신감을 재확인할 초대형 정치 이벤트로 삼기 위해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다.
 
이런 중국의 의도에 일찌감치 미국, 서유럽은 물론 일본을 비롯한 서방측 국가들은 연달아 불참을 통보했으나 역대 정권 중 최상의 한중관계를 유지 중인 우리 정부는 미국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추후 대북 압박 등 여러 사안에 있어 협조가 필요한 중국을 경시할 수 없는데다 균형외교를 펼침으로써 주도적 외교의 발판을 마련하고자 거듭된 숙의 끝에 27일 박대통령은 9월 2일부터 4일까지 이어질 방중 일정 중 전승절 주요 행사인 열병식까지 참석하기로 결정했다.
 
또 전날(26일) 추궈홍 주한중국대사가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의 만남에서 언급했듯 남북관계 변화 가능성과 북핵문제 해법을 논의할 것으로 전망되는 내달 2일의 ‘한중 정상회담’에 이어 열병식 직후 있을 시진핑 주석 주관 오찬 리셉션을 포함해 상해 임시정부 재개관식까지 모든 일정을 소화할 예정이며 일찍이 전승절 참석을 결정한 우리 군 참관단도 열병식까지 참석하기로 하는 등 신속한 참석 결정은 아니었지만 적극적이고 확실한 입장을 중국에 보여 방중의 의미를 확실히 했다.
 
이날 외교부는 이번 방중일정 중에서도 열병식과 관련해 “70년 전에 전쟁에서 이긴 것을 기념하는 행사로 그 성격과 의미가 중요하다”며 “이웃국가인 중국과의 우호협력 관계를 고려하는 한편,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대한 중국의 적극적 역할을 기대하고 또한 중국에서의 우리 독립항쟁 역사를 기리는 측면 등을 감안한 것”이라고 방중 결정의 성격을 설명했다.
 
한편 북한은 중국과의 관계가 악화될 대로 악화된 데다 이번 남북갈등으로 인해 대중관계가 더 악화되면서 김정은은 불참하고 최룡해 당 비서만 보내는 것으로 결정돼 남북이 중국과의 관계에서 뚜렷이 명암을 드러냈다.
 
그렇다면 이날 박대통령의 열병식 참석 결정이 동북아 정세 판도에 어떤 파장을 몰고 올 것이며 중국은 왜 그토록 참석을 종용한 것인지 그간의 상황과 배경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 중국은 왜 박대통령 참석에 열광하는가
 
지난 10일 중국공산당 인민일보 자매지인 환구시보는 일찌감치 박대통령의 열병식 참석을 기대한다는 사설을 냈다.
 
또 중국 관영언론 상에도 이번 행사에 참석하는 30개국 정상 중 푸틴 대통령과 박대통령만 실명을 명시하는 등 중국 당국은 이미 여러 매체를 통해 박 대통령의 참석을 촉구하며 각별한 관심을 드러내왔다.
 
이는 이번 행사에 참석하는 외국 정상이 러시아 대통령을 제외하곤 국제적 영향력이 크지 않은데다 남사군도에서의 긴장과 일본의 집단자위권 법안 통과 등 미‧중간 갈등이 표면화될 사안들이 산적한 가운데 미국의 전통적 동맹국 중 한국이 유일하게 행사 참석 결정하게 될 경우 한미일 공조를 깨는 한편 한반도 갈등상황에 있어 주도권을 미국이 아닌 남북 모두와 가까운 중국이 갖게 된단 포석이 깔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일례로 얼마 전 지뢰도발로 촉발된 남북간 포격을 비롯한 긴장상황에서도 미국과 일본은 곧바로 북한을 규탄한 반면 중국은 도발주체를 규명하기보다 한반도 긴장상황이 악화되지 않도록 남북 양측이 자제할 것만 촉구했단 점에서 중국의 의도가 남북한 중 일방을 편들기 보단 남북한 모두와 근린관계로 지내며 남북이 상호 견제하는 현상 유지 상황을 지속시키는 한편 한반도에서의 미국 입지를 축소시키는 데에 집중됐단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의도가 있기에 중국은 한국 대통령의 참석에 촉각을 곤두세웠고 열병식 참석과 관련해서도 우리 외교부의 공식 발표가 있기도 전인 25일 중국 외교부 장밍 부부장이 기자회견을 통해 “박 대통령이 항전 열병식에 참석한다”고 발표하는 등 압박을 가해왔다.
 
또 앞서 북한의 도발로 인한 남북간 긴장상황에 대해서도 중국은 양측 자제를 촉구한 공식논평과 달리 북한과의 접경지대인 연길시로 기계화 부대를 신속히 기동시켜 북측에 압박을 가하는 등 전승절 행사를 앞두고 북한의 긴장 조성을 좌시하지 않았단 점에서 이번 전승절에 중국이 부여한 의미와 행사 참석에 있어 박대통령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만큼 상당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선지 중국은 박대통령의 열병식 참석 공식 발표를 곧바로 전하며 크게 고무된 한편 중국 신화사 세계문제연구소는 한반도 전문가 가오하오룽을 통해 한국의 ‘지혜’가 엿보인다는 표현을 쓰는 등 이번 참석을 중국이 단순히 한국의 주도적 결정이란 부분보단 미중간 기싸움의 하나였단 데에 방점을 두고 있었음을 드러냈다.
 
이에 대한 미국과 일본의 반응을 살펴보자면 우선 미국이 그간 박대통령의 열병식 참석을 반대한다는 뜻을 한국에 전달했다는 일본 교도통신의 오보 등 모종의 압력이 있었을 거란 잡음 속에서도 이날(27일) 미 국무부 대변인은 “행사 참석은 각국의 주권적 결정사항으로 한국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평이한 입장을 발표했다.
 
반면 일본은 한국이 중국에 기울면서 아시아에서 일본의 입지가 상대적으로 축소된다는 위기감과 이 기회를 이용해 한미관계를 흔들려는 의도에선지 이날 요미우리 신문에선 “미국과 일본은 박대통령의 열병식 참가에 우려의 뜻을 전달했다. 구미 선진국 정상이 참가를 보류하는 와중에 박대통령만 돌출하는 형태가 된다”고 보도했다.
 
이미 역사문제를 들어 일본에 대해 한중공조에 나설 때부터 일본은 이를 단순한 역사문제가 아닌 정치적 의도로 보고 한미일 삼각동맹을 호주로 대체한 미일호 동맹으로 변환하고자 시도하며 미국과의 동맹선상에서 한국을 배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그런 만큼 일본은 이번 박대통령의 중국 열병식 참석을 계기로 한층 강화된 한중관계로 인해 동북아에서의 고립적 위치에서 벗어나고자 머지않아 부득이 한중일 정상회담에 응할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다만 현재로선 일본이 미중 대립에 있어 미국일변도 정책을 폄으로써 묵인될 ‘보통국가화’가 완성되기까지 미국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에 아베 총리가 8.15 사죄 담화를 발표한 이후에도 중국의 항일 전승절에 아베 총리를 비롯해 정부 차원에서 모두 불참하는 결정을 내렸다고 할 수 있다.

◆ 朴대통령 참석, 동북아 외교지형 격변 신호탄?
 
▲ 박대통령의 방중 첫날인 9. 2(수) 북핵문제와 남북관계 변화 가능성을 논의하기 위해 6번째 한중 정상회담이 개최될 예정이다. ⓒ뉴시스
이번 박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열병식 참석을 중국이 고대한 배경도 의미가 크지만 이번 방중이 우리나라에 어떤 이익이 있는지가 그보다 더 중요할 것이다. 그러자면 이번 행사에 앞서 중국과의 관계 변화부터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그간 반세기 넘게 미국을 가장 중요한 우방으로 삼아왔지만 92년 중국과의 수교 이래 중국은 2003년 우리나라의 수출상대국 1위, 2013년엔 수입상대국 1위로 어느새 우리 경제에 가장 중요한 시장이자 주요교역국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특히 시진핑 체제로 들어선 이후 중국이 동북아 안보정세를 불안정하게 하는 북한에 대해 거리를 두며 시진핑 주석이 그간 중국 정상이 취임 이후 첫 방문지로 북한을 택해왔던 관례를 깨고 한국을 먼저 방문하고 박대통령과는 이번까지 6번째 정상회담을 앞둔 반면 단 한 차례도 북한은 방문하지 않는 등 경제적 관계에 그치지 않고 정치‧외교적 측면에서도 우리 측과 급격히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이는 중국의 부상으로 아시아에서의 권력구도가 재편되고 기존 미국의 패권이 도전받게 되면서 한미일 구도로 이뤄진 미국의 아시아 동맹 축을 뒤흔들려는 중국의 의도로 보이는데 ‘중국 위협론’을 내세운 일본의 보통국가화 움직임과 맞물려 이를 견제하려는 중국과, 일본을 방조해 중국을 압박하려는 미국 사이의 패권 다툼에 우리 정부는 휘말리지 않으면서도 국익을 극대화하고 북한을 압박해 통일로 이끌어내기 위해 균형 외교를 유지함으로써 오늘 같은 미중 사이의 중립적 입장을 유지하게 됐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복잡한 동북아 역학관계 속에서 우리 정부는 중국과의 관계가 가까워질수록 정치외교는 미국, 경제‧문화교류는 중국이란 단순한 도식에 머물 수 없었고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고려해 중국과의 정치적 관계 강화는 필연적 수순이었다.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정부는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통일을 염두에 두고 중국에 접근했고 핵을 포기하지 않고 동북아 긴장상황을 높여 일본의 재무장만 부추기고 있는 북한과의 관계가 악화된 중국은 새로운 동반자로 한국과의 관계를 강화시킴으로써 한미일 동맹의 한 축을 흔들면서도 한반도 영향력을 확보하는 데 보다 다가갈 수 있게 됐다.
 
미중간 미묘한 기류가 흐르는 가운데 우리 정부는 중국 방문에 앞서 오바마 미 대통령과의 방미일정을 먼저 발표하고 남북간 갈등상황에서 미군과의 동맹을 강조하는 등 어느 한 쪽을 택한다는 위험보단 미중 둘 모두를 어느 정도 만족시키며 둘 모두가 우리를 필요로 할 수밖에 없는 선택을 함으로써 미국 일변도로 기울어진 일본보다 중립적이면서도 국제적 중요도를 높이는 고도의 외교정책을 폈다고 할 수 있겠다.
 
특히 박대통령의 중국 열병식 참석을 발표하기 전날인 26일, 외교부는 오는 30~31일 알래스카 앵커리지에서 미국 주도로 열리는 북극 외교장관회의에 참석하고 이 자리에서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과 한미 외교장관회담을 개최한다고 밝혀 박대통령의 방중 배경에 대해 미국 측에 설명할 기회를 발빠르게 마련해 한미동맹에 대한 미국의 의혹을 불식시키겠단 점에서 높이 평가되고 있다.
 
그간 박대통령의 이 같은 미‧중간 중립외교를 중국에 경도된 외교로 곡해하고 한미동맹을 뒤흔들려던 일본에 대해 박대통령은 집권 이래 지금까지 한일 정상회담을 갖지 않는 것으로 대응해왔는데 일본은 상대하기 어려운 중국보다 한국을 먼저 고립시키려는 전략으로, 작년 11월 초 좋지 않던 중일관계에도 불구하고 시진핑 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졌으나 시종일관 냉대한 시진핑 주석의 태도로 별 소득 없이 끝나고 말았다.
 
미국이 직접 나서 중재했음에도 지금까지 냉랭했던 한일관계는 이번 광복절에 있었던 아베의 미온적인 사과가 담긴 담화와 이에 대한 박대통령의 광복절 담화에서 한일 관계 개선의 여지가 보이기도 하고 있어 향후 귀추가 주목된다.[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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