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추구권, 성적 소수자들의 이익 보호 환영

대법원이 사회 소수의 의견에 힘을 실어 줬다. 대법원은 성전환자의 성별 정정을 불허한 지방법원의 원심 판결을 파기 환송했다. 성전환자의 호적정정에 대해 심리해 왔던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오늘 22일 오후에 이와 같은 판결을 내렸다. 이번 결정은 지금까지 각급 법원이 개별적으로 허용 혹은 불허한 성전환자의 호적정정을 대법원이 ‘사실상 허용’했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을 놓고 “성적 소수자가 취업 등 사회생활에서 받던 불평등에 대한 구제의 길이 열렸다”며 “이제 성전환자의 호적, 주민등록번호 변경에 대한 기존의 논쟁이 종식될 것”이라고 밝혔다. 지금까지 간헐적으로 2003년 22명, 2204년 10명, 2005년 15명이 허가받은 호적상 성별정정은 이번 대법원의 판결로 인해 국내 약 3만명으로 추산되는 성전환자들의 집단적 소송까지 예고하고 있다. 소외된 소수 의견의 권익이 보호 된 것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를 하고 있다. 하지만 보수단체들과 종교계가 심한 반발을 하고 있어 앞으로의 과정이 험난해 보인다. ◆성전환자 호적정정의 의미 이번 결정은 성전환자의 성별 정정과 관련한 명확한 법률이 없는 상태에서 사법부가 행복추구권 등 헌법상의 기본권을 존중하고, 합헌적인 법률해석을 통해 성적 소수자에 대한 구제의 길을 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동안 하급심에서 성전환자의 호적이나 주민등록번호 변경을 허용할 것이냐를 둘러싸고 빚어졌던 혼선도 정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또 성전환자들은 자신의 성과 이름, 주민등록번호 등을 고칠 수 있게 됨에 따라 주변의 멸시나 취업제한 등 신분상의 불이익에서 벗어나 정상적인 사회 생활을 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최대 3만명으로 추정되는 국내 성전환증자의 성별 정정 청구가 잇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대법원은 이번 결정에서 성전환자의 법률적인 의미와 호적상 성별을 정정하기 위한 요건을 제시했다. 즉 성전환자는 출생당시의 생물학적인 성에 대한 불일치감과 반대의 성에 대한 귀속감을 느끼고, 일상생활에서 반대의 성을 가진 사람으로 행동하고 자신의 신체 역시 반대의 성으로 만들고자 하거나, 정신과적으로 성전환증의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아도 증세가 호전되지 않고, 성전환수술을 받아 반대 성으로서의 외부 성기를 비롯한 신체를 갖추고, 자신을 바뀐 성을 가진 사람으로 인식하고 성관계나 직업 등도 바뀐 성에 따라 활동하거나, 주위 사람들이 바뀐 성으로 알고 있는 경우에 비로소 인정된다는 것이다. ◆대법원 결정, 환영하지만 완전한 문제해결은 아직 안돼 성전환자 당사자모임을 비롯해 성소수자·인권·사회단체들로 구성된 ‘성전환자 성별변경 관련 법 제정을 위한 공동연대’(공동연대)는 지난 27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2일 발표된 대법원 결정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공동연대는 성명서에서 ‘성전환자 성별변경 및 개명에 관한 특례법(가칭)’을 하반기 정기국회 때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이들은 대법원의 성전환자 호적상 성별정정 허가 결정에 대해 “성전환자들의 현실을 알리고, 제도적으로 성전환자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초석을 마련했다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며 “그간 호적과 주민등록증의 성별이 변경되지 않아 직업과 사회생활 및 결혼 등에서 철저하게 생존권과 행복추구권을 박탈당해 왔던 성전환자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결정이었다”며 환영의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이날 기자회견 단체들은 대법원의 결정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대법원이 제시하고 있는 성전환자 규정과 호적정정 법적 요건 등에 대해서는 유감을 표했다. 이들은 “성전환자 당사자들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공동연대는 “대법원은 성전환자의 호적상 성별정정의 법률적 요건으로 일련의 수술을 통해서 최종적인 수술이라고 일컬어지는 외부성기의 성형까지 요구하고 있다”며 “이미 호르몬과 생식기 제거 수술을 마친 성전환자들에게 구태여 상대 성 으로의 성기성형수술까지를 요구하고 있어, 교육과 직업 현장에서 밀려나 빈곤계층에 놓인 대부분의 성전환자들에게 성기성형수술의 막대한 비용과 위험성까지를 홀로 감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현재 성전환수술은 의료보험 적용을 전혀 받지 못 한다. 따라서 성전환자가 성기성형 내지 성기재건 수술 등의 최종적 수술까지 받기 위해서는 수 천만 원의 비용이 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많은 수의 국내 성전환자들은 최종적인 성기성형수술까지는 아니지만, 그 직전 상태인 성선제거 수술을 완료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대법원이 이번 결정에서 ‘성전환수술을 받아 반대 성으로서의 외부 성기를 비롯한 신체를 갖추고 있는 사람’으로 성별정정의 요건을 제한하고 있어 성전환자들이 처한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기자회견 단체들의 지적이다. 공동연대는 대법원 결정의 문제점을 보완하고, 성전환자들의 요구와 각계의 의견을 수렴한 뒤 9월 정기국회에서 ‘성전환자 성별변경 및 개명에 관한 특례법(가칭)’을 발의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성전환자 인권실태조사’와 ‘성전환자 증언대회’ 등 다양한 활동 등을 통해 성전환자 인권문제를 적극 제기할 예정이다. ◆종교계와 보수단체들 크게 반발 하지만 이번 결정에 종교계와 보수단체들은 "성을 바꿀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은 자연의 순리에 어긋나는 일" 이라며 크게 반발을 하고 있다. 천주교 주교회의 생명윤리연구회 이동익 신부는 "누군가가 성 정체성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다면 장애 극복이나 치료의 차원에서 도움을 주어야지 정체성을 바꾸도록 허용하는 것은 궁극적인 해결 방법이 될 수 없다" 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보수 성향의 개신교 단체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 관계자는 "결혼할 때 외모, 호적 등을 보고도 상대방의 실제 성을 의심해야 하는 일이 생길지 모른다" 며 "이번 결정은 국민 다수의 감정과도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인권단체들이 관련 법률 제정에 가속도를 내고 있다는 점에서 대법원의 이번 결정은 문제의 끝이 아니라 시작으로 볼 수 있다. 지난해 말 국내 53개 인권단체들이 모여 ‘성별 변경법 제정을 위한 국민연대’를 결성해 이미 특별법 초안을 마련한 상태다. 국민연대는 올 하반기 국회에서 법안이 무난히 통과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을 전망이다. 지난해 호주제 폐지와 관련해 보수단체들이 격렬하게 반대했다면, 이번에는 종교단체까지 가세할 것이 확실해 논의 과정에서부터 갈등이 예상된다. 이번 결정을 계기로 성전환자 뿐 아니라 그 동안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했던 소수자들의 요구가 봇물을 이룰 가능성도 있다. 우선 성전환 희망자들의 성별 변경 신청이 줄을 이을 전망이다. 또한 동성애자간의 결혼 허용 주장도 소수자 권익보호라는 관점에서 힘을 받을 것으로 보여 전통적인 가족 개념을 두고 논란이 가열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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