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이준 열사의 교육보국 이념 실천 위해 외길 선택

▲ 이선재 교장은 못 배운 것 만큼 큰 한이 되는 건 없다며 자신은 이같은 사람들의 한을 위해서 일하겠다고 밝혔다. 사진 / 유우상 기자
못 배운 것만큼 사람에겐 한(恨)이 되는 건 없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 또는 피치 못할 사정 때문에 배움의 기회를 놓친 이들에게 불학(不學)은 평생의 멍에가 된다. 우리 어머니 세대가 그러했다. 집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부모님을 부양하느라 타의에 의해서 희생을 강요받았다.
 
특히 나라글자조차 익히지 못한 이들에겐 마치 공기가 없는 진공상태를 다니는 것처럼 가슴이 답답하다. 버스를 타려해도 글자를 모르니 가고자 하는 곳을 갈 수 없다.
 
그렇다고 “나는 한글을 못 깨우쳤으니 좀 알려 주세요”라며 시도 때도 없이 자신의 깊은 치부를 드러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빛 한줄기 없는 어둠 속을 걷는 느낌이라고 한다.
 
배움에 목마르고 불학의 한을 지니고 사는 이들을 위해 배움의 등불을 밝히고, 한풀이의 터전을 마련하여 늦깎이들의 향학 열기를 풀어주는 곳이 있다.
 
서울 마포구 대흥동에 소재한 양원초등학교, 양원주부학교, 그리고 마포구 염리동에 소재한 일성여자중고등학교가 바로 그곳이다. 양원·일성학교를 반세기여 오랜 세월동안 이끌어 오고 있는 이선재 교장선생님을 만나봤다. 그는 원칙과 참을 앞세워 이준 열사가 생전에 못 다 이룬 교육보국과 교육을 통한 국권 수호의 이념을 오랜 기간 실천해 오고 있다.
 
갖가지 제도권 내의 문제점을 온몸으로 해결하고 또 미답(未踏)의 사회 교육제도를 개선, 현실화시키면서 불학과 무식(無識)을 타파하는데 한평생을 바쳐오고 있다.
 
양원학교의 입구에는 이런 글이 박혀져 있다. ‘세상에 제일 위험한 것은 무식이요, 또 천하에 제일 위험한 것은 불학이다’라는 이준 열사의 말이다.
 
그는 희수(喜壽)를 넘긴 나이임에도 “배움에 한이 있는 사람이 우리 사회에 단 한 명도 없을 때까지 이 일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라고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다음은 이선재 교장 일문일답 전문이다.>
 
Q> 간단히 하루 일과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아침에 오전 7시면 학교에 나온다. 학교에 나오면 하루 할 일들에 대해 정리를 한다. 그리고 학교는 조그만 하지만 학교 숫자가 3개(일성여자중고등학교, 양원주부학교, 양원초등학교)라 하루 일과를 학교별로 정리하고 처리 하다보면 시간이 금방 간다.
 
Q> 일반인들이 알 수 있도록 양원·일성학교가 어떤 곳인지를 소개하신다면?

A> 양원·일성학교는 6.25동란 중 함경남도 북청에서 피난 온 분들이 자신들의 자녀와 전쟁고아를 가르칠 목적으로 세운 야학이 그 효시(嚆矢)였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헐벗고 굶주리면서도 배워야만 산다는 생각이 불꽃처럼 훨훨 타오른 것이다.
 
이준 열사의 가르침이신 ‘세상에 제일 위험한 것은 무식이요, 또 천하에 제일 위험한 것은 불학이다’라는 교육 유훈을 실현하기 위해 서울특별시장의 인가를 받아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청소년을 지도하는 일성고등공민학교(1953~1988)로 출발했다.
▲ 이선재 교장이 학생들이 이름올린 명예의 전당을 소개해 주고 있다. 사진 / 유우상 기자
 
Q> 학교 분위기가 너무 좋은데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A> 이분들은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공부할 기회를 잃어버리신 분들이 대부분이다. 공부 대신에 오빠나 남동생 공부를 위해서 뒷바라지를 하셨던 소외된 입장에 있으셨던 분들이다. 그러고 결혼해서 아이들 낳고, 본인들이 못 배운 한을 자식들에게는 물려주지 않으려고 아이들을 다 교육시키고 자식들 다 시집, 장가보내고 보니까 세월이 이렇게 지나버린 거다.
 
그런데 돌아보니까 본인 가슴이 허전함을 느꼈다. 그러다 이제 내 인생을 좀 살아보자 하고 본인이 공부를 못했던 한, 그걸 풀려고 온 거다. 그러다보니까 자연스럽게 열성을 가지고 하게 되고, 학교를 와서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위로를 얻고 힘을 얻게 되는 것 같다. 그저 공부하는 게 즐겁고 사람 만나는 게 행복인 사람들이다. 우리 학교 학생들은 늘 “제가 여기 온 선택이 일생일대의 최고의 선택입니다.”라고 말한다. 학생들 마음가짐이 이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분위기가 좋아지고 즐거울 수밖에 없는 것 같다.
 
Q> 일성중고등학교 수업과 특색 있는 커리큘럼이 있다면 어떤 게 있습니까?
A> 우리학교도 일반적으로 하는 수업은 일반학교하고 똑같다. 그런데 특별히 강조하는 게 한자, 영어, 글쓰기, 컴퓨터 이 네 가지만은 아주 철저히 교육시킨다. 학생들의 재능을 함양하기 위해 컴퓨터반, 문예반, 한문반, 영어암송프로그램반, TOSEL영어인증시험반 등 다양한 특활반을 운영 중이다.
 
이 뿐만이 아니라 명예의 전당이라는 게시판을 만들어서 학교 내에서 권장하는 기준을 채우는 학생들에 한해서 이름을 붙여준다. 예를 들어 한자 특2급과 ITQ 자격증 A등급을 취득하면 2관왕을 달성한 거다. 1관왕부터 9관왕까지 학생들이 아주 열의를 가지고 참여하고 있다. 이처럼 학교 자체에서 다채로운 행사나 시스템을 이용해 즐거운 학교생활이 될 수 있도록 동기부여에 힘쓰고 있다.
 
또 영어, 컴퓨터 등 실질적으로 도움 되는 교육을 많이 진행하다 보니까 실제로 학생들이 대학진학을 하게 되면 능력을 발휘한다. PPT 발표도 잘하고 젊은 애들한테 뒤지지 않는 역량을 보여준다.
 
Q> 학교의 특별한 정체성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A> 우리학교는 정상궤도로 가는 사람들은 우리 몫이 아니고 정상궤도를 벗어나는 사람들에게 제2의 교육기회를 주는 학교라고 생각한다. 다른 말로하면 패자부활전 기회를 주는 학교다 라고 말이다. 그래서 학생 구성원을 보면 정말 다양하다. 가정을 위해 열심히 살다 공부 할 시기가 지난 어머니들도 있고, 정규학교에 부적응한 어린 친구들도 있고, 새터민, 다문화가정 등 아주 다양한 구성원들이 함께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Q> 양원‧일성학교 등을 통해 배출한 졸업생 수와 진로 등에 대해서도 말씀 부탁드립니다.
A> 그동안 우리학교를 졸업한 5만여 졸업생들은 사회 각 분야에서 자신의 몫을 다하면서 국가와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 이곳을 수료한 후에 더욱 학문에 매진하여 박사가 되어 대학 강단에 선 이도 있고, 은행원으로, 시인으로, 서예가로, 시민단체의 임원으로, 사업가 등으로 왕성하게 활동하는 졸업생들이 많다.
 
이들 졸업생들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졸업생 모두가 소중한 보물로 여겨지며 자랑스럽게 생각된다. 모두들 하나같이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공부한 특별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의 성공은 그 누구보다도 빛난다고 할 수 있다.
 
Q> 교장선생님께서는 나라에서 하지 못하는 소외계층 교육을 위해 평생 헌신해 오셨는데 어려움은 없으셨습니까?
A> 요즘 복지문제가 사회적 관심의 중심에 있다. 다양한 복지에 대한 논의가 있으나 교육 소외계층에 대한 교육 복지 논의는 들리지 않아서 조금은 서운하다.
 
정상적인 교육 기회를 통해 자신에게 필요한 학습경험을 갖지 못함으로써 자신이 잠재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할 뿐 아니라 실생활을 영위하는 데도 불편을 느끼는 우리 이웃의 문제인데도 말이다.
 
특히, 어르신들의 경우는 자신들은 잘 먹지도 못하고, 잘 입지도 못하고, 따뜻한 잠도 못 자고, 배우지도 못하고, 손발이 닳도록 일해서 오직 자식교육에 온 힘을 바쳐 교육 시켜 놓았다. 이러한 부모님들의 희생 위에서 그 자식들은 짧은 기간에 세계에서 유래가 없는 경제발전을 이루어 냈다.
 
못 배운 한을 가진 어르신들은 이들 세대를 키워내고 뒷받침해 주신 숨은 공로자들이다. 이들 어르신들도 교육 기본법에 보장된 교육 받을 권리와 헌법에 보장된 행복추구권을 누릴 자격이 있다.
 
세계에서 일곱 나라밖에 없는 20-50클럽(1인당 국민소득 2만 불, 인구 5천만 명)에 가입한 나라도 되었으니 이제 숨은 공로자들에게도 관심을 가져야한다고 본다. 이에 교육당국의 지원책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들 교육 소외계층에 대한 교육 기회를 제공하지 않고 방치 한다면 교육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고 무지의 대물림, 가난의 대물림으로 이어져 개인은 물론 국가·사회적으로도 큰 어려움을 가져올 것이 분명하다.
 
이제라도 교육소외계층에 대한 복지정책이 시급히 마련되고 실현되어 그분들의 어려움이 해소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 이선재 교장은 우리나라에서 의무교육을 받지 못한 약 600만 명의 성인들이 국가의 지원 아래 마음 놓고 교육 받을 수 있는 그날까지 교육사업을 계속 할 것이라고 전했다. 사진 / 유우상 기자
 
Q> 교장선생님은 문해(文解) 교육에 평생을 바쳐 오셨는데 이에 대해서도 말씀 부탁드립니다.
A> 현재 성인 비문해(非文解) 비율은 약 15% 정도라고 본다. 이들을 위한 교육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상 실효성 없는 정책들이 많다.
 
심지어 성인 문해교육 예산은 해마다 점점 삭감되고 있다.
 
교육당국은 우리 일성여중고와 양원초등학교는 성인교육기관인데도 불구하고 학력인정 기관이라는 이유로 10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정규교육과정을 그대로 적용받고 있다. 예를 들면 일반 학생들과 같이 체력 신장, 정신력 강화 등을 위한 체육수업을 받으라는 것은 50대 이상의 중년 여성들의 입장을 한 번이라도 배려한 것인지 묻고 싶다.
 
세상이 온통 영어인 환경에서 그들은 식당에 가서 밥을 시켜먹기 위해서, 출가한 자녀들의 아파트를 찾기 위해서라도 공부를 해야 하는 입장이며, 이에 대한 실효성 있는 정책이 필요한 것이다.
 
세계 최대의 교육 강국이라는 대한민국 교육정책이 좀 더 다양화되기를 바란다. 모든 국민은 중학교까지 의무교육이지만 현실을 들여다보면 교육시기를 놓친 사람들이 다시 교육을 받기란 쉬운 현실이 아니다.
 
공부가 한이고, 서러움, 불편, 고통, 수치로 느껴 찾아온 분들을 위한 교육정책 강화에 세심한 관심을 기울여 주길 바란다.
 
Q>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십니까?
A> 한마디로 배움에 대한 한을 품은 자가 우리 사회에 한 사람도 없을 때까지 이 사업을 계속 할 생각이다.
 
못 배운 것처럼 사람에겐 한(恨)이 되는 건 없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 또는 피치 못할 사정 때문에 배움의 기회를 놓친 이들에게 불학(不學)은 평생의 멍에가 된다.
 
특히 글을 제대로 익히지 못한 이들의 한을 풀어주고 싶다.
 
배움에 목마르고 불학의 한을 지니고 사는 이들을 위해 배움의 등불을 환히 밝히겠다. 배움의 기회를 놓쳐버린 늦깎이들의 향학 열기를 말끔하게 풀어주도록 앞으로도 계속 최선을 다 할 것이다.
 
끝으로 우리 양원·일성여중고가 필요 없을 정도로 우리나라에서 의무교육을 받지 못한 약 600만 명의 성인들이 국가의 지원 아래 마음 놓고 교육 받을 수 있는 그날에 명예롭게 은퇴 하고 싶다.[시사포커스 / 남태규 기자]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