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국가에 내는 세금은 그 종류만큼이나 목적도 다양하지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부의 재분배 기능일 것이다. 물론 부가가치세 같은 세금은 일정한 금액을 누구나 같이 내지만 또 재산세 같은 경우는 재산이 많을수록 납부 규모도 커진다. 자유와 복지가 결합되고 있는 현대 국가의 특성상 재산세 성격의 세금은 국가 세수 확보 뿐 아니라 사회적 정의 차원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재산세의 근거가 되는 국민들의 재산은 부동산과 동산으로 나뉘는데, 부동산의 대표적인 토지나 건물 등에는 이미 부의 재분배 기능이 일정 부분 도입돼 있다. 그런데 동산의 대표적인 항목인 자동차에 매겨지는 세금의 체계는 유독 이상하다. 과세 기준이 배기량이기 때문이다. 비쌀수록 많이 내는 것도 아니고 1번 구입할 때마다 일정액을 내는 것도 아니다.
 
이런 기묘한 과세 기준이 만들어진 것은 무려 50여년 전이다. 1958년 탄생 당시에는 국세로 신설됐다가 1961년 지방세로 이양돼 1976년 시군세로 변경돼 현재의 성격이 이어지고 있다. 당시부터 80년대까지만 해도 배기량이 클수록 고급차일 확률이 높았다. 이는 배기량이 과세 기준이 되는 계기가 됐다. 환경부담금적 성격도 포함돼 있었다고 한다. 배기량이 큰 차량일수록 환경에 안 좋은 영향을 많이 끼친다는 이유에서다. 당시는 당연하게도 자동차는 대표적인 사치품이었고 이는 부동산에 매겨지는 재산세에 비해 자동차세가 가격 기준으로 훨씬 높은 이유가 됐다.
 
하지만 수 십여년 만에 우리나라 국민들은 적어도 한 가구당 자동차 한 대 쯤은 보유하게 됐다. 6월 말 기준으로 우리나라 자동차 등록대수는 2055만대다. 1945년에 불과 7000여대에 불과했던 점을 감안하면 격세지감이다. 이처럼 어느 집이나 한 대 정도씩은 있는 자동차에 부과되는 자동차세가 여전히 배기량 기준으로 부과되면서 많은 문제점들이 발생하고 있다.
 
우선 갈수록 공세를 더하고 있는 수입차들에 비해 국산차들이 역차별을 당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수입차들의 가격이 많이 내려가기는 했지만 여전히 국산차들에 비해 고가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국산차들이 역차별을 당한다는 것은 특정 업체의 역차별 문제로 한정할 것이 아니다. 현대차와 기아차의 국내 시장 점유율은 아직도 60%를 훌쩍 넘는다. 국산차 역차별은 곧 대다수 국민들의 문제다.
 
이는 배기량이 낮지만 성능이 좋고 비싼 수입차가 상대적으로 성능이 낮지만 배기량이 큰 국산차에 비해 적은 세금을 내는 모순을 발생시킨다. 실례로 1995cc인 BMW520d는 판매가는 6천만원이 넘지만 2천만원대의 1999cc의 쏘나타와 동일한 50만원대의 세금을 낸다고 하니 국산차를 구매한 많은 서민들은 억울할 노릇이다.
 
기술 발전이라는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내연기관이 없어 배기량을 측정할 수 없는 6000만원대의 BMW i3는 ‘기타’로 분류돼 연간 13만원만 내는 시대착오적인 사태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 21세기의 대한민국이다. 배기량을 줄이고 터보차저 등의 보조 기술로 성능을 높인 엔진을 장착하는 ‘엔진 다운사이징’ 제품이 속속들이 나오고 있지만, 현 배기량 기준으로는 대응할 방법이 속수무책이다.
 
지금이라도 국회 차원에서 자동차세 부과 기준을 자동차 가격 기준으로 변경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되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가격 기준으로 자동차세를 부과하게 되면 자동차 업체들 간에 가격 경쟁이 치열해지는 선순환이 이어질 수도 있다. 꼭 가격 기준으로 한정짓지 않고 환경부담금적 성격이 있는 것도 고려해 다른 선진국들처럼 이산화탄소 배출량 기준으로 매기는 방안도 고려할 만하다.
 
일각에서는 수 십년 동안 유지하던 기준을 굳이 현대차가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는 이 시점에서 변경하려는 것은 곧 특정 기업 살리기 아니냐는 의구심을 보내기도 한다. 현대차가 전 계열사 임금피크제 도입 등 정부 친화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과 연결시키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어쨌거나 국산차 비율이 아직도 어마어마한 상황에서 많은 국민들이 혜택을 볼 수 있다면 국회가 움직여 줘야 한다. 법도 시대에 맞게 변해야 하는 것이다. 많은 국민들이 혜택을 볼 수 있다면 더더욱 그렇다. 이번에야말로 두고두고 회자되는 수 년여 전 헌법재판소의 배기량 기준 합헌 판결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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