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 포함 ‘합리적 보수-합리적 진보’ 중도신당설 솔솔

▲ 새정치민주연합 김부겸 전 의원과 새누리당 유승민 전 원내대표가 조만간 대구에서 회동을 가질 예정으로 알려져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최근 정치권에 여야를 아우른 중도신당 창당설이 돌고 있어, 이들이 회동을 통해 가시적인 그림을 만들어낼지 귀추가 주목된다. 사진 / 뉴시스
이달 초 정치권이 주목할 수밖에 없는, 우연 같지 않은 우연한 한 만남이 이뤄졌었다. 친박 핵심이었다가 비박 핵심이 돼버린 새누리당 유승민 전 원내대표와 야권의 불모지인 대구에서 주가를 높이고 있는 새정치민주연합 김부겸 전 의원의 만남이었다. 이들은 박상천 전 민주당 대표 빈소를 찾았다가 우연찮게 한 자리에 앉게 됐고, 이 자리에는 정계은퇴 이후에도 늘 정치권과 언론의 관심 대상이 되고 있는 손학규 전 고문도 함께 했다.

서로 약속한 것이 아닌 우연한 조우였지만, 언론의 관심은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이들 3인 모두 옛 한나라당 출신이기도 하고, 합리적 성향을 가진 인사들이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정치권에선 합리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가 제3지대에서 만나는 ‘중도신당’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져 가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그러다보니, 이들이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겠냐는 시나리오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빈소 회동, 우연인가 필연인가?
지난 5일, 손학규-유승민-김부겸 3인은 박상천 전 대표 빈소에서 만나 한 자리에 앉았다. 물론, 이들끼리만 따로 자리를 한 것은 아니었다. 임채정 전 국회의장과 신기남 의원, 유은혜 의원 등도 함께 자리했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임채정 전 의장이 의미심장한 농담 한 마디를 건넸다.

유승민 전 원내대표와 김부겸 전 의원에 대해 “앞으로 대구 정치를 이끌 두 명의 유망주”라며 “손학규 왔지, 유승민 왔지. 여기 신당 창당 하나 하겠네”라고 한 것. 여야를 아우른 정치권 제3신당 창당 시나리오에 불을 붙이는 발언이었던 것이다.

임채정 전 의장은 그러면서 유승민 의원에게 “대구에 자주 내려가느냐. 괜찮느냐”며 안부를 물었고, 유 의원은 “예... 저는 뭐”라면서 말끝을 흐렸다. 임 전 의장은 또 손학규 전 고문에게 소주를 건넸고, 손 전 고문은 받은 술잔을 비운 후 유승민 의원과 김부겸 전 의원에게 다시 소주를 따라줬다. 그리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던 손 전 고문이 유승민 의원의 잔에 소주를 한 잔 더 따랐다.

만남은 단순히 거기까지였다. 임채정 전 의장이 뼈 있는 농담을 던진 것을 제외하고 손학규, 유승민, 김부겸 누구도 의미 있는 정치적 제스처나 발언을 남기지는 않았다. 기자들이 손 전 고문에게 “유승민 의원, 김부겸 전 의원 등과 한 자리에 모이니 ‘중도신당’ 이야기도 나온다”고 질문을 던졌어도, 그는 “좋은 질문을 해야지”라며 여전히 정치적 의미를 두는 시선에 일절 대꾸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이날 빈소 회동 이후, 유승민 의원과 김부겸 전 의원이 조만간 대구에서 회동할 것으로 알려지며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손학규 전 고문과 별개의 만남이라 하더라도 이들 두 사람의 만남을 두고 정치권에선 갖가지 해석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유승민-김부겸 연대’ 자체가 그림이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손학규 전 고문까지 가세하게 된다면, 파괴력은 상당할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다.

매일경제에 따르면, 김부겸 전 의원은 “조만간 유 원내대표와 식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다만, 김 전 의원은 “40년 지기로서 위로한다는 차원일 뿐”이라며 만남에 대한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하지만, 유 전 원내대표가 원내대표직에서 내려온 지 벌써 상당 시간이 흘렀는데, 이제야 위로 차원에서 만난다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정치권이 주목하고 있듯, 이들이 어떤 연대를 모색하지는 않을지 관심이 모아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이런 부담스런 시선을 의식한 듯 유 전 원내대표 측은 “김부겸 전 의원의 만남 제안은 사실이지만 구체적인 만남 약속을 잡지는 않았다”고 조심스러워 했다. 하지만, 이미 정치권과 언론에서는 이들이 회동을 추진한다는 자체만으로도 예사롭지 않게 보고 있는 상황이다.

◆“유승민-김부겸 회동, 시사하는 바 크다”
유승민 전 원내대표와 김부겸 전 의원이 완벽한 동병상련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연대를 모색할 만한 각자의 입장은 있는 상황이다. 우선, 유 전 원내대표의 경우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정국을 거치면서 사실상 청와대와 친박계로부터 축출 당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다보니, 내년 총선에서 공천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를 만큼 불안한 상황이 돼버렸다.

김무성 대표가 아무리 오픈프라이머리를 외치고 있지만, 최근 친박계가 강하게 제동을 걸면서 이 또한 어떻게 될지 모를 상황이다. 100% 오픈프라이머리로 공천이 된다면 해볼 만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유 전 원내대표는 공천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단순히 공천만이 문제는 아니다. 유 전 원내대표는 경제민주화를 비롯해 안보정책 등 현 정권의 주요 정책들과 코드가 맞지 않는 부분이 많다. 합리적 보수를 지향하는 그의 입장에서 새누리당은 이미 어울리지 않는 당이 돼버린 것이다. 유 전 원내대표가 제3지대 중도신당으로 향할 수 있는 이유들이다.

지역구도 타파를 외치며 끊임없이 대구 출마를 고집하고 있는 김부겸 전 의원은 사실 새정치민주연합 입장에서는 보물과 같은 존재다. 하지만, 김부겸 전 의원이 그동안 대구에 끊임없이 공을 들임으로써 받게 된 평가에 비해 새정치민주연합에 대한 평가는 참담하기만 하다. 즉, 김 전 의원의 앞길을 당이 가로막고 있는 형국인 것이다. 게다가, 최근엔 복병이 나타나기도 했다. 여권의 거물인 김문수 전 경기지사가 김 의원의 대항마로 대구행을 선택한 것.

상황이 녹록치 않아진 김부겸 의원 입장에서는 전략적으로 탈당할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한다. 2010년 지방선거 당시 야권 최초의 경남도지사에 당선된 김두관 전 지사 전략과 유사하다. 새정치민주연합 색깔을 빼고 김부겸 개인으로 대구에서 평가를 받는다면 얘기는 또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무소속 내지는 유승민 전 원내대표 등 정치권의 합리적 인사들과 새롭게 ‘중도신당’을 만들어 총선에 나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당과 이념 가치노선이 충돌하고, 그런 속에서 공천조차 불확실하게 된 유승민 전 원내대표와 지역구도를 타파하고 합리적 세력과 함께 정치판을 개혁해보고자 하는 김부겸 전 의원 사이에 확실한 연대점은 형성돼 있는 상황이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유 전 원내대표와 김 전 의원의 회동 추진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 새정치민주연합 비주류 핵심인 박지원 의원은 지난 17일 YTN라디오 인터뷰에서 유승민-김부겸 회동과 관련한 ‘중도신당’, ‘무소속 연대’ 등의 숱한 관측과 관련해 “정치는 생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 의원은 “대구에서 김부겸 전 의원과 유승민 의원이 만난다는 것을 보고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며 “지금 대구에서 그래도 야당 깃발을 들고 지난 대구시장 선거에서 47%의 득표를 한 김부겸 의원을 보고, 거기에 김문수 지사가 깃발을 꽂게 되니까 여러 가지 우려하는 바도 있고, 새누리당으로서는 기대하는 바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여 말했다.

이어, 박 의원은 “그러나 유승민 전 대표와 만났다고 하는 것은 그 의미 자체가 굉장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며 정치권 다양한 관측에 힘을 실었다. 그러면서도 박 의원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는 저 자신도 예측 불허하다”고 덧붙였다. 어떤 방향인지 어떤 결과를 도출할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일 뿐, 유승민-김부겸 두 사람의 만남이 어떤 형태로든 변화를 이끌어낼 것이란 관측인 것이다.
▲ 이달 초 故박상천 전 민주당 대표 빈소에서 손학규 새정치민주연합 전 상임고문과 유승민 의원, 김부겸 전 의원 등이 자리를 함께했다. 이 자리에 함께 있던 임채정 전 국회의장은 "신당 창당 하나 하겠다"고 뼈 있는 농담을 건네 정치권 중도신당 창당론에 불을 붙였다. 사진 / 뉴시스

◆원심력 커지는데, 내부에선 또 갈등
그런 가운데, 지난달 유승민 전 원내대표가 새누리당 원내대표직을 사퇴하자마자 김부겸 전 의원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던 글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김 전 의원이 이 글에서 이미 유 전 원내대표와 함께할 것을 예고하는 듯한 메시지를 남겼기 때문이다. 김 전 의원은 글에서 “오로지 자신의 권력욕만 채우려는 ‘막된 정치꾼’들이 수두룩한 세상에서 유승민 대표는 대구가 낳은 ‘참된 정치인’”이라고 말했다.

김 전 의원은 “당을 달리하는 사람이 뭐라고 거드는 게 역효과일 수 있겠다는 생각에 그동안 꾹 참아왔다”며 “그러나 유 대표의 사퇴 회견문을 읽는 순간, 마음에서부터 무언가 뜨거운 것이 올라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김 전 의원은 그러면서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대구가 낳은 대통령이 대구가 키울 재목을 왜 이토록 차갑게 대하는지 정말 안타깝다”며 “정치는 원래 비정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역시 한때다. 합리적인 보수, 정의로운 보수가 그동안 잘 없었다”고 비판했다.

김 전 의원은 유 전 원내대표에 대해 “이제 대구의 유승민이 아니라 한국의 유승민이 될 수 있다”며 새누리당 틀에서 벗어나게 된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특히, “보수의 희망을 보았고, 진보와 보수가 더불어 민주공화국의 숲을 가꾸겠다”며 “‘결국 세상을 바꾸는 것은 정치라는 신념’으로 동면상태에 빠져 있던 대구 정치의 부활을 함께 꿈꾸겠다”고 의미 심장한 메시지를 남겼던 바 있다.

한편, 유 전 원내대표는 당 밖에서 이처럼 원심력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과 더불어 당 내부적으로도 끊임없이 친박계와 마찰을 겪고 있다. 지난 12일, 북한의 목함 지뢰도발과 관련해 국방위 현안보고에서 유 전 원내대표는 청와대와 정부를 향해 “청와대 NSC라는 사람들은 도대체 뭘하는 사람들이냐”, “정신 나간 것 아니냐” 등 거친 비난을 퍼부어 냈었다.

그런데 이를 두고 박근혜 대통령 복심으로 통하는 이정현 최고위원이 이튿날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정치권이 견제하고 비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매사에 때가 있는 것으로서 격분된 발언으로 군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매도하고, 의구심을 증폭하는 것은 군의 전력을 약화 시킨다”며 “지금은 아군 진지에 혀로 쓰는 탄환인 설탄을 쏴서는 안 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 최고위원은 덧붙여 “군 자체에서 조사가 진행 중일 때는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이므로 오래 계획된 정부 일정은 그것대로 진행하는 게 상식이고 기본”이라며 유 전 원내대표의 질타에 강력히 맞대응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유승민 전 원내대표와 친박계의 갈등은 점점 더 깊어만 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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