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맹희 CJ명예회장 빈소에 삼성가 회동 주목

▲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의 부고에 삼성가 2세대로 대표되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이명희 명예회장 사이의 갈등이 3세대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이재현 CJ 회장에서는 해소될 수 있을지에 대한 관심이 높다.ⓒ뉴시스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의 부고에 이목이 집중됐다. 삼성가 2세대로 대표되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이명희 명예회장 사이의 갈등이 3세대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이재현 CJ 회장 대에서는 해소될 수 있을지에 대한 관심이 높다.
 
◆ 이맹희, 향년 84세 베이징서 사망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형이자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아버지이기도 한 이맹희 명예회장은 한 때 삼성그룹의 유력 후계자로 지목됐었던 삼성가 황태자였지만 동생에게 밀려 결국 타국에서 여생을 마감하는 쓸쓸한 결말을 맞았다.
 
지난 14일 CJ그룹 관계자는 “이맹희 전 회장이 중국 베이징의 한 병원에서 현지 시각 오전 9시39분께 별세했다”고 전했다.
 
앞서 이맹희 전 회장은 2012년 폐암 2기 진단을 받고 일본에서 폐의 3분의 1을 절제하는 폐종양 제거 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다음해 암이 부신 등으로 전이되자 일본과 중국을 오가며 항암치료를 받았고, 최근에는 중국 베이징에 머물며 투병생활을 해왔다.
 
당초 이맹희 전 회장은 삼성 창업주의 장남으로 삼성그룹을 이끌어갈 인물로도 꼽혔었다. 그러다가 1966년 ‘한국비료 사카린 밀수 사건(한비사건)’을 계기로 이병철 창업주가 경영일선에서 물러나면서 삼성물산과 삼성전자의 부사장 등 주요 자리에 오르며 순식간에 삼성그룹을 장악했다.
 
하지만 경영실적 부진이 이어진데다, ‘한비사건’과 관련해 이맹희 명예회장이 직접 청와대에 투서를 한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이병철 창업주와 이 명예회장 간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이후 1987년 이병철 창업주가 별세한 후 반도체를 비롯해 전자, 제당, 물산 등의 삼성그룹 주요 지분이 3남인 이건희 회장에게 승계됐고 이맹희 명예회장은 삼성가를 완전히 떠났다.
 
이 명예회장은 삼성가를 나와 제일비료를 설립하고 제2의 전성기를 꿈꿨지만 결국 실패했고, 1980년대부터 중국 등 해외를 떠돌며 생활했다. 그러다가 1994년 부인인 손복남씨가 안국화재(현 삼성화재) 지분을 이건희 회장이 가진 제일제당 주식과 맞교환 하면서 현재의 CJ그룹이 만들어졌다.
 
◆ 한비사건, 사건의 발단
 3남이었던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단숨에 장남과 차남을 제치고 승계를 받을 수 있었던 까닭은 1996년 ‘한비 사건’에서 찾을 수 있다. 1964년 8월 설립된 한국비료공업주식회사, 바로 삼성정밀화확의 전신이 그 사건의 중심에 있었다.
 
세간에 알려진 것과 같이 한비사건은 이맹희 명예회장이 삼성가 후계 경쟁에서 밀려나는 결정적 원인이 된 사건이다. 1966년 9월 15일 <경향신문> 특종으로 보도되면서 드러난 해당 사건의 개요를 살펴보면 이렇다. 이병철 창업주가 설립한 한국비료공업주식회사는 1966년 5월 경남 울산에서 공장을 설립하고 있었는데 이 공장에 건설 자재로 들어온 수입품 컨테이너 안에서 사카린이 대량으로 발견됐다. 한국비료가 사카린을 밀수한 뒤 건설 자재라고 속이고 국내에 유통한 것이다.
 
삼성과 정부측은 어떻게든 이 사건을 무마하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1965년 삼성이 중앙일보를 설립하고 언론사업에 까지 손을 뻗은 것과 관련해 기존 언론사들의 반발이 극에 달했던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경향신문 최초 보도 후 삼성의 한비사건을 질타하는 후속 보도들이 쏟아져 나왔다.
 
사건의 여파가 확산되자 이병철 창업주는 경영일선에서 물러나면서 한국비료를 국가에 헌납한다고 밝혔고, 이건희 회장의 둘째 형인 이창희씨는 구속됐다. 이에 남아있던 장남인 이맹희 명예회장에 모든 권력이 넘어갔다.
 
이후 이병철 창업주와 이맹희 명예회장의 사이가 갑자기 틀어졌다. 이병철 창업주는 자신의 회고록을 통해 “맹희에게 회사를 맡겼더니 기업이 혼란에 빠졌다”며 장남을 밀어낸 이유로 ‘무능함’을 꼽았지만 이건희 회장의 입장은 달랐다. 이건희 회장은 ‘청와대 투서’가 원인이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비사건으로 이병철 창업주가 경영 이선으로 빠진 뒤인 1969년 청와대에 투서가 들어왔다. 투서에는 이병철 창업주의 핵심비리가 항목별로 정리돼 있었던 점을 고려하면, 목적은 분명했다.
 
이병철 창업주와 이건희 회장은 이 투서를 이맹희가 쓴 것이 분명하다고 확신했다. 이건희 회장은 2012년 이맹희 명회회장이 재산분쟁 소송을 걸었을 당시 기자들 앞에서 “(이맹희는) 30년 전 아버지를 형무소에 넣겠다고 청와대에 그 시절, 박정희 대통령에게 고발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맹희 명예회장이 자신의 자서전에서 “투서는 동생 창의가 보냈는데 아버지는 오해했다”고 적었고, 이후 누가 투서를 적은 것인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 삼성-CJ 문상화해 이뤄질까
‘골육상쟁’에서 패배해 삼성가를 떠난 이맹희 명예회장의 영향으로 삼성과 CJ사이에는 묘한 기류가 존재해왔다. 하지만 이병철 창업주의 세아들은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이맹희 명예회장이 작고했고, 유일하게 남은 이건희 회장 역시 오랜 와병으로 복귀 시기를 예측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오너 3세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이재현 CJ회장 간에 화해가 이뤄질지에 대한 관심이 높다.
 
아버지들의 갈등으로 그간 어색한 분위기를 이어왔지만 사촌 간인 이재현 CJ 회장과 이재용 부회장은 실제 경복고 선후배로 평소 사이가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8월에는 이재용 부회장이 이재현 회장의 항소심 선고를 앞두고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서에 서명하기도 하면서 화해 수순을 밟아가던 중이었다.
 
이맹희 명예회장의 시신이 오늘 국내로 운구되고 내일부터 조문객을 받을 예정인 것으로 알려져 있어, 삼성과 CJ그룹이 문상을 계기로 화해분위기를 이어갈 수 있을지 이목이 집중된다.[시사포커스 / 진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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