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의 근간을 뒤흔드는 두 가지라 하면 대표적인 것이 약물과 승부조작이다. 승부조작 사건이나 약물 파동이 터지면 해당 종목 전체가 큰 타격을 입는다. 팬들은 선수들의 기록이나 팀의 승패가 부정한 방법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의심을 쉽게 거두지 않기 마련이다. 약물과 승부조작은 스포츠의 역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스포츠계의 숙제다.

올해는 유독 약물 파동으로 한국 체육계가 시끄럽다. 우리나라가 낳은 세계적인 수영 선수 박태환의 약물 파동을 시작으로 프로축구의 강수일(제주), 프로배구의 곽유화(흥국생명), 프로야구의 최진행(한화) 등 종목을 가리지 않고 유명 선수들이 약물로 징계를 받았다. 모두 각각의 이유는 있다지만 약물 성분이 검출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강력한 징계가 내려져야 하는 것은 자명한 논리다.

하지만 가을 야구를 위해 치열한 순위싸움을 벌이고 있는 한화의 최진행이 비교적 짧은 기간의 징계를 마치자마자 복귀해 홈런을 날리면서 야구팬들은 물론 다른 종목의 스포츠 팬들에서까지 들고 일어설 태세다. 종목마다 다른 제각각의 징계 기준이 형평성 논란을 낳고 있는 셈이다.

박태환은 국제수영연맹으로부터 1년 6개월의 출장 정지를 받았다. 콧수염 욕심에 발모제를 발랐다는 웃지 못할 이유로 강수일은 K리그 15경기와 6개월 출장 정지 처분을 받고 ‘시즌 아웃’ 됐다. 고의성이 없다는 판단에서도 이 정도다. ‘거짓 진술’ 논란 끝에 결국 다이어트약을 먹었다는 것이 밝혀진 곽유화는 은퇴하는 초강수를 둬야 했다.

하지만 최진행은 시즌 중에 약물 복용 사실이 밝혀져 30경기(50여일) 징계를 받고 그대로 복귀해 경기에 출전했다. 드라마틱하게도 눈물을 글썽이며 사죄한 후 나선 첫 타석에서 최진행은 홈런을 터뜨렸다. 순위 경쟁을 펼치고 있는 한화는 대승을 거뒀다. 언론은 눈물의 ‘속죄포’라며 포장하기에 여념이 없다.

이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은 물론 표면적으로는 한화 측의 아쉬운 대응 탓이다. 대다수 선수들은 물의를 빚을 경우 규정 외로 별도의 자숙 기간을 갖기 마련이다. 하지만 한화 김성근 감독은 징계가 풀리자마자 바로 최진행을 올려서 경기에 출전시켰다. 더구나 한화는 최진행의 도핑 검사에 대한 1차 결과를 통보받았음에도 최종 결과가 나올 때까지 출전을 강행했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구단 자체 징계도 없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종목마다 징계 기준이 제각각인 체육계의 현실 때문이 아닌가 싶다. 한국야구위원회는 1차 위반시 10~30경기, 2차 위반시 50경기다. 최진행에게서 또 약물이 검출되도 최대 한 시즌의 3분의 1만 넘기면 된다. 프로축구에서는 1차 위반 15경기, 2차 위반 1년이다. 프로배구는 1차 6경기, 2차 12경기, 프로농구는 1차 9경기, 2차 18경기, 3차 54경기(한 시즌)이다. 말 그대로 연맹 ‘마음 내키는 대로’다.

한국도핑방지위원회(KADA)가 있기는 하지만 KADA는 결과를 통보해줄 뿐이지 징계 규정은 종목별로 자유다. 종목마다 제각각 징계 기준이 적용되면서 바라보는 팬들은 혼란을 거듭하고 있다. 최진행의 복귀포가 속죄포라는 감동의 드라마로 포장되고 있는 현실은 아직 야구계가 약물 파동의 심각성에 대해 제대로 된 인식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징계 규정 자체가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기 때문 아닐까.

뒤늦게나마 정부가 단체마다 다른 징계 기준을 통일시키겠다고 나선 것은 반길 만한 일이다. 국민 스포츠로 자리잡고 있는 프로야구에서도 올해 최고의 화제의 팀이 되고 있는 한화에서 뜨거운 논란이 일자 마지 못해 나섰다는 감도 지울 수는 없지만, 어찌 됐든 이 기회에 국제적 기준을 적용해 형평성 시비가 일지 않도록 징계를 통일해야 한다. 그래야 팬들의 신뢰도 잃지 않고 징계 규정이 약한 종목의 선수들도 심각성을 깨달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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