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소리 잦아지긴 했지만, 숨통까지 끊어지진 않아

지방선거 이전 기세등등하던 열린우리당 전(前) 지도부의 목소리를 듣기가 쉽지 않은 요즘이다. 선거에서 참패를 하고 난 이후 줄이어 지도부 총 사퇴를 하며 ‘정계에서 물러난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만큼 작아진 목소리에 측은지심마저 들기까지 한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일각에서는 “죄를 지은 사람들도 아닌데, 한 순간 모든 것을 내놓고 뒤로 물러나 있는 모습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목소리도 흘러나오고 있다. 그렇게까지 자책할 필요성은 없었다는 의견이다. 실제로 지도부 구성이 2.18 전당대회를 통해 이루어졌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5.31까지 그 기간에 무엇을 해보고자 하더라도 너무나 짧은 시간이었다는 것은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열린우리당의 지지율 하락은 결코 전(前) 지도부의 책임이라고만 볼 수 없는 것이다. 추락하는 추세에 당 지도부를 맡게 되었던, 때가 좋지 않았던 운명의 잘못 외에 그들에게서 특정한 잘못을 찾아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어 보인다.
◈DY는 죽어도 ‘DY계’는 살아 있어 여당 내에서 실세의 자리를 내어주고 “이제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된 것은 아니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해보라 한다면, 아직까지는 “결코 이빨이 빠질 수 없는 인물들”이라고 답할 수 있겠다. 모두가 잘 알고 있듯이 여권의 핵심인사들은 지탄받아 마땅한 행동을 하여 자리에서 물러난 것이 아니기에 그들을 보고 완전히 죽었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꺼지지 않은 숯과 같이 언제이고 다시 활활 불이 붙어 타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지방선거 결과가 발표되자마자 가장 먼저 사퇴를 한 정동영 전 의장의 경우 현재 정계입문 후 가장 오랜 침묵의 시간을 지내고 있다. 한 측근에 따르면 정 전 의장은 현재 “앞만 보고 달려온 지난 시간에 대한 자성과 성찰의 시간을 갖고 있다”며 “신문을 안본 지는 오래됐고, TV 뉴스도 거의 보지 않는다”고 최근 근황을 전하기도 했다. 누구보다 의욕도 앞섰고, 목소리도 컸던 그가 이처럼 조용하게 지내는 것을 보면 충격이 상당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일각에서는 벌써 “이제 정동영 시대는 갔다”라는 말이 흘러나오기도 한다. 여론조사 기관별 차기 대선후보 지지도 조사에서 5%를 채 넘지 못하는 현실도 그에게는 커다란 장벽으로 다가서 있다. 20%를 넘나드는 고건 전 총리,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 이명박 서울시장 등에 비하면 지지율이라는 표현을 쓰기조차 민망한 수치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정 전 의장이 여당 내에서는 아직까지 차기 대권 후보 1순위로 꼽히고 있다는 것만은 부정하기 힘든 사실이다. 더욱이 열린우리당이 비대위 체제로 전환하며 김근태 의장에게 당 의장직을 승계하는 과정에서 정 전 의장이 기여한 공은 매우 높게 평가되고 있다. 깔끔한 처신에 더해 어떻게든 열린우리당을 지켜야 한다는 그의 의지는 언젠가 적절한 보상을 받게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는 것이다. 그 보상이 어떠한 형태로 나타나게 될지는 아직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 정 전 의장이 아직 대권에 대한 꿈을 접지 않고 있다면, 또 열린우리당이 국민적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정당으로 다시 태어난다면 그 보상이 어떤 형태로 누구에 의해서 주어지게 될지 어렴풋이나마 예측은 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정동영은 죽어도 정동영계는 살아 있다는 사실이다.
◈강금실에게 정치는 지금부터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한나라당 오세훈 후보에 밀려 고배를 마신 강금실 전 장관은 지고도 혼자 이긴 분위기다. 워낙에 성격이 낙천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선거 후 한 언론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는 강 전 장관이 결코 좌절하고 있을 이유가 없음을 대변해준다. 여론조사 결과 강 전 장관은 고건, 박근혜, 이명박 등 예비 대권 후보 빅3에 이어 대권주자 선호도 4위를 차지했다. 아직 끝나지 않은 강금실 바람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강 전 장관은 최근 인터넷 싸이월드 미니홈페이지에 “여러분 안녕하셨어요. 방문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열흘 정도 쉬었어요. 조금씩 인사 나누면서 움직이기 시작하려고 합니다. 여러분과 앞으로 자주 대화 나눌게요.”라는 글을 올리며 아직 정치권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강 전 장관의 이 같은 움직임은 정치권뿐 아니라,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관심을 끌고 있다. 강 전 장관이 가지고 있는 대중적 인지도의 산물인 것이다. 그렇기에 일각으로부터 강 전 장관의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재보선에 참여하려는 것은 아닌가?”하는 무성한 추측을 낳게도 했다. 그러나 현재로써, 그 같은 추측은 현실 가능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지방선거에서 낙선한 인물이 불과 두 달도 지나지 않아서 재보선에 출마한다는 것은 일반인들의 정서와 상충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 강 전 장관의 수그러들지 않는 대중적 인기는 열린우리당 내에서만큼은 높게 평가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김근태 당 의장 등 당 핵심 인사들의 지칠 줄 모르는 연모는 어떤 방식으로든 강 전 장관에게 열린우리당의 주요 직책을 안겨줄 것이라는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대선을 위해 대중을 외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현재 열린우리당 지도부 내에서는 강 전 장관만큼 대중적 지지를 얻고 있는 인물을 찾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강 전 장관은 어떤 방식으로든 정치권에 뿌리를 내릴 것으로 예견된다. 그것이 바로 열린우리당에 2강으로 풀이되는 정동영, 김근태를 넘어선 대권 제3 후보론이다. 노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2강보다는 강 전 장관이 노 대통령의 전폭적 지원을 등에 업고 상황을 일순간에 역전시킬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시나리오다. 강 전 장관은 현재 7월 국토순례여행을 하며 선거에서 느꼈던 점들을 책으로 쓸 계획을 세우고 있다. 또, 측근들에 의하면 함께 선거에 참여했던 의원들과 ‘5.31 동창회’를 만들어 정치연구모임을 갖고 현장경험을 쌓으며 정치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CEO이미지로 끝까지 간다 경기도지사 선거에 참여했다가 어린 시절 친구인 김문수 경기도지사 당선자에게 뼈아픈 패배를 당한 진대제 전 정통부 장관은 지방선거의 아픔을 뒤로하고 향후 정계개편의 중심이 되기 위해 서서히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최근 서울 강남에 사무실을 내고 정치적 발걸음을 늦추지 않고 있는 진 전 장관은 여당의 문희상, 배기선, 원혜영 의원 등과도 꾸준한 접촉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치적 목적에 의해 당의 중진급 인사들을 진 전 장관이 찾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당에서 또한 그를 찾고 있는 것을 보면 그의 가치는 상종가를 달리고 있는 분위기다. 일례로, 김근태 당 의장은 ‘서민경제회복 추진본부’의 본부장을 진 전 장관에게 맡기기 위해 몇 차례 요청을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진 전 장관은 거듭 사양을 했다는 후문이다. 그의 측근 중 한 인사는 진 전 장관의 당분간 행보에 대해 “올 여름 중앙아시아 선교여행을 갈 계획이며, 이 여행을 통해 향후 정치적 구상을 정리할 것 같다”는 입장을 대신하기도 했다. 그렇기에 지방선거 이후 지금까지의 상황으로 보아서 진 전 장관은 열린우리당과 끈을 두되 정치적 행보는 독자적으로 옮길 것이라는 관측을 가능하게 한다. 진 전 장관의 이 같은 입장에 대한 여권의 평가는 나쁘지 않아 보인다. 우선 후보군이 두터워질 수 있다는 긍정적인 면을 제시하는 시각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에 더해 일부 당 관계자들이 “대선까지 남은 1년 6개월은 강금실 전 장관이나 진대제 전 장관 두 사람 모두에게 국민적 검증을 받기에 충분한 시간이 될 것”이라고 말하며 힘을 실어주기도 했기 때문이다. 한편, 진 전 장관은 당분간 ‘국가 경쟁력 향상’이라는 화두를 바탕으로 연구모임을 만들고, 대학과 기업체를 상대로 강연을 하며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쌓는데 주력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건강한 여당으로의 지름길 “선거 한번 졌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라는 노 대통령의 말처럼 열린우리당의 핵심 인사들은 이대로 주저앉아버리지 않을 분위기다. 더욱이 골수팬이 두텁게 형성되어 있는 스타 정치인들이기에 한 순간에 무너지기란 그렇게 쉬운 일만도 아닐 것이다. 정동영 전 의장만을 제외하고는 모두 머지않은 앞날을 기약하고 있고, 또 밝은 모습으로 차곡차곡 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힘을 합쳐야 한다는 것이다. 어떻게든 힘을 합쳐 시너지 효과를 발휘해야만 당도 살고, 본인도 살 수 있을 것이다. 정동영 전 의장이 단두대에 오르면서까지도 그렇게 지키고자 했던 열린우리당이 뿔뿔이 흩어져 개인플레이를 한다면 결코 누구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음은 자명하다. 누가 당권을 잡고 누가 대권을 잡느냐 하는 문제에만 집착하기보다 건강한 여당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제1야당의 독주를 견제할 수 있는 진정한 여당의 모습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현 비대위와 전 지도부의 화합을 통해 열린우리당의 병이 치유될 수 있기를 바랄뿐이다.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