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북한과 일을 하려면 힘들 때가 있다" … 생전 방북 좌절?

미국을 겨냥한 북의 미사일 발사 논란으로 김대중(DJ)전 대통령이 생전 북녘 땅을 밟을 수 있을지 불투명해졌다. 김 전 대통령은 2000년 6월 15일 평양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나 통일문제의 자주적 해결과 경제협력 등을 통한 남북 간 교류 활성화 등 5개 사항에 합의한 뒤 역사의 한 지표를 장식했다. 이후 6년이 흘렀지만 남북은 여전히 긴장 속에 대치상태에 있으며 김 전 대통령으로서는 생전, 평양을 다시 찾아 남북평화의 틀을 확고히 하는 것이 인생최대 과제인 셈이다. 김 전 대통령은 지난 4월 북한을 방문하고 싶다고 밝힌 뒤 5월 방북계획을 추진했다. 그러나 5.31 지방선거로 인해 자칫 자신의 방북이 평화해결을 위한 의미가 아닌 정치논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전격 중단했다. 이후 김 전 대통령은 6월 방북을 희망하면서 열차를 통해 북에 가고 싶다고 까지 했다. 정부는 DJ의 뜻을 십분 받아들여 북측과 열차방북에 대해 논의했으며 철도공사 측도 이를 추진하면서 어느정도 방북이 현실화되는 듯 한 분위기 였다. 그러나 6월 중순 북한이 대포동 2호를 발사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되면서 미국과 일본을 비롯한 국가들은 잔뜩 긴장했고, 핵탄두 탑재설과 함께 위성발사체 주장 등이 엇갈리며 혼란에 휩싸인 것. 미국은 급기야 북이 미사일을 발사하면 경제제제는 물론이고, 군사적으로도 적극대응 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동교동은 6월 방북이 무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 같은 우려는 현실화되고 고심하던 DJ는 27일께로 예정됐던 '6월 방북계획'을 전격 연기하기에 이른다. ◆생전 방북의 좌절?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21일 김 전 대통령의 방북문제와 관련, 북한의 미사일 발사 움직임 등 변수가 발생함에 따라 적절한 시기가 아니라고 판단, 연기한다고 밝혔다. 김 전 대통령 방북협의를 위한 대북 실무접촉 수석대표인 정 전 장관은 이날 오전 롯데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돌출 상황 때문에 지난 5월 합의가 됐던 6월말 방북이 사실상 어렵게 됐다" 며 방북연기 결정을 공식 발표했다. DJ로서는 지난주 광주에서 열린 6·15 6돌 통일대축전행사와 노벨평화상 수상자 정상회의 기간에 현지 숙소에서 신장투석 치료를 받는 등 방북예행 연습까지 마친 상태여서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다. DJ는 "북한과 무슨 일을 하려면 참 힘들 때가 있다"며 방북 연기결정에 큰 아쉬움을 표시했다. DJ 방북 무산은 지난주 6·15 광주 행사 때 북측대표단이 "북에 돌아가서 곧 연락을 주겠다' 던 약속이 마지노선인 20일까지 지켜지지 않은 탓으로, 초청자인 북측의 약속파기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이에 앞서 지난달 24일에는 북측이 경의선·동해선 열차 시험운행을 하루 앞두고 운행계획을 전격 취소한 데 이어 무산책임을 남측에 전가하는 등 남북 당국자간에 책임공방이 이어졌다. 이에 대해 북한전문가들은 철도 시험운행 무산 후 남북관계가 급 속히 냉각될 것임을 예고했지만 정부는 북측의 요청에 따라 제주에서 곧바로 경제협력추진협의회를 여는 등 협상파기 뒤 대응방식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남측이 유감표명만 하고 북측의 일방적 시험운행 무산에 따른 책임을 철저히 따지지 않음에 따라 남북간에 어렵게 합의한 약속들이 쉽게 파기되는 사태가 빈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대중 방북무산보다 국제사회 돌출행동 우려 이런 상황에서도 김 전 대통령은 24일 KBS 1TV `KBS 스페셜`에 출연해 "냉전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를 최대로 악용해 상당히 부정적인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있어 걱정하고 보고 있다"고 했다. 자신의 방북도 아쉽지만 북의 움직임에 따른 국제사회의 돌출 행동이 더욱 우려된다는 것이다. 지난 18일 오후 10시부터 서울 동교동 김대중도서관에서 고르바초프 옛 소련 대통령과 `한반도 평화이 조건`이라는 주제로 특별 대담을 가진 김 전 대통령은 북한 미사일 시험발사와 파장에 대해 "미사일이 실제로 발사돼 미국 본토 가까이 까지 가는 것이 입증되면 상당한 문제가 생겨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미국의 네오콘 이라든가 일본의 극우세력이 아주 좋아하며 군비강화의 길로 달려갈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고르바초프는 "최근 세계 언론에서 상당히 심각한 문제인 것처럼 보도하고 있는데 내 생각에는 일종이 도박을 벌이고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북핵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김 전 대통령은 "북한의 핵은 절대로 안 되는 것이고 없어져야 하는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핵을 없애는 동시에 북한의 생존권도 보장해 줘서 미국도 책임을 다하도록 해아 한다"고 말했다. 이어 "만약 북한의 생존권을 보장해 주는데도 북한이 옳지 않는 일을 한다면 6자회담에서 북한을 제외한 5자가 합의를 해서 북한을 제제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동북아 다자 안보 협력이 가능성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고르바초프는 "예전에 소련 지도자일 때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연설하면서 아시아는 협력 포럼의 길을 모색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당시는 내가 제안하는 것이 유토피아적이라고 했지만 이제 시기가 온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현재 중요한 것은 6자 회담을 성공하도록 하는 것"이라며 "6자회담의 중요성을 우리 국민도 한 번 더 인식하고 6자회담이 잘 되도록 바라고 지원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쌀을 무기로 삼는 정부 발상은 위험천만 북한을 바라보는 전문가 등은 일단 북핵·미사일 문제를 풀 특사파견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쌀지원을 지렛대 삼자"는 정부의 발상은 위험하다는 것이다. DJ 방북무산으로 교착상태에 빠진 6자회담에 돌파구를 마련하고 남북관계에 새로운 국면을 형성하려했던 한국 정부의 시도는 상당기간 미뤄지게 됐다. 그만큼 남북 직접채널 구축에 나설 필요성이 높아졌다.
북한이 임박한 DJ 방북에 대해 갑자기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 것은 미사일 시험발사를 놓고 미국·일본 등과 대결국면이 조성되는 상황에서 손님을 맞을 처지가 아니라는 판단 때문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DJ측도 이런 북한의 처지를 간파하고 미사일 시험발사 문제가 가닥이 잡힐 때까지 방북을 연기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방북 연기는 연기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남북관계 전반에 먹구름이 끼게 될 거라는 우려다. 전문가들은 또 미사일 시험발사와 관련해 북·미간 공방전이 벌어지면서 한국 정부가 소외되거나 상황 논리에 끌려 다닐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북한의 지속적인 북미 직접대화 요구에도 미국이 이를 무시해왔으며 이번 미사일 시험발사 문제만큼은 미국 조야에서 북미 협상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미국 정부도 어느 때보다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북한 전문가들은 "6자회담이 교착상태에 있지만 미사일 문제만큼은 미국정부가 자체가 강력한 관심을 나타냈다"며 "미국의 관심을 끌어냈다는 측면에서 보면 북한이 성공한 것"이라고 보고있다. 따라서 북한은 한동안 미국의 반응을 주시하며 미사일 문제를 북미 직접협상을 이끌어내는 카드로 활용하기 위해 상황을 지연시킬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북은 미사일 발사를 미루는 대신 미국과 대화하자고 나섰고 미국은 이런 북의 요구에 불응하고 있는 상태다. 해법은 당장 유용한 대북 직접대화 채널 마련에 나서야하는 상황. 한국이 북핵·미사일 문제 등에서 대북 협상채널을 갖지 않는다면 국제사회가 한국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북한과의 대화채널 마련에 대한 중요성이 일고 있는 가운데 이종석 통일부 장관은 한나라당에 북한 미사일 위기와 관련해 보고하는 자리에서 "미사일이 발사되면 쌀·비료 지원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밝혔다. 그 동안 정부는 대북 쌀·비료지원이 정치적 문제와 무관한 인도적 지원이라고 밝혀왔다. 하지만 이자리에서 쌀을 무기로 세움으로서 자칫 북을 자극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방한했던 라이스 미 국무장관조차 "미국과 한국이 대북 식량지원을 하는 것은 정치적 목적이 아니라 인도주의 차원"이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이 장관은"미사일 위기를 인도적 지원과 연계시킬 수 있다"고 말해 대북정책의 원칙이 없음을 스스로 노출했다. ◆김대중 방북 재추진 김 전 대통령은 정세현 전 장관을 통해 방북무산을 알리면서도 생전 방북에 대한 강한 의지는 접지 않았다.
김 전 대통령은 "이번 방북이 내 생애 민족을 위한 마지막 봉사 기회라고 생각한다. 그 뜻을 지켜 나가겠다"고 밝혀 왔고, 정 전 장관과 최경환 비서관이 기자회견장으로 떠나기 직전 "기자들에게 (내 뜻을) 잘 설명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전 장관도 '7, 8월 방북 추진이 가능하겠느냐' 는 기자들의 질문에 "비바람 친다고 계속 그렇게 되겠나. 덥다고 못 가는가" 라고 말해 미사일 문제가 호전되면 시기에 구애받지 않고 방북을 추진할 뜻을 분명히 했다. 남북관계에 정통한 남성욱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22일 CBS라디오에 출연, DJ방북이 2~3개월 후에 재추진 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정 전 장관과 함께 방북무산 기자회견에 참석한 남 교수는"다음 주 방북이면 이번 주 중에는 선발대가 평양에 도착해야하는데 그런 북한의 어떤 조치도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사실상 방북이 어렵게 됨에 따라서 일단 연기를 발표를 했다"며 "아무래도 미사일 먹구름이 김 전 대통령의 방북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 아닌가 본다"고 했다. 그는 "북한 입장에서는 지금 워싱턴과 힘 겨루기를 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김 전 대통령의 방북을 통해서 문제의 초점이 흐려지는 것을 별로 원치 않는 것으로 판단된다"며 "이에 따라서 미사일 문제가 어느 정도 좀 진정국면을 보일 경우에 정 장관의 발언대로 아마도 방북이 재추진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남 교수는 북에서 김 전 대통령을 초청한 것이 유효한가에 대한 지적에 "아무래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좋은 계절에 한 번 오라는 약속인 만큼 이것이 유효하다고 본다"며 "아무래도 국제정세와 남북관계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아무래도 당분간 한 2~3개월은 지나야지 문제에 다시 해결노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러나 2~3개월 후 미사일 문제가 잠잠해져서 DJ방북이 재추진된다고 해도 적어도 1~2개월의 준비기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 현재 김 전 대통령의 나이가 81세인 것을 감안할 때 그에게 3~4개월은 3~4년과 맞먹는 시간인 것이다. 더욱이 3~4개월 후 정치권은 곧바로 2007년 대선전에 돌입, DJ방북이 또다시 정치논쟁에 휩싸여 미뤄질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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