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공정거래, 임원급 직접 지시했나

▲ 검찰과 업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세조사부(한동훈 부장검사)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이모(52) 전 아모레퍼시픽 상무를 고발한 사건의 배당을 마치고 수사절차에 3일 착수했다.ⓒ뉴시스

한국 화장품 열풍으로 ‘요우커(遊客‧중국인 관광객)’ 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며 시가총액이 사상최대를 기록하는 등 승승장구하고 있는 아모레퍼시픽을 두고 ‘갑질’논란이 제기됐다. 문제는 이번 논란이 최근의 일이 아닌 몇 해 전부터 대리점들을 괴롭혀온 해묵은 문제였다는데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앞에서는 상생경영을 강조하면서 뒤에서는 대리점 위에서 군림했다.

3일 검찰과 업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세조사부(한동훈 부장검사)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이모(52) 전 아모레퍼시픽 상무를 고발한 사건의 배당을 마치고 수사절차에 착수했다.

아모레퍼시픽은 설화수, 헤라와 같은 고가 브랜드 중심의 제품 판매를 위해 방문특약점을 만들어 왔다. 본사와 특약점 간 계약이 체결되면 자체적으로 특약점주는 방문판매원과 계약을 맺고 이들을 관리한다. 지난해 특약점을 통한 매출액은 아모레퍼시픽 전체 매출액인 2조6676억원의 약 19.6%를 차지하는 비율이었다.

◆ 10년간 지위 남용…임원급도 관여 했나

검찰에 따르면 아모레퍼시픽은 지난 2005년부터 10년간 특약점주의 동의 없이 방문판매원 3482명을 신규 오픈하는 특약점이나 직영점에 임의로 배치했다. 특약점에 숙련된 방문판매원의 수가 많을수록 매출 역시 증가하기 때문에 본사가 임의로 판매원을 다른 곳으로 보낼 경우 그 특약점의 매출은 갑자기 줄 수 있다.

이에 작년 8월 공정위는 아모레퍼시픽에 시정명령 및 과징금 5억원을 부과했다. 다만 형사고발은 따로 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 5월 말 중소기업청이 의무고발요청권 심의위원회를 열고 공정위에 아모레퍼시픽과 방문판매사업부 담당 이모 전 상무를 ‘거래상 지위남용’ 혐의로 고발해 달라고 요청했고, 공정위가 이를 받아들이면서 실제 검찰조사가 시작됐다. 의무고발요청제도란 중기청장 등이 공정위 소관 5개의 법률을 위반한 법인의 고발을 요청할 경우, 공정위가 의무적으로 검찰에 고발하는 제도다.

공정위는 이모 전 상무가 아모레퍼시픽 방판사업부장이던 2013년 1월 소속 팀장들에게 “실적이 부진한 방판특약점의 판매원을 다른 특약점에 재배치하거나 점주를 교체하라”고 지시한 사실을 확인했다.

검찰 관계자는 조사에 착수하기 전 “본사가 어느 특약점에 몇 명의 방문판매원을 배정했는지 확인할 계획”이라며 “(특약점 입장에서는) 본사 측 방문판매원 임의 배정을 거부하면 특약점 계약이 끝난 뒤 갱신이 거절될 수도 있다는 심리적 부담감이 있다. 일종의 우월한 지위를 남용한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조만간 이 전 상무를 불러 관련 의혹을 조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뿐만 아니라 아모레퍼시픽은 상권이 확대되는 지역 신규 특약점 개설을 위해 본사의 영업정책에 ‘비협조적’ 영업장을 이동 실시 대상(세분화 대상)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아모레퍼시픽 특약점은 2005년 425개에서 지난해에는 547개까지 늘어났다.

▲ 아모레퍼시픽은 그동안 대외적으로 ‘동반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뒤에서는 일방적 계약해지와 제품밀어내기 등으로 대리점들을 괴롭혀왔다. 사진 / 홍금표 기자

◆ 앞에서는 동반성장, 뒤에서는 계약해지

아모레퍼시픽은 그동안 다양한 사회공헌캠페인을 벌이는 등 대외적으로 ‘동반성장’을 강조하면서도 실상은 일방적 계약해지와 제품밀어내기 등으로 대리점들을 괴롭혀왔다.

지난해 6월 진보정의당과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등이 ‘전국 을의 피해사례 보고대회’를 통해 내놓은 자료를 보면 아모레퍼시픽은 목표로 정한 영업실적을 채우지 못한 대리점에 제품 밀어내기, 판촉물 강제를 일삼았던 정황이 확인된다. 2012년 한 해 동안 판촉물 강제 비용으로 각 대리점이 부담한 비용은 평균 1800만원선 이었다.

심지어 일정 수준의 판매율을 달성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한 뒤 우수한 실적의 영업사원을 장사가 잘 되는 대리점으로 배치시키기도 했다. 실제 경남 마산의 전직 아모레퍼시픽 특약점 점주 서행수씨가 밝힌 내용을 보면 아모레퍼시픽은 2007년 12월 ‘경영개선 요청 내용’을 통해 2006년부터 2007년까지 1년간 매출이 떨어졌다며 2008년 판매 증대 계획을 세울 것을 요구했다. 이에 서 씨는 2008년 들어 판매율을 5%까지 올리겠다고 약속했지만 그해 9월 기준 2.4%밖에 달성하지 못했고, 아모레퍼시픽은 결국 그해 말 거래를 중단했다. 서씨와 계약을 맺은 60여명의 영업사원들은 모두 다른 특약점으로 배치됐다.

진보정의당 김제남 의원은 아모레퍼시픽이 특약점주들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제품을 구매하도록 했다고 주장하면서, 부산 지역에 있는 한 특약점의 2012년도 영업 현황을 증거로 들었다.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아모레퍼시픽은 해당 특약점의 매출보다 최고 2000만원이 넘는 수준의 제품을 강매시켰다.

또 아모레퍼시픽 본사와 특약점주가 체결하는 ‘거래약정서’에는 ‘불공정 관행’이라 할 수 있는 현금결제 무조건 강제, 방문판매원 모집·교육 비용 특약점 부담, 실적 저조시 경영개선계획서 제출 등의 조항이 있었다고 김 의원은 주장했다.

◆ 막말 녹취록 파문

갑질 논란이 확산되자 당시 아모레퍼시픽은 “전체 550여개 대리점의 매출과 비교해 해당 점포의 매출이 낮을 경우 경영의지가 없다고 판단해 계약을 종료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한 달 후인 지난해 7월 민주당 우원식 최고의원이 아모레퍼시픽의 ‘막말 녹취록’을 공개하면서 논란은 제2의 남양유업 사태라고 명명되기 시작했다. 앞서 파장을 일으킨 남양유업 사태의 경우 아버지뻘 되는 대리점주에 폭언을 퍼부은 일로 공분을 샀다. ‘아모레퍼시픽 피해대리점주협의회’는 녹취록을 확보한 뒤 우 최고의원에게 전달했다고 밝히면서 녹취록에는 “특약점을 내놓지 않으면 바로 옆에 직영점을 열어 내놓을 수밖에 없게 만들 것” “너무 나서면 잃는게 더 많을 것”이라는 내용이 담겼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협의회가 언급한 녹취록은 바로 공개되지 않았고, 아모레퍼시픽 측이 “내부조사 결과 막말을 한 직원은 없다. 녹취록 있다면 이미 공개했을 것”이라고 반박하면서 사건은 헤프닝 수준으로 끝나는 듯했다.

3개월 후인 그해 10월 13일 50분 분량의 녹음파일이 공개됐다. 해당 파일은 지난 2007년 녹음된 것으로 아모레퍼시픽 영업직원이 대리점주에게 “사장님 철밥통이오? 공무원이오? 능력이 안 되고 성장하지 못하면 나가야지” “니 잘한 게 뭐 있나?” “나이 마흔 넘어서 이××야” 등 폭언을 하는 내용이 담겨져 있었다. 또 대리점주가 ‘만약 내가 버티면?’이라고 묻자 영업직원이 “협조 안해주시면 물건 안 나가고 인근에 영업장 또 내는 거죠”라고 답변한 갑질 전횡이 녹음돼 있었다.

이에 아모레퍼시픽은 손영철 대표이사 이름으로 “해당 사안이 수년 전에 발생한 것으로 사실 관계를 확인하는데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면서 “저희 직원의 부적절한 언행에 책임을 통감한다”고 전했다.

한편, 남양유업 사태의 경우 2013년 5월 유투브에 ‘남양유업 싸가지 없는 직원’이라는 제목의 대화녹취 파일이 게재되면서 촉발됐다. 해당 파일은 20110년 녹음됐고 남양유업 영업직원이 대리점주에게 “죽기 싫으면 받으라고요” “물건 못 받겠다는 그 따위 소리 하지 말라” “차라리 망해라 ” “죽여 버리겠다” “개XX야” “맞장 뜨자” 등의 폭언을 퍼붓는 내용이 담겼다. 녹취파일이 인터넷 상에서 퍼지기 시작하면서 남양유업 제품 불매운동이 일어났고 매출은 급격히 떨어졌다. 이에 공정위는 남양유업의 불공정 행위와 관련해 전현직 임직원을 고발하고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에 공정위가 앞서 아모레퍼시픽에 부과한 과징금 5억원을 두고 지나치게 적은 수준으로 매겨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남양유업이 대법원으로부터 과징금 중 119억원을 돌려받을 수 있다는 판결을 받기는 했어도, 최초 공정위로부터 부과 받은 과징금이 124억원인 점과 아모레퍼시픽의 매출이 남양유업의 배에 달한다는 점, 불공정 행위의 수법자체가 유사하다는 점이 그 근거다. 이에 이번 아모레퍼시픽 ‘갑질’ 사건과 관련해 수사를 시작한 검찰 측의 조사와 판단에 관심이 집중된다.[시사포커스 / 진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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