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한국민에게 상처주는 발언을 해선 안 된다"

노대통령의 3.1절 기념사에 대한 정치권의 반응은 서로 엇갈린 반응이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지난 1일 노 대통령이 3.1절 기념사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신사참배를 정면으로 겨냥한 듯한 발언을 한데 대해 "총선을 의식한 대중영합적 발언으로 오해를 살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과 자민련은 "국민정서를 반영한 적절한 우려 표명"이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등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3.1절 기념사에서 일본에 대해 "한국민에게 상처주는 발언을 해선 안 된다"고 밝힌 것은 최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총리의 `매년 신사참배 강행' 발언을 둘러싼 국민적 감정악화를 의식하면서 일본에 대해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작년부터 시작된 일본 유사법제 논란과 우리 정부의 독도우표 발행에 대한 일본의 국제적 시비 제기, 되풀이되는 일본 지도자의 `독도는 일본땅' 망언 등 그간 누적된 문제들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겠다는 외교적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은 작년 6월 일본방문에서 방위안보법제 및 평화헌법 개정 등 유사법제 논의에 대해 우려를 표시하고 과거사에 대한 일본 지도자들의 진실한 접근과 반성을 간접 촉구한 바 있으나 이처럼 직설적으로 강도 높게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노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수위는 역대 대통령들의 발언 톤에 비춰볼 때에도 이례적으로 높다는 게 대체적인 평이다. 노 대통령은 그러나 지론대로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 미래와 이를 위한 한일간 파트너십을 고려해 감정적 대응 자제와 우리 국민의 `지혜로운 대응'을 호소하는 것으로 미래지향적 양국관계에 무게를 실었다. 따라서 노 대통령의 이 언급이 우리 정부의 후속 조치로 구체화하면서 양국 관계에 외교적 파장을 확대 재생산하는 방향으로 번질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다만, 반기문 외교통상 장관의 일본방문이 오는 7-8일로 잡혀있고 방일기간에 고이즈미 총리도 접견하게 돼있어 이 발언이 미칠 영향이 관심을 끈다. 노 대통령은 이와 함께 일제치하 온 겨레가 하나가 된 독립운동 역정과 관련,상해 임시정부의 법통을 확인하는 한편 해방후 분열.갈등.반목의 역사와 독립운동세력 주도의 역사형성 좌절을 회고하면서 이들에 대한 정당한 역사적 평가와 정부의 정책적 뒷받침을 강조하는 것으로 역사인식의 올바른 자리매김을 역설했다. 그러나 총론적 선언만 했을뿐 구체적인 정책조치들은 제시되지 않아 아쉬움을 남겼다. 노 대통령은 "과거는 말끔히 청산되지 않았고 새 역사의 대의도 분명히 서지 못했다. 역사적 진실은 아직 많은 게 묻혀 있다. 아직도 국회에서 친일의 역사를 어떻게 밝힐 것인가를 놓고 혼란을 거듭하고 있다"고 현 상황을 평가했다. 그러면서 "독립투사와 후손들의 오늘 사회적 처지는 소외와 고통"이라고 전제한 뒤 "그들이 역사를 주도하지 못했다. (그래서) 아직도 우리 역사에 대한 해석, 오늘의 현실에 대한 인식에 있어 대립과 갈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이제 3.1운동때 목숨걸고 일어섰던 선열들의 비장한 마음을 갖고 스스로를 돌아보고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이 대목에서도 해방후 식민지 국가중 최고의 민주주의 발전 속도를 보이고 있고 40년간 경제규모를 100배 키운 우리 민족의 역량을 들어 과거는 과거대로 직시하되, 낙담하고 좌절할게 아니라 민족적 에너지를 모으기 위해 국민통합을 해야 한다는 미래형 키워드에 방점을 찍었다. 일제하 항일.친일 갈등과 좌우 이념대립을 예시하면서 이 상처들을 극복하기 위해 새 역사적 안목으로 스스로를 돌아보고 용서, 화해하는 지혜를 모아 나가자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이에 대해 "한발 물러서고 스스로 가슴을 여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노 대통령은 3.1운동의 민족자존 및 자주독립 의지와 관련, 100년전 구한 말 동북아 역학관계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못했던 `변방의 역사'가 이제 이 지역 정세변화의 주요 세력이 됐을뿐 아니라 자주와 독립을 지킬만한 넉넉한 힘도 가졌다며 "국방과 안보에 있어 한국군의 역할은 점차 증대돼 가고 있고 머지않아 한국군 중심의 안보체제로 전환될 것"이라고 `자주국방'을 역설했다. 또 용산기지 이전에 대해서도 "간섭, 침략, 의존의 상징이던 용산기지가 성장한 대한민국, 점차 자주권이 강화되고 어엿한 독립국가로서의 대한민국 국민 품에 돌아온다"고 의미를 부여하고 국민적 역량 결집을 통한 실력배양론을 강조했다. 대미관계에서도 친미냐, 반미냐가 아니라 자주권 강화와 독립국가 실력배양이란 측면에서 무엇이 필요한 것이냐는 소위 용미의 `잣대'가 요구된다는 실사구시론을 전개했다. 이날 노 대통령의 연설은 후보 시절에도 지론으로 밝혀왔던 구한말 역사해석, 해방공간의 정치상황 평가, 독립운동세력 주도의 역사형성 좌절, 변방의 역사 청산 및 진정한 자주국가 역사 형성, 자주국방, 국민통합, 동서갈등을 축으로 하는 지역주의 대결정치 청산 등이 주된 내용이다. 특히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를 겨냥한 듯한 대일 경고메시지는 노 대통령이 직접 삽입한 문구의 핵심으로써, 예상치 못한 발언인데다 외교적으로도 민감한 발언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원고에 없는 연설 내용임에도 불구, 순조롭게 말을 풀어나갔고 친일역사 문제와 대일 메시지 등에 대해 나름대로 소상히 입장을 밝혀 박수를 6차례나 받았다. 한편, 노 대통령의 일본 총리를 겨냥한 비판발언이 향후 한ㆍ일 관계에 미묘한 파장이 되지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이날 특히 노 대통령의 "일본에 대해 한마디 꼭 충고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리 국민 가슴에 상처를 주는 발언들을 흔히 지각없는 국민이나 인기에 급급한 한두 사람의 정치인이 하더라도, 적어도 국가적 지도자의 수준에서는 해선 안된다"고 한 대목이 시선을 끌고 있다. 이는 특정인을 지칭한 것은 아니지만, 지난달 27일 오사카 지방법원이 야스쿠니신사 참배 금지를 요구하는 소송을 기각하자 그 다음날인 28일 고이즈미 총리가 "내가 왜 소송을 당했는 지 모르겠다", "매년 참배하겠다"고 말한 직후 나왔다는 점에서 고이즈미 총리의 발언을 염두에 뒀다고 해석되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 29일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은 고이즈미 총리의 이런 언급에 대해 노 대통령의 입장이 없는 것 아니냐는 지적과 관련, "침묵 속에 오히려 더 깊은 뜻이 담긴 것 아니냐"고 밝힌 바 있다. 이로 미뤄본다면 노 대통령의 3.1절 기념사 발언은 그간 쌓아뒀던 고이즈미 총리의 행보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밖으로 드러낸 첫 '터치'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특히 한나라당 은진수 수석부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3.1운동의 정신을 받들어 대한민국의 번영과 한 민족의 위상을 드높이기 위해 더욱 정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은 수석부대변인은 "노무현 대통령의 `코드독재'로 인해 정치, 경제, 사회, 안보, 외교 등 전 분야에 적신호가 켜진 지 이미 오래이며 대한민국의 국체와 정체성조차 위협받는 상황"이라면서 "한나라당은 사즉생의 각오로 노 대통령과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 등 집권세력의 불법.관권선거를 철저히 분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열린우리당 박영선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3.1운동 정신은 평화를 사랑하는 한국인의 기상으로 아시아는 물론 전 세계를 감동시키고 있다"며 "우리나라가 동북아 평화협력시대를 주창하고 이끌어 갈 수 있는 역사적 토양을 만들어준 순국선열들에게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박 대변인은 이어 "오늘은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평화를 사랑하고 불의에 당당히 맞설줄 알았던 순국선열들의 넋을 기리는 민족 자존의 날이 되길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민주당 장전형 수석부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민주당은 순국선열들의 고귀한 희생을 가슴깊이 새겨 역사를 바로 잡고 나라를 발전시키는 데 정진하겠다"고 밝혔다. 장 부대변인은 "3.1운동의 정신을 되새겨 국회는 내일 열리는 본회의에서 `일제 강점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특별법안'을 반드시 통과시켜야 하며, 민주당이 앞장설 것"이라며 "정부와 대통령은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독도 발언, 정신대 문제 등 민족적 사안에 대해 더이상 침묵으로 일관해선 안된다"고 말했다. 자민련 유운영 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3.1운동의 위대한 민족성과 가치는 온데 간데 없이 불신과 혼란에 휩싸여 국정의 모든 분야가 흔들리고 있다"며 "무겁고 착잡한 마음을 금할 길 없다"고 말했다. 유 대변인은 이어 "경제.외교.안보가 불안하고 사회적 갈등도 심상치 않아 국가가 총체적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며 "오늘의 국가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당시 가슴 속 항거의 에너지와 잠재력을 폭발시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외교통상부는 '대통령 발언은 일반론'이라는 주장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날 "노 대통령의 3.1절 연설문은 외교부와는 관련이 없고 청와대에서 만든 것"이라며 "사전원고는 봤으나 이런 발언이 언급돼 있지 않았었다"고 말했다. 그는 "노 대통령이 일본의 국가적 지도자급을 말한 만큼 고이즈미 총리를 겨냥한 것이 아니라 일반론"이라며 "아소 다로 총무상이나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 도지사도 다 국가지도자급"이라고 말했다. 외교부 당국자가 이처럼 언론을 대상으로 노 대통령의 3.1절 기념사에 대해 해명한 것은 고이즈미 총리를 겨냥한 발언으로 기정사실화될 경우 자칫 한.일관계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도화선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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