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는 장남, 파고드는 차남’…교차경영, 갈등 불씨 되나

 

▲ 조양래 한국타이어 회장의 장남 조현식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 사장(왼쪽)과 조현범 한국타이어 사장(오른쪽)이 각자 서로의 회사에 직을 겸하면서 업계의 시선이 모아진다. 특히 조현범 사장이 조현식 회장과 함께 M&A 사업을 이끌어 나가기로 한 것에 대해 업계 일각에서 우려의 시선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타이어

‘비타이어’ 분야와 ‘타이어’ 분야로 역할을 분담해 왔던 한국타이어그룹 조현식(45)·조현범(43) 형제가 최근 서로의 ‘영역’에 발을 들이는 ‘교차 경영’ 형태를 취한 가운데, 일각에서는 후계 구도 경쟁 본격화로 갈등에 발을 들인 것 아니냐는 관측이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20일 한국타이어그룹은 사내 인사 공고를 통해 핵심인력 인사를 단행했다. 특히 이 인사는 형인 조현식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 사장과 동생인 조현범 한국타이어 사장이 서로의 회사에 각각 발을 들이밀면서 업계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한국타이어그룹의 공고에 따르면 조현식 사장은 동생의 회사인 한국타이어의 마케팅본부장을 한시적으로 겸한다. 또한 조현범 사장은 형의 회사인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의 경영기획본부장을 겸한다. 형제가 나란히 서로의 회사에 중책을 맡은 셈이다.

한국타이어 측은 이번 인사에 대해 “한국타이어그룹의 지주사 강화를 통해 글로벌 사업 확장 및 그룹 혁신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역할 분담’ 해제…갈등 불씨 될까
하지만 업계에서는 그간 조현식·조현범 형제가 각자의 영역을 맡아 독립된 행보를 보여 왔다는 점에서 이 같은 인사를 단순하게 볼 수는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미래의 계열 분리를 염두에 둔 포석이 아니냐는 시각이나 두 형제간 협업 과정에서 상호 경쟁과 견제도 가능해졌다는 시각 등 온갖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 인사가 재계를 뒤흔들고 있는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과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과의 경영권 분쟁처럼 향후 갈등의 불씨가 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조심스레 내놓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타이어그룹은 오너 일가가 지주사인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를 지배하고,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가 주력 계열사인 한국타이어를 지배하는 구조다. ‘오너가-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와이드-한국타이어’인 셈이다.

구체적으로 지주사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지분은 조양래 회장이 23.59%, 조현식 사장이 19.32%, 조현범 사장이 19.31%를 보유하고 있다. 한국타이어 지분은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가 25%, 조양래 회장이 10.50%, 조현식 사장이 0.65%, 조현범 사장이 2.07%를 보유하고 있다.

이처럼 두 형제간의 지주사 지분이 별 차이가 없는 한국타이어그룹은 그간 장남인 조현식 사장이 2010년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를 맡아 글로벌 생산 효율화와 신사업군 발굴, M&A 등을 적극 이끌어 왔고, 2011년 주력 계열사인 한국타이어를 맡은 차남 조현범 사장은 오랜 기간 CEO를 맡아 온 전문경영인 서승화 부회장과 함께 타이어 사업 글로벌화에 주력해 왔다.

그간 이 같은 두 형제의 ‘역할 분담’은 꽤 효과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지주사 사장인 장남과 주력 계열사 사장인 차남이라는 모양새도 나무랄 데 없거니와, 형이 글로벌 생산 효율화를 꾀해 경쟁력을 높이고 동생이 지속적인 연구개발로 품질경영 체제를 구축하면서 매출과 영업이익이 크게 늘고 전반적으로 그룹 외연도 확대됐다. 이를 통해 생산과 품질을 모두 잡았다는 평가다.

◆조현식 사장, M&A 잇단 고배로 신뢰 잃었나

▲ 두 형제의 지분률이 큰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조양래 한국타이어 회장(사진)의 복심이 어디로 향하느냐가 후계 구도를 정하는 데 중요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타이어

하지만 이미 지난해부터 두 형제가 차례로 난감한 상황에 빠지면서 공고하던 역할 분담 체제가 흔들릴 기미가 감지돼 왔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형인 조현식 사장은 타이어 사업 외에 별 다른 사업을 보유하지 못한 한국타이어그룹의 새 먹거리 발굴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지만 노력에 비해 큰 소득을 얻지 못했다. 오히려 지나친 비주력 기업 M&A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이라는 혹을 달게 됐다. 일각에서는 향후 조양래 회장의 퇴진 이후 계열 분리를 염두에 두고 본인의 몫을 미리 확보해두려는 시도가 아니냐는 전망까지 나오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자동차 공기조절장치 제조업체 구 한라비스테온공조(현 한온시스템)를 사모펀드인 한앤컴퍼니와 공동으로 인수한 것 외에는 별 다른 실적이 없다. 구 KT렌탈(현 롯데렌터카) 인수전에 야심차게 뛰어들었지만 결국 롯데그룹에 뺐겼다. 대우로지스틱스 인수전에는 인수의향서를 제출했다가 입찰 참여를 포기하는 오락가락 행보를 보였고, 동부익스프레스 인수전에도 뛰어들었지만 워낙 경쟁이 치열해 승리를 장담하기가 만만치 않은 분위기다.

오히려 시장에서는 공격적인 비주력 사업의 M&A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30일 한국타이어 주가는 4만300원으로 장을 마감, 4만원대 초반을 벗어나기는 커녕 3만원대로 진입할 위기에 처했다. 물론 주가 부진에는 자동차 산업이 전반적으로 불황에 접어든 탓도 있지만, 1조원 안팎으로 추산되던 대형 M&A에 자꾸 한국타이어가 얼굴을 내미는 것이 투자자들에게는 달갑지 않은 것으로 추산된다.

그나마 성공했던 구 한라비스테온공조(현 한온시스템) 인수는 현대차와의 불협화음을 불러 한 때 한국타이어 위기론까지 제기되는 결과를 낳았다. 현대차는 한국타이어가 사모펀드 한앤컴퍼니와 손을 잡고 구 한라비스테온공조(현 한온시스템)를 인수한 것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수 차례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모펀드와 엮일 경우 좋을 게 없다는 얘기다.

조현식 사장이 그간 M&A에 집중해 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결국 “딱히 뭘 보여준 게 없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장남에 대한 신뢰를 어느 정도 거둔 조양래 회장이 동생인 조현범 사장을 지주사인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에 투입시킨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게 된 배경이다.

◆조현범 사장, 품질 신뢰도 흔들
형 만큼은 아니지만 조현범 사장도 타이어 부문에서 여러 차례 고배를 마시면서 큰 타격을 입기도 했다.

특히 다른 것도 아니고 한국타이어가 자신있게 내세우던 타이어의 품질 문제로 현대차와의 밀월 관계가 흔들리게 된 것은 뼈아프다는 평가다.

한국타이어는 지난해 현대차의 신형 제네시스 소음 논란으로 큰 곤욕을 치렀다. 2013년 출시된 신형 제네시스에 탑재됐던 한국타이어의 최상위 제품 ‘벤투스 S1 노블2’가 신형 제네시스의 진동과 소음 현상의 원인으로 지목된 것이다. 결국 현대차는 이 제품을 전량 교체하는 보기 드문 광경을 연출했다. 한국타이어 측은 억울하다는 입장을 표출하기도 했지만 현대차는 이를 강행했다.

신형 제네시스 소음 논란으로 현대차와의 불협화음을 자아낸 한국타이어는 최근 현대차로부터 올해 말 공개될 신형 에쿠스의 내수용 OE(신차용 타이어) 공급에서 불합격하는 굴욕을 받기까지 했다. 1999년과 2009년 1·2세대 에쿠스에 타이어를 공급했던 한국타이어의 에쿠스 타이어 공급 탈락은 이번이 처음이다.

자동차 부품업계 관계자는 “현대차 경영진이 신형 제네시스 타이어 이슈 때문에 아예 3세대 에쿠스 타이어는 처음부터 외산 타이어만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야심차게 추진하던 프로젝트에서 잇따라 고배를 마시면서 현대차와의 밀월 관계는 물론이거니와 소비자들의 신뢰도에도 타격이 발생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 때문에 형인 조현식 사장을 한국타이어 마케팅본부장으로 영입한 것 아니겠냐는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실제 지난해 조현범 사장은 원자재비 하락에도 제품가격을 오히려 인상하는 등 소비자들은 물론 업계에서도 이해할 수 없는 전략으로 이미지 실추를 겪기도 했다.

◆경쟁 구도 본격화…“롯데 사태 재현” 전망도 

▲ 한국타이어 관계자는 이번 인사 이유를 “신사업 창출을 주도하고 있는 지주사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의 역할을 강화하겠다는 의도”라고 설명했다. 조양래 회장이 그간 조현식 사장의 신사업 창출 등 M&A 행보에 만족하지 못했다는 식으로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한국타이어

하지만 업계에서는 조현식 사장의 한국타이어 마케팅본부장 겸직보다 조현범 사장의 한국타이어 경영기획본부장 겸직에 주목하고 있다. 말로는 교차경영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조현범 사장의 영입으로 지주사인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의 위상 제고를 노린다는 명목 아래 조현범 사장이 조현식 사장과 본격적으로 경쟁 구도를 펼칠 것이라는 분석에서다.

실제 한국타이어 관계자는 이번 인사 이유를 “신사업 창출을 주도하고 있는 지주사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의 역할을 강화하겠다는 의도”라고 설명했다. 조양래 회장이 그간 조현식 사장의 신사업 창출 등 M&A 행보에 만족하지 못했다는 식으로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한국타이어 관계자는 “신성장동력을 찾기 위해 M&A 관련 일이 많아져 조현범 사장이 경영기획본부장으로 이동해 지주사 전체의 기획과 전략 업무를 맡게 된다”고 설명했다. 조현범 사장이 향후 M&A를 본격적으로 주도할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이는 그간 M&A를 주도해 왔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조현식 사장이 뒤로 밀리거나 최소한 주도권을 잡기는 힘들다는 전망으로 이어진다.

이 경우 조양래 회장의 퇴진 이후 형제간 경영권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하기는 어렵다. 그간 비타이어 부문은 조현식 사장이 맡아 경영권을 승계하고 타이어 부문은 조현범 사장이 맡아 승계한다는 시나리오가 유력하게 제기돼 왔다.

공교롭게도 한국타이어그룹은 형제간의 지분 비율이나 조양래 회장의 역할, 그간 분담해 온 전력, 다른 형제의 존재 등 롯데그룹과 많은 면에서 닮아 있다.

아직도 조양래 회장의 지분 승계가 승계 구도에서 큰 의미를 지니고 있는 현실에서 조현식 사장과 조현범 사장이 같은 영역에서 다른 실적을 낼 경우 한 쪽으로 조양래 회장의 의중이 치우치게 된다면 현재 재계를 뒤흔들고 있는 롯데그룹 신동빈·신동주 형제 간의 내분이 한국타이어그룹에서도 발생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 조심스레 나온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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