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들의 방만 경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고 하지만 전·현직 대표가 앞장서 공금을 횡령해 개인 사비로 쓴 일은 다소 충격적이다. 한국남부발전의 얘기다.

며칠 전 남부발전의 전·현직 대표가 7년간 20억여원을 횡령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이들은 가지도 않은 출장에 대한 비용을 청구하거나 출장 인원과 기간을 부풀리는 수법으로 출장비를 횡령했다. 이렇게 빼돌린 돈은 스크린 골프비나, 생일파티비, 접대비 등으로 흥청망청 쓰여 졌다.

경제상황 악화로 ‘국가 곳간이 텅 비었다’는 지적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국민 혈세를 끌어다 운영되는 공기업 대표들이 한 행동이라고 생각하면 고개가 저절로 저어진다. 공기업 방만 경영의 고리가 끊어지지 않는 것은 이번 사건에서도 보여지 듯 경영자 개인의 도덕적 자질에서도 비롯될 수 있다.

또 한 가지, 방만 경영이 양산되는 까닭으로 추측되는 것은 공기업들 사이에서 ‘부족한 돈이야 공사채 발행으로 메우면 된다’는 식의 의식이 만연해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국고채의 경우 위험이 없는 채권(Risk-free)으로 분류되지만, 이외 발전자회사 등의 채권들은 국고 금리에 가산금리를 붙여 금리가 결정돼야 하는 게 원칙이다. 다만 남부발전은 신용등급 덕에 국고채 수준 또는 그 보다 낮은 수준의 수수료로 채권 발행이 가능했었다. 남부발전이 그간 모자란 자금을 끌어오는 일을 쉽게 생각했던 이유다.

그러나 최근 증권가 큰 손인 KB투자증권과 KDB대우증권 등이 남부발전의 공사채 발행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업계는 ‘터질게 터진 것’이라는데 입을 모았다. 남부발전의 경우 그간 국고채 수준의 낮은 금리가 용인될 정도로 증권사들 사이에서 신용도가 높은 투자 대상이었지만 무리한 요구가 반복되자 결국 증권사들이 돌아설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말이 돌았다. 유래 없는 공사채 거절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남부발전이 앞으로 저렴한 수수료로 공사채라는 비장의 카드를 쓰기는 점점 어려워 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남부발전의 부채비율은 150%에 달하고 차입금 의존도는 50% 수준이다. 재무건전성 강화를 위한 방안을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하는 상황이다. 최근 남부발전은 우선적으로 ‘숨통’을 트이기 위해 인원감축을 생각해냈다. ‘제 살 깎아내기’를 통해 급한 불은 꺼보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임금피크제 도입 과정에서 임원급 간부가 직원들에게 동의서를 강제한 정황이 드러났다. 남부발전 노조가 남부발전이 개별 직원들에게 동의서를 강요한 정황을 폭로하며, 동의서를 받는 방식 역시 비합법적이었다고 지적했다. 본래 자발적 동의이거나 집단적 토론을 통해 도출된 의견이 반영돼야 하는 것이 맞지만, 이를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부채공룡’이라는 딱지를 떼기 위해 임직원들의 뼈를 깎는 각오가 그 어느 때 보다 절실하다. 공사채를 끌어와 빚을 늘리는 식으로 빚을 메우는 것은 방법이 되지 않는다. 또한 동의서 압박과 같이 왜곡된 고육지책 역시 통할 리 없다.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