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4년 한 해 대한민국을 관통한 키워드는 역시 ‘세월호’다. 수학여행길에 오른 경기도 안산의 단원고 학생과 승무원 304명이 사망한 뒤, 정치적 논쟁으로 비화된 부분은 차치하고서라도 국가의 재난 대처 능력은 호된 질타를 받았다. 진도해상교통관제센터(VTS)는 세월호가 사고 해역에 들어서 속도가 절반 가까이 떨어지고 항로를 이탈해도 알아채지 못했고, 해역에 들어온 두 시간 동안 한 차례도 교신하지 않았다. 해경의 부실한 초기대응은 많은 질타를 받았다.

이에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때 초기 대응서 심각한 결함을 드러낸 해경을 해체하고 국민안전처를 신설한 지 어느덧 8개월이 지났다. 하지만 여전히 재난 관리 체계 확립은 요원하기만 하다. 청사도, 모의 훈련시설도, 헬기를 위한 격납고도 없는 중앙해양특수구조단의 얘기다.

국민안전처를 출범시킨 정부는 지난해 12월 ‘골든타임’ 대응능력을 획기적으로 높이겠다며 기존 남해해양경찰청 직원 중 구조·방제 베테랑들을 등을 선발해 중앙해양특수구조단을 신설했다. 하지만 아직도 이들 62명의 시설은 ‘공포의 외인구단’을 떠올릴 정도로 열악하기 짝이 없다.

청사도 없이 부산해양안전서 별관 2층에 세들어 있는 중앙해양특수구조단은 1시간이 넘는 거리에 있는 창원의 잠수훈련장과 수영장, 부산의 한 대학에 있는 해양잠수학과 잠수훈련장 등을 떠돌면서 훈련을 이어나가고 있다고 한다. 때로는 대구까지도 갔다는 얘끼까지 들린다. 이들은 좌초선박에서 부상자를 들것에 태워 구조하는 훈련을 부산해양안전서 안 조명탑이나 국기게양대에 줄을 매달아 진행하고 있다. 인명구조훈련장, 레펠훈련시설 등은 당연히 없다.

격납고가 없어 기껏 보유하고 있는 헬기는 15㎞ 떨어진 김해 공항에서 대기하다가 사고가 나면 대원들을 태우러 와야 한다. 가뜩이나 관할 해역이 넓어 사고 발생 1시간 내 현장 도착도 사실상 불가능한 마당에 웃을 수 없는 상황이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지난 3월 전남 신안 가거도 해상에서 발생한 해경 헬기 추락 사고 지역에 헬기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사고 발생 2시간이 지난 후였다.

구조 장비를 보관할 공간조차도 없다. 잠수복과 오리발은 현관 앞에 두고 건조실이 없어 젖은 잠수복은 계단 한 쪽에 널어둔다고 한다. 올해 예산은 21억원에 불과해 필수 장비 확보도 쉽지 않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2017년까지 청사를 세운다는 계획은 세워졌지만 여러 기관이 해당 부지를 쓰게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어 이마저도 장담키 어렵다.

대통령 약속으로 생긴 중앙해양특수구조단이 방치되고 있는 현주소를 접하니 씁쓸함을 넘어 허탈감이 느껴진다. 기본적인 훈련도 쉽지 않은 상태에서 실제 상황이 벌어질 경우 구조단 스스로조차도 신속·안전을 장담키 쉽지 않을 것이다. 사기 문제는 말할 나위도 없다. 한 단원은 이래가지고 후배들이 들어오려 하겠느냐며 자조섞인 푸념을 털어놨다.

기본적인 청사는 물론이거니와 훈련을 위한 장비와 시설조차 확보되지 않은 것은 정부의 즉흥 행정 때문이라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 장비와 예산, 운영 로드맵 등 여러 면을 충분히 고려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는 대목이다. 이렇게 운영할 거면 이전 조직과 다른 게 무엇인가. 차라리 기존 시스템을 유지하면서 군 부대나 민관 등과 유기적 체제를 갖추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기왕 출범했으면 지원이라도 적극적으로 해줘야 할 텐데 당분간 이 부끄러운 단상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무엇을 배웠는가. 정부는 요란하게 국민안전처를 신설하고 과거 행태와의 단절을 선언했지만 2014년 4월 16일 이후 정말 우리 나라의 재난 대응 능력이 업그레이드됐는지 반성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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