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노리고 4시간 거리로 발령?…노사 갈등 폭발

 

▲ 우정사업본부가 적자를 이유로 인원감축을 단행하는 가운데 비정규직에게 퇴사를 부당하게 종용하고 있다는 주장을 놓고 양측의 진실공방이 가열되고 있다. ⓒ문병호 의원실

최근 정부기관인 우정사업본부가 적자를 이유로 인원감축을 단행하는 가운데 비정규직에게 퇴사를 부당하게 종용하고 있다는 주장을 놓고 양측의 진실공방이 가열되고 있다.

23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연맹과 문병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등에 우정사업본부는 성남우편집중국을 소포 전담 우편집중국으로 운영하고자 일반 보통우편물 업무를 지난 6일부터 안양우편집중국으로 이관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우정사업본부는 담당 부서에 근무하던 기간제 근로자 등 45명을 안양우편집중국으로 옮긴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전보에 동의한 32명을 제외한 나머지 13명은 전보를 거부하거나 퇴사한 상황이다.

공공운수노조 측은 이에 대해 지난 3일 “비정규직의 삶을 파괴하는 성남우편집중국의 강제전보를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노조 측은 노동조건 악화 등에 대한 면밀한 조사 없이 우정사업본부가 조합원들에게 출퇴근 시간만 4시간이 걸리는 안양으로 출근할 것을 강요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노조는 “조합원 대다수가 최저임금에 가까운 열악한 대우 때문에 2~3가지 일을 병행하는 상황이어서 전보를 쉽게 결정할 수 없다”면서 “제대로 일할 수 있는 일자리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요구했다. 노조는 우정사업본부 측이 “전보에 동의하지 않으면 퇴사하라고 하니 어쩔 수 없이 동의서에 서명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관 움직임이 사실상의 구조조정이라는 얘기다.

반면 성남우편집중국 측은 업무 이관에 따른 자연스러운 인사이동이라는 입장이다. 성남우편집중국 관계자는 “담당 부서에 있던 정규직 4명도 곧 안양으로 발령이 날 것”이라며 비정규직을 대상으로 한 구조조정이 아니다“고 반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성남우편집중국 측은 ”더욱이 차별적으로 비정규직의 퇴사를 압박하고 있지 않다“고 거듭 강조했다.

◆“희망퇴직 하면 실업수당 받게 해준다”
하지만 천안우편집중국이 희망퇴직을 접수하는 과정에서 공문에 실업수당을 빌미로 퇴직을 압박하고 있다는 내용의 문건이 공개되면서 의혹은 짙어져만 가는 상황이다.

문병호 의원이 공개한 문건에 따르면 충청지방우정청 인력계획과는 ‘우정실무원 희망퇴직 접수’라는 제목의 문건을 통해 “‘2015년 우정실무원 운영정원 조정 알림’ 문건에 따라 천안우편집중국 우정실무원 정원이 98명에서 88명으로 10명 감축됐다”면서 “이에 따라 88명이 될 때까지 희망퇴직 접수를 받는다”고 공지했다.

이 문건에는 “희망퇴직을 접수할 경우 회사 경영사정(정원 감축)에 의해 퇴직하게 되기 때문에 실업 수당을 받을 수 있도록 해 드린다”면서 “정원이 88명이 된 후 퇴직하면 개인사정으로 인한 퇴직 처리가 되기 때문에 실업 수당을 받을 수 없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 문건의 마지막에는 “희망퇴직자가 없을 경우 부득이하게 단기 우정실무원 계약종료 후 연장이 되지 않을 수 있으니 희망퇴직을 원하시는 분은 접수하시기 바란다”고 돼 있다. 사실상 실업수당을 미끼로 기간제·무기계약직 직원들에게 희망퇴직을 종용하고 있는 것으로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문병호 의원은 이에 대해 지난 1일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에서 “우정사업본부가 기간제 직원에 대해서는 실업급여를 미끼로 자진퇴사를 압박하고 무기계약직에 대해서는 지역이동(전보발령)을 강요해 퇴직을 유도하고 있다”며 “사회적 약자를 보호해야 할 정부기관이 저임금 비정규직에게 퇴직을 강요해 사지로 내몰고 있다”고 비난의 날을 세운 바 있다. 

▲ 노조는 “조합원 대다수가 최저임금에 가까운 열악한 대우 때문에 2~3가지 일을 병행하는 상황이어서 전보를 쉽게 결정할 수 없다”면서 “제대로 일할 수 있는 일자리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요구했다. ⓒ공공운수노조연맹

◆시간제 우정실무원, 정규직 임금의 1/3도 안 돼
우정사업본부의 비정규직 차별 논란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번 논란 역시 그 연장선상으로 읽히는 분위기다.

시간제 우정실무원들은 대부분 낮에 다른 일을 하고 있으나, 생활비가 부족해 야간에 힘든 우편물분류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같은 사정에도 불구하고 우정사업본부는 2011년부터 시작된 우편수지 적자를 빌미로 비정규직부터 줄이고 있다는 논란에 끊임없이 휘말리고 있다.

최근 우정사업본부가 새정치민주연합 문병호 의원에게 제출한 '2010-2014 우정사업본부 비정규직 평균연봉 현황'에 따르면, 2014년 우본 비정규직 전체(8435명) 평균연봉은 1773만원으로, 2014년 우본 정규직 공무원 전체(3만71명) 평균연봉 5402만원의 32.8%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정직(6-9급) 공무원(1만9363명) 평균연봉(5384만원)과 비교해도 32.9%에 불과하다. 비정규직들의 2014년 평균연봉을 월로 환산하면 148만원에 불과하다.

이처럼 임금 면에서 정규직과의 차별 정도가 심하다는 비판이 잇따르는 가운데 적자 감축을 위한 구조조정에서도 비정규직들에게 퇴사를 종용하고 있는 것으로 비춰지고 있는 것이다.

우정본부가 문병호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1년 3616명이었던 비정규직 정원은 4월 현재 3047명으로 569명 줄어들었다. 우정본부는 지난해 기간제 44명과 무기계약직 18명 등 62명의 비정규직을 퇴직시켰고, 올해도 5월까지 10명을 내보냈다.

문병호 의원은 “저임금으로 생계를 위협받고 있는 비정규직들에게 퇴직을 종용하는 것은 사지로 내모는 것과 같다”며 비정규직 구조조정 중단을 촉구했다.

문병호 의원은 “최근 우정사업본부는 우편수지 적자를 빌미로 인력을 감축하면서, 정규직 공무원은 자연퇴직으로 정원을 줄이고, 직급을 올려주는 당근도 제시한 반면, 비정규직에 대해서는 일방적으로 퇴직을 압박하고 있다”며 “이는 저임금 비정규직을 사지로 내모는 비인도적인 처사”라고 질타했다. 

▲ 오상현 전국우편지부 부지부장은 “비정규직의 임금은 정규직 대비 33~34% 정도밖에 안 된다”며 “심지어 우정사업본부는 근무평가 제도에 독소조항을 추가해 계약해지를 손쉽게 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 고용불안도 우려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정사업본부

◆근무평가 독소조항까지…“공포를 조장하는 것”
오상현 전국우편지부 부지부장은 “비정규직의 임금은 정규직 대비 33~34% 정도밖에 안 된다”며 “심지어 우정사업본부는 근무평가 제도에 독소조항을 추가해 계약해지를 손쉽게 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 고용불안도 우려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정사업본부는 올해 초, 우편집중국 무기계약직 노동자들에 대한 근무평가를 연 1회에서 연2회로 늘렸다. 특히 ‘3년 이내 2회 이상 최하위 등급을 받을 경우 계약해지’ 할 수 있는 독소조항을 만들어 고용불안을 부추기고 있다. 등급을 S, A, B, C로 나눠, 3년간 총 6번의 평가에서 C등급을 두 번 받으면 계약해지 되는 수순이다.

백철웅 고양집중국 지회장은 “6월과 12월 연 2회 평가를 하는데, 한 번 C등급을 받고 나면 노동자들은 얼마나 불안하겠나. 이는 분명 우정사업본부가 노동자들을 상대로 공포를 조장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우정사업본부와 우정노조는 7월 중으로 비정규직의 임금기획안을 확정한다는 계획이지만, 그간 비정규직들이 요구해 왔던 호봉제와 월급제, 공무직전환 등 주요 사항은 모두 배제됐다. 노사가 7월 중으로 임금기획안을 확정하면, 기획재정부를 거쳐 올 하반기 국회에서 최종 예산을 배정하게 된다.

문병호 의원은 “우정사업본부 1만명 비정규직들은 어느 정부기관보다 열악한 처우와 차별대우,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다”며 “최저임금에 연동된 최저 시급과 근속수당, 식대 등 각종 복지혜택의 차별을 시급히 바로잡아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