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행·기업은행, 재경부 출신 인사 구설수

지난해 완전 민영화된 국민은행이 또다시 재정경제부 관료를 부행장에 선임, '낙하산 인사' 시비가 일고 있다. 3월 1일, 국민은행은 신탁·기금관리그룹 부행장으로 강정영 재경부 국장을 영입했다고 밝혔다. 신임 강 부행장은 행시 17회로 재경부 금융정책국, 국제금융국, 국고국 등을 거쳐 지난 2000년부터 국세 상임심판관을 맡아왔다. 재경부 출신 부행장은 정부와의 가교역할 수행? 국민은행은 "강 부행장이 자본시장에 대한 전문지식이 탁월한데다 풍부한 해외근무를 통해 체득한 국제금융시장에 대한 이해와 감각이 세계 30대 금융기관을 지향하는 국민은행의 글로벌 전략에 부합하다"며 부행장 발탁 이유를 설명했지만, '공무원 자리 봐주기'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사실 국민은행의 관료출신 인사 임명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강 부행장에게 자리를 물려준 이우정 전 부행장도 재경부 출신. 이 전 부행장의 경우 지난 2000년 옛 주택은행 부행장으로 영입되자 주택은행 노조가 '신관치인사의 재연'이라며 강력 반발하기도 했다. 당시 김정태 행장은 "1년짜리 계약직 부행장이어서 1년이 지난 후 업무 성과가 떨어지면 자동적으로 물러나게 된다"고 말했지만, 결국 이 전 부행장은 4년 동안 자리를 지켰다. 금융계 한 관계자는 "이번 인사에서 보듯 정부가 여전히 민간은행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며 "검증되지 않는 퇴직공무원을 정부와의 가교역할을 수행하도록 하기 위해 영입하는 것은 시대에 역행하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청와대와 기업은행 노조, 재경부의 낙하산 인사 수용? 금융가의 '낙하산 인사' 시비는 국민은행 뿐 만이 아니다. 신임 기업은행장에 재경부출신 후보가 유력하게 거론되면서 '낙하산 인사'가 또다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는 것. 3월 1일 금융권에 따르면, 김종창 전 기업은행장 후임에 재경부 출신인 강권석 금융감독원 부원장과 배영식 신용보증기금 이사장 등 2~3명으로 압축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금융계에서는 올 5월 임기만료인 김 전행장을 미리 금통위원으로 보낸 것이 재경부 출신을 앉히려는 시도였다는 해석이 맞아떨어지고 있다는 해석이다. 당시 은행연합회 추천몫 금통위원에 민간 뱅커 출신이 바람직하다는 금융권 기대와 달리 정부는 임기가 남아있는 김 전 행장을 무리하게 선임해 반발을 산 바 있다. 금융계에서는 이번 인사가 금통위원 ← 기업은행장 ← 재경부 인사로 이어지는 '쓰리 쿠션 방식'의 전형으로 보고 있다. 전·현직 재경부 출신을 곧바로 기업은행장에 보낼 때 여론의 반발이 거셀 것을 우려한 인사포석인 셈이다. 현재 범재경부 출신이 차지하고 있는 자리가 비게 되면 재경부로서는 인사숨통까지 트는 효과를 낼 수 있다. 특히 청와대와 기업은행 노조까지 이례적으로 재경부의 낙하산 인사를 수용하는 듯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최근 정찬용 청와대 인사수석은 "은행장선임위원회에서 후보를 압축 해오면 그때 가서 결정할 일이지만 지나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재경부는 이 달 초 기관장후보평가위원회를 열어 후임 행장을 선임할 예정이지만 여론의 눈치를 보느라 다소 늦어질 가능성도 있다. 선정과정은 사실상 '오리무중' 최근 금융기관 CEO 선정에 공개모집 방식이 확산되는 움직임이기는 하지만, 후보자 등에 대한 정보가 일체 공개되지 않아 '투명하고 공정한 선정'이라는 공모 취지에 반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2월 25일 금융업계와 재경부에 따르면, 주택금융공사 사장, 기업은행장에 이어 우리금융 회장 선임도 공모 방식을 채택하기로 했다. 주택금융공사 사장은 공모를 통해 지난 10일 선임절차가 마무리됐고 기업은행장 공모도 13일 접수를 마감, 내달 중 선임절차가 마감된다. 우리금융도 28일까지 공모 접수를 거쳐 가급적 이 달 말까지 회장 선임을 끝낸다는 계획이다. 이처럼 금융기관 CEO 결정에 공개모집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은 다양한 사람들에게 기회를 줄 수 있고 공정하고 투명한 과정을 통해 경쟁력 있는 적임자를 뽑겠다는 취지에 따른 것이다. 정부 산하 기관장 자리를 '낙하산 인사'가 독점하고 있다는 비판적인 분위기도 이 같은 변화에 한몫하고 있다. 그러나 투명한 선정이라는 이 같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공모 접수 후 심의위원 명단, 접수한 후보자 명단 등 공모와 관련된 일체의 정보가 차단되고 있어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기업은행장 공모의 경우 17명의 후보가 대거 행장에 출사표를 던졌지만 선임 과정을 책임지고 있는 재경부 일부 직원과 심의위원들을 제외하곤 누가 후보로 나섰는지 조차 모르는 상황이다. 심사를 맡을 위원들의 명단 역시 비공개. 결국 어떤 사람들이 어떤 후보들을 놓고 심사를 하고 있는지 파악이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당초 공모자 중 1~2명의 후보를 선택해 지지할 예정이 있던 기업은행 노조는 정보 부족 등으로 결국 지지후보를 공표하지 못했다. 이 같은 비공개 원칙은 별다른 변화가 없는 한 우리금융 회장 공모 등 향후 있을 행장 선임에도 그대로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측은 이에 대해 입후보자들의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 비공개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현직 기관장들이 다른 기관장에 응모한 사실이 밝혀질 경우 노조 등의 심각한 반발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심사위원의 경우에도 로비 등의 후유증 때문에 공개가 어렵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금융업계 한 관계자는 "공개모집에 나선 사람이라면 응모에 따른 부담 등은 스스로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공모를 한다지만 누가 후보로 들어갔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말로만 투명하고 공정하게 선정한다고 하면 어떻게 믿겠느냐"고 꼬집었다. 비공개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기 힘든 현실이라는 점도 문제다. 우리금융 회장 후보 추천 위원회의 경우 공식적으로 위원들의 명단 공개는 이뤄지지 않고 있지만 언론 등을 통해 명단이 대부분 흘러나오고 있다. 비공개가 자칫 일부 인사들의 정보 독점으로 흐를 수 있다는 얘기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로비 때문에 위원들의 명단 공개를 못한다는 것은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격'"이라며 "공모를 하더라도 제대로 해야지 현재와 같은 구조에서 밀실 인사에 대한 우려를 해소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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