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영 탈당 신호탄, 비노-호남-중도 부글부글

▲ 박준영 전 전남도지사가 16일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했다. 앞서 탈당한 천정배 의원에 이어, 박 전 지사까지 탈당을 감행하자 새정치민주연합 분열이 본격화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사진 / 뉴시스

새정치민주연합의 분열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당내 비노 인사들을 중심으로 속속 탈당 행렬이 이어지고 있는 것. 천정배 의원에 이어, 16일에는 박준영 전 전남도지사까지 탈당을 감행하고 말았다. 새정치민주연합의 고향이자, 근거지인 호남에서부터 분열이 시작된 것이다.

특히, 이들은 모두 신당 창당의 필요성을 주창하고 있다. 따라서 야권의 대안신당 창당 또한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신당이 국민적 신임을 얻기 위해서는 내년 총선에 정당의 깃발을 들고 참여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총선까지 9개월여밖에 남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창당 작업은 이미 물 밑에서 진행되고 있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중앙당 창당에 소요되는 최소한의 시간, 그리고 총선에 출전시킬 인재영입, 공천과 국민적 붐을 일으킬 시간 등을 고려하면 지금도 이미 늦은 감이 있다. 따라서 박준영 전 지사의 탈당은 깊은 고심에 빠져 있는 당내 비노-비주류 세력을 자극시키는 계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 본격적으로 탈당 행렬이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비노 ‘마지막 기대였던 혁신위마저…’
지난 4.29재보선에 앞서 천정배 의원이 선도 탈당한 이후, 당내에서는 ‘신당파’가 등장하는 등 분열을 예고하는 모습들이 나타났었다. 하지만, 즉각적으로 추가 탈당 행렬이 나타나지는 않았다. 간헐적으로 친노와 비노간 다툼이 벌어지기는 했어도 표면적으로 전쟁 수준까지는 아니었다.

그런데 이런 점잖은 다툼은 오래가지 못했다. 문재인 대표가 범친노 인사인 최재성 의원을 사무총장에 임명 강행하면서 꾹꾹 눌러왔던 계파 갈등이 터져 나온 것. 결국, 비노계는 문재인 대표가 그동안 겉으로는 당내 통합과 탕평을 외쳐왔지만 속내는 전혀 달랐다며 격분했다. 우여곡절 끝에 비노 이종걸 원내대표와 화해 제스처를 취하면서 갈등이 봉합되는 듯했지만,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당 혁신위원회가 문제였다.

혁신위는 당내 가장 큰 과제인 계파갈등을 해소해야 한다면서 그 원흉으로 최고위원회와 사무총장 직제를 꼽았다. 최고위와 사무총장을 없애버리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비노 측에서는 이런 혁신안에 강하게 문제제기했다. 총선을 치르고 난 이후에 없앤다는 자체가 결국 공천할 것은 다 하고 없애겠다는 얘기이며, 결론적으로는 당대표 권한을 오히려 더욱 제왕적으로 만들어 놓는 혁신안이라는 지적이었다.

비노 측에서는 혁신위조차 친노 혁신위 또는 친노의 꼭두각시나 다름없다며 비난을 쏟아냈고, 혁신안을 하나씩 내놓을 때마다 수용적 의지보다는 반발과 거부감을 드러냈다. 비노계가 당초 혁신위에 기대했던 것은 ‘친노 패권청산’에 방점을 둔 혁신안이었지만, 혁신위의 활동 방향은 기대와 전혀 다르다는 불만이 컸다. 비노계는 크게 실망했고,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혁신위 활동을 지켜봐왔던 비노계는 결국 희망이 사라진 채 당을 떠나겠다는 마음을 굳히게 된 것이다.

지난 9일에는 호남 출신의 전·현직 중앙당 실무 당직자들로 구성된 ‘국민희망연대’ 100여명이 집단 탈당했다. 당은 의원급이 아니라는 이유에서 큰 영향이 없다고 애써 의미를 축소시켰지만,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 이들이 결코 독자적 세력이 아닌 이유에서다. 이들은 선도 탈당파로서, 당내 비노-비주류와 지속적으로 교류하며 신당 창당 계획을 함께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이들은 16일 박준영 전 전남지사가 탈당을 선언하자 적극적 환영의 뜻을 밝히고 나섰다. 국민희망시대 임종천 대변인은 이날 “오늘 박준영 전 지사의 탈당 기자회견은 고뇌에 찬 결단으로 생각한다”며 환영했다.

임 대변인은 그러면서 “호남의 혁신 신당을 구축하고 전국정당으로 발돋움 하라는 호남인들의 강력한 명령에 따라 국민희망시대는 새로운 대안정당을 만들기 위해 지난주 집단 탈당을 시작으로 신당을 만들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며 “호남에서부터 불어온 바람은 계속적인 탈당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 박준영 전 전남지사가 연쇄 탈당의 신호탄이 되고 있는 분위기다. 박주선, 주승용 의원 등도 탈당 후 신당 참여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이들 외에도 정대철 상임고문과 정균환 전 의원, 박광태 전 광주시장 등도 박준영 전 지사와 공감대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 / 홍금표 기자
◆떠날 채비하는 호남 최대 주주들
박준영 전 지사의 탈당은 천정배 의원의 ‘탈당 그리고 무소속 당선’에 못지않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호남에서 가진 그의 탄탄한 지지기반 때문이다. 박준영 전 지사는 동교동계 출신의 비노 성향으로, 그동안 신당 창당을 준비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박 전 지사는 전남도지사 3선을 지냈고, 새정치민주연합 당내 대선후보 경선에도 출마했었을 만큼 호남지역에서 탄탄한 지지 기반을 갖추고 있다.

최근에는 정대철 상임고문, 박주선 의원, 정균환 전 의원, 박광태 전 광주시장 등과 회동을 갖고 대안정당 창당에 공감대를 이룬 것으로 전해지기도 했다. 천정배-박준영 두 거물에 이어, 호남의 주주들이 줄줄이 새정치민주연합을 떠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박준영 전 지사는 국회에서 가진 탈당 기자회견을 통해 “새정치민주연합은 지난 몇 차례의 선거를 통해 국민들에 의해 이미 사망 선고를 받았다”며 “오늘 저의 결정은 제1야당의 현주소에 대한 저의 참담한 고백이자, 야권의 새 희망을 일구는데 작은 밑거름이 되겠다는 각오의 표현”이라고 말했다.

박 전 지사는 그러면서 “새정치민주연합의 문제는 제가 거론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분석되고 지적되어 왔다”며 “오늘의 새정치민주연합의 모습은 국민의 힘으로 역사상 첫 정권교체를 이룬 민주당이 분당된 이후 누적된 적폐의 결과”라고 꼬집었다.

이어, “특정세력에 의한 독선적이고 분열적인 언행, 국민과 국가보다는 자신들의 이익 우선, 급진세력과의 무원칙한 연대, 당원들에게 대한 차별과 권한 축소 등 비민주성... 국민과 당원들은 실망하고 신뢰를 거두기 시작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특히, 박 전 지사는 “작년 7월 초 ‘이번 선거에서 우리당이 패배했으면 좋겠다’는 당원들의 말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며 “또는 지난 2월 초 (전당대회 전) ‘시민들이 신당을 요구하고 있다’는 당원들의 말에 더욱 놀랐다”고 전했다.

박 전 지사는 “열성 당원들이 당을 버리고 있었음을 알고 저는 많은 고민을 했다”며 “대한민국의 갈 길은 복잡하고 험난하다. 집권 여당이 이 길을 개척하는데 실패하고 있음에도 국민들은 새정치민주연합이 대안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거 개탄했다.

박 전 지사는 “평생 한 당을 사랑해 온 당원이 이런 고백을 하며 당을 떠나고자 하는 비통한 마음과 결정을 이해해주시기 바란다”면서 “오늘의 제 결정이 한국정치의 성숙과 야권의 장래를 위해 고뇌하시는 많은 분들께 새로운 모색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후속 탈당에 대한 기대를 내비치기도 했다.

박 전 지사는 기자회견 직후 기자들과 만나서는 “당에 많은 지적이 있었지만, 변할 기미가 없다고 판단했다”면서 “혁신안도 전혀 새로울 게 없다”고 말했다. 총선과 관련해서는 “아직 생각하지 않았고, 계획이 없다”고 말했지만, 신당 창당과 관련해서는 “실사구시로 가는 게 옳다”며 “중도혁신을 하는 방향이 국가와 국민에게 평화로운 방향으로 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전 지사는 덧붙여 선도 탈당한 인사들 및 당 안팎의 신당파들과 만나 논의를 이어가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진보개혁 천정배, 중도개혁 신당에 함께할까?
박준영 전 지사 탈당으로 다시 이목이 집중되는 것은 천정배 의원이다. 이미 탈당해 신당을 구상 중인 천 의원과 사전 교감이 있었을까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것이다. 또, 신당 창당 과정에서 함께하게 될지도 주목된다.

하지만, 천정배 의원은 이날 박준영 전 지사 탈당에 대해 “예상 외의 일”이라며 금시초문인 듯 반응을 보였다. 천 의원은 이날 오전 MBC라디오 ‘신동호의 시선집중’과 인터뷰에서 이 같이 말하며 “지난 번 선거 때 저를 도와주시기도 했지만, 선거 이후 탈당이나 신당 이야기를 해본 일은 없다”고 말했다.

천 의원은 그러면서 “그 분들이 어떤 계획이나 비전을 가지고 있는지도 알려진 바가 없어 말씀드리기가 어렵다”며 일단은 거리를 뒀다. 하지만, 연대 가능성에 대해서는 “야권이 이대로는 안 되고 전면 재구성이 필요하다는 저의 주장과 취지에 공감하셨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답했다. 우회적이긴 하지만, 연대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천 의원은 또, 신당 창당 움직임과 관련해서도 “저도 소문 수준 이상으로 알지 못하고 있다”며 말했다. 천 의원은 그러면서도 “(새정치민주연합보다) 신당에 대한 지지가 벌써 더 높다는 것이 보도되고 있지 않느냐”며 “그런 점에서 여러 가지 고심을 하고 있고 새로운 정치세력에 대한 구상도 연구하면서 그 주역이 될 새로운 인물들을 폭넓게 만나고 있다”고 말했다.

천 의원은 덧붙여 “아직은 신당을 만들겠다고 결심할 단계는 아니다”고 신중한 태도를 취했다. 하지만, 천 의원은 이에 대해서도 “신당을 아직 제가 결심하지 못했지만 한국 정치를 전면 재구성할 수 있는 새로운 개혁정치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저도 동의하고 있다”며 “새정치민주연합의 혁신에 대한 기대가 사라져 ‘신당이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가능성만큼은 활짝 열어뒀다.

천정배 의원과 박준영 전 지사 모두 신당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고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박 전 지사와 달리 천정배 의원이 더 큰 고심을 하고 있는 것은 노선상의 문제 때문으로 보인다. 박 전 지사를 비롯한 현재 새정치민주연합 내 호남 중심 신당파는 대게 ‘중도개혁’ 노선을 주창하고 있다. 하지만, 천정배 의원은 그동안 강한 개혁성향의 진보적 노선을 걸어왔다. 호남 신당파와 달리, 천 의원은 정동영 전 장관 등의 ‘국민모임’과 오히려 가깝다.

따라서 박준영 전 지사가 신당 창당을 추진한다고 해서 천정배 의원이 여기에 함께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일 수 있는 것이다. ‘친노 패권주의’에 반대한다는 데는 비노가 모두 한 뜻이지만, 그것만으로 노선과 이념을 무시하고 하나가 될 수 있겠냐는 지적이다.

한편, 앞선 15일 주승용 의원은 평화방송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마지막가지 당의 회생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지만 호남의 민심이 신당을 향한다면 참여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사실상 신당으로 기운 것으로 해석된다. 주승용 의원은 신당 창당 가능성에 대해 “앞으로 2~3개월이 분수령이 될 것”으로 내다보기도 했다.

박주선 의원 역시 같은 날 광주불교방송에 출연해 “현재 당내 혁신위 활동에 대한 기대가 많이 접어지고 있기 때문에 중도, 비노계 의원들 중심으로 많은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며 “8월이면 무성해진 논의 속에서 탈당이나 그런 부분이 생기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주승용-박주선 의원은 모두 호남 비노성향으로, 이들은 박준영 전 지사와 마찬가지로 ‘중도개혁성향’으로 분류된다. 천정배 의원의 스탠스가 모호해져 있는 상황인 것이다.

한편, 지난 15일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조국 서울대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천정배 의원에 대해 “전국적 인물이었던 천 의원이 수도권에서의 도약이 여의치 않고 대선에서의 선택(김두관 지지)도 불발이 되자 광주로 내려가 ‘호남정치 부활’을 주창하는 새로운 전략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천정배 의원을 지칭했지만 사실상 박준영 전 지사 탈당이 이미 예견되어 있었고, 호남 신당파의 탈당이 가속화 되고 있는 시점이었다는 점에서 ‘호남 신당파’ 모두를 겨냥한 비판으로도 해석된다.

조국 교수는 그러면서 “제가 김문수가 고향 대구로 내려가는 것을 비판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덧붙여 말했다. 아울러, “‘중원’에서 뜻을 이루지 못하자 ‘촉’으로 가서 세를 키워 다시 ‘중원’을 도모하겠다는 것이리라 추측한다”며 “현명한 천 의원은 세 불리기를 위해 구시대 인물 ‘이삭줍기’를 하진 않으리라 믿는다”고 뼈 있는 말을 던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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