숱한 파행 끝에 결국 법정시한까지 넘겼던 내년도 최저임금 시급이 결정됐다. 최저임금위원회는 어제 올해의 5580원보다 8.1%(450원) 오른 6030원으로 의결하고 사상 처음으로 6000원대에 진입한 것과 2008년 이후 최대의 인상률을 기록했다고 스스로 의미를 부여했다. 월 단위로 환산할 경우 126만270원이 된다.

하지만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는 곳은 최저임금위원회뿐인 것 같다. 경영계와 노동계는 최저임금이 결정된 후 “정부가 재계에 굴복했다”, “완벽한 노동계의 승리”라고 저마다 불만을 내놓고 있다. 오락가락했던 정부와 경영계, 노동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국민들마저 노동자와 영세업자들이 분열돼 서로를 비난하고 있는 형국이다.

동결을 주장했던 경영계는 대체적으로 최저 임금이 적용되는 대부분의 소규모 영세 사업장들의 어려움이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를 내놓는다. 경기 위축이 깊어지고 있는 마당에 최저임금까지 올리면 인건비 부담이 심화돼 도미노 폐업 사태가 일어날 것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이 내수 회복의 신호탄이 아니라 내수 침체의 근원지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반면 1만원을 주장해 온 노동계 역시 이 정도로는 택도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노동계는 당초 정부와 정치권 인사들이 ‘두 자릿수 인상’을 약속하는 발언을 쏟아냈던 점을 감안해 최소 7000원대 이상을 기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최종 결정은 6000원을 갓 넘겼을 뿐이다. 노동계는 각종 조사 결과를 토대로 1인당 월 생계비가 최소한 150만원은 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나마 8000원 선으로 양보했는데 결정된 임금은 중간도 아닌 재계 쪽에 치우쳐 있다. 사실상 별다른 성과가 없다는 비판 속에 월급·시급 병기안이 통과된 것이 그나마 얻어낸 소득으로 풀이된다.

양측 모두 각자의 입장이 있고 주장이 있다. 한 조사에 따르면 8.1% 인상만으로도 30인 미만 영세업체들 추가 부담이 2조7000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이는 경영계가 주장하는 영세업체들의 어려움의 근거가 될 만하다. 노동계 역시 미혼 단신 생계비 150만6179원이나 지난해 도시근로자 1인가구 평균 가계 금액 166만원과 크게 괴리돼 있다는 조사를 근거로 ‘생존’을 위한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얘기를 이끌어 내고 있다.

그렇다면 당연히 정부가 양측의 주장을 분석하고 공익과 사익을 모두 고려해 타당성이 높은 쪽의 손을 들어줘야 하는 것이 옳은 방향이다. 정책은 원래 그런 것이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정부를 견제해야 할 사법부가 종종 ‘통치행위’라는 개념을 통해 행정부의 정책적 판단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하는 것도 정부의 정책적인 판단을 존중하고 함부로 판단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하지만 사실상 최저임금위원회의 공익위원들을 통제하고 관리하고 있는 정부가 기계적인 중도를 선택하면서 남은 것은 국민들의 분열이라는 생채기뿐이다. 결국 최저임금 인상폭이 공익위원들이 제시한 6.5~9.7%(5940원~6120원)의 정확히 중간지점인 8.1%로 결정됐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아울러 공익위원 측이 경영계의 최종안 5715원과 노동계의 최종안 8100원 사이에서 경영계 쪽에 치우친 구간을 제시하면서 동시에 노동계가 요구한 월급·시급 병기안을 요구하는 등 맞교환으로 양측의 비난을 피해가려 한 것 같은 정황도 보인다.

임금 인상과 소득 주도 성장론을 제시했으면 노동계의 손을 명확히 들어줬어야 했고, 영세 업체들의 어려움을 살피고자 했으면 확실하게 경영계의 손을 들어줬어야 했다. 최저임금 결정 과정은 매년 진통을 겪는 과정이다.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되풀이된다. 정부가 중간에서 애매모호한 입장을 취할수록 결국 이도저도 아닌 결과만 반복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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