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까지 삼킨 일본계 자금, 국부유출 우려 불거져

▲ 현대증권이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5개월여 만에 지난 21일 오릭스와 주식매매계약 체결을 완료했다. 하지만 일본계 자금이 처음으로 국내 증권사까지 인수하게 되면서 국부유출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사진 / 홍금표 기자

일본계 오릭스의 현대증권 인수를 통해 사상 처음으로 일본계 자금이 국내 증권사까지 인수하면서 일본계 자금이 국내에서 영향력을 높여가는 것에 대한 우려가 다시 제기되고 있다.

지난 21일 일본계 금융그룹 오릭스는 현대증권 인수를 위한 주식매매계약(SPA)를 체결했다. 이는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지 5개월여 만으로 그간 콜옵션을 두고 ‘파킹딜’ 논란 등에 휩싸이고 특수목적법인(SPC) 설립이 늦어지는 등 주식매매계약 체결이 지연됐으나 결국 내용을 변경하면서 계약이 성사됐다.

앞서 현대증권의 대주주인 현대그룹의 현대상선은 오릭스에 현대증권 지분 22.43%를 6475억원에 매각키로 결정했다. 이 지분은 계약을 통해 오릭스의 SPC인 버팔로파이낸스로 넘어간다. 현대상선은 후순위 채권으로 2000억원을 재출자하며 주식매수우선협상권과 콜옵션을 쥔다. 주식매수 우선협상권은 3년, 콜옵션은 4년이다.

이후 오릭스는 금융당국에 대주주 적격 심사를 신청할 예정이며 통상적으로 2개월 정도 소요되는 것을 감안하면 현대증권 인수는 오는 8~9월 경 마무리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일본계 자금, 국내 진출에 박차
금융업계는 오릭스가 현대증권을 인수한 것이 일본계 자금이 국내 증권사를 인수한 첫 사례라는 점에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오릭스의 국내 진출은 매우 공격적이라는 평가를 받아 왔다. 오릭스는 1964년 일본에서 리스회사로 출발해 투자은행과 생명보험 등 다양한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종합금융회사다. 총자산은 92조원으로 알려졌으며 현재 27개국에 연결자회사 800여 개를 두고 있다. 한국에는 지난 2010년 오릭스프라이빗에쿼티코리아를 설립하면서 진출했다.

오릭스는 지난 2013년 STX에너지 지분 72%를 6000억원에 인수한 뒤 GS-LG 컨소시엄에 재매각하면서 투자 대비 40%라는 대규모 수익을 얻었다. 지난해에는 현대로지스틱스를 인수하면서 현대그룹과 우호적 관계를 맺었다. 또 LIG손해보험 인수전에도 뛰어 든 바 있다.

최근 오릭스그룹은 OSB저축은행과 스마일저축은행을 인수했고, 막판에 발을 빼기는 했지만 KT렌탈 인수전에서도 한국타이어와 연합해 인수전에 참가하기도 했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오릭스는 지난해 10월 기준으로 국내 운용자산 2조3000억원을 기록했다. 현대증권 인수를 마치고 나면 국내 사모펀드투자회사 10위 안에 들어갈 전망이다.

오릭스뿐 아니라 일본계 금융사들도 국내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제이트러스트와 SBI그룹도 각각 옛 미래저축은행과 현대스위스저축은행을 인수했으며 일본계 금융사들의 공격적인 영업과 마케팅으로 국내 중소형 영세 대부업체는 2012년 1만5개에서 2013년 말 8413개로 급감했다.

이미 일본 자금은 대부업체와 저축은행을 중심으로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으며, A&P파이낸셜·산와대부·제이트러스트 등 일본계 대부업체의 국내 전체 대부잔액 비중은 55%를 넘어서기도 했다. 제이트러스트는 올해 초 인수한 JT저축은행과 친애저축은행을 합친 통합 저축은행 출범을 준비에 한창이다.

아프로파이낸셜(러시앤캐시)과 산와머니, 미즈사랑, KJI 등 일본계가 대주주인 대부업체 4곳의 자산은 지난해 6월 말 기준으로 4조2836억원에 달한다. 시장 점유율로 전체의 40%에 해당하는 규모다.

아울러 일본 스팍스그룹은 지난 3일 스팍스자산운용코리아를 출범해 이목을 끌었다. 지난 2005년 코스모자산운용 지분 70%를 인수했던 스팍스그룹은 이날 코스모자산운용의 간판을 스팍스자산운용코리아로 바꿔 달았다. 자산운용업계에서는 스팍스그룹의 한국 시장 본격 진출을 주시하고 있다. 

▲ 낮은 금리 탓에 일본계 자금의 국내 진출은 앞으로도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아울러 현대그룹은 이번 오릭스의 인수가 파킹딜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기도 했지만 시가 콜옵션으로 내용을 변경하면서 의혹을 해소하기도 했다. 사진 / 시사포커스

◆일본 자금 진출 러시에 국부유출 우려 커져
일본계 자금이 대부업권이나 저축은행업권에 유입되는 가장 큰 이유는 낮은 조달 금리다.

현재 국내 10위권 안에 있는 일본계 대부업체가 일본 현지에서 조달할 수 있는 금리는 평균 1~4% 수준인 반면 국내 대부업체들의 조달 금리는 8~12%에 달한다. 일각에선 일본계 금융사들이 헐값으로 국내 부실 금융사를 사들여 고금리로 번 돈을 일본으로 빼가면서 국부 유출 우려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서민금융을 장악한 뒤 국내에서 번 돈을 언젠가는 일본으로 빼낼 수 있다는 우려에서 출발한다. 일본계 금융사들은 부실저축은행을 인수해 영업을 시작한 만큼 아직까지 큰 이익이 나지 않아 배당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현재 배당을 실시한 일본계 저축은행은 없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일본은 제로금리에 가까워 한국보다 자금 조달 비용이 저렴하다”며 “보유 자산이 약 100조원인 오릭스가 싼 이자로 기업 대출에 나서면 국내 증권사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향후 금융권에서는 KDB대우증권의 매각 작업, 우리은행 민영화 등이 줄줄이 예고돼 있다.

향후에도 일본자본은 앞으로 우리나라에 대한 금융투자를 더욱 늘릴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아베노믹스로 일본내 유동성이 풍부해졌기 때문이다. 일본자본의 서민금융 잠식은 경제논리만이 아닌 복합적 사안을 고려해야 하는 만큼 논란은 앞으로 더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자본을 적정한 선에서 규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목소리에 점차 힘이 실릴 것으로 예상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아울러 일본계 자금이 대부업과 저축은행업계를 넘어 증권업까지 손을 대면서 증권사 역시 단순한 수익창출 도구로 사용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서다.

일각에서는 일본계 자금의 국내 금융시장 잠식에 대한 우려가 큰 만큼 정부는 외국자본이나 대부업체의 제도권 금융으로의 진출에 대한 영향을 면밀힌 분석해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파킹딜 논란 등 우려는 해소
한편 오릭스는 이번 계약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파킹딜’ 논란 등이 불거진 것과 관련해 우려를 불식시키는 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선 파생상품계약(TRS)으로 인해 투자수익률이 보장된 탓에 “사실상의 대출이 아니냐”는 지적이 일었던 자베즈는 PEF 공동 운용사(GP)에서 빠지며 관련 논란을 비껴갔다. 오릭스는 단독 GP로 지난달 금융감독원에 펀드등록을 신청한 상황이다.

또다른 쟁점사안이던 현대그룹 파킹딜 논란에 대해서도 시가 콜옵션 조항을 통해 관련 문제를 해결했다. 이번 인수 후순위 출자자 현대상선에 추후 콜옵션을 주면서 행사가격으로 공정가격인 행사 시점 현대증권 시가 또는 순자산비율(PBR)을 감안한 가격을 제시해 논란을 불식시켰다.

한 관계자는 “법무법인 검토를 통해 해당건이 파킹딜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법률의견을 받아둔 상태”라고 전했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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