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준 회장 리더십 흔들…정체성 차이도 갈등 불씨 여전

 

▲ 지난 16일 전병일 사장이 자진 사퇴하면서 포스코와 대우인터내셔널 간의 갈등은 표면적으로 수습 국면을 맞았지만, 갈등의 근본적인 해결까지는 아직 요원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진 / 홍금표 기자

미얀마 가스전 매각을 둘러싸고 대우인터내셔널과 포스코 간의 내분 양상으로까지 번졌던 일명 ‘항명 사태’가 전병일 대우인터내셔널 사장의 사퇴로 일단락됐지만, 여진이 지속되면서 향후 갈등의 봉합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16일 전병일 사장은 임시 이사회에서 거취를 표명하겠다는 약속대로 자진 사퇴를 결정했다. 전병일 사장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그룹과 회사 그리고 임직원 및 주주를 포함한 모든 이해 관계자들에게 가장 미래 지향적이며 대승적 방향이 무엇인가를 깊이 고민한 끝에 제가 이 자리를 물러나는 용단이 조속한 사태 수습의 방안이라고 생각한다”며 사퇴 의사를 밝혔다.

이에 따라 전병일 사장의 ‘항명’으로 촉발된 사태는 표면적으로 일단락되게 됐다. 해임까지 검토한 것으로 알려진 포스코 권오준 회장은 결국 전병일 사장의 사퇴로 실리를 챙겼고, 논란을 불러 왔던 전병일 사장은 자진 사퇴라는 모양새로 회사를 떠나면서 명분을 챙겼다는 평가다. 

▲ 이번 사태로 권오준 회장은 가뜩이나 우려를 낳던 리더십 부재를 다시 한 번 노출했다. 초반에 강공 드라이브를 펼치다 갑자기 입장을 바꾼 오락가락 행보가 오히려 자충수가 됐다는 평가다. ⓒ포스코

◆권오준 회장, 리더십 크게 흔들려
하지만 이번 사태가 그간 포스코와 대우인터내셔널 간에 쌓인 해묵은 갈등이 폭발했던 것으로 분석되고 있는 상황에서 당분간 갈등이 봉합되는 데는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취임 2년차에 접어든 권오준 회장의 리더십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크게 훼손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가뜩이나 검찰의 전면적인 수사를 받고 있는 포스코 전반의 비리 수사로 그간 강조해 온 ‘윤리 경영’의 의미가 퇴색된 마당에 항명 사태 수습 과정에서 나타난 포스코의 오락가락 행태는 권오준 회장의 리더십을 시험대에 올려놨다.

그간 현장 경험이 없던 ‘기술자’ 출신 권오준 회장은 취임 초기부터 많은 우려를 받아 온 바 있다. 여기에 이번 사태로 인해 지난 2010년 인수한 계열사 대우인터내셔널과의 갈등이 외부로 표출되면서 대외적으로도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평가다.

권오준 회장은 사태 초기 전병일 사장의 해임까지 검토하는 강경책을 펼치다 미얀마 가스전 매각 방침에 대한 비난 여론이 커지자 한 발 물러서면서 갑자기 애초부터 갈등이 없었다는 식으로 입장을 선회하는 오락가락 행보를 보여 ‘안 하느니만 못했다’는 빈축을 샀다. 리더십 부재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려다 ‘자충수’를 둔 것 아니냐는 얘기다.

특히 이번 사태가 가치경영실 문서의 유출로부터 시작되고 계열사 사장의 항명과 대우인터내셔널 임직원들의 반발로 이어졌다는 점은 권오준 회장의 내부단속 능력의 부재를 여실히 보여줬다는 평가다.

업계에서는 권오준 회장이 그룹 간의 융합과 화합 차원에서 전병일 사장을 보좌역으로 발탁한 것 역시 대우인터내셔널 임직원들의 사태 수습의 모양새를 포장하기 위한 제스처로 보고 있다. 

▲ 대우맨의 자부심이 강한 대우인터내셔널이 포스코에 녹아들지 못하고 있다는 점 역시 향후 갈등 재발의 불씨로 남아 있다. 사진 / 홍금표 기자

◆대우인터-포스코 갈등, 불씨 여전
아울러 항명 사태에도 불구하고 오랜 기간 공들여 왔던 미얀마 가스전의 매각 방침이 완전히 철회되지 않았다는 점은 향후 대우인터내셔널과 포스코와의 관계에 불씨로 남을 전망이다. 한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포스코가 대우인터내셔널의 알짜 사업군마저 일방적으로 매각을 검토했다는 사실은 대우인터내셔널 자체를 언제든지 매각할 수 있는 자산으로 보고 있다는 시각을 낳기에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워낙 ‘대우맨’이라는 자부심이 강한 대우인터내셔널 직원들과의 관계는 당분간 회복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자진사퇴키로 한 ‘대우맨’ 전병일 사장을 보좌역으로 발탁하고 후임에도 ‘대우맨’인 김영상 사장을 내정했지만, 이는 그간 대우인터내셔널 사장을 내부 인사에서 발탁해 온 관행에 따른 것에 불과하다.

물론 김영상 사장이 전병일 사장처럼 반발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지만, 포스코와 대우인터내셔널 간의 정체성의 간극이 여전하다는 점이 여과 없이 노출되면서 대우인터내셔널 임직원들의 결속력은 한층 강화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특히 전병일 사장은 대우그룹 해체의 아픔을 직원들과 함께 겪은 정통 대우맨이며 내부 지지도도 높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대우인터내셔널 직원들은 포스코에 인수된 후 ‘푸대접’만 받았다는 불만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포스코의 주도 아래 대우인터내셔널은 지난 2013년 부산섬유공장을 매각했고 본사를 송도로 이전했다. 지난 2월부터는 유일하게 포스코의 이름을 달지 않은 계열사인 대우인터내셔널의 사명 변경을 놓고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다.

재계 관계자는 “이번 사태는 그간 쌓여 있던 갈등이 폭발한 것일 뿐, 두 조직간의 문화 차이는 향후 언제든 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다”면서 “반드시 극복해야 할 숙제”라고 평했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포스코는 ‘순혈주의’와 ‘상명하복식’ 기업문화로 대표되지만, 대우인터내셔널은 한때 재계 서열 2위까지 올랐던 대우그룹 출신이라는 자부심이 크기 때문에 서로 융화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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