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확산 방지 총력…선제적 행보로 기선 제압

▲ 박원순 서울시장은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와 관련해 정부와 차별화된 대응을 펼쳐 눈길을 모았다. 사진 / 홍금표 기자

현재 국민을 공포로 떨게 만들고 있는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가 박원순 서울시장의 선제적 행보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즉 지자체가 청와대와 정부를 제치고 이슈를 선점하는 보기 드문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박원순 시장의 이 같은 행보를 두고 정계 안팎에서는 ‘자자체장으로 당연히 해야 할 의무’라는 긍정적 평가와 ‘차기 대선 주자로서의 존재감을 높이려는 전략이 섞여 있다’는 다소 부정적인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 ‘판세’ 뒤집은 대담한 행보

박원순 시장은 지난 6월 4일 밤 10시 40분 경 서울시청 브리핑룸에서 긴급 브리핑을 개최했다. 이 브리핑에서 박 시장은 “지난 1일 메르스 확정 판정을 받은 35번 환자(34세·삼성서울병원 의사)가 지난 5월 27일 메르스 의심으로 자택 격리조치 됐음에도 불구하고 확진 판정 직전 무려 1,500여명과 직·간접으로 접촉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박원순 시장은 “이와 같은 엄중한 상황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보건복지부로부터 정보를 공유 받지 못했다”고 강조하면서 정부를 비판하기도 했다.

박 시장은 “서울시 담당공무원이 6월 3일 늦은 오후에 개최된 보건복지부 주관 대책회의 참석하는 과정에서 자체적으로 인지하게 된 사실이다”라고 밝혔다.

이어 박원순 시장은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는 35번 환자에 대한 정확한 정보도 갖고 있지 않았다”며 “또한 이후 동선은 물론 1,565명의 재건축 조합 행사 참석자들 명단조차 확보하고 있지 않았다”며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의 허술한 대책 상황을 강하게 질타했다.

또한 박원순 시장은 브리핑 후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지금부터 서울시 메르스 방역본부장 박원순입니다”라며 메르스가 서울에 확산되는 것을 방지하도록 전력을 기울이겠다는 의지를 거리낌없이 드러내기도 했다.

박원순 시장의 이 같은 브리핑은 곧이어 커다란 논란을 몰고 왔다. 박 시장이 전격적으로 브리핑을 하기 전까지는 정부 및 보건·방역 당국은 대체로 ‘비밀주의’ 분위기를 유지하며 메르스 사태 상황을 수습해왔던 면이 있었다. 즉 환자의 신원은 물론 메르스가 퍼진 병원에 대한 정보도 가급적 공개하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박원순 시장의 전격적인 브리핑 이후, 정부 및 보건·방역 당국의 태도는 바뀔 수밖에 없었다. 박 시장의 조치에 대한 여론이 우호적인 분위기로 전개되자, 결국 ‘대세’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정부는 지난 6월 7일 메르스 환자 발생·경유 병원을 전부 공개하게 됐다. 그러나 대책 발표 시간이 두 차례나 변경되었으며 병원 명단에 상당한 오류까지 발견되는 등 혼선은 여전히 거듭됐다.

◆ 靑-與 집중 견제 나서

▲ 박원순 서울시장의 독자적인 행보에 정부·청와대 및 새누리당은 비판 및 견제가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사진 / 홍금표 기자

이러한 혼선 때문에 심지어 박원순 시장의 날렵한 대처가 더욱 돋보이는 상황에 이르기도 했다. 바로 이런 이유로, 박원순 시장에 대한 정부·청와대 및 새누리당의 비판 및 견제가 노골적으로 불거지기 시작했다.

박 시장에 대해 어느 누구보다도 가장 강력한 ‘견제’의 태도를 보인 것은 바로 박근혜 대통령이다.

박 서울시장이 독자적인 메르스 행보에 나서자, 박 대통령은 국민 혼란만 부추긴다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앞서 박 시장이 메르스 환자에 대한 정보를 중앙정부와 상의 없이 발표했을 때 청와대는 “혼란을 가중시킨다”고 즉각 비판한 바 있다.

지난 6월 9일 오전 청와대에서 개최된 서울·세종 간 영상 국무회의에서는 박원순 시장도 참석했는데, 이때 박근혜 대통령과 박원순 시장 사이에는 무척 팽팽한 긴장이 감돌았다.

박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지방자치단체가 중앙정부와 조율 없이 독자적으로 대응하게 되면 국민이 더욱 혼란에 빠질 수 있다”고 일침을 가했다.

메르스 사태와 가장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인물 중 한 사람인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도 박 시장을 향한 비판은 쏟아냈다. 이는 ‘야권 지자체장의 도발’에 대한 방어 조치이면서 동시에 현재 정부가 느끼고 있는 위기감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것이었다.

지난 6월 5일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브리핑을 통해 “서울시는 메르스 확산 방지를 위한 정부의 조치가 마치 잘못된 것처럼 일방적으로 입장을 발표했다”며 “이를 통해 국민들의 불필요한 오해와 우려를 불러일으킨 것에 대해 (정부와 보건복지부는) 심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또한 문형표 장관은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31일 의심환자 발생에 따른 역학조사를 신속히 실행하고 이 정보를 공유했으며 서울시와 접촉자 관리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긴급회의를 소집하는 등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였다”고 적극적으로 강조했다.

새누리당 지도부도 일제히 ‘공격’에 나섰다. 지난 6월 5일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개최된 원내대표단 정책위원회 연석회의에서 “정부와 함께 협력해서 메르스 확산을 차단하고 국민을 안심시켜야 할 위치에 있는 서울시장이 밤늦게 긴급 기자회견을 했다”고 유감을 표시했다.

유승민 원내대표는 “(박 시장의 긴급 브리핑은) 결국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서로 갈등하는 모습으로 비춰지기 쉬워, 국민들에게 불신만 가중시킬 뿐이다”고 비판과 우려를 감추지 않았다.

새누리당 내 의사 출신 의원들도 박원순 시장에 대한 비판에 한몫 거들었다. 신의진 의원은 “어제 박원순 시장의 긴급 브리핑을 보고 너무 놀랐다”며 “박원순 시장의 브리핑 내용은 허위정보라는 점이 드러났으며, 이는 해당 의사가 인터뷰한 내용을 통해 잘 알 수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신의진 의원은 “박원순 시장은 잘못된 정보를 퍼트려 양심적 의사를 전염병을 유행시킨 개념 없는 사람으로 만들었고 부정확한 정보로 시민의 불안을 유발했다”며 “박원순 시장이 부실한 정보를 흘려서 정국을 불안하게 만드는 목적이 무엇인지, 그 책임을 엄중히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의사 출신인 박인숙 의원 역시 “현재 온 국민이 패닉 상태에 빠졌는데 박원순 시장이 극약 처방을 내놓은 것은 명백한 월권행위”라며 “박 시장이 내놓은 후속조치 또한 현실성이 없으면서 한방 터뜨려서 굉장히 국민들을 혼란스럽게 빠뜨리게 하는 것”이라고 비판을 아끼지 않았다.

이어 박인숙 의원은 “이렇게 박원순 시장은 현실성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후속 조치로 국민을 커다란 혼란에 빠뜨렸다”며 “이는 서울시장이라는 직위를 이용한 직권 남용”이라고 밝혔다.

◆ 차기 대권 주자 급부상?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만약 지자체가 중앙정부와 조율 없이 독자적으로 대응을 하게 되면 국민들은 더더욱 혼란에 빠질 수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중앙정부와 지자체는 관련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빈틈없는 공조 체계를 가동해야 할 것”이라고 적극 강조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이러한 발언은 박원순 시장이 지난 4일 긴급 브리핑을 단행한 데 대한 불만을 직·간접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보여준 불만 표시에도 불구하고 박원순 시장은 “메르스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전국 시·도지사 회의를 소집해 달라”고 전격 요청하는 대담함을 보이기도 했다.

박원순 시장의 이 같은 요청에 박근혜 대통령은 직접적으로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국무총리 대행이 “10일 행정자치부와 보건복지부 장관이 배석하는 전국 시·도지사 회의를 열겠다”고 답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한 정치평론가는 “박 대통령이 보여준 ‘침묵’은 그만큼 박원순 시장에 대한 정부·여당의 위기의식이 상당한 수준에 있다는 증거”라며 “일단 박원순 시장은 ‘행동하는 리더’의 모습을 국민에게 각인시킨 데 성공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이 평론가는 “박원순 시장이 이른바 ‘메르스 대책본부장’을 자처하면서, 정계의 판도가 일정 부분 변화한 것은 분명하다”며 “특히 ‘늦장 대처’로 국민의 비판에 직면하고 있는 정부 당국의 모습과 극명한 대비를 이룬 효과가 크다”라고 분석했다.

이를 반영하듯, 여론도 박원순 시장에 대해 상당히 우호적인 분위기다. 지난 6월 5일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서울시 거주 19세 이상 성인 500명을 대상으로 박원순 시장의 발표에 대한 조사를 실시한 결과, ‘적절했다’는 의견이 무려 55.05%에 달했다. 반면 ‘적절하지 않았다’는 의견은 32.8%, ‘잘 모른다’는 의견은 12.2%를 기록했다.

또한 박원순 시장에 대한 지지도도 메르스 사태 이후 상당히 오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 6월 8일 리얼미터가 공개한 6월 1주차 주간 집계 결과에 따르면 박원순 시장에 대한 지지율은 지난주와 대비해 0.4%가 오른 13.8%를 기록했다.

특히 박원순 시장의 일간 지지율을 보면 메르스 대응책을 놓고 서울시와 정부의 갈등이 고조됐던 지난 5일에 전날과 대비하여 3.3%포인트 급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결과를 통해, 국민의 여론이 박 시장의 행동에 적지 않은 지지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을 잘 알 수 있다.

한편 정계 일각에서는 박원순 시장의 이 같은 모습에 대해 ‘정치적 의도’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현 정부가 메르스 사태에 대한 초기 대응 실패, 병원 정보공개 요구 거부 등 국민들의 거센 비난을 받는 상황에서, 정부의 움직임과는 정면 대치하며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이 일종의 ‘차별화 전략’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 시사평론가는 “현재 박원순 시장이 보여주고 있는 행보는 노무현 정부 시절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이 보여주었던 면모와 어느 정도는 유사한 측면이 있다”라고 분석했다.

이 평론가는 “노무현 정부 시절이 상당한 혼란과 국론 분열이 초래되었던 반면, 이명박 시장은 버스 전용 차선이나 청계천 복원 등의 돋보이는 정책으로 ‘차별화’되는 데 성공했다”며 “이를 통해 이 시장은 대통령의 자리에 오를 수 있는 발판을 탄탄하게 마련했다”라고 설명했다.

이 평론가는 “박원순 시장의 경우도 시민의 호응을 얻는 정책 행보를 통해 정부와 차별화되는 모습을 부각시킴으로써, 자연스럽게 차기 대권 주자의 상위권에 오를 수 있는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 평론가는 “다만 이런 긍정적 효과가 앞으로도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려면 향후 정부·여당의 견제, 새정치민주연합 내의 계파 싸움 등의 만만치 않은 장애를 돌파해야 한다는 과제가 남아있다는 사실을 감안해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시사포커스 / 문충용 기자]

관련기사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