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권 잠룡들, “더 이상 고건 모시기 없다”

고건 발 정계개편이 가시화 되고 있다. 그 동안 “주파수만 맞는다면 누구에게라도 열려 있다”고 하며 정치권 복귀에 시기적 문제만을 고려하고 있던 고 전 총리가 본격적인 움직임을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당초 모든 정치 세력과 연대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읽기만을 해왔던 이유로 일각에서는 그의 움직임에 거센 비난을 가하기도 한다. 그렇더라도 현재 고 전 총리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솟아 있는 상태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유일하게 한나라당의 독주를 견제할 수 있는 인물로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다. 쓰러진 열린우리당 입장에서도 그의 힘이 필요한 것은 물론, 부활을 위해 신호탄을 쏘아올린 민주당에게도 그는 영향력이 큰 인물일 수밖에 없다. 누가 고 전 총리가 띄운 배에 동승을 하는가의 문제에 따라 대권 판도는 대 반전을 꾀할 수도 있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높아지는 몸값, 날아오는 화살 사회 각 분야 명망가 20여 명이 발기인으로 참여하여 7월 중 정식 출범할 것으로 알려진 희망한국국민연대(가칭)는 사실상 고 전 총리가 대권 도전을 위해 몸담게 될 신당에 가까운 성격을 지니고 있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와 더불어 대권 예비 후보들 중 가장 치열한 지지율 경쟁을 벌이고 있는 고 전 총리가 이 같은 신당을 창당하게 될 경우 생각보다 많은 세력이 그의 행보에 동참하게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실제로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의원들 중 상당수가 고 전 총리의 행보에 깊이 개입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고 전 총리가 중도개혁성향의 정치 세력을 아우르고자 한다는 사실에 열린우리당은 물론 민주당, 국민중심당, 한나라당 등 기존의 계파 정치에 회의를 느낀 다수 의원들이 깊은 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물론, 그에 더불어 정권 창출을 위한 야합의 목적으로 그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세력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작 고 전 총리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모임의 참가자는 가급적 비정치인으로 하려 한다”고 하며 “정당이 아니고 국민운동 성격의 모임이 될 것”이라고 한 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이 같은 고 전 총리의 인터뷰 내용은 “표면적으로나마 그동안 수많은 세력들을 찔러보기 하며 자신의 몸값을 높여 온 것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갖춘 발언”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정권 창출에 대한 “가능성을 부정하지는 않는다”는 말을 덧붙이며 대권 도전의 의지를 감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 전 총리의 이 같은 태도에 대해 일각에서는 “지방선거 이전에도 그랬듯 명확한 태도를 감춤으로써 직격탄을 맞게 되는 일을 피하려고 한다”며 “정치적 소신이 없는 것이 가장 큰 흠”이라는 비난을 덧붙이기도 했다. 이 같은 비난은 특히 지방선거 이전 고 전 총리의 영입을 도모하며 대권 도전에 불을 밝히고 있는 각 당의 지도부일수록 강하게 드러난다.
◈민주당, 주도권 내줄 수 없어 민주당 한화갑 대표의 경우 지방선거에서의 선전을 바탕으로 정계개편 주도권을 잡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었다. 그러나 지방선거 이전부터 꾸준히 작업해 온 고 전 총리 영입이 신당 창당으로 무산 될 상황에 놓이자 비상이 걸린 분위기다. 더욱이 고 전 총리가 아우르려고 하는 중도성향의 세력들은 민주당에서도 결코 놓칠 수 없는 당 부활의 기폭제이기 때문에 그 염려는 더욱 크다. 그동안 공을 들였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것에 대해 허탈해 하는 한 대표의 심리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오고 안 오고는 그쪽에서 결정할 문제”라며 “민주당의 운명이 어떤 특정인에 얽매여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고 우회적으로 고 전 총리의 신당 창당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내비친 것. 민주당 관계자들 역시도 언론을 통해 “권력을 얻기 위해 만들어진 신당은 오래갈 수 없다는 것이 이번 열린우리당의 참패로 나타났다”며 고 전 총리 주도의 정계개편 보다는 민주당 주도의 정계개편이 현명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GT, “고 전 총리가 오히려 아쉬울 것” 지방선거 이전 고 전 총리와 연대 가능성이 가장 높았던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열린우리당 김근태 전 최고위원. 그 역시 지방선거 후 고 전 총리에 대한 서운함을 감추지 못했다. 서운함 이상의 거부반응을 보였다는 것이 보다 정확한 표현으로 해석된다. 정계개편 방식을 당 대 당 통합보다 세력과 세력의 연합이나 노선과 정책의 연합을 목적으로 하는 김 전 최고위원은 고 전 총리의 정계개편 시나리오와 비슷한 형태를 취한다. 그러나 김 전 최고위원 측근은 “한반도 평화나 북핵 문제, 한미 자유무역협정과 양극화 문제를 놓고 고 전 총리의 노선이나 주장을 한번이라도 들어본 적이 있느냐”고 반문을 하며 “고 전 총리는 해법은 없고 그저 절충과 타협으로 반사이익만을 노릴 뿐”이라고 강도 높은 비난을 했다. 정계개편 시나리오가 비슷해 보이기는 할지 몰라도, 고 전 총리와는 달리 정체성이나 시대의식 등에 있어서 명확한 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에 초점을 둔 발언이다. 그렇기에 오히려 아쉬운 것은 김 전 최고위원 측이 아닌, 고 전 총리 측이라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정체성이 명확하지 않고 세력도 적은 고 전 총리 측이 오히려 더 절박한 실정”이라는 말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반 한나라당 전선을 구축하고자 했던 김 전 최고위원 측의 계획이 다소 차질을 빚게 된 것이 사실이지만, 다시 고 전 총리와 연대론이 나온다는 것은 무리가 아니겠느냐는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는 분위기다. ◈신당 창당으로 끝이 아니다 국민적 지지율에 있어서 고 전 총리가 현재 다른 예비 대권 후보들보다 선두권에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정통성을 무시한 채 신당을 통해 과업을 달성해낸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광범위한 세력들의 규합으로 기존 정당들에 맞서겠다는 의지를 품고 있기는 하지만, 실질적으로 어떤 세력이 얼마큼 고 전 총리에게 힘을 보태줄 것인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시간이 흐르면서 “눈치 보기를 하며 기회만을 엿보고 있는 것”이라는 일부 비판 세력들의 목소리는 국민들에게도 널리 확산되며 고 전 총리의 이미지에 커다란 손상을 초래하고 있다. 결단력 부재가 고 전 총리에게는 지도자로서의 카리스마 부족이라는 공식으로 풀이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와 뜻을 같이 하는 기성세력은 누구일 것인가 하는 문제가 매우 중요하게 떠오르고 있다. 신당 창당만으로는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는 고 전 총리. 따라서 그에게 신당 창당은 모든 것을 마무리 하는 결단이 되지 못할 것으로 분석된다. 대선 이전 분명 고 전 총리는 또 한 번의 큰 결단을 내려야만 할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해석이다. 결단력이 부족해보였던 지금까지의 모습, 그것이 정치적 수 싸움의 일환이었던 것인지 지도력의 부재였는지는 이제 곧 실체를 드러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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