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위기의 본질은 엔저보다 '본질적 경쟁력'

▲ 현대자동차가 연일 주가하락으로 화제가 되고 있다. 최근 정몽구 회장은 임직원들에게 위기의식을 강조하면서 국내외 영업본부와 생산, 품질, 마케팅 등 전사적인 비상경영에 들어갔을 정도다. ⓒ뉴시스

현대자동차가 엔저와 유로화 약세, 신흥시장 화폐가치 급락 등 경영 외적 요인으로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최근 정몽구 회장은 임직원들에게 위기의식을 강조하면서 국내외 영업본부와 생산, 품질, 마케팅 등 전사적인 비상경영에 들어갔다.

전문가들은 현대차의 위기가 곧 한국 경제의 위기의 축소판이라고 말한다. 현대차의 위기가 복합적이기 때문이다. 대외적으로는 환율과 차종의 노후화, 미국과 일본 업체들의 대대적인 마케팅 공세에 직면해 있고 내부적으로는 신차효과 미미와 경직된 노사관계, 수입차의 점유율 확대등 말 그대로 중첩된 위기가 한 번에 몰려오는 모양새다. 그러나 이 모든 '위기' 상황이 외부요인보다 현대차 스스로 자초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시총 3위도 위협, 현대차의 잔인한 여름

지난 2일 현대자동차의 부진한 5월 판매실적 소식에 주가가 9% 넘게 하락해 14만원선이 무너졌다. 현대차 주가가 장중 15만원이하로 떨어진 것은 지난해 11월 6일 이후 7개월여 만이다.

지난 1일 현대차가 발표한 5월 판매실적에 따르면 지난달 자동차 판매량은 총 38만9299대로 지난해 같은 달 대비 6.4%포인트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내수용 판매도 감소했다. 내수 판매는 36개월 무이자 할부 정책에도 불구하고 8.2%포인트 감소했고, 해외 판매도 중국 판매 부진으로 6.1% 감소했다.

기아자동차의 경우 지난달 내수 4만10대, 해외 20만2044대 등 총 24만2054대를 판매했다. 지난해 같은 달 대비 내수는 10.4% 늘었지만, 수출이 7.0% 줄면서 총 4.6% 감소했다.

이 발표 다음날인 2일 현대차 주가는 급락했다. 일각에서는 엔화약세가 진행 중인 가운데 현대차 5월 판매실적이 부진한 것으로 나타나자 실적에 대한 우려가 반영된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이미 올해 1분기 현대차는 매출액 20조9427억원, 영업이익 1조5880억원을 냈다. 지난해 동기대비 매출은 3.3%, 영업이익은 18.1% 감소한 규모다. 또 기아차도 올해 1분기 매출 11조1776억원, 영업이익 5116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동기대비 매출은 6.3%, 영업이익은 30.5% 모두 감소한 실적이다. 올해 들어 수개월간 현대차그룹의 실적이 지난해 수준을 유지 못한 상황인 것이다.

여기에 내수에서의 수입차 공세와 해외 시장에서의 엔저 및 유로화 약세, 신흥시장 화폐가치 급락 등도 이를 부채질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 때문에 현대차 주가는 연일 소폭 반등과 폭락을 거듭하며 현재 시가총액 3위로 밀려난 상황이다. 지난해 현대차 생산량에 차질을 준 노사관계도 녹록치 않다. 2일부터 시작된 올해 임금단체협상에서 노조는 기본급 15만9900원 인상, 지난해 당기순이익의 30% 성과급 지급 등의 요구안을 내놨다. 또 국내외 생산량 노사 합의로 결정, 정년 65세 연장 등을 요구하고 있다. 현대차는 실적부진, 주가하락, 노사문제까지 ‘삼중고’를 겪으면서 잔인한 여름을 맞고 있다.

◆ 지난해부터 시작된 현대차 ‘위기’

8일 현재 현대차는 주당 13만4500원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차 주가폭락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이맘때 현대차 주가는 22만5000원가량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9월 현대차그룹은 서울 삼성동 한국전력공사 본사 부지를 10조5000억원에 낙찰 받았다.

이 땅은 감정가 3조3346억 원, 예상낙찰가 4~5조 원짜리 토지로 7만9341㎡(약 2만4000 평) 규모다. 즉, 3.3㎡(1평) 당 무려 4억3750만원을 투입해 감정가의 3배, 예상낙찰가의 2배가 넘는 금액이었던 것이다.

이 날부터 현대차 주가는 계속 하락했다. 지난해 9월 18일에만 주가가 9.2% 떨어지면서 19만8000원에 장을 마감했다. 현대차 주식이 종가기준 20만원이하로 떨어진 것은 지난 2013년 6월 14일 이후 처음이었다. 시가 총액도 하루 사이에 4조4056억원이 사라졌다. 결국 이 추세가 계속되면서 지난해 11월 3일에는 현대차 시가 총액 2위 자리를 SK하이닉스에 내주고 말았다. 또 그해 11월 4일 현대차 주가는 전일대비 3.13% 더 내려간 15만5000 원으로 마감됐다. 이는 지난 2010년 9월 17일 이후 최저치로, 현대차 주가가 가장 높던 2013년 10월 11일과 비교하면 1년 만에 11만500원이나 떨어졌다.

문제는 현대차 주가하락이 엔저 기조나 판매량 부진 때문만은 아니라는 징후가 있다. 이미 현대차 주가는 지난 5월 4일 1.78% 오르고, 같은 달 7일 0.87% 살짝 올랐다. 지난달 8일 17만3000이던 주가는 한 달 사이 3거래일만 오르고 19거래일은 하향세를 지속했다. 이는 실적 발표 전부터 이미 현대차에 투자할만한 매력이 없었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배성영 현대증권 연구원은 8일 “현대차가 미국뿐 아니라 중국에서도 역성장이 지속되면서 구조적인 경쟁력 훼손 우려가 커지는 모습”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배 연구원은 “급락 전 현대차 주가가 세계적으로 같은 업계에서 가장 저평가된 상황인데도 추가로 하락했다는 것은 성장에 대한 기대 없이는 기업 가치에 대한 평가가 매력적일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 최근 3개월간 현대자동차 주가 추이(2015년 6월 8일 기준).현대차는 지난해 9월 강남 한국전력공사 부지 매입 시점부터 지속적으로 주가가 빠지기 시작했다. /이미지=다음 주식 캡처

◆ 현대차 위기는 ‘본질적 경쟁력’ 이 원인 

현대차로서는 6~7월에 출시하는 신차들에 기대를 거는 분위기다. K5, 아반테, 스포티지 등의 신형모델과 쏘나타 디젤과 플러그인하이브리드 모델, 신형 에쿠스 등이 내려앉은 실적을 올려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실제 최근 일부 모델의 선전으로 현대차 점유율이 전체 40%대로 오르는데 성공하기도 했다.

그러나 내수 판매 실적 향상을 위해 내건 ‘36개월 무이자 할부 정책’은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수년전부터 스포츠형다목적차량(SUV) 붐이 일면서 대부분의 자동차제조사들이 한국에 각종 SUV를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그러나 다른 외국 브랜드의 판매량은 소폭이라도 상승하는데 비해 현대차는 판매량이 점점 감소하는 추세다.

소비자들은 현대차 SUV가 별다른 특색이 없다고 평가하고 있다. 경쟁사의 인기모델인 QM3, 티볼리, 모하비 등은 각각의 색깔이 뚜렷한 반면 투싼, 싼타페, 베라크루즈 등은 특징이 없고 신차발표회 때마다 프리미엄만 강조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베라크루즈는 최초에 LUV, 즉 럭셔리 SUV를 표방하며 출시됐지만 경쟁모델과 비교해 어떤 점이 고급스러운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이 지적은 SUV에 국한된 문제만이 아니다. 현대차는 전반적으로 브랜드 가치는 제자리인데 불구하고, 프리미엄만 강조해 가격을 올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대차에서는 기본 트림에도 자동변속기가 탑재되고 상당한 옵션이 탑재돼 있어 가격상승을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외제차와 가격 차이가 별로 없다는 점이 현대차를 찾지 않게 한다는 분석이다.

이 같은 주장은 이미 지난해 11월 삼성증권 김용구 연구원이 ‘엔저 트랩에 빠진 현대차를 위한 고언’이라는 보고서에서 언급된 바 있다.

그는 엔저가 일본자동차업계에 호재로 작용할 것이란 주장에 대해 "엔화 약세가 일본 완성차의 판가 개선에 긍정적이긴 하나, 필요적으로 생산단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는 없다"며 "일본차 역시 부담스러운 상황은 매한가지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주목할 점은 한번 외제차로 떠난 소비자는 국산차로 돌아올 가능성이 1.7%에 불과하다는 것"이라며 "소비자의 변심은 수입차에 대한 선호 변호와 함께 상당부분 내수시장 홀대에서 비롯된 현대차에 대한 불만과 아쉬움에서 연유하고 있음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곧 국내외에서 현대차를 꼭 사야할 브랜드로 인식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런 면에서 이미 현대차의 위기는 스스로 자초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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