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 장애인들 목숨건 ‘생존권’ 투쟁

시각장애 안마사들의 생명을 건 처절한 생존투쟁이 보는 이들의 눈물을 자아내게 하고 있다. 시각장애인만 안마사 자격을 취득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 안마사에관한규칙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위헌 판결을 내린 후 시각장애인들의 분노가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특히 지난 4일 서울에 사는 시각장애인 손모씨가 헌재 판결에 비관해 투신자살한 이후 시각장애인들의 분노는 더욱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대한안마사협회 소속 시각장애인들의 마포대교 위 고공시위도 열흘째다. 직업선택의 자유는 누구에게나 주어져야 하다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틀린 말이 아니다. 그렇다면 시각장애인들은 직업선택의 자유를 보장받고 있을까? 그동안 우리 사회가 시각장애인에게만 안마사 직종이 허용해 왔던 데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이들은 보이지 않는 다리 상판을 손으로 더듬어 다리밑 교각상단으로 이어지는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 차가운 한강물로 뛰어 내리는걸 두려워하지 않고 있다. 이렇게 한강으로 몸을 날린 시각장애인이 6월 2일까지 벌써 8명에 이른다. 다행히 미리 다리밑에 보트를 타고 대기하고 있던 구조대에 의해 신속히 구조된 탓에 목숨을 건졌기 망정이지 목숨을 잃는 참극이 벌어졌다면 대한민국 역사에 도 하나의 비극적 사건으로 기록될 뻔 하였다. 손씨의 투신자살로 안마사회원들의 시위는 감정이 북받친 탓에 강경일변도로 치닫고 있다.시위대는 마포대교 아래 한강둔치 시위현장에 손씨의 빈소와 근조 현수막을 설치하고 교각 곳곳에"맹인생계 빼앗아간 재판부는 사퇴하라"는 구호 현수막을 걸어놓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경찰의 통제로 다리접근이 봉쇄되어 더 이상 한강으로 투신하는 사태는 일어나지 않고 있지만 전국각지에서 올라온 시각장애 안마사협회회원 200여명이 모여 붉은 구호띠를 이마에 질끈 동여매고 확성기를 이용, 투쟁가를 부르고 구호를 외치며 강경투쟁을 계속하고 있고 조만간 대규모 시위도 벌일 계획이다. ◆비장애인도 안마사 허용해달라 이번 헌재의 결정은 지난 2003년 비장애인인 송모(65)씨를 비롯한 4명이 행정소송을 제기하면서부터 제기됐다. 이들은 대한안마사협회에 안마사 자격인정 신청서를 제출했으나 시각장애인이 아니고, 안마사에 관한 규칙에서 규정한 교육과정을 이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안마사 자격인정을 받지 못했다. 이에 이들은 이러한 대한안마사협회의 결정에 불복, 같은 해 안마사에 관한 규칙 제3조 제1항의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의 부분이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직업의 자유와 교육을 받을 권리, 평등권, 소비자 결정권 등을 침해하는 위헌이라며 서울특별시장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거듭된 기각과 항소 끝에 대법원까지 간 재판애서 승리는 시각장애인들에게 돌아갔으나 송모씨 등 4명은 다시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심판을 제기하기에 이른다. 이에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주심 송인준)는 지난 5월 25일 7:1로 시각장애인 안마사 ‘안마사에 관한 규칙’ 제3조에 대하여 ‘위헌’ 판결을 내렸다. ‘안마사에 관한 규칙’ 제3조 제1항 제1호와 2호에 따르면 “앞을 보지 못하는”이라는 이른바 '비맹제외기준(非盲除外基準)'을 설정하고 있다. 헌재는 이를 “과잉금지원칙에 위배하여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위헌선고를 내렸다. 그러나 헌재는 지난 2003년 6월 “정부 정책에 대한 시각장애인의 신뢰를 보호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위헌이라 할 수 없다”며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처럼 동일한 사안에 대한 헌재의 달라진 입장과 관련, 시각장애인 관련 단체들은 일제히 성명을 내고 “법리적 해석에만 의존한 판단, 최소한의 인권과 공동체 사회의 기본적 사회원리를 무시하여 민주주의역사발전에 역행하고 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현실을 무시한 헌재의 결정 시각장애인들이 이처럼 목숨을 걸고 한강으로 뛰어내리고 아파트에서 투신자살까지 마다하지 않는 것은 앞서 언급한 바처럼 헌법 재판소가 같은 사안에 대해 2003년 6월 "정부정책에 대한 시각장애인의 신뢰를 보호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위헌이다 할 수 없다"며 내린 합헌 결정을 뒤집어 "일반 국민이 안마사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원천적으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시각 장애인에게만 안마사자격을 혀용 하는 현행 법령은 위헌"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헌재의 이번 위헌결정으로 그동안 불법, 음성적으로 안마사업종에 종사해온 100여만명의 정상적인 일반인들이 합법적으로 안마사업소를 운영하거나 안마사로 일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들 100여만명의 일반인 종사자들이 본격적으로 안마사일을 하게 되면 시각장애 안마사들의 일자리가 줄어 들 수 밖에 없다. 이번 헌재 결정의 가장 큰 문제점은 시각장애인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해외의 경우 올 9월 유엔 총회에 상정될 예정인 국제장애인권리조약 의장안을 보면 고용상 장애인을 위한 특별 조치를 취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또한 일본, 영국, 미국 등 외국에서는 시각장애인의 생계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안마사 비율 할당제, 공공기관 내 판매시설 운영권 우선 부여, 다양한 직업 교육 등을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시각장애인에 대한 뾰족한 직업 교육이나 대체 방안이 전무한 실정이다. 현재 한국의 시각장애인 교육은 외국과 같은 통합교육이 아닌 특수교육에 한정되어 있다. 장애를 가진 학생은 신체적 결함을 이유로 일반 학생과 따로 교육을 받기 때문에 선택과 가능성의 폭이 제한적이다. 더욱이 안마 기술과 같은 직업 교육 위주이므로 다른 직업을 선택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서울에 위치한 한 맹아학교 관계자는 "아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지극히 좁다, 맹학교 전체 수업 중 절반 이상을 안마 수업이 차지하는 현실에서 아무런 대안을 마련하지 않고 안마사 자격을 넓히는 것은 희망을 짓밟는 행위"라며 안타까움을 표시한다. ◆안마만이 유일한 희망 시각장애의 특성상 시각장애인들에게는 일반인들과 달리 직업의 선택권이 많지 않다. 따라서 오로지 법적으로 배려한 안마사를 직업으로 삼는 것이며 안마사에 종사하지 않는 시각장애인은 기초생활보호 대상자로 선정되어 정부의 생활보조로 근근히 목숨을 이어가는 형편이다. 헌재의 결정문에 보면 모든 국민이 직업 선택의 자유가 있다라는 조항이 있다. 시각장애인도 일반인들처럼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낳아 훌륭하게 키우고 싶은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고 싶은 욕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기초생활수급 혜택만으로는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에 정부가 법적으로 공인한 안마사를 생계수단인 직업으로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장애인들의 특수성을 이유로 정부는 1915년부터 이들에게 안마사 자격을 주기 시작하였으며 현재는 맹학교에서 6804명이 3년간 안마사 교육을 받고 자격증을 취득, 이 가운데 5500여명이 1000여개의 안마업소에서 안마사로 일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하지만 이들 시각장애인 안마사들에게 위기가 닥치기 시작한건 1999년경부터 스포츠 마사지, 경락마사지등 일반인들이 설립한 무자격업소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면서 부터다. 이러한 무자격 업소에 대해 정부가 규제를 사실상 포기하면서 이들 업소가 무려 10만여개로 늘어났고 이들 무자격업소에 종사하는 무자격 안마사 또한 100만명 수준에 육박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무자격 업소가 늘어만 가는데 헌재의 이번 결정으로 성급한 일반화 오류를 했다는 점이다. 이번 결정으로 일반인들도 안마업에 종사를 하면서 사회의 부작용이 심화 된다고 이들은 주장한다. 바로 성매매 업소의 합법적 양상이다. 현재 시각장애인 안마사는 일반적 의미의 직업을 넘어서 장애인에 대한 국가적 보호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가능한 차이를 줄여서 국민의 기본적 권리인 '행복추구권'을 동등하게 누리게 하자는 복지적 성격이 강했다. 그러나 헌재는 비교가 불가능한 두 대상을 동일시, 일반인과 장애인의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약자를 보호해야 할 법의 이름으로 '차별'을 조장하는 기이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안마사는 장애인에 대한 최소한의 보호 의무 여기에 다른 장애와는 달리 시각장애를 안고 있을 경우, 장애인 고용센터를 통하더라도 다른 취업의 방도가 여의치 않다는 점 또한 간과할 수 없다. 이처럼 시각장애인은 비장애인과는 달리 안마사 외 다른 직업을 선택할 자유가 사실상 원천 봉쇄되어 있는 상황이다. 실제 18만여 명에 이르는 시각장애인 중 80%의 장애인이 안마업에 진출하고 있으며 현직 종사자의 수도 5000여 명을 웃돈다. 2006년 5월을 기준으로 한 보건복지부의 자료에 따르면 시각장애인 안마사는 5581명으로, 안마시술소(982개), 안마원(91개)을 합해 총 1073개의 안마관련 업소가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각장애인 관련 단체들은 “역차별이 아닌 장애의 차이를 고려한 법”이라며 강하게 반발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시각장애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안마사의 독점적 권리 인정은 최소한의 마지노선이자 경제적 자립을 위한 사회적 활동이다. “외국 자본에 의한 의료시장 개방을 앞두고 태국 등이 차별화된 기술을 앞세워 국내 들어올 예정”이라며 “안마사의 자격을 시각장애인에 국한시키는 것은 시대착오적 발상으로 (이번 일을 계기로) 현행 의료법을 고쳐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단호한 입장을 나타낸다. 시각장애인측은 안마는 촉각에 의지한 정교한 의료행위로, 제한된 활동영역 안에서 발달된 촉각 하는 안마사야말로 오히려 시각장애인에게 가장 적합한 직업이라는 것이라고 반박한다. 아울러 성매매와 관련된 무허가 안마시설이 난립한 현실을 고려할 때 안마사 자격 기준은 이를 방지할 수 있는 방어선 역할을 해왔다. ◆눈치보는 보건복지부, 강경한 시각장애인 단체들 여기에 미온적인 정부의 대처도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유시민 복지부장관이 1일 권인희 대한안마사협회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나 ‘의료법 개정 실무협의회’를 구성하는데 합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민·관협의회를 구성한다는 원칙적 합의만 있었을 뿐, 구체적인 방안이 마련되지 않은 채 “대체 입법을 마련하겠다”는 원론적 입장에 불과했다. 보건복지부 입장에서 본다면 예산확보와 다른 장애인과의 형평성 등으로 섣불리 확답을 내리기 어려운 점은 있다. 그러나 헌재의 결정을 존중하는 동시에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에 반하지 않는 대체 입법이 얼마나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회의적인 입장이 강하다. 한편 대한안마사협회를 비롯한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등 관련 기관 단체들은 지난달 31일 ‘장애인생존권확보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권인희)’를 공식출범하고 본격적인 집단 움직임에 나서고 있다. 이들은 광화문과 마포대교 등지에서 벌이는 게릴라성 시위와 더불어 5일부터 시작한 대국민 서명운동과 대규모 항의 집회 등을 병행할 방침이다. 그러나 국민의 관심은 시각장애인들의 절박함과 무관하게 월드컵에 쏠려 있어 이들의 투쟁은 더욱 외롭다. 며칠동안 계속된 마포대교 고공시위에도 이를 지나치는 시민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이에 시각장애인 단체들은 국민적 관심을 호소하면서 결연한 '저항'태세다. 지난 달 29일부터 마포대교에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대한마사지협회 경기지부는 “확실한 정부의 후속대책이 나올 때까지 시위를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정권퇴진 운동도 불사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어 사태 장기화가 우려된다. ◆법적 헌재결정 유감, 시각장애인 생존대책 마련 절실 헌법재판소가 법리적 해석을 바탕으로 위헌결정을 내린 만큼 헌재의 위헌결정이 잘못되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같은 사안에 대해 합헌결정을 내린지 불과 3년 만에 스스로 결정을 뒤엎고 위헌이라고 결정한 것은 법리해석의 일관성 측면에서 신뢰성 상실이라는 비판을 안게 됐다. 법리적 해석만으로 약자를 사지로 내몰면서 직업선택의 자유와 평등권만을 앞세우는 무늬만의 복지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대변한 반인간적 무심하고 무정한 발상에는 절대 동의할 수 없다. 이제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이 내려진 만큼 이제 정부가 나서서 그들의 생존권을 보호해 줘야 한다. 직업 선택의 자유, 평등권을 내세워 직업선택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누릴 수 없고 신체적 장애 때문에 평등권에서 소외된 그들을 위해, 새로운 법을 마련해서라도 생업을 보장해 줄 수 있도록 해야한다. 안마사업종 뿐아니라 시각장애인이 할 수 있는 전화상담직, 전화여론조사직등 취업할 수 있는 업종을 개발하여 취업의 길을 넓혀주는 것이다. 보건복지부와 안마사협회간 논의되고 있는 안마사업종 할당제도 적극적으로 검토 시행해 볼만하다. 시각장애 안마사협회도 투쟁은 하되 고귀한 생명이 희생되는 투신등 극단적인 투쟁을 지향하고 시각장애인 특유의 손감각기능을 최대한 이용하여 안마기술의 차별화를 통한 손님 유치노력과 홍보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도 연구해볼 필요가 있다. 아무튼 정부 보건당국과 시각장애인측이 머리를 맞대고 시각장애인들이 보다 인간적인 삶을 누릴수 있도록 합리적이고 건설적인 생존대책을 마련하는데 지혜를 발휘하길 바라고 정치권과 시민단체, 종교계도 이들이 육신의 장애로 인해 생존을 위협받지 않도록 각별한 관심이 필요하다.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