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업 자금 지원 없어 채권단 동의 ‘안갯속’

 

▲ 포스코플랜텍이 결국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모기업인 포스코가 자금지원을 하지 않고 대신 일감지원을 하는 것으로 지원 방안을 정하면서, 워크아웃이 실패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채권단이 모기업의 자금지원 없이는 워크아웃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뉴시스

포스코의 플랜트부품 계열사 포스코플랜텍이 결국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그러나 모기업인 포스코에서 자금지원을 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채권단이 워크아웃에 동의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일각에서는 포스코플랜텍에 워크아웃 불발 이후 법정관리(기업회생 절차) 수순을 밟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 일부 전문가들은 포스코가 부실 계열사와의 ‘선긋기’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이 아니겠냐는 전망을 내어놓고 있다.

포스코플랜텍은 자금난을 해결하기 위해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에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을 신청했다고 26일 공시했다. 포스코플랜텍이 워크아웃을 통한 경영정상화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채권단 75%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다. 포스코플랜텍은 울산사업 적자 확대와 전 사주의 이란자금 유용에 따른 손실 반영 시 자본잠식에 이를 것이 예상됨에 따라 불가피하게 워크아웃을 결정했다.

포스코플랜텍은 포스코로부터 2014년 말 29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와 그룹차원의 경영개선 지원활동을 받아 경영정상화를 추진해왔다. 하지만 프로젝트 파이낸싱(PF) 관련 우발채무가 발생했고, 전 사주의 이란자금 유용 등의 사후 사정으로 금융권의 차입금 만기연장이 거부되고 신규 자금확보가 어려워지면서 유동성 위기가 가속화됐다. 현재까지 회사의 금융권 대출 연체금액도 900억원 수준이다.

포스코 고위 관계자는 “포스코플랜텍 부실이 그룹 전체로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라며 “지급보증, 증자 등 채권단의 요구사항은 협의를 거쳐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또 “워크아웃을 통해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극한적인 구조조정을 통해 회사를 정상화시킴으로써 주주, 채권자들의 손실을 최소화하겠다”고 말했다.

포스코는 포스코플랜텍의 위기에 대한 해법을 찾기 위해 고심했으나, 이미 2014년 말 유상증자에 참여했고 단기간 내 유상증자 재참여 등 추가 자금투입을 추진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판단해 포스코플랜텍의 워크아웃 신청 결정에 동의하게 됐다.

◆포스코 “자금지원 불가능”
한편, 포스코는 포스코플랜텍에 대한 자금지원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포스코 측은 26일 “포스코플랜텍에 대한 자금지원은 불가능하다”며 “대신 일감지원 등을 통해 최대한 정상화 노력에 힘을 보태겠다”고 밝혔다.

포스코는 포항과 광양제철소에 보유 중인 총 9개 고로의 개·보수작업 등을 포스코플랜텍에 맡기는 등 일감지원 방안을 검토 중이다. 다만 ‘일감 몰아주기’ 등에 대한 시선이 곱지 못한 점을 우려, 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경영정상화를 지원할 방침이다.

포스코 관계자는 “자금지원 불가 방침을 세운만큼 정상화를 위한 유동성 지원 외의 방법을 마련할 계획”이라며 "구체적인 지원방안은 포스코플랜텍과 협의해 세울 방침이다"라고 말했다.
KDB산업은행은 6월 초 채권단 회의를 개최하고 워크아웃 개시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포스코플랜텍이 워크아웃을 신청하면 채권단은 7일 이내에 워크아웃 개시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워크아웃 개시는 채권단 75%가 동의해야 가능하다. 워크아웃이 개시되면 3개월간 채권단이 보유한 채권 만기가 연장되고 회사와 채권단은 경영정상화 방안을 도출하게 된다.

포스코플랜텍에 따르면 회사가 발행한 1000억원 규모 회사채 가운데 개인 보유물량은 113억원에 달한다. 이중 36억원은 순수 개인보유 물량이며, 약 77억원 정도는 개인 물량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

포스코플랜텍 측은 "워크아웃이 개시되면 1000억원 규모의 회사채 기한이익 상실에 따른 원리금 일시상환 요구에 대응하기 위한 사채권집회를 다시 소집하게 된다"며 "상환 등을 포함한 방안을 마련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포스코플랜텍은 포스코의 제철설비 물량을 전담하는 회사다. 포스코는 지난 2010년 해양플랜트 전문업체 성진지오텍을 1600억원에 인수해 2013년 계열사인 포스코플랜텍에 합병시켰다. 포스코플랜텍은 조선·해양업계 불황으로 지난해 1891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2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 업계에서는 재무구조개선을 추진 중인 포스코가 부실계열사와 본격적인 선긋기에 나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포스코그룹의 재무구조개선 작업이 속도를 내면서, 비자금 사태로 인해 하락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 빠르고 과감하게 구조조정 작업을 진행한다는 것이다. ⓒ뉴시스

◆워크아웃 불발 가능성 높아져
포스코의 자금 지원이 없을 것으로 알려짐에 따라, 포스코플랜텍의 워크아웃이 불발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채권단이 모기업의 지원 없이는 워크아웃에 동의하지 않겠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포스코플랜텍의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26일 "포스코플랜텍이 채권금융기관 공동관리 절차를 신청함에 따라 이달 중 채권금융기관협의회 소집을 통보하고, 내달 초 채권단 회의를 열어 워크아웃 개시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지난 21일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회사에 대해 정기 기업신용위험평가를 개최, 부실징후기업을 뜻하는 C등급을 부여했다. 아울러 포스코플랜텍이 2013년 발행한 회사채 2년물(520억원), 3년물(480억원)에 대해서 기한이익이 상실됐음을 알렸다. 상장채권 기한이익이 상실되면 채권자는 채무자에 대해 만기 전 원리금 상환을 요구할 수 있다. 혹은 이율이 채권자에 유리한 방향으로 상향 조정될 수 있다. 기업신용위험평가 결과 C등급 이하가 나오면 기업구조조정촉진법 등에 따라 워크아웃을 신청할 수 있다.

채권단은 모기업인 포스코가 지원 의지를 보이지 않는 한 워크아웃은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채권단 한 관계자는 “워크아웃은 출자전환, 신규자금 지원 등 채권단의 희생이 많이 따르는데, 회사를 금융기관에서만 노력해서 살릴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느냐”며 “대주주인 포스코가 전향적인 변화를 보이지 않는다면 법정관리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현재 포스코플랜텍의 여신 규모는 산은이 1670억원 상당이며, 외환·하나·우리·신한·부산은행 등은 총 3360억원대다.

업계에선 포스코플랜텍의 워크아웃이 무산되고 법정관리(기업회생 절차) 수순을 밟을 것으로 예상했다.

채권단 관계자는 “워크아웃이라는게 기업과 채권단이 고통을 분담해 기업을 회생시키는 취지인데 포스코가 포스코플랜텍의 회생을 ‘나몰라라’하면 워크아웃을 개시할 이유가 없다”며 “채권금융기관협의회에서도 포스코의 지원을 전제로 워크아웃 개시를 결정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포스코플랜텍 관계자는 “법정관리 가능성에 대한 대응방안은 마련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포스코플랜텍의 ‘나비효과’
포스코 계열사의 신용등급이 무더기로 강등됐다. 포스코플랜텍이 모회사의 지원을 받는데 실패하고 워크아웃을 신청하면서 포스코그룹 계열사 전체에 대한 신용도가 줄하향됐다.

27일 한국신용평가는 포스코건설과 포스코P&S, 포스코기술투자, 포스코ICT 등 포스코그룹 계열사 4개의 신용등급을 하향했다.

포스코건설과 포스코P&S의 회사채 신용등급은 각각 AA-에서 A+로 강등됐고, 기업어음(CP) 등급은 A1에서 A2+로 하향됐다. 포스코기술투자의 회사채 신평도 A에서 A-로 한 계단 내렸으며, 기업어음도 A2에서 A2-가 됐다.

회사채 등급이 없는 포스코ICT는 기업어음 신용등급만 A1에서 A2+로 낮췄다. 포스코플랜텍의 회사채 등급은 CCC에서 C로 하락했다. C등급은 부도를 뜻하는 D등급보다 한 단계 위의 등급이다.

류승협 한신평 기업평가본부 파트장은 “그동안 포스코는 오너가 없는 그룹임에도 불구하고 강한 결속력을 보여왔고 계열사에 대한 지원의지도 컸다”며 “그러나 최근 포스코특수강 매각 이후, 포스하이알의 회생절차 신청, 포스코플랜텍의 워크아웃 신청, 전 경영진에 대한 검찰의 조사 등 일련의 사건과 변화를 볼 때 과거보다 지원가능성이 상당히 약해진 것이 분명하다”고 평가했다.

이어 “포스코플랜텍은 포스코의 직접 자회사(지분 61%)로 그룹 전략상 중요성이 있고, 상장회사인데다가 공모사채 발행을 통해 자본시장으로부터 자금을 조달하고 있어 포스코로서는 평판위험 측면에서 부담이 큰 상태”라며 “이러한 포스코플랜텍에 대해 과거 부실을 이유로 워크아웃을 신청하였다는 것은 포스코의 계열사에 대한 지원의지가 상당히 약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포스코, 부실계열사 ‘선긋기’?
업계에서는 재무구조개선을 추진 중인 포스코가 부실계열사와 본격적인 선긋기에 나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포스코플랜텍의 법정관리 신청은 지난달 포스코 손자회사인 포스하이알에 이어 두 번째다.

포스코가 포스코플랜텍에 대한 자금 지원이 없다고 선을 그은 것은 2010년 3월 이후 네 차례의 유상증자를 실시했음에도 불구하고 회복 기미가 보이지 않자 더 이상 밑빠진 독에 물붓기식 투자는 곤란하다는 내부 기류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모기업인 포스코도 현재 재무구조개선 작업을 추진 중이라는 것도 근거로 들 수 있다. 일각에서는 부실 계열사를 더 이상 안고가기에는 부담이 너무 크다고 보고 있다.

업계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포스코그룹의 재무구조개선 작업이 속도를 낼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더불어 포스코건설에서 시작된 비자금 사건으로 인해 추락한 포스코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을 위해서라도 더욱 빠르고 과감하게 구조조정 작업을 진행할 것이란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 시사포커스 / 정주민 기자 ]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