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각지연·과세 정당성 놓고 팽팽한 대치

▲ 15일(현지시간) 우리나라 정부와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지난 2006년부터 2012년 사이 외환은행 매각과 과세를 놓고 벌였던 갈등과 관련해 무려 5조원대 소송에 돌입했다. ⓒ론스타

우리나라 정부와 사상 최악의 ‘먹튀’로 불리는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외환은행 매각 지연과 불합리한 과세 여부를 놓고 소송 가액이 무려 5조원대에 이르는 ‘세기의 소송’을 벌인다. 이번 소송은 막대한 소송 가액도 화제지만, 우리나라 정부가 ISD에 휘말린 것도 처음이라는 점에서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1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해결기구(ICSID)는 한국 정부와 론스타 관계자 등 소송 당사자와 대리인 등이 참석한 가운데 1차 구두 심리를 개시했다. 심리는 오는 24일까지 열흘간 진행되며, 이번 심리는 소송 당사자 간의 합의에 따라 일반인들이 참관하지 못하는 가운데 비공개로 진행될 전망이다.

2차 심리는 내달 29일부터 7월 8일까지 열린다. 우리나라 정부 측에서는 한덕수 전 경제부총리와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 전광우 전 금융위원장이 증인으로 참석한다.

심리 과정은 청구인인 론스타가 먼저 변론을 하고 우리 정부가 반대 변론을 한 후, 한 번씩 반박과 재반박을 하는 순서로 진행된다. 이 소송은 단심제로 진행되며, 이르면 내년 상반기 결론이 나올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정부는 역대 최대규모인 10명의 합동대책반을 지난 13일 출범시켰다.

이번 소송은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되파는 과정에서 빚어진 잡음에서 출발했다. 론스타는 2003년 10월 외환은행을 1조3834억원에 사들인 뒤 2006년부터 매각협상을 벌여 왔다.

이 과정에서 론스타는 2007년 영국계 글로벌 은행인 HSBC(홍콩 상하이 은행)에 외환은행 지분 51%를 5조9376억원에 매각하기로 계약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결국 2012년 3조9157억원에 하나금융지주에 넘겼다. 론스타는 이 차익 만으로도 2조5000억원 이상을 벌었고, 배당금 등을 포함해 4조6600억원의 이득을 남겼다.

하지만 론스타는 2007년 HSBC와의 협상 당시 우리나라 정부가 매각 승인을 지연시켜 매각 차익을 올리지 못했다며, 2012년 11월 21일 ISCID에 46억7900만달러(약 5조1328억원)의 중재를 신청했다. 아울러 우리나라 정부의 과세도 불합리하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정부가 패소하게 되면 론스타에 국민 세금 5조원 이상을 물어줘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된다. ISCID가 전 세계 주요 투자분쟁을 다루는 곳이지만 5조원대 소송전이 펼쳐지는 것은 ICSID로서도 이례적인 일이다.

◆론스타 자회사들은 실체가 있는가
이른바 ‘세기의 대결’의 쟁점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이는 지난 2012년 론스타가 제기한 국제중재 쟁점들과 연결된다.

우선적으로 ‘관할권’ 및 ‘투자협정 보호대상 여부’에 대한 부분이 거론된다. 이는 론스타가 외환은행에 투자한 행위가 벨기에에 설립한 페이퍼 컴퍼니 형태의 자회사들을 통해 이뤄졌기 때문에 세금을 낼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소송을 제기한 원고는 LSF-KEB홀딩스SCA, 스타홀딩스SCA 등 론스타가 벨기에에 세운 6개 자회사다.

론스타는 펀드(론스타펀드4)를 조성해 벨기에에 스타홀딩스를 세운 후 2001년 서울 역삼동 스타타워(현 강남파이낸스센터)를 인수했다. 이후 또다시 벨기에에 LSF-KEB홀딩스란 회사를 설립해 2003년 외환은행을 사들였다. 스타타워와 외환은행 말고도 론스타는 벨기에 자회사들을 앞세워 극동건설과 SKC사옥, 동양증권 빌딩 등 한국 자산을 공격적으로 매입했다.

우리나라와 론스타들은 이 페이퍼컴퍼니들의 실체를 놓고 치열한 다툼을 벌일 전망이다. 론스타가 4조6600억원에 달하는 이익을 챙겼음에도 한·벨기에 투자보장협정(BIT)에 근거해 세금을 내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BIT에는 양국 기업이 상호 국가에 투자한 경우 세금을 면제해준다는 조항이 있었고, 론스타가 벨기에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해 외환은행 등을 인수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아울러 벨기에는 해외 주식 투자 소득에는 세금을 물리지 않는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먹튀’ 논란이 전국을 강타했고, 정부는 결국 8500억원의 세금을 부과했다.

당시 국세청의 과세 근거는 “인수한 페이퍼컴퍼니들은 실체가 없다”는 것이었다. 실질적 의사결정과 이익 취득의 주체는 모회사인 론스타펀드4이기 때문에 BIT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반면 론스타는 이 자회사들이 페이퍼컴퍼니가 아니며 벨기에 정부에 세금까지 내는 실체가 있는 회사라고 주장하고 있다.

▲ 론스타는 지난 2006년 KB금융지주, 2007~2008년 HSBC와 6조원 안팎의 매각 계열을 체결했지만,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과 외환카드 주가 조작 사건 등의 이유로 정부가 매각 승인을 지연해 결국 계약이 취소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론스타는 2012년 하나금융지주와 4조원에 조금 못 미치는 금액으로 외환은행을 매각했다. 사진 / 홍금표 기자

◆매각 승인 지연의 정당성 여부
외환은행 매각 승인 지연 문제 역시 쟁점의 또 하나의 축이다.

론스타는 2007년 HSBC와 계약을 체결했을 당시 5조9376억원에 합의한 바 있다. 하지만 한국 금융 당국이 인수 승인을 1년 가까이 미루면서 2008년 금융위기가 터져 HSBC가 계약을 철회했다. 론스타가 2012년 하나금융지주로부터 외환은행 주식 매각 대금으로 받은 금액은 3조9156억원으로 약 2조원 가량의 차이가 난다. 2006년 KB금융지주와 체결했던 가격은 6조원이 넘었지만,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으로 같은 해 계약이 파기됐다.

이에 대해 우리나라 정부는 론스타의 헐값 외환은행 인수 의혹에 대한 배임 사건과 외환은행-카드 합병 관련 주가조작 사건에 대한 사법절차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섣불리 매각을 승인해줄 수 없었다고 밝히고 있다. 즉, 론스타가 기소를 당해 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승인을 늦춘 것은 당연하다는 얘기다.

이 과정에서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 사건과 관련해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이 2010년 10월 대법원의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또 유회원 론스타 코리아 대표는 론스타 임원진과 공모해 주가조작에 이은 수백억원대 배임 등을 저지른 혐의로 2011년 7월 징역 3년과 42억9500만원의 벌금형 등 실형을 선고받았다.

특히 주가 조작 사건은 론스타가 벌인 대표적인 불법 행위로 꼽힌다. 지난 2003년 론스타는 외환카드를 헐값에 사들이기 위해 자본금을 줄이는 감자 계획을 허위로 퍼뜨렸다. 6700원이던 외환카드의 주가는 2400원까지 떨어졌고, 론스타는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외환카드를 합병했다.

유회원 대표가 실형을 받는 등 론스타의 불법 행위가 입증됐지만, 론스타는 외환카드 2대 주주이던 올림푸스캐피탈이 싱가포르에서 2008년 론스타와 외환은행을 상대로 피해액을 배상하라며 낸 소송에서 713억원을 배상하고, 이 중 430억원을 무죄 판결을 받은 외환은행으로부터 돌려받아 ‘이면 합의’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 문제는 최근 외환은행 경영진의 배임 의혹으로까지도 번져 시민단체가 고발하는 사태로까지 이어졌다.

한국 정부는 이처럼 론스타가 뜨거운 논란의 중심에 있던 만큼 승인 지연은 당연한 판단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2008년 4월 전광우 당시 금융위원장은 “법적 불확실성이 해소되는 것이 1차적인데 금융위 차원에서 계기를 찾는 것은 제한적”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반면 론스타는 한국 정부가 국민 정서법에 의거해 의도적으로 승인을 지연시키는 등 외국 자본이라는 이유로 차별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당시 승인권을 갖고 있던 한덕수 전 경제부총리, 전광우 전 금융위원장,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 등 금융당국 고위 인사들이 대거 증인으로 채택된 이유도 이 때문이다.

▲ 민변은 지난 15일 쟁점 설명회를 열고 “원고인 론스타의 자회사들이 벨기에에서 경제활동을 한 적이 없는 페이퍼컴퍼니이기 때문에 한·벨기에 투자협정(BIT)의 보호를 받지 못하므로 소송을 제기할 자격 자체가 없다”고 지적했다. ⓒ뉴시스

◆“론스타, 자격 없어” vs “소송 장소가 론스타 홈구장”
현재까지 소송 승소에 따른 전망은 법조계에서도 크게 엇갈린다.

1차 심리의 참관을 요청했다 거절당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은 론스타가 우리나라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만한 자격이 없다며 론스타의 패소를 점쳤다.

15일 민변은 주로 “한-벨기에 투자협정은 적법한 투자만을 보호대상으로 하므로 외환은행 인수시 대주주 적격 심사 자료를 고의적으로 누락하고, 외환카드 주가를 불법적으로 조작한 론스타의 한국 투자는 보호대상으로 볼 수 없다”며 “중재신청 자격이 없는 론스타의 한국 투자는 적법하지 않다”고 밝혔다.

또한 원고인 론스타의 6개 자회사들 역시 벨기에에서 경제활동을 한 사실이 없는 페이퍼컴퍼니에 불과해 한-벨기에 투자협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국세청의 과세로부터 5년의 제소기간이 지났기 때문에 중재 자체도 무효라고 설명했다.

대형로펌의 한 중재 전문 변호사는 ICSID 재판부가 우리나라 법원의 판결을 뒤집기는 힘들 것이라며 조심스럽게 우리나라의 승리를 점쳤다. 아울러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산업자본인 론스타가 한국 정부를 속여 외환은행을 인수했기 때문에 원인무효이며 이에 따라 불법적인 이득을 돌려달라고 주장할 수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반면 소송이 진행되는 곳이 미국이라는 점에서 “미국에서 열린 경우 미국 기업에 불리한 판정이 나온 경우를 찾기 어렵다”고 지적하는 시각도 나온다.

특히 이번 소송이 ISD 소송이라는 점도 이 같은 시각에 힘을 싣고 있다. ISD는 외국에 투자한 투자자가 해당 국가의 협정이나 계약 위반으로 손해를 입은 경우 제3국에 있는 민간기구에 중재소송을 내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는 제도다.

국제중재 소송 제도의 기본 취지는 한쪽 국가 법원에서 내려진 판결과 달리 다른 판단을 받을 기회를 주는 것이므로 반전 가능성도 충분하다는 얘기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간단히 정리할 수 없는 사안”이라며 “한국 정부의 승소를 낙관할 수만은 없다”고 말했다.

실제 론스타 측이 국제중재재판소에서 유리한 판정을 받은 사례도 있다. 바로 론스타의 부산화물터미널 부지 취득 사건이다. 예금보험공사 자회사 케이알앤씨(KRNC)와 각각 지분 50%를 출자해 LSF-KDIC 투자회사(자산유동화 전문 법인)를 설립한 론스타는 경영권 장악 뒤 단독으로 부지매각을 추진하고 관련 비용을 KRNC에 청구했다. 비용 합의에 실패해 양측이 찾아간 국제중재재판소는 2011년 사실상 론스타 손을 들어줬다.

◆정보 제한돼 예측 난항
다만 법조계 대다수에서는 정부 측이 지나치게 정보를 꽁꽁 감추고 있어 예측이 힘들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대형로펌 중재 전문 변호사는 “비밀에 부쳐진 사건이라 실제 내용을 알기 어렵다”며 즉답을 피했다. 또 정부 측과 론스타 측이 벌일 승부는 재판 과정에서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 질 수 있기 때문에 예측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화해로 마무리될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가뜩이나 먹튀 논란을 막지 못한 정부의 책임론이 불거져 있는 상황에서 사실상 국가가 물러서는 것이나 다름 없는 화해로 귀결될 경우 쏟아져 나올 비판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미 소송이 개시된 것부터가 우리나라에는 손해라는 분석도 있다.

정부 입장에서 패소할 경우 조세·금융 정책과 대법원 판결이 무력화되고, 막대한 금액을 배상해줘야 한다. 게다가 다른 외국계 투자자본의 소송이 빗발칠 가능성도 높고, 투자 위축도 우려된다.

이길 경우에도 200만달러(약22억여원)를 부담해야 한다. ICSID가 중재인 수당으로 하루에 3천달러(약 350만원)를 책정하고 사건이 최소한 2∼3년 진행되는 탓에 중재 비용만 50만~100만달러 필요하다. 여기에다 변호사 선임 비용을 더하면 ISD 관련 법률 비용은 200만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결국 무조건 우리나라가 잃을 것밖에 없다는 얘기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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