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버의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 한국 캐스트 초연으로 공연중인 뮤지컬 <팬텀> ⓒEMK뮤지컬컴퍼니

- 이 글에는 스포일러성 내용이 포함되어있습니다.

당신은 하얀 가면을 보면 무엇을 먼저 떠올리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웨버의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을 떠올릴 것이다. 그것이 비운의 주인공 팬텀이 되었든, 깊은 울림을 주는 음악이 되었든 간에 말이다. 세계 4대 뮤지컬, 브로드웨이, 웨스트엔드의 주역, 최고의 배우만 가능한 공연 등등... <오페라의 유령>을 따라다니는 수식어는 수도 없이 많다. 그런 공연이다. 뮤지컬 역사에 큰 획을 그어버린. 그리고 이 공연에 가려진 비운의 작품이 있다. 뮤지컬 <팬텀>.

1983년 연출가 겸 배우 조프리 홀더는 극작가 아서 코핏과 작곡가 모리 예스톤에게 소설 <오페라의 유령>을 뮤지컬로 만들자고 제안한다. 아서와 모리는 이 매력적인 작품을 뮤지컬화 하는 제안에 응했고,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간다. 그리고 뮤지컬 <팬텀>의 대본에 모든 음악이 입혀질 쯤 앤드류 로이드 웨버가 런던에서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제작을 공식 발표한다. <팬텀> 제작은 흔들리기 시작했지만, 투자자들의 지원 덕분에 제작은 계속 될 수 있었고 공연을 올릴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2년 후 웨버의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이 웨스트엔드에서 성공을 거두었고, 제작자와 투자자들은 <팬텀>에 손을 떼게 되었다. 결국 그렇게 공연은 좌절되고 말았다.

그러나 몇 년 뒤 뮤지컬 <팬텀>의 힘을 믿고 있던 제작자 아서 코핏은 <팬텀>을 미니시리즈로 각색하여 방영한다. 이 드라마는 흥행에 성공했고 이 뮤지컬의 작품성을 인정한 투자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 뮤지컬보다 더 드라마틱한 스토리다.

그러나, 결국 웨버의 <오페라의 유령>을 빼놓고는 <팬텀>을 논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팬텀>은 <오페라의 유령> 프리퀄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쉽다. <팬텀>은 왜 유령이라는 인물이 만들어졌는지, 그가 크리스틴을 사랑하게 된 까닭은 무엇인지에 대해 중점적으로 다루었다. 일단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그다지 뛰어나지도, 아주 형편없지도 않았다. 무대장치, 연출은 훌륭한 편이었지만, 캐릭터와 넘버 무대영상은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 뮤지컬 <팬텀> 한장면. 크리스틴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장면이다. ⓒEMK뮤지컬컴퍼니

두 작품의 중심인물 크리스틴과 팬텀은 같은 인물이지만 성격도, 표현 방식도 매우 다르다. <오페라의 유령>에 등장하는 팬텀이 범접할 수 없는 위압감, 말 그대로 유령의 면모를 보여준다면, <팬텀>에 등장하는 팬텀은 유령보단 그저 손재주 좋은 인간에 가깝다는 느낌이다. 한없이 감정적이고 나약한 인간의 모습과, 굳이 과거회상 장면을 굵직하게 넣으면서까지 그의 배경스토리를 관객들에게 이야기한다. 글쎄, 그럭저럭 설득은 되지만 매력적이진 않았다. 문제는 유령에게 아름답고 치명적인, 죽음과 맞닿아 있는 듯한 그 매력을 빼면 도대체 무엇이 남는단 말인가?

그리고 크리스틴. 말하자면 마성의 여자다. 두 남정네를 홀려 빼먹을건 다 빼먹고 잘생긴 젊은 백작과 사랑의 도피를 떠난다. 사실 캐릭터만 놓고 봤을 때는 크리스틴은 현대 사람들에게 비호감일 수밖에 없다. 이미 신데렐라같은 가련한 여주인공은 너무 많기 때문이다. 다만 <오페라의 유령>에서는 그것을 압도적인 무대로 커버한 경우라고 할 수 있겠다. 제작자 웨버는 의도적으로 그녀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think of me', 'the phantom of the opera' 같은 넘버를 1막에 배치했을 것이다. 관객들이 '아, 저 남자들이 반할만한 매력이 있는 여자구나' 라고 느낄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팬텀>은?

슬프게도, 크리스틴이 수동적이고, 이기적이고, 자기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마성의 여자에서 그냥 예쁘고 노래 잘하는, 천사병에 걸린 여자로 변하였다. 세상에, 이렇게까지 매력 없는 여주인공이 있다니! 공연을 보다가 '맙소사' 하는 소리가 나올 지경이었다. 그녀의 매력을 보여주는 넘버는 훌륭한 편이었지만, 그것으로는 도저히 커버가 되지 않을 정도의 멍청함을 지닌 캐릭터였다. 

<오페라의 유령>의 크리스틴은 그녀가 이기적인 것이 오히려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만든다. 추구하는 바가 명확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팬텀에게서는 음악의 능력을 얻길 원하고, 잘생기고 젊은 백작 라울에게서는 사랑을 얻기를 원한다. 때문에 두 욕망의 충돌로 인해 죽음인가 사랑인가, 최후의 선택이 찾아오고 극의 클라이맥스가 효과적으로 만들어진다.

그러나 <팬텀> 에서는 필립백작과 팬텀 사이에서 흔들리는 모습도 잘 보이지 않고, 유령의 영혼을 안다며 진실로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기도 그의 어머니처럼 사랑할 수 있다고 우겨서 가면 속의 얼굴을 보지만, 그 끔찍한 형상에 놀라 도망쳐버린다. 그래, 도망친 것 까지는 좋다. 필립백작에게로 돌아간 크리스틴은 뜬금없이 유령을 위로해주어야겠다고 돌아가려한다. 도대체 그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게다가 <오페라의 유령> 라울을 대신한 필립백작 조차 왜 사랑에 빠지는 건지 설득도 되지 않는다. 그저 다 떠안고 죽음을 맞이하는 유령만 갸륵해지는 노릇이다.

<팬텀>이 <오페라의 유령>을 따라가야 한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오페라의 유령>이 클래식한 매력이 있다면 <팬텀>은 클래식하지만 현대적인 매력이 있다. 다만 다소 엉성한 각본이 극의 매력을 충분히 살리지 못하는 감이 있다. 그래서인지 앞으로 작품의 행보가 궁금해진다. [시사포커스 / 박하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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