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연 확대냐 새틀 짜기냐… 내홍 깊어질 듯

‘민주당 발(發)’ 정계개편 가능할까? 역사상 유례없이 5.31 지방선거에서 집권여당인 열린우리당이 참패하면서 정치권은 정계개편을 앞두고 요동치고 있다. 지난1일 선거참패에 대한 지휘책임을 진 정동영 의장이 사퇴로 여권은 내홍에 휩싸였으며 곳곳에서는 정계개편을 놓고 무수한 시나리오를 만들며 벌써부터 새틀짜기에 여념이 없는 모습이다. 열린우리당 내부에서는 친노-정동영계-김근태계가 당권과 향후 기득권을 놓고 힘겨루기에 들어갔으며 광주. 전남지역 석권으로 힘 받은 한화갑 대표는 ‘민주당 발(發)’ 정계개편을 꺼내들고 특별기구를 구성하겠다고 나섰다. 여기다 열린우리당의 참패 책임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있다는 여권 내부의 불만이 팽배해 지면서 정권 말기 레임덕 현상까지 맞물려 정치권은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열린우리당의 새틀짜기에 앞서 심각한 ‘내홍’ 선거 참패에 이은 정동영 의장의 사퇴로 정계개편의 진원은 열린우리당이 됐다. 현애철수장부아(縣厓撤手丈夫兒). 1일 정 의장은 사퇴 기자회견을 열고 이 말이 생각난다면서 “낭떠러지에 매달렸을 때 손을 탁 놓아 버리는 것이 대장부다운 태도라는 뜻이다. 백범선생이 윤봉길 의사한테 써주신 글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위기의 상황을 정면돌파로 승부수를 걸겠다는 그의 숨은 의도인 것이다. 정 의장은 선거 참패가 예상되자 ‘5.31선거 이후 민주, 평화, 미래, 개혁세력을 묶는 대통합’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정 의장은 기자회견에서 “이번 지방선거 결과에서 나타난 국민 여러분의 뜻과 질책을 무겁고 겸허하게 받아들인다”며 “ 민심을 하늘처럼 받들겠다”고 말했다. 정 의장은 “지난 2월에 전당대회에 임하면서 열린우리당의 지방선거 승리를 약속하고 당의장에 당선되었고 당시 저를 생각하는 많은 분들이 말리기도 했지만 제가 감당해야할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회피하지 않았다”면서 “그러나 무너진 국민의 신뢰를 일으켜 세워보기 위해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닫힌 국민의 마음의 문을 열기에는 역불급, 역부족이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아직 신발 끈을 풀지도 못한 상태이지만 물러나는 것이 정치인으로서 최선의 책임을 지는 자세라고 본다”며 “결과적으로 우리당은 국민의 마음을 얻는데 실패했지만 우리당이 지향해온 평화, 민주, 개혁, 그리고 국민의 통합의 가치는 절대 포기할 수 없다”고 여지를 남겼다. 그는 “이후 백의종군하면서 가장 낮은 곳에 서서 희망을 싹을 키우기 위해서 땀 한 방울이라도 보태겠다”고 말해 ‘정동영 발 정계개편’을 시도할 것임을 강력히 시사했다. 하지만 정 의장 사퇴 이후 지도부 구성이 미뤄지면서 여당 내부는 우왕자왕하는 모습이다. 당내에서는 일단 당규에 따라 전당대회에서 차 순위 득표자인 김근태 최고위원이 의장직을 승계하는 것과 지도부 동반 사퇴에 이은 비상집행체제 구성론이 맞서고 있다. 정 의장은 물러나면서 김 최고위원에게 당권을 맡아 줄 것을 요청했으나 본인은 지도부 승계에 대한 부담을 느꼈던 탓인지 승계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혀 결론을 내리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정 의장은 사퇴했지만 후임 당의장이 정해지지 않으면서 열린우리당은 당분간 당의장 공백사태를 맞게 됐다. 오는 7일 최고위원회와 의원, 중앙의원 연석회의에서 지도부 선출을 위한 의견을 모을 예정이지만 당내 의견이 분분해 여의치 않은 상황. 때문에 문희상 의장에 이은 정세균 의장의 비상집행부 체제, 유재건 의장의 임시당의장 체제와 같이 현재로서는 비상집행부체제를 운영할 것이라는게 여권 안팎의 예측이다. 우상호 대변인은 1일 최고위원회의 결과를 브리핑하면서 “오는 5일로 최고위원회의를 잡은 이유는 최고위원들 사이에서도 (지도부 구성을 놓고) 이견이 있을 뿐 아니라, 이런 중대한 문제는 당내외의 의견을 수렴하여 결정해야 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며 분위기를 전했다. 우 대변인은 “최고위원들은 당의장 사퇴 이후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정통성 있는 지도부가 당의장 사퇴 이후에 책임 있게 수습해야 한다는 의견과 국민들에게 보다 전면적으로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당 지도부 전원이 사퇴하고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가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 들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그런데 두가지 의견 중 과연 어느 것이 바람직 하느냐에 대해서는 의견차가 있다”며 “이와 관련해서 어제 정 의장은 김 최고위원을 찾아가 만나서 ‘질서 있게 수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회의에서 김두관 최고위원은 “현재 상황으로 보면 전당대회에서 뽑힌 분이 지도부 승계하는 것이 좋을 듯싶다”고 말했고 김혁규 최고위원은 “모든 지도부가 선거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처럼 최고위원들의 의견이 분분한데다 결정이 미뤄지면서 소속 의원들 사이에서도 갖가지 주장이 나오고 있는 것. 아침이슬 간사인 우원식 의원은 “김근태 최고위원이 당을 맡아 이 사태를 수습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느냐”면서도 “당권을 맡지 않겠다고 하면 나름에 이유가 있겠지...”라고 말꼬리를 흐렸다. 이상민 의원은 “지도부 동반사퇴나, 비상집행체제구성, 누가 당권을 맡고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당의 정체성과 방향성들에 대해 정리하고 새롭게 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우리가 선거에서 참패한 것도 일정부분 당의 정체성에 맞지 않는 당내 인물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지도부사퇴 등과는 별도로 색체가 다른 인물들에 대한 평가가 이뤄져야하고 따로 갈사람은 나눠서 따로 가야하지 않겠느냐”며 “정렬작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외연확대냐? 새틀짜기냐? 이상민 의원의 말처럼 벌써부터 여권 내부에서는 ‘색체가 다르면 속가내야한다’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되고 있는 것. 정 의장 사퇴 후 일단 여당 내의 주된 기류는 `외연확대' 쪽에 무게중심이 놓여있는 분위기다. 반(反) 한나라당의 깃발 아래 우리당-민주당-고건 전 총리 세력이 `3자 연대'를 꾀하는 `민주개혁세력 대연합론'이 바로 그것. 이는 차기 대선구도를 `보.혁' 구도로 재정립하겠다는 포석으로 읽혀진다. 하지만 당내 참정연 등 친노그룹의 반발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이처럼 일단 열린우리당 내부는 어떤 형태로든 변화가 이뤄져야하는 데 공감하면서 이대로는 대선을 치를 수 없다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 김두관 최고위원 등 친노그룹을 중심으로 지도부 책임론이 제기되면서 여권은 극심한 내홍을 겪고 있으며 무엇보다 ‘민주개혁세력 대연합’이 뇌관이 됐다. 사퇴기자회견에서 보듯 정 의장은 민주당과의 통합으로 호남 등 전통적 지지층의 복원을 노리는 ‘대연합론’ 추진 의사를 포기하지 않고 있어 영남권에 기반을 둔 친노 세력들의 반발이 일고 있다. 친노세력들은 민주당과 붕당을 하고 나온 마당에 통합대상을 호남에 국한시키는 것은 지역주의 구도극복에 한계가 있고, 개혁 정체성 상실로 이어진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대연정 연장선상에서 ‘동서 연합론’의 독자 노선을 모색할 경우 친노세력을 중심으로 한 신당 창당 가능성도 없지 않다. 김두관 최고위원은 통합론에 대해 "어제까지 사과박스에 돈 담아서 선거를 치르는 정당을 맹렬히 비난해놓고 선거상황이 불리하면 통합의 대상으로 하는 몰염치가 어디있는가"라고 공개적으로 비난했고, 이강철 대통령 정무특보도 정계개편론에 대해 "정치적 꼼수"라고 비판한 바 있다. 실제로 호남 출신 의원들을 중심으로 한 대연합론 지지파와 이에 부정적 입장을 보이는 친노세력간 갈등이 표면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설득력 있게 제기되고 있다. 호남을 비롯해 일부 수도권 의원들의 분당, 노 대통령의 탈당 및 친노세력의 신당창당도 이 같은 갈등 시나리오 가운데 일부다. 일각에서는 제3후보 앞세운 신당창당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서울시장 후보였던 강금실 전 장관이나 경기도지사 후보였던 진대제 전 장관 등 참신한 인물군들을 대거 수혈하는 ‘새판짜기’ 시나리오도 흘러나온다. 정치권에선 정운찬 서울대 총장도 조심스럽게 거론된다. 여권 한 인사는 “노 대통령이 민심을 받아들인다는 명분으로 제3의 후보를 앞세워 이번 지방선거에 나선 강금실·진대제 후보 등의 친위세력과 함께 탈당, 신당 창당의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친노세력의 동서 연합론이 향후 한나라당내 일부 ‘진보세력’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도 정치권 빅뱅 가능성을 점치게 하는 또 다른 배경이다. ◆힘받은 민주당 5.31 지방선거에서 광주·전남 텃밭사수에 성공한 민주당이 정계개편의 핵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열린우리당이 여당 사상 최악의 참패로 정동영 당의장이 사퇴하는 등 우왕좌왕하며 ‘동력’을 잃은 상황에서, 이번 선거로 지역기반을 다시금 확고히 하며 ‘호남맹주’ 자리를 되찾은 민주당이 향후 정계개편의 ‘주도권’을 쥐고 갈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더욱이 한나라당이 이번 선거에서 호남과 제주를 제외한 전 지역을 석권해 2007년 대선에서의 한나라당 집권 가능성이 더욱 농후해 짐에 따라, 반(反)한나라당 측은 정권재창출을 위해선 ‘호남’이란 지역적 구심점이 필요해 진 것도 이를 증명한다. 일단 민주당은 이번 선거를 통해 ‘호남지분’을 확실히 확보함에 따라 향후 정계개편 과정에서 ‘핵’으로 부상할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민주당 김재두 부대변인은 “열린우리당은 이번 선거의 패배로 동력을 잃어버렸다”며 “개혁세력들이 민주당의 손을 들어줬을 뿐만 아니라 전통적 민주당 지지자들이 우리를 ‘적자(適者)’로 확인해줬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이제는 의원숫자가 정국을 주도하지 못하고, 국회 운영도 여·야 합의 정신을 통해 이뤄질 것”이라면서 “앞으로는 국민들로부터 ‘민심’이라는 동력을 얻은 정당과 세력들이 정국을 주도할텐데, 그것이 바로 민주당”이라고 강조했다. 유종필 대변인은 "민주당은 민주개혁세력의 총본산"이라며 "호남승리를 바탕으로 중도개혁세력을 결집해 국민 지지를 받는 대권후보를 내세워 정권을 재창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화갑 대표도 1일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분당 이후 무너진 민주개혁 진영을 복원해야할 무거운 책임을 느낀다”면서 “범민주세력 영입을 위한 별도기구를 당내에서 만들겠다”며 향후 정계개편에서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발빠른 움직임을 시사했다. ◆‘고건-민주당´ 손잡을 수 있을까? 민주당이 2007년 대선을 위한 정계개편에서 ‘핵’으로 부상키 위해선 ‘고건’전 총리와 같은 유력한 대권후보가 필요한 시점. 한 대표는 그 동안 고 전 총리를 영입하기 위한 지속적인 ´러브콜´을 보냈지만, 고 전 총리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한 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에서도 "정권 재창출을 위해 다시는 국민을 배신하지 않고 국민의 신망을 받는 ´대권후보 영입´을 포함해 대통령후보를 반드시 만들어내겠다"라며 고 전 총리에게 암묵적인 ´러브콜´을 재청했다. 그러나‘통합의 리더십’과 ‘국민통합’을 주장하고 있는 고 전 총리로선 ‘호남’이란 지역적 매몰성을 가진 민주당과 손을 잡는 것이 썩 내키지 않는 상황일 것. 결국 민주당이 고 전 총리와 손을 잡기 위해선 외연확대나 열린우리당과의 통합 내지 신당창당 등이 요구된다. 민주당 신중식 의원은 “국민통합을 강조하는 고 전 총리가 민주적 국지화 또는 지역에 매몰돼 있는 민주당으로 오는 건 쉽지 않을 것이고, 더욱이 국민의 심판을 받은 열린당에 가는 것은 자살행위”라며 “민주당이 고 전 총리를 움직이게 하기 위해선 외연확대나 전국정당화를 이뤄야 한다”고 말했다. 신 의원은 “열린당에서 민주당으로 복당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해선 고 전 총리가 계기나 명분을 만들어줘야 할 필요성이 있다”면서 “이를 위해 발전적 해체를 통한 정당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세를 얻고 있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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