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생명 특혜 논란 비화…쟁점은 ‘원가 vs 시가’

▲ 삼성그룹의 지배구조를 통째로 뒤흔들 수도 있는 이른바 삼성생명법에 대한 논의가 최근 4월 임시국회 정무위 법안소위에서 이뤄진 것으로 확인되면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사진 / 홍금표 기자

이재용 부회장 체제 1년을 맞은 5월, 정치권에서 삼성그룹의 지배구조를 송두리째 흔들 수 있는 이른바 ‘삼성생명법’에 대한 논의를 본격화하면서 삼성그룹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8일 국회에 따르면 지난달 27일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는 소위 ‘삼성생명법’으로 불리는 보험업법 개정안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이 법안은 최근 원내대표로 선출된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가 지난해 4월 발의했으며, 지난해 11월 정무위 전체회의를 거쳐 12월 법안소위에 상정됐다.

논의가 개시된 보험업법 개정안은 보험사의 계열사 주식·채권 보유 제한 규정과 관련해 각 수치들의 기준을 변경해 규제를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현행 법에 따르면 보험사는 계열사 주식이나 채권을 총자산의 3%까지만 보유할 수 있게 돼 있다. 그런데 전체를 의미하는 총자산과 보유분을 의미하는 계열사 주식이나 채권의 기준이 각각 다르다.

현재 분모에 해당하는 총자산은 시장의 가격을 기준으로 하게 돼 있고, 분자에 해당하는 계열사의 주식·채권 소유금액은 취득원가(장부가)를 기준으로 계산해 3%가 넘어가면 보험사는 초과분을 5년 안에 이를 매각해야 한다.

이종걸 원내대표는 이 같은 기준이 자산운용의 공정성을 훼손하고 자산운용규제를 왜곡하고 있다며 이를 시가(현재가)로 일원화하는 보험법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삼성생명, 시가 환산시 규제 기준 3배 넘게 보유
보험업법 개정안이 삼성생명법으로 불리는 이유는 사실상 이 개정안의 적용을 받는 대상이 삼성생명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현재 삼성생명은 지난해 말 기준 계열사의 유가증권 19조239억원 어치를 보유중이다. 이중 삼성전자 주식이 14조5745억원(7.6%)으로 가장 많다. 이밖에 삼성화재 1조8281억원, 삼성카드 1조4830억원 등을 보유하고 있다.

당연하게도 삼성전자 주식의 가치가 지금처럼 높지는 않았을 것으로 추측된다는 점에서, 규제를 취득 원가를 기준으로 하면 이후 주식 가치가 천 배, 만 배로 치솟아도 분자인 계열사의 유가증권의 규모가 변하지 않기 때문에 규제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맹점이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1975년 상장 당시의 삼성전자 1주 가격은 6000원대에 불과했으며,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주식 취득이 대부분 마무리된 1990년대에는 5만원대였다. 5만원으로 가정할 경우 취득원가는 현재 주가의 30%에도 미치지 못한다.

따라서 현재 삼성생명의 매입한도는 총자산 193조원(2013년 기준)의 3%인 6조원 정도에 불과하지만, 14조원이 넘는 금액의 삼성전자 주식을 비롯해 19조원(총자산의 10% 가량)에 달하는 계열사 주식·채권을 보유할 수 있는 것은 이 맹점의 대표적인 사례로 지목된다. 이러한 상황은 삼성그룹이 특혜를 받고 있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근거가 돼 왔다. 

▲ 최근 신임 원내대표로 선출된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가 지난해 발의한 삼성생명법은 보험사의 계열사 유가증권 보유 비율 한도인 3%를 계산할 때, 분모인 총자산과 분자인 계열사 유가증권을 모두 현재의 시가를 기준으로 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사진 / 홍금표 기자

◆이종걸 원내대표 “형평성 안 맞아”…리스크 우려도
현재까지는 시가 기준으로의 전환을 주장하는 측의 주장에 무게가 더 실린다. 정치권과 시민단체를 비롯한 각계 각층에서는 ‘삼성생명법’의 당위성의 근거로 형평성, 리스크, 법 제정 취지, 공정경제 등 다양한 면에서 통과를 주장하고 있다.

개정안을 발의한 이종걸 원내대표는 “은행, 저축은행 등 타 금융업권이 자산운용비율 기준을 시장가치로 하고 있다”며 “유독 보험회사만 취득원가로 산정해 타 업권에 비해 더 많은 계열사 지분을 보유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적용 대상이 사실상 삼성생명밖에 없는 상황에서 법의 제정 취지와 맞지 않는 규정 때문에 삼성생명이 특혜를 보고 있다는 얘기다. 개정안은 현재 보유한 계열사의 유가증권을 시가로 계산해 현재 시점에서 자산운용비율 한도 제한을 지키고 있는지 정확히 따져보자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야당 측도 ‘삼성생명법’의 통과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특히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 접근하고 있는 야당은 현재의 느슨한 규정 때문에 삼성전자가 흔들릴 경우 삼성그룹이 통째로 흔들릴 수 있는 위험성이 커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국내 재계 1위이자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돋움한 삼성그룹이 흔들릴 경우 과거 대우그룹이나 현대그룹 등이 흔들릴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국가 경제가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의 폭락으로 삼성생명이 흔들리면 삼성생명에 가입한 일반 가입자는 물론이거니와 여타 보험사들, 넓게는 금융권 전반으로까지 그 여파가 미칠 것이 자명하다. 이러한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해서는 기준을 시가로 변경해야 정확한 대비를 할 수 있다는 논리다.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의 시가는 자기자본 대비 70% 이상에 달한다. 원래 현재의 보험업법에 자기자본 기준의 제한 규정이 있지만, 이례적으로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보유 가치가 크기 때문에 적용되지 않고 있다. 보험업법에 따르면 당초 보험사의 계열사 유가증권 보유 한도는 자기자본의 60%지만, 이 금액이 총자산의 3%보다 더 큰 경우 총자산의 3%를 기준으로 하게 돼 있다.

시민단체를 비롯한 여론도 개정안의 당위성에 공감하는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경제개혁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개정안 발의에 대해 “보험업법에 국한된 취득원가 기준 규제가 자산운용비율 규제의 유효성과 형평성을 훼손한다”며 개정 취지에 공감한다는 뜻을 밝혔다. 또한 시민단체와 야권은 개정안에서 5년여 간의 유예기간을 뒀기 때문에 삼성생명 측이 충분히 그 충격을 감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통념상 시가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 맞으며 증권·은행 등 다른 업종과 해외는 모두 시가로 매기는데 삼성을 감안해 국내 보험업에만 시가가 적용되지 않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지배구조 측면에서의 당위성을 찾는 주장도 제기된다. 경제개혁연대 김상조 소장은 지난해 “삼성생명이 보험 계약자의 돈으로 삼성전자 주식을 소유하는 방식으로 총수 일가의 지배권을 유지하는 삼성의 기형적 소유지배구조가 3세 체제에서도 계속 유지될 수는 없다”면서 삼성생명의 그룹 내 과다한 비중을 꼬집었다.

특히 현재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 보유는 이미 특혜나 다름없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삼성생명법’은 더욱 설득력을 얻는다. 2006년 12월 국회에서는 “법 시행 전의 소유주식에 대해서는 금융감독위원회의 승인을 얻은 것으로 본다”는 금산법 특혜 부칙을 신설했다. 이에 따라 삼성생명만 유일하게 삼성전자 지분을 5% 초과한 7.6%를 보유하고 있다.

◆필사적인 삼성생명 “통과시 안정성 흔들”

▲ 삼성생명 측은 보험사의 장기투자 특성, 해외 주요 국가들의 사례 등을 들어 통과를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삼성생명법이 통과되면 삼성생명은 5년간 19조원에 달하는 계열사 지분을 팔아야 하며, 특히 14조원이나 되는 삼성전자 주식을 팔 경우 그룹 지배구조마저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삼성생명

반면 가뜩이나 이재용 삼남매의 삼성SDS 지분 취득 과정에서의 불법 차익 회수를 목적으로 하는 소위 ‘이학수법’ 때문에 난감한 처지에 놓여 있는 삼성은 ‘삼성생명법’이 혹시라도 통과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삼성생명법’이 통과되면 삼성생명은 5년간 매년 수 조원, 총 14조원에 가까운 금액의 계열사 지분을 매각해야 한다. 이 경우 그룹내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를 주축으로 하는 삼성그룹의 순환출자구조는 송두리째 지각변동을 맞게 된다.

삼성 전체 계열사 중 삼성전자 및 전자 계열이 차지하는 비중은 90%에 가깝다. 삼성생명과 삼성전자의 지분고리가 약화될 경우 이재용 체제는 본격적인 출범도 하기 전에 그 강도가 약해질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삼성그룹 순환출자구조의 정점에 있는 제일모직 역시 삼성생명과 삼성전자의 고리가 약해질수록 가치가 크게 훼손될 것이 우려되고 있다. 현재 이재용 삼남매를 비롯한 삼성그룹 총수 일가는 제일모직을 통해 우회적으로 삼성전자를 보유하고 있다.

삼성생명 측은 표면적으로는 ‘삼성생명법’의 반대의 이유로 보험업의 특성을 들고 있다. 삼성생명은 “보험사는 30~40년 간 고객과의 계약을 유지해야 하는 특성상 단기 수익을 추구하는 은행·증권사와는 달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삼성생명의 한 관계자는 “유가증권을 시가 평가에 따라 수시로 처분해야 한다면 보험사가 자산 운용의 안정성을 어떻게 보장할 수 있겠느냐”면서 기존의 규정이 유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 관계자는 또 “시가기준으로 한도를 넘는 주식을 어느 날 갑자기 다 팔라고 한다면 그 보험을 믿고 돈을 맡긴 고객은 어떻게 되느냐”면서 “과거 적법하게 행한 법률행위를 인정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소속된 생명보험협회와 손해보험협회 역시 삼성생명의 편을 들고 있다. 양 협회는 “보험사의 계열사 주식투자 한도 규제 취지는 계열사에 대한 부당지원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을 내놨다. 즉, 부당 지원을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니만큼 가격이 변화되도 취지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얘기다.

아울러 사업 안정성 등의 이유로 삼성생명의 주장과 궤를 같이 하는 주장도 제기했다. 또한 일본과 미국의 뉴욕주 등 해외에서도 취득원가를 적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여당 역시 법적 안정성 측면 등에서 삼성생명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지난해 11월 정무위 여당 간사인 김용태 새누리당 의원은 ‘삼성생명법’에 대해 “정무위에서 논의할 수는 있지만, 처리해줄 생각은 전혀 없다”강한 반대 의사를 피력했다.

반면 이종걸 원내대표 측은 단기투자를 일삼는 은행·증권사와는 달라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보험사처럼 장기투자를 하는 국민연금도 시가 기준”이라고 반박했고, 해외 기준에 대해서도 “일본의 경우는 총자산도 취득원가 기준이라 우리나라와 다르고, 미국 뉴욕주의 경우는 자산운용비율 한도 규제가 아닌 취득 시점에서 취득 행위를 규제하는 것이라 규제 목적 자체가 다르다”고 지적했다.

◆반대 가세한 정부, 통과 전망 불투명
1년여가 넘게 팽팽한 대치 국면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그간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던 정부 및 금융당국은 최근 통과 반대로 돌아선 것으로 확인돼 사실상 여당의 의견과 함께 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국회 회의록에 따르면 최근 공식 취임한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논의가 이뤄졌던 정무위 법안소위에 출석해 “보험업은 장기 투자를 해야 하는 업종의 특성상 현행대로 취득원가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며 “이제와서 기준을 바꿔버리면 법적 안정성이 완전히 해이해져서 주가가 움직일 때마다 막 자산을 처분하고 다시 사들이는 큰 혼란이 예상된다”고 반대 뜻을 밝혔다.

이 같은 입장 변화는 그간 금융당국이 취해온 중간자적 입장과는 확연히 다른 것이다. 지난해 12월 법안소위에 상정될 당시 금융위는 “보험산업 발전과 보험계약자 이익 보호를 위해 여야정이 머리를 맞대고 대안을 마련할 수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금융위 관계자는 “사회적 공론화가 된 문제인 만큼, 국회에서 논의의 장이 열리면 이번에 짚고 넘어 갈 것”이라고 한 바 있다.

가뜩이나 여당이 반대 움직임을 강력히 고수하고 있는 상황에서 금융당국까지 반대 입장에 가세하면서 결국 끊임없는 지적을 받고 있는 삼성그룹의 지배구조는 여전히 ‘철옹성’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여당은 오히려 금산분리원칙에 따라 허용되지 않는 중간금융지주사를 허용해 제일모직-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를 합법화할 수 있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중간금융지주사법)을 추진하고 있어 야당과 엇갈리는 행보를 걷고 있다.

한 정무위 관계자는 “여야간 입장 차이가 크기 때문에 의견이 합치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했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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