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0억여원 과징금에 손배소 피소…공정위는 ‘담합 봐주기’ 의혹

▲ 7일 공정거래위원회가 한국가스공사가 발주한 주배관 관리소 건설공사 입찰에서 담합한 22개 건설사들에 1800억원에 육박하는 과징금을 부과했다. 한국가스공사 역시 손해배상소송을 청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뉴시스

공정거래위원회가 천연가스 주배관 건설공사 입찰 담합에 참여한 22개 건설사들에 1764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가운데, 한국가스공사가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고 국회 차원에서 비난이 제기되는 등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7일 공정거래위원회는 천연가스 주배관 관리소 건설공사 입찰에서 담합한 22개 건설사에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1746억1200만원을 부과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과징금 규모 순으로 살펴보면 현대건설이 362억원으로 가장 많은 과징금을 받게 됐다. 이어 한양 315억원, 삼성물산 292억원, SK건설 69억원, 현대중공업 69억원, 삼보종합건설 69억원의 순이었다.

아울러 두산중공업 62억원, GS건설 61억원, 포스코엔지니어링 59억원, 한화건설 57억원, 대우건설 57억원, 신한 55억원, 대림건설 55억원, 태영건설 54억원, 대보건설 50억원, 대한송유관공사 36억원, 삼환기업 7억원, 풍림건설 5억원, 금호산업 4억원이 뒤를 이었다.

다만 ‘성완종 리스트’ 파문의 경남기업과 동아건설산업, 쌍용건설 등 3개사에는 기업회생절차 등이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과징금이 부과되지 않았다. 대부분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 국내 굴지의 건설사들이 대다수 포함됐다.

이번에 담합이 적발된 공사는 해외 원산지에서 수입한 천연가스(LNG)를 전국의 발전소와 도시가스회사에 공급하는 주배관과 관리소를 건설하는 사업으로 모두 1조7600억여 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공정위에 따르면 이들 건설사들은 한국공사가 2009년의 1차 발주 16건과 2011~2012년에 걸친 2차 발주 10건 등을 포함한 총 27건의 공사에서 낙찰 예정자와 들러리 참여자를 정해 투찰가격을 사전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건설사들은 1차 발주인 2009년 발주에서는 공사구간을 나누고 담합 의심을 피하기 위해 투찰률을 80~83% 범위로 맞추고 추첨을 통해 결정했다. 낙찰이 예정됐던 건설사들은 들러리 참여사의 입찰서류를 직접 작성해 들러리 참여사에 전달하거나, 들러리 참여사에 들러 투찰 내역서 문서 파일의 정보를 직접 변경하기까지 한 것으로 나타났다.

2차 발주에서는 22개 건설사 모두가 한 번씩 수주될 때까지 추첨을 통해 낙찰자를 결정했고, 낙찰된 건설사는 다음 입찰에서는 들러리로 서는 등의 방식으로 수주 건수를 나눴다.

공정위 신영호 카르텔조사국장은 “대규모 국책사업에서 건설사들이 공사 구간을 배분하고 가격을 담합한 사실이 확인됐다”며 “공사비를 부풀린 만큼 세금이 낭비됐다”고 지적하고 “앞으로 공공사업 입찰 담합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고, 위반사항이 드러나면 법과 원칙에 따라 엄중히 제재하겠다”고 말했다.

◆가스공사, 손배소 제기에 입찰제한도 검토
발주처인 한국가스공사는 공정위의 조사 결과에 따라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겠다는 방침을 밝혀, 건설사들은 최대 수백억원의 과징금에 부담이 더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날 가스공사는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는 동시에 해당 건설사에 대한 입찰참가자격 제한 여부도 검토하겠다고 설명했다.

손해배상소송금액은 입찰담합으로 판명된 27개 주배관 공사들의 평균 낙찰률 약 84%와 이후 정상적인 경쟁입찰의 평균 낙찰률 약 70% 사이의 차이를 각 건설사 최종 계약금액에 적용해 산정할 예정이다.

가스공사는 이 같이 밝히면서 또한 “소송과 별개로 국가계약법에 근거해 각 건설사별로 담합 참여정도에 따라 최대 2년까지 공공기관 입찰참가자격을 제한할 수 있는 부정당업자 제재에 착수할 예정”이라고 부연했다.

가스공사는 “공정한 입찰질서 확립을 위해 꾸준히 제도를 개선하는 한편 담합의 징후를 포착하는 즉시 공정위에 신고할 계획”이라며 “투명하고 공정한 계약질서 확립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 하겠다”고 밝혔다. 

▲ 새정치민주연합 김기준 의원은 이날 “공정위가 조사를 게을리 해 2차 담합이 벌어졌다”며 공정위의 담합 봐주기 의혹을 제기하며 공정위를 향해 날선 비판을 보냈다. 사진 / 홍금표 기자

◆김기준 의원, 공정위의 담합 봐주기 의혹도 제기
한편 공정위가 이날 담합 결과를 발표했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라는 주장이 정치권에서도 제기돼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인 새정치민주연합 김기준 의원은 공정위가 조사를 게을리 해 2차 담합이 벌어졌다며 공정위의 ‘담합 봐주기’ 의혹을 제기했다.

김기준 의원은 “공정위, 입찰담합 의혹 묵살 제2의 담합 불렀다”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통해 “공정위는 2009년 1차 발주 당시 가스공사가 담합 의혹을 제기했음에도 제대로 조사하지 않아 2011~2012년 2차 발주의 담합을 막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김기준 의원에 따르면 한국가스공사는 2009년 10월 공정위 카르텔조사과에 “입찰담합 조사의뢰 요청 가능 여부 문의”라는 제목의 공문을 발송했다. 당시 민주당의 김재균 의원 역시 국회 국정감사에서 “한국가스공사가 발주한 배관망 건설공사의 낙찰률이 평균 84.64%에 달해 다른 관급봉사보다 훨씬 높다”면서 공정위의 조사를 촉구한 데 따른 것이다.

김기준 의원은 공정위가 이 당시 별 다른 조사를 하지 않고 넘어갔고, 2차 건설공사 입찰이 끝난 2012년 10월 가스공사가 재차 담합 의혹 제보가 들어왔음을 신고했음에도 1년 간 방치하다 2013년 10월에서야 조사를 착수해 이번 조사결과가 나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기준 의원은 “공정위가 2009년 10월 가스공사의 입찰담합 조사의뢰 요청 가능 여부 문의에 따라 즉각 조사에 나섰다면 2011~2012년 천연가스 주배관 공사 입찰담합은 없었을 것”이라며 “부당한 공동행위를 막아야 할 공정위가 수수방관하는 바람에 결과적으로 건설경기 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건설업체에 과징금 폭탄을 추가로 안기게 됐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공정위 신영호 카르텔조사국장은 “가스공사에서는 발주 이후 나타난 ‘낙찰률’에 대한 자료를 보냈을 뿐이고, 공문 역시 낙찰률을 통해 입찰 담합이 있는지의 여부를 봐달라는 질의에 불과했다”고 해명했다. 신영호 국장은 “이 정도로는 가스공사의 공문을 신고라고 인식하기는 곤란했고, 구체적인 혐의가 있다고 볼 수 있는 상황이 전혀 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