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진한 판매량…해외도, 국내도 어려워

▲ 현대·기아차가 1분기 부진한 실적을 기록했다. 판매량이 부진했다는 점이 1차적인 이유다. 해외시장에서는 엔저를 등에 업은 일본차의 약진이 무섭다. 국내시장에서는 수입차의 점유율이 높아지면서 점유율 70%선이 처음으로 깨졌다. ⓒ뉴시스

현대·기아차의 1분기 실적이 부진을 면치 못했다. 부진의 1차적인 이유는 판매 부진에 있다. 해외 시장에서는 엔저를 등에 업은 일본차의 성장에, 국내 시장에서는 수입차의 약진에 70% 점유율선도 무너지며 양 시장 모두에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 증권가들은 현대차의 실적 회복이 올해엔 힘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편, 일각에서는 현대차의 선호도 자체를 끌어올려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현대자동차의 올 1분기 매출액은 20조9428억원, 영업이익은 1조5880억 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각각 3.03%, 18.1%가 줄어들었다. 기아차 역시 역시 지난 1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보다 30.5% 급감한 5116억원으로 집계됐다. 매출액(11조 1780억원) 역시 6.3% 줄었다.

현대차는 “주요 수출국 통화인 유로화와 러시아 루블화 약세 등 환율 변동의 직격탄을 맞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유로화와 루블화의 1분기 평균 환율은 전년 동기와 비교해 각각 15.4%, 42.6% 떨어졌다.

현대차 실적 부진의 1차적인 이유는 판매 부진에 있다. 1분기 글로벌 판매 대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6% 감소한 118만 2834대에 그쳤다. 국내 시장에선 3.7% 줄어든 15만 4802대를, 해외 시장에서는 1년 전보다 3.6%가 준 102만 8032대를 팔았다.

◆엔저 공습에 해외시장 부진
해외 시장에서 판매가 줄어든 이유는 엔저를 등에 업은 일본차의 기세가 막강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일본차는 최근 엔저를 기반으로 더욱 막강해지고 있다. 미국 달러에 대한 일본 엔화 가치는 엔저가 시작된 2012년 9월 78엔 선에서 최근 118엔대까지 2년 만에 51%나 떨어졌다. 원·엔 환율도 904원대를 기록하고 있으며 호시탐탐 800원 선을 위협하고 있다. 반면 같은 기간 달러 대비 원화의 가치는 1123원대에서 1074원대로 4.5%가 올랐다.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에 분석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이 10원 하락할 때마다 국내 자동차산업의 매출액은 4200억원가량 감소한다. 실제로 엔저가 본격화된 지난 2년간(2012~2013년) 일본 자동차 업종의 수출 증가율은 12.8%에 달한다.

채현기 KTB투자증권 연구원은 “원·엔 환율이 10% 하락할 경우 국내 수출이 평균 4.6% 정도 감소할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일본과의 경합도가 높은 업종들의 수출가격 경쟁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차의 약진은 실적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도요타는 연결 재무제표 기준 2014년도 영업이익이 전년보다 17.8% 늘어난 2조7000억엔(약 24조8908억원)을 기록했다. 주가도 지난 2년 동안 51%나 뛰었다.

이하연 대신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엔화 약세로 수익성이 개선된 일본 기업이 수출품 단가를 낮추며 가격 경쟁력이 높아졌다”면서 “지난해 하반기 이후 일본 수출 물량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반면 국내 수출 물량은 최근 부진이 지속되고 있어 대조적”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원·엔 환율 하락으로 국내 수출 부진 지속과 수출 기업의 수익성 악화에 대한 불안이 확대되고 있다”며 “일본과 수출경합도가 높은 만큼 엔저로 인한 국내 수출품 가격 경쟁력 약화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 전문가들은 현대차가 내년이 되어야 회복세에 접어들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만큼 ‘부진의 늪’이 길어진다는 뜻이다. ⓒ뉴시스

◆수입차 약진에 내수시장 부진
국내 시장에서 판매가 줄어든 이유는 수입차의 약진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수입 신차의 국내 시장 점유율이 현재의 2배 정도인 27%까지 오를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리서치회사인 마케팅인사이트가 최근 1년간 새 차를 구입한 소비자 5500여명을 대상으로 구매 패턴과 재구매율 등을 조사한 결과 국산차의 점유율은 73%로 떨어지고 수입차의 점유율은 27%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흥미로운 점은 전체 조사 대상 중 수입차를 타다 국산차로 이동한 사람이 불과 1.7%로 집계됐다는 점이다. 이말인즉, 한번 수입차를 탄 사람은 다시 국산차로 돌아오는 일이 극히 드물다는 점이다.

지난 3월 수입차 신규 등록대수는 2만대를 넘어섰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지난 3월 수입차 신규등록대수가 전월대비 32.9% 증가한 2만 2280대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달 1만 5733대보다 41.6% 증가한 것이다. 1분기 누적 대수도 5만 8969대를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32.7% 늘었다.

수입차 물량은 2010년 10만5000여대에서 지난해 26만6000여대로 두배 이상 늘었다. 올 1분기 수입대수는 전년 동기보다 35%급증한 7만3587대다. 반면 국내 3사의 1분기 수출 물량은 지난해와 비슷한 15만8000여대에 그쳤다.

지난달 30일 자동차통계월보 조사를 보면 올해 1분기 수입차의 수입 총금액은 24억995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31% 증가했다.

한국GM·르노삼성자동차·쌍용자동차 3사 수출금액은 21억1778억 달러로 같은 기간 7.7% 감소했다. 분기별 수입차 수입 금액이 국내 3사의 수출 금액을 추월한 것은 이번이 최초다. 국내에 들어온 수입차의 금액이 이들 3사가 해외에 판매한 자동차 수준보다 많은 것이다. 업체별로는 한국GM이 13억8167만달러, 르노삼성 5억4940억달러, 쌍용차 1억8670달러 등이다.

지난해 수입차 수입액은 88억 달러로 한국GM·르노삼성차·쌍용차의 수출금액 90억8200만 달러에 못 미쳤다. 하지만 올해 들어 수입차 점유율이 부쩍 높아지면서 역전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수입차 점유율도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승용차 시장에서 수입차 비중은 3월 한 달 기준 17.6%나 차지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올해 안에 수입차 점유율이 20%를 넘어설 것으로 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한편 중고차 시장에서도 수입차량의 등록대수가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중고차 온라인판매 업체 SK엔카에 올해 1~4월 등록된 수입 중고차는 지난해 같은 기간 4만 5500대보다 11.6% 증가한 5만 800여대에 달한다. 

▲ 일각에서는 ‘안티 현대차’의 기조를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한다. 현대차 자체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30대 고객의 현대차 선호도는 22%에 그쳤다. 반면 독일 브랜드인 메르세데스-벤츠는 58%, BMW는 52%, 폭스바겐(아우디 포함)그룹은 40%였다. ⓒ뉴시스

◆‘최후의 보루’ 내수 시장 사정도 안 좋아
마지막 보루인 내수 시장의 사정은 더 좋지 않다. 날이 갈수록 높아지는 수입차 선호도에 현대·기아차의 지난해 국내 자동차 시장 점유율은 기아차 인수한 1998년 이후 처음으로 70% 밑으로 떨어졌다.

지난해 현대차의 국내 시장 점유율은 41.3%, 기아차는 28.0%를 기록해 두 회사를 합친 내수 시장 점유율은 69.3%다. 현대차그룹은 1998년 12월 기아차를 인수하고서 몇 차례 고비가 있었지만 지난해까지는 줄곧 국내 점유율 70%대를 유지해 왔지만 최초로 70%선이 붕괴된 것이다.

현대자동차가 신형 투싼을 제외한 주력 모델이 인기를 끌지 못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는 4월 내수 6만3천50대, 해외 37만3천809대 등 총 43만6천859대의 판매량을 올렸다고 4일 밝혔다. 작년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각각 4.3%, 0.1%, 0.8% 감소했다.

엑센트(-27.9%)와 쏘나타(-45.1%), 싼타페(-27.1%) 등 주력 모델은 전년보다 판매량이 줄었다. 현대차의 전체 승용차 판매는 15.4% 감소한 3만1천102대였다.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에서는 지난 3월 출시된 투싼 덕에 1만5천838대로 28% 증가했다. 투싼을 제외한 다른 SUV는 모두 판매량이 줄었다.

투싼은 지난달 전년보다 2.7배 늘어난 9천255대(구형 모델 618대 포함) 팔리며 국내 SUV 판매 1위를 기록했다. 누적계약 대수가 1만9천대(4월 기준)에 달해 당분간 판매 호조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현대차는 내다봤다. 그랜드 스타렉스와 포터를 더한 소형 사용차는 1.5% 증가한 1만4천102대, 중대형버스와 트럭을 합한 대형 상용차는 30.3% 줄어든 2천8대 팔렸다.

현대차 관계자는 “신형 투싼 등 신차효과와 주요 차종에 대한 판촉을 지속해 국내 시장에서 판매량을 늘리겠다”고 말했다.

증권가에서는 현대차가 빠진 ‘부진의 늪’을 단기간에 벗어나기란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최원경 키움증권 애널리스트는 “2분기에는 공장 출하가 정상화되며 완만한 회복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며 “다만 이익에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요인인 인센티브 증가, 환율, 승용차 시장의 경쟁격화 등으로 인해 2분기에도 전년 동기대비 이익이 증가하기는 다소 어려울 것으로 생각된다”고 설명했다.

김평모 동부증권 애널리스트는 “올해는 와신상담의 해”라며 “신흥국 환율이 점차 안정세를 찾아가고 있음을 고려하면 이는 내년 이후 해당 지역 내 브랜드 지위 강화 및 이익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미국, 유럽 및 중국 등 주요시장에서 인센티브를 확대할 계획임을 감안하면 해당 지역 내 시장점유율 역시 본격적인 반등이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안티 현대차’ 정서 벗어야
일각에서는 젊은 소비층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는 ‘안티 현대차’ 정서를 타파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현대차 자체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30대 고객의 현대차 선호도는 22%에 그쳤다. 반면 독일 브랜드인 메르세데스-벤츠는 58%, BMW는 52%, 폭스바겐(아우디 포함)그룹은 40%였다.

김용구 삼성증권 연구원은 “한번 수입차로 떠나간 소비자가 국산차로 다시 돌아올 가능성은 희박한 게 현실”이라면서 “수출품 대비 내수용 자동차의 품질 논란과 연비 및 주행 성능에 대한 지적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는 국내영업본부에 소비자 전담 조직인 국내커뮤니케이션실을 만들고, 동호회 회원을 대상으로 시승 행사를 개최하는 등 ‘안티 현대차’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당장 ‘안티 현대차’ 기조가 사라질지는 미지수다.

현영석 한남대 경영학과 교수는 “현대차가 젊은이들 인식을 되돌려 놓기 위해서는 획기적인 뭔가를 내놔야 한다. 수입차 성능에 못지않은 신차를 내놓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일본차들이 과거 자국에 공장을 더 짓고 일자리를 늘린 것처럼 현대차도 국내에 공장을 증설하고 채용을 확대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당장 비용이 더 들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이득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 시사포커스 / 정주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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