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당 각 진영들 새판짜기 분주

광역단체장 12:1, 기초단체장 159:21의 결과로 5.31 지방선거가 끝났다. 사상 유례 없는 여당의 참패에 열린우리당은 침통함을 넘어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고, 한나라당은 축제의 분위기에 휩싸였다.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 지난 연말 당으로 복귀한 정동영 의장은 측근들에게 5ㆍ31선거 이후에 대해 미리 고민을 토로한 적이 있었다. 정 의장의 이런 ‘고민’은 현실로 나타나고 말았다. 급기야 정동영 의장은 지난 25일 유세를 중단하고 가진 의원·주요당직자 비상 총회에서 “이대로 가면 서울에서 제주까지 한나라당이 싹쓸이하게 될 텐데 이는 지방자치 11년의 위기이자 민주주의의 위기”라며 ‘한나라당의 싹쓸이를 막아달라’고 국민에게 머리를 숙였지만 오히려 역풍이 되어 그에게 되돌아 왔다. 바로 지난 95년 지방자치 선거가 열린 이래 여당의 참패가 정 의장과 열린우리당이 받아든 성적표다. 1일 정 의장은 당사 기자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선거참패 책임을 지고 사퇴한다"고 밝혔다. 지난 2.18 전당대회를 통해 취임한 이후 3달 정확히 104일 만이다. 이로써 열린우리당은 창당 2년 5개월만에 8번째 의장사퇴 상황을 맞게 됐다. 일각에서는 정 의장이 선거 패배에 따른 탈출구를 모색한 것이라는 분석마저 나오고 있다. 그래서 다른 계파에서는 “패배주의”, “책임론을 감안한 내부 단속용”이라고 쓴 소리를 내기도 했다. ◆선거 전부터 분열, “당 운명 어떻게” 25일 밝힌 열린우리당은 정동영 의장의 ‘지방선거 후 정계개편 추진’ 발언을 놓고 선거 전부터 심각한 내분 양상을 보였었다. 바로 김두관 열린우리당 최고위원이 28일 경남 창원시 경남도청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의 정치적 장래를 위해 당을 사사로이 농락하는 사람들은 정계개편을 말하기에 앞서 책임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투표일 전까지 스스로 거취를 분명하게 표명하길 요구한다”며 정 의장의 사퇴를 요구했었다. 김 최고위원은 또 “창당 초심을 훼손하는 사람과 세력은 더 이상 당에 있을 이유가 없다”며 정 의장의 탈당까지 촉구했다. 또한 지난 27일에는 이강철 대통령정무특보가 개인 명의의 성명이었지만 “정계개편이나 합당 같은 정치적 꼼수로 국민의 회초리를 피하기보다는 먼저 바지를 걷어올리며 반성해야 한다”며 “정계개편이나 합당은 정치권의 필요에 따라 정략적으로 이용돼서는 안 된다”며 정 의장과 뚜렷한 대립각을 세웠었다. 대통령정무특보를 지낸 김 후보와 이 특보는 노무현 대통령과 가까운 친노 직계인사들이다. 이러한 발언들로 볼때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정 의장계를 비롯한 당권파와 친노 진영 간에 지도부 사퇴 및 정계개편 추진 문제를 놓고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당시 여당 의원들은 계파에 상관 없이 김 최고위원의 발언이 부적절했다고 지적했다. 김 최고위원과 유시민 장관이 몸담았던 ‘참정연’도 “지금은 지방선거에 최선을 다할 때”라며 비판적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결국 여당은 선거에서 졌다. 이렇게 되자 우리당은 내부적으로는 선거 패배 이후 계파별로 활로를 찾기에 분주한 모습이 감지된다. 5ㆍ31 이후를 대비해 자신이 속한 계파의 결속을 다지면서 정국지형의 변화에 대비해 발 빠른 행보를 모색하고 있다. 의원들 역시‘어느 정파에 몸을 실어야 할지, 당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를 고민하면서 앞으로의 정국을 주시 하고 있다. ◆정동영 의장의 행보는? 정동영 의장은 5.31 지방선거 참패로 정치입문 10년 만에 최대 정치적 위기에 봉착하게 됐다. 정 의장의 정치 출발은 화려했다. 방송사 앵커출신의 준수한 용모와 개혁 이미지, 그리고 자신의 장기인 대중연설을 앞세워 재선이지만 집권당 의장에까지 오르는 승승장구를 이어왔다. 지난 96년 제15대 총선을 앞두고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해 대변인으로 화려하게 등장한 정동영 의장은 당시 총선에서 전국 최다득표를 기록하는 등 정치 입문때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왔다. 하지만 5.31 지방선거에서 패하면서 결국 정치일선에서 물러나게 됐다. 당장 열린우리당은 정동영 의장의 퇴진을 계기로 이른바 정동영계와 친노진영간의 힘겨루기 양상이 재연되는 등 균열 조짐이 확대되고 있다. 실제로 지방선거 사흘전에 제기된 친노 인사인 김두관 최고위원의 정 의장 탈당 요구등이 앞으로 당권파로 통칭되는 정동영 의장 진영 인사들의 동요 움직임을 야기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나아가 정 의장이 7월로 예정된 국회의원 재ㆍ보궐선거에서 신계륜 전 의원 지역구인 ‘성북을’에 직접 출마하는 방안도 신중히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 측근은 “정 의장이 계급장을 떼고 야인으로 남는 것은 1년 반이나 남은 대선레이스에서 매우 불리하다”면서 “현재로선 성북을 출마가 유일한 돌파구”라고 강조했다. ◆우리당 선거 후폭풍, 후임 지도부 구성 실패 우리당내 양대 세력을 구축하며 이번 선거를 이끈 정동영 의장과 김근태 최고 위원은 선거패배에 따른 책임론 이라는 후폭풍에 휘청거리고 있다. 당 지도부가 흔들리자 우리당도 같이 침몰하고 있다. 지도부는 "어려울 때일수록 뭉치자"며 발 빠르게 당 내부 수습을 꾀하고 나섰지만 이번 선거참패에 따른 심리적 충격파가 워낙 큰 탓에 당 전체가 구심점과 방향감각을 상실한 듯한 대혼돈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당장 사태수습의 첫 단추인 후임 지도체제 정비가 시급한 과제로 부상했다. 사태 해결을 위해 당 지도부는 1일 오전 9시부터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갖고 후임 지도체제를 포함한 당 수습방안을 논의했으나 최고위원들 사이에 이견이 너무 커 끝내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우상호 대변인은 오전 브리핑에서 "최고위원들이 난상토론을 벌였으나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며 "오는 5일 오후 국회의원과 중앙위원 연석회의를 열어 최종 결론을 내리기로 했다"고 밝혔다. 결론을 내리지 못한 것에 대해 우 대변인은 "(후임 지도체제를 놓고) 최고위원들간에 의견차이가 있고 중대한 문제는 당내외 의견을 수렴해 결정해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퇴 기자회견을 하기 전 회의에 참석한 정동영 의장은 후임 지도체제로 `김근태 최고위원 승계' 방안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 의장 본인은 당 대표로서 선거패배의 총체적 책임을 지면서 사퇴하고 그 대신 2.18 전대의 차(次)순위자인 김 최고위원이 `비상대권'을 승계하자는 해법을 제시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어제 정동영 의장은 김근태 최고위원과 독대를 하면서 ‘질서 있게 수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 졌다. 이에 대해 김근태 최고위원 본인도 책임을 통감하고 있기 때문에 상당히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한편 모든 최고위원은 사퇴하는 것이 당의 위기상황을 수습하는 최선인지에 대해 무거운 고뇌를 하고 있다. 이는 현 상황에서 무작정 당의 사령탑인 최고위원단이 동반사퇴할 경우 `지도부 공백' 상태로 인해 당이 심각한 분열과 혼란상태에 빠져들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일종의 `연착륙' 시도로 풀이된다. 정 의장의 한 측근은 "당이 위기에 직면하기는 했지만 당이 책임있고 질서있게 수습하는 모습을 보이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두관 최고위원도 "원래 선거가 끝나면 지도부 전체가 책임지는 것이 원칙이지만 지금 당 상황이 너무 엄중하다"며 "김근태 최고위원이 승계해 당을 운영하는게 맞다고 본다"고 지지의사를 보였다. 하지만 김혁규 최고위원은 "지도부 전원이 책임지고 물러나야 한다"며 총사퇴론과 비상대책위원회의 구성 방안을 제시했다. 김 최고위원은 "선거에 참패한 당의 지도부가 그대로 눌러 앉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또 하나의 과오"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김근태 최고위원은 회의에서 즉각적인 입장표명을 자제한 채 최고위원들의 의견을 들으며 막판까지 심사숙고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후문이다. 김 최고위원은 "5일까지 숙고하고 고뇌하면서 주변 의견을 듣고 결론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전반적인 당내 분위기는 `김근태 최고위원 승계'가 가장 현실적 해법이라는 쪽으로 모아지고 있는 분위기다. 우리당의 한 당직자는 "지금 지도부 사퇴후 비대위 구성이라는 공식이 먹혀들만한 당 상황이 아니라는데 대체로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며 "지금은 어떤 식으로든 더 큰 분열을 막는데 힘을 쏟아야 할때"라고 말했다. 당내 계파나 그룹들은 당장은 선거패배의 충격 속에서 즉자적 대응을 자제하려는 모습이지만 이날 낮부터 속속 모임을 가지면서 당 수습방향과 당 진로문제를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선거막판 당내 갈등의 뇌관으로 떠올랐던 `민주개혁세력 대연합' 논란은 일단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당초 정 의장의 대연합론에 강력히 반발했던 김두관 최고위원은 "부딪히면 주장하고 싸워야 하죠"라고 하면서도 "하지만 새 체제가 잘 안착될 수 있도록 도와야한다"고 당장 공론화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김근태 최고위원도 대연합론이 국민들에게 `정략적 접근'으로 비쳐질 것을 우려해 조기 추진할 의사가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앞으로 당 체제 정비와 진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대연합론을 둘러싼 당내 갈등이 수면위로 떠오를 것 이라는게 당 주변의 지배적인 예상이다. ◆개헌이라는 카드 꺼내 들까 여권 수뇌부는 올 하반기에 개헌론을 제기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당 의원들은 수개월 전부터 개헌을 검토해 왔고, 9월 정기국회 전에 개헌문제를 공론화한 뒤 내년 상반기에 개헌을 완료해야 한다는 시간표를 마련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개헌이 정치판 지각변동의 연결고리로 급부상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우리당 핵심 의원은 “퇴임한 김원기 전 국회의장의 행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면서 “김 전 의장이 여당으로 바로 복귀하지 않고 개헌 추진에 전력을 다할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개헌은 대통령 4년 중임제와 내각제의 두 방향으로 진행될 수 있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와 이명박 서울시장은 차기정권에서 개헌을 검토하자는 입장이지만 영토조항 등은 손대지 않고 권력구조만 바꿀 경우 결국 동의할 것이라는 게 여당의 판단이다. 최근 들어 우리당에서 내각제 개헌론자들이 부쩍 늘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한 의원은 “여권이 현 구도로 대선에서 승산이 없다고 판단되면 내각제를 매개로 정치권 재편을 시도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한나라당에도 내각제를 선호하는 의원들이 많다”고 말했다. ◆각 계파별 '대안 찾기' 분주 정계개편 추진과정에서 고건 전 총리의 지분은 상당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대선주자 지지율 선두를 다투고 있는 그의 선택은 정치권 빅뱅의 방향과 크기를 결정지을 수 있는 변수다. 고 전 총리는 조만간 자신의 입장을 담은 논평을 낼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 측근은 “논평을 들여다보면 향후 행보를 대략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고 전 총리가 우리당 정동영 의장이 제안한 민주세력 대연합을 수용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주변 인사들의 말을 종합하면 고 전 총리는 특정 정당의 협력이나 입당 요청에 응하는 방식은 선호하지 않고 있다. 대신 자신이 주장한 ‘중도개혁실용주의 세력연대’로 세력이 결집되기를 바라고 있다. 또 다른 측근은 “이 연대에 찬성하는 세력이라면 누구에게나 문을 열겠다는 게 고 전 총리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고 전 총리는 우선적으로 자신을 대선주자로 옹립할 세력을 묶어 정치결사체를 조직할 가능성이 크다. 이어 우리당과 민주당 등의 이탈 세력을 규합해 자체 신당을 만든 뒤 본격적인 대선경쟁에 뛰어 들것으로 볼 수 있다. 여기에 당내 또 다른 축인 친노 그룹의 행보도 주목된다. 이광철, 유기홍 의원 등이 속한 ‘참여정치연구회’(참정연)와 이광재ㆍ이화영 의원 등이 속한 ‘의정연구센터’(의정연)는 여유를 갖고 지방선거 이후를 준비하고 있다. 선거 패배의 후폭풍에서 몸을 피할 수 있는 참정연은 지난 4월부터 내부에‘준비위원회’를 꾸려 지방선거 패배 후 아젠다 설정문제, 차기 주자 진영의 행보, 하반기 정국에서의 진로 설정 등을 주요 의제로 삼아 논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참정연은 5ㆍ31 직후 호남 의원들의 동요와 이탈 등 소란스런 국면이 전개되겠지만 대선 주자그룹의 분당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고건 전 총리, 민주당 등과의 연대가 구체적으로 추진될 경우 노무현 대통령과의 관계를 어떻게 정리할지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의정연은 노 대통령의 최측근인 이광재 의원이 상당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한다. 의정연 내부에서는 차기 대선에서 CEO 후보도 구상하고 있다는 소문도 떠돈다. 지난 1월 당의 균형추 역할을 자임하고 발족한 ‘소통과 화합의 광장’(광장모임)의 행보도 주목된다. 문희상ㆍ유인태ㆍ원혜영 의원 등 중진이 중심을 이룬 광장모임은 지방선거 국면에서 한 발을 뺀 채 5ㆍ31 이후 당의 중심을 잡을 세력을 형성하는데 주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당의 세력 판도는 크게 대권을 겨냥한 정동영, 김근태계와 ‘제3 후보’를 모색하는 친노그룹, 광장모임 등으로 구분된다. 이들은 대선을 겨냥한 민주세력 연대론을 둘러싸고 치열한 주도권 다툼과 생존게임을 벌일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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