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수함 평가 비리 의혹에 2차 압수수색…‘사면초가’

 

▲ 지난 2006년 진수식을 가진 KSS-II 1차 사업 1번함인 214급 잠수함 손원일함. 해군을 창설한 초대 제독의 이름을 딴 손원일함은 현대중공업이 치열한 수주전 끝에 건조했으나 인도 과정에서 비리가 불거져 압수수색까지 이뤄졌다. ⓒ국방홍보원

최근 서울지방국세청이 이례적으로 관할을 떠나 직접 세무조사를 개시해 뒷말이 무성한 현대중공업이 방산 비리 혐의로 울산 공장이 2차 압수수색을 당하는 ‘굴욕’까지 겪으며, 최악이었던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난 16일 저녁 방위사업비리 정부합동수사단(단장 김기동 검사장)은 해군 잠수함 부실 평가 비리 의혹을 받고 있는 현대중공업 울산 공장에 검사와 수사관 10여명을 보내 특수선사업부와 인력개발부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합수단은 잠수함 건조 및 인도와 관련된 시험·성능평가 자료와 컴퓨터 하드디스크, USB 등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중공업의 압수수색 중심에는 잠수함 평가에서 특혜를 받고 군 장교를 간부로 채용했다는 의혹이 자리잡고 있다. 합수단은 현대중공업이 잠수함을 인도할 때 진행하는 평가에서 적정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음에도 편의를 제공받고, 대신 평가 과정에 참여한 군 장교들을 간부사원으로 채용해준 혐의를 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합수단에 따르면 7~8명에 달하는 군 관계자가 이러한 방식으로 현대중공업에 취업했다는 정황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합수단은 지난 2월에도 해당 혐의를 받는 해군 대령 출신 임모 씨의 현대중공업 사무실에 압수수색을 펼치기도 했다.

◆현대重 겨눈 합수단, 중심엔 KSS-II
지난해 11월 21일 검사 16명을 포함해 105명이라는 사상 최대의 인력을 갖추고 출범한 합수단은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말 국회 시정연설에서 “방위·군납비리는 안보누수이고 이적행위”라고 직설적으로 비판한지 20여일만에 검찰, 군기무사·정보사, 군검찰, 감사원, 국세청 등 사정기관을 총동원해 조직을 구성하고 본격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까지 나온 합수단의 성과에 대해 괄목할 만한 성과가 없다는 말이 많은 상황이긴 하지만, 지난 2월에 이어 이번에 재차 현대중공업을 압수수색한 것은 의미가 작지 않다는 평가다. 현대중공업이 맡았던 잠수함 사업은 이명박 정부 당시의 거물급 로비스트가 활약했을 것으로 꼽히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2000년 12월 1800t급 신형 잠수함인 214급 잠수함 3척의 국내 건조 입찰에서 수주에 성공했는데, 이 과정에서 대우조선해양(당시 대우중공업)과 경쟁을 펼쳤다. KSS-II(장보고-II) 1차 사업으로 불린 이 사업은 3척을 2009년까지 건조하는 것을 목표로 했는데, 현대중공업은 독일에서 건조한 209급 잠수함과 달리 처음부터 자체 기술로 잠수함을 건조하는 데 성공했다고 알려졌다.

당시 잠수함 건조 실적이 없던 현대중공업이 KSS-II 1차 사업을 수주하는 데 성공한 것은 업계에 놀라움을 가져왔다. 앞서 대우조선해양이 첫 잠수함 사업이었던 209급 잠수합 9척을 건조한 바 있어 대우조선해양의 우세가 점쳐졌기 때문이다. 대우조선해양은 현대중공업이 적정 건조비 3000억원에 훨씬 못 미치는 800억원에 입찰한 것을 두고 문제를 제기했으나 결국 KSS-II 1차 사업은 현대중공업에 돌아갔다.

입찰 과정에서도 잡음이 일었다. 당초 KSS-II 1차 사업은 KSS-I 사업을 따냇던 대우조선해양 측과의 수의계약으로 추진되다가, 1997년 이후 이 같은 움직임을 감지한 현대중공업 측에서 법적대응까지 불사하자 경쟁입찰로 바뀌었다. 현대중공업은 더 이상 잠수함 사업을 대우조선해양에 빼앗기면 앞으로 잠수함 기술을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상대적으로 저가에 입찰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이 문제는 법정 다툼까지 일었다. 대우조선해양은 2000년 11월 서울지방법원에 계약체결 청구권 가처분신청을 내는 등 사업자 선정에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했지만 결국 대우조선해양 측에서 가처분신청을 취하하면서 논쟁이 일단락됐다. 

▲ 지난 2009년 취역식을 가진 KSS-II 1차 사업 3번함인 214급 잠수함 안중근함의 진수식 모습. 1~3번함의 취역이 끝난 직후 평가를 담당한 해군 대령 임모 씨가 현대중공업의 부장으로 입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특혜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다. ⓒ국방홍보원

◆평가 담당 해군 대령, 현대重 부장 입사?
이에 따라 KSS-II 1차 사업에 포함된 1~3번함인 손원일함, 정지함, 안중근함은 발주를 마친 이후 각각 지난 2006~2008년에 진수돼 2007~2009년 취역했다. KSS-II에 포함된 나머지 6척은 대우조선해양과 현대중공업이 1척씩 번갈아가면서 수주해 KSS-II 사업에서 현대중공업은 총 6척, 대우조선해양은 3척을 수주했다.

이중 4번함 김좌진함은 2013년 8월 진수해 2014년 12월 취역했고, 5번함 윤봉길함은 지난해 7월 진수돼 올해 말 인도될 예정이다. 올해 진수될 예정인 6번함은 ‘유’와 ‘류’의 선택을 놓고 갈등이 빚어진 끝에 ‘유관순함’으로 명명됐고 이달 말 진수식을 열고 내년 말에 해군에 인도될 예정이다. 7~9번함은 현재 건조 중이며 최대 2018년까지 인도가 마무리될 예정에 있다.

이번에 현대중공업의 비리 혐의가 불거진 것은 1차 사업에서 수주했던 1~3번함인 손원일함, 정지함, 안중근함이다. 당시 1~3번함은 현대중공업의 첫 잠수함 도전이었던 만큼 해군에 인도될 당시 적정 평가 기준을 갖추지 못했으나, 현대중공업이 로비스트를 통해 핵심 성능 평가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군 당국에 로비를 했다는 의혹이다.

지난해 말 감사원으로부터 관련 자료를 넘겨 받은 합수단은 지난 2월 6일 이를 밝히기 위해 현대중공업 울산공장의 특수산사업부 사무실과 임원 임모 씨의 자택 등 2~3곳을 압수수색했다. 특히 임모 씨는 해군 대령 출신으로 해군 제9잠수함전단(현 잠수함사령부)에서 근무했는데, 1~3번함을 넘겨받는 인수평가 실무를 담당했다.

◆합수단, 인력부도 압수수색…추가 사례 나오나
의혹의 핵심은 현대중공업이 임모 씨에게 청탁을 했고, 인수평가 과정에서 연료 전지 등 핵심 부품의 성능이 평가 기준에 미치지 못하자 임 씨가 이를 통과시키기 위해 평가 방법을 바꾸는 등 각종 편의를 봐주고 현대중공업의 간부급으로 취직했다는 데 있다. 임 씨는 1~3번함의 인도가 끝난 2010년 3월 부장급으로 현대중공업에 영입됐다. 3번함인 안중근함이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9년 12월 인도를 마치고 취역식을 가진 지 4개월 후다.

이는 현대중공업보다 한 발 앞서 잠수함 사업에 뛰어든 대우조선해양의 의혹과도 유사하다. 앞서 KSS-I 사업에서도 대우조선해양과 현대중공업은 대결구도를 형성한 바 있는데, 당시 양사는 해군 예비역 장성급들을 영입하기 위해 장외에서 치열한 경쟁을 펼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과정에서 대우조선해양에 스카우트된 동해 제1함대 박동규 사령관은 대우조선해양의 낙찰 이후 대우조선해양 특수선사업부로 입사해 바로 상무이사를 달았고 승승장구한 끝에 소장까지 역임했다.

합수단은 현대중공업에 이 같은 사례가 6~7명 정도 더 있다는 정황을 확보하고 이번 2차 압수수색에서는 인력개발부를 추가로 압수수색했다. 합수단은 이들이 현대중공업에 재취업한 것이 ‘부정처사후 수뢰’에도 해당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합수단 관계자는 “예비역 장교들이 현대중공업에서 어떤 업무를 맡았는지 확인해야 대가성 등을 확인할 수 있어 인력개발부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1차 압수수색 당시까지만 해도 현대중공업의 대주주가 정몽준 전 새누리당 의원이라는 점에서 합수단이 적극적인 수사를 펼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측했지만, 현재 상황은 180도 바뀐 상태다. 고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의 자살로 촉발된 현 정권의 위기가 ‘부패와의 척결’로 재미를 본 기억을 다시 한 번 떠올릴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미 포스코가 강도높은 수사로 크게 낭패를 본 상황을 감안해보면 이번에는 현대중공업의 위기가 시작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감지된다. 

▲ 현재 세무조사에 대한 의혹과 대규모 희망퇴직의 여파로 몸살을 앓고 있는 현대중공업으로서는 이번 2차 압수수색에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시사포커스>와의 통화에서 “현재로써는 입장을 밝히는 것이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며 말을 아꼈다. ⓒ현대중공업

◆현대重 “세무조사도 힘든데”…‘사면초가’
가뜩이나 정기 세무조사로도 진땀을 흘리고 있는 현대중공업으로서는 이번 압수수색이 난감할 수밖에 없다.

지난 1일 저녁 국세청이 현대중공업 울산 본사에 인력을 세무조사를 개시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세간에서 온갖 추측을 내놓기 시작했다. 지난 2010년 이후 5년 만의 세무조사이고 국세청의 정기 세무조사를 담당하는 조사1국이 투입됐다는 점에서 현대중공업은 정기 세무조사라며 확대 해석에 손사레를 쳤지만, 미심쩍은 구석이 많아 아직까지도 의혹이 해소되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우선 지난해 2월 국세청은 납품단가 비리 혐의를 받던 조선업체에 대한 검찰 수사가 마무리된 후 세무조사에 착수할 것이라는 보도에 대한 해명을 하는 과정에서 “2013년부터 조선·건설·해운 등 어려운 경제여건에 특히 영향을 많이 받는 업종에 대해서는 세무조사를 자제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따라서 조선업계의 불황이 여전한 가운데 국세청이 세무조사를 감행한 것은 어떤 혐의가 포착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될 수 있는 대목이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창사 이래 최악의 규모인 3조원의 적자를 냈고 천여 명이 넘는 인원을 희망퇴직으로 감축했으며 사업부 슬림화에 구슬땀을 쏟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보통 세무조사를 잘 하지 않는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의 전언이다.

더구나 울산에 본사가 있는데 관할청인 부산지방국세청과 함께 서울에 있는 서울지방국세청이 직접 세무조사에 나섰다는 점도 의문의 핵심이다. 이번에 투입된 조사1국은 정기 세무조사를 담당하기는 하지만 대기업 비리 등을 담당하는 서울지방국세청의 핵심 부서다.

당시 국세청은 “세무조사에 전문성이 있는 서울청의 조사관들이 해외자금거래와 계열사 내부거래를 면밀히 들여다 볼 것”이라고 밝히며 “사전조사에서 현대중공업의 해외 자금 거래에 많은 문제점이 드러났고 계열사와의 부당 내부거래도 상당한 것으로 파악돼 대규모 인력을 투입하게 됐다”고 말했다.

◆현대重, 잇단 악재에 ‘울상’
가뜩이나 대규모 희망퇴직의 여파로 안팎에서 몸살을 겪고 있는 와중에 여러 정황상 이례적으로 강도 높은 세무조사가 진행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 상황에서 2차 압수수색까지 진행되자 현대중공업은 난감한 기색이다.

17일 현대중공업은 유가증권시장에서 전날 압수수색 소식의 여파로 6000원(4.01%) 떨어진 14만3500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전날까지 현대중공업 주가는 10거래일 연속 상승해 왔다. 세무조사 소식이 전해졌던 지난 1일에도 2500원(2.05%)라는 큰 낙폭을 보였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이날 <시사포커스>와의 통화에서 “해당 혐의로 지난 2월에 진행된 압수수색이나 이번 2차 압수수색 조사과정에서 딱히 합수단으로부터 통보받은 내용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추가로 다른 사례에 대한 혐의가 포착된 것에 대한 질문에도 “현재 수사에 성실히 협조하고 있으며 조사가 끝나기 전에 어떠한 입장을 내놓는 것은 옳지 않은 것 같다”면서 말을 아꼈다.

또한 그는 세무조사에 대해서도 “정기 세무조사로 알고 있으며, 범위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정기 세무조사인 만큼 4개월 정도 소요될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조사 내용에 대해서는 조사에 성실히 협조하고 있는 만큼 조사가 끝나기 전에 입장을 표명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고 답했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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