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게모니 싸움, 분쟁 재발 가능성 있어

▲ 세탁기 파손 혐의를 받은 조성진 LG전자 HA부문 사장은 단순히 제품 테스트를 했을 뿐이라며 고의 파손을 부인했다. ⓒ뉴시스

세탁기 분쟁으로 시작된 삼성전자와 LG전자간 분쟁이 양측의 종료합의로 일단락됐다. 그러나 두 기업간 헤게모니 싸움으로 언제든지 분쟁이 재발할 수 있어 일시적 평화일 뿐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2일 삼성전자-LG전자에 따르면, 양사는 지난달 31일 그동안의 분쟁을 종료하기로 합의했다. 또한 양측은 앞으로 사업수행 과정에서 갈등과 분쟁이 생길 경우 법적 조치를 지양하고, 대화와 협의를 통해 원만히 해결하기로 했다.

양측은 공동 보도자료를 통해 “이번 합의는 엄중한 국가경제 상황을 슬기롭게 헤쳐나가는데 힘을 모으고, 소비자들을 위해 제품과 서비스를 향상시키는데 주력하자는 최고경영진의 대승적인 결정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양측은 이에 따라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 대해 고소 취하 등 필요한 절차를 밟고, 관계당국에도 선처를 요청할 계획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시사포커스>와 통화에서 “보도자료가 나간 그대로고 추가로 말할 내용은 없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간의 분쟁은 지난해 9월 세계 가전 전시회 IFA2014가 열린 독일 베를린에서 시작됐다.

LG전자 한 연구원 삼성 세탁기 파손서 LG전자 압수수색까지

지난해 9월4일 IFA2014가 열린 독일 베를린의 가전제품 양판점에서 삼성전자 세탁기가 파손되는 일이 발생했다. 파손자로 지목된 사람은 바로 LG전자 연구원이었다.

LG전자 연구원 A 씨는 직원들과 함께 가전제품 양판점을 찾았다. 이곳에서 A 씨 일행은 자사 제품과 경쟁사 제품을 비교했다. 이 과정에서 삼성전자의 크리스털 블루 세탁기 문의 연결부가 파손됐다.

매장 직원은 곧장 경찰에 신고했고, 출동한 경찰은 A 씨의 신분확인을 벌였다. A 씨 일행은 파손 혐의를 부인했다. 하지만 양판점 직원들은 A 씨 일행이 열어둔 세탁기의 문을 힘껏 눌러 잘 닫히지 않을 정도로 파손됐다고 주장했다.

LG전자 측은 파손된 제품을 모두 구매하는 것으로 매장 측과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LG전자 측은 “어떤 회사든 연구원들이 해외출장 시 현지 매장을 방문해 자사는 물론 경쟁사 제품의 사용 환경을 알아보는 것은 매우 일반적인 활동”이라고 논란을 일축했다.

▲ 삼성전자가 지난해 9월 세계 가전 전시회 IFA2014가 열린 독일 베를린에서조성진 LG전자 HA부문 사장이 자사의 세탁기를 파손시켰다며 조성진 사장을 상대로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LG전자

그러나 LG전자 연구원 A 씨가 사실은 조성진 LG전자 홈어플라이언스(HA) 사업본부 사장이라고 밝혀지면서 논란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삼성전자가 자사의 세탁기를 파손시켰다며 조성진 사장을 상대로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검찰은 조 사장을 소환했지만 조 사장은 응하지 않았다. 이에 검찰은 조성진 사장이 수차례 소환에 불응하고 있는 가운데 검찰이 조 사장의 출국을 금지시켰다.

급기야 검찰은 ‘삼성전자 세탁기 고의 파손 의혹’에 휩싸인 LG전자를 압수수색했다.

지난해 12월26일 서울중앙지검 형사4부(부장검사 이주형)는 서울 여의도 LG전자 본사 HA사업본부와 경남 창원에 위치한 LG전자 공장 등에 수사팀을 보내 일부 임직원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내부 서류 등을 확보했다. 결국 조 사장은 검찰에게 조사를 받았다.

검찰도 중재나선 세탁기 분쟁

검찰이 삼성전자와 LG전자 사이에서 벌어진 세탁기 분쟁과 관련해 조성진 사장(58)을 불구속 기소하려던 방침을 일시 보류하고, 두 회사 간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중재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월3일 <동아일보>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형사4부(부장 이주형)는 삼성전자 측이 “지난해 9월 세계가전박람회(IFA) 기간에 독일 자투른 슈테글리츠 매장에서 조 사장이 삼성의 전시용 세탁기를 파손하고, ‘특정 업체 제품만 파손되는 현상이 발생했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해 회사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LG전자를 고소한 사건을 지난해 말부터 수사해 왔다.

검찰은 당초 조 사장을 재물손괴와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기소하려고 했다. 하지만 검찰은 “세계 시장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두 가전 회사의 대표들이 고작 재물손괴 사건으로 법정에 서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되겠느냐”는 여론을 감안해 기소를 보류하기로 결정했다고 동아일보가 보도했다.

검찰은 지난주 초 두 회사에 그동안의 수사 경과를 전달하고 ‘LG 측의 적절한 사과와 삼성 측의 수용 및 고소 취소’ 방안을 중재안으로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관계자는 “굴지의 국내 기업 최고경영자들이 수시로 법정에 불려나와 ‘네 세탁기 문짝을 부수었냐 아니냐’로 다투는 건 심각한 국력 낭비”라며 “형사처벌보다는 양측이 적당한 선에서 합의하는 게 최선의 방안”이라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의 제안으로 삼성전자와 LG전자 측은 유감 표명 수위와 방법을 놓고 한 차례 협의했지만 합의엔 이르지 못했다고 동아일보는 전했다. 지난 2월2일 삼성전자는 “양사 간 합의가 결렬됐으므로 (검찰의) 후속조치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으나, LG전자는 “양측이 충분한 대화를 통해 원만하게 합의가 이뤄졌으면 한다”며 계속 협의에 나설 뜻을 내비쳤다고 한다.

양사의 끝날 것 같지 않던 분쟁은 의외로 싱겁게 끝났다. 지난달 31일 양사는 그동안의 분쟁을 종료하기로 합의했다. 이러한 분쟁이 영원히 끝날 것 같진 않아 보인다. 그 이유는 지난 2012년 발발한 냉장고 분쟁을 보면 그렇게 전망된다.

측량법 차이로 발발된 100억 대 소송 냉장고 분쟁

▲ 삼성전자는 지난 2012년 8월 삼성전자는 공식 블로그와 유튜브에 ‘냉장고 용량의 불편한 진실’이라는 제목의 동영상을 게시했다. 여기서 삼성전자는 자사의 지펠 857리터 냉장고와 LG전자의 디오스 870리터 냉장고의 실제 용량을 비교해 자사 냉장고가 더 많은 용량이 채워진다는 내용이다. ⓒ유튜브

LG전자는 지난 2013년 1월 삼성전자를 상대로 100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는 지난 2012년 삼성전자가 유뷰트에 낸 냉장고 용량 비교 동영상으로 인해 촉발됐다.

삼성전자는 지난 2012년 8월 삼성전자는 공식 블로그와 유튜브에 ‘냉장고 용량의 불편한 진실’이라는 제목의 동영상을 게시했다. 여기서 삼성전자는 자사의 지펠 857리터 냉장고와 LG전자의 디오스 870리터 냉장고의 실제 용량을 비교해 자사 냉장고가 더 많은 용량이 채워진다는 내용이다.

이후 LG전자는 삼성전자의 냉장고 용량 실험에서 국가표준 KS규격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반발한다. 삼성전자의 냉장고 용량 측정방법은 물 붓기였는데 이렇게하면 사용하지 않는 공간도 물이 들어차 공간으로 측정되기 때문에 적합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에 삼성전자는 LG전자에 다시 맞대응했다. 이번에는 참치캔, 캔커피 등을 채워 자사 지펠 냉장고가 더 용량이 크더라는 내용이었다.

결국 법원이 LG전자의 손을 들어주면서 삼성전자에 해당 동영상 게재 중지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이같은 동영상이 노출된 후라서 LG전자 쪽에서는 피해가 컷다. 결국 LG전자는 이 동영상 게시기간 동안 일어난 손해에 대해 삼성전자가 책임지라며 100억 원대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 했다.

이렇게 극단으로 치닫던 냉장고 분쟁은 양사가 소송 일체를 취하하는데 합의하면서 1년이 지난 2013년 8월 종료된다.

글로벌 가전시장 라이벌, 소송과 취하 반복될 것

▲ 이러한 양사의 갈등은 어느 한쪽이 압도적이 않아 쉽게 결론이 나기 어렵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세탁기로 시작된 이번 삼성전자와 LG전자의 분쟁은 종료됐지만 언제든 다시 양사간 분쟁은 일어날 가능성이 클 것으로 전망된다. ⓒ각사 홈페이지

이렇듯 삼성전자와 LG전자의 분쟁은 세탁기, 냉장고 뿐만이 아니다. 지난 2011년 3D TV 방식논란도 있었다. 삼성이 셔터글래스 방식을 쓴 반면, LG전자는 편광필름 방식을 써서 서로 다른 3D 구현 방식으로 어느 것이 더 우수하느냐 논란을 빚었다.

이러한 양사의 갈등은 어느 한쪽이 압도적이 않아 쉽게 결론이 나기 어렵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이태규 한국경제연구원 실장은 <시사포커스>와 통화에서 “두 회사 중 어느 한쪽이 이겨야 하는데 그러질 못한다”라며, “현재 일본 가전 기업은 힘을 잃었고 두 회사가 글로벌 가전 시장을 장악하면서 분쟁이 발생하고 있는데, 피해가 크기 때문에 합의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글로벌 기업들간의 분쟁은 어쩔 수 없다는 게 그의 입장이다.

이태규 실장은 “이번 세탁기 건은 좀 특이한 건이긴 한데 글로벌 기업간 분쟁은 주로 특허 등 주도권을 두고 싸움이 벌어지는 일이 많다”고 말했다.

세탁기로 시작된 이번 삼성전자와 LG전자의 분쟁은 종료됐지만 언제든 다시 양사간 분쟁은 일어날 가능성이 클 것으로 전망된다. [ 시사포커스 / 박효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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