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에 이어 올해 들어서도 유통가를 연일 뜨겁게 달구고 있는 키워드는 ‘갑질 논란’이다. ‘쥐어짜기’, ‘밀어내기’, ‘후려치기’ 등 갑질의 이름과 수법도 다양하다. 갑과 을의 수직관계에서 파생되는 을의 서러움이야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대형마트들이 을인 하청업체를 대하는 태도를 보고 있노라면 그야말로 가관이다.

최근에는 이마트와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대형마트들이 PB제품의 단가를 낮추기 위해 하청 제조업체들을 쥐어짜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논란을 샀다. 하청업체들의 주장에 따르면 대형마트들은 매출이 높은 PB상품을 하청업체에 맡기면서 무리하게 납품단가 인하를 요구했다. 입점 거절 등 대형마트의 보복이 두려웠던 하청업체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이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중소기업중앙회의 ‘대형마트 거래 중소기업 애로실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PB상품을 만드는 한 제조 하청업체 대표는 “제조사는 납품단가 인하에 따른 손실을 떠안든가 아니면 저질의 제품을 납품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하청업체는 “(특정 대형마트가) 다른 대형마트와의 PB참여시 거래단절 등을 우회적으로 언급했다”며 “중소기업과 분쟁이 발생하면 자의적이고 일방적으로 PB상품의 판매가를 인상해 매출을 급감시키는데 일종의 보복조치라고 생각한다”고 털어놨다.

지난해 중소기업중앙회가 대형마트에 납품하는 중소기업 312곳을 대상으로 애로사항을 조사한 결과, 불공정 거래를 당한 중소기업의 55.9%는 ‘특별한 대응 방법 없이 감내한다’고 답변했다.

‘특별한 대응방법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이러니 을은 죽어라 물건을 만들어 납품해도 주머니 사정이 늘 그대로인 것이다. 사정이 이렇게 됐음에도 하청업체들이 ‘갑’인 대형마트와의 연결고리를 자기 손으로 끊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영세 중소기업의 경우 판로확보가 힘들고, 국내 고객들의 대기업 선호성향까지 더해진 상황에서 독자적으로 자기 브랜드를 걸고 상품을 판매하는 것은 도박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즉 ‘더러워도 참고 견뎌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입장이다.

대형마트들은 지금까지 이런 하청업체들의 심리를 영리하게 이용해왔다. ‘너 아니어도 납품할 업체는 많다’는 식의 배짱을 보이며 하청업체들을 상대로 당근 없이 채찍만 내리쳤다.

이제 대형마트들은 중소기업체와의 협력을 통해 더 나은 제품의 질을 이끌어 내야 한다. 이것은 굳이 도덕적인 잣대를 대지 않더라도, 소비자의 니즈가 반영될 때 매출이 상승된다는 기본적인 시장논리로만으로도 충분히 설명되는 사실이다.

품질이 떨어지면 고객이 떠나가는 것은 당연지사다. 존경이란 존중에서부터 나온다. 굶주린 하청업체들에게 무조건 적으로 양질의 물건을 만들라고 요구하는 것은 억지다. 갑질에 대한 비난 여론이 어느 때 보다도 따가운 이때 대형마트들은 이제 그 셈속이 읽히는 ‘헛기침’을 그만둬야한다.[시사포커스 / 진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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