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개월여 간 M&A 8건…올해 본격적으로 ‘쇼핑’ 나설까

 

▲ 이재용 부회장이 지난해 5월부터 경영 전면에 나선 후 삼성이 빠르고 적극적인 대처로 M&A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뉴시스

이건희 회장이 병상에 누운 지 1년여가 다 되가는 시점에서 이재용 부회장 체제의 삼성이 공격적인 M&A 행보로 크게 주목받고 있다.

지난 4일 삼성전자는 미국의 발광다이오드(LED) 상업용 디스플레이 전문업체인 ‘예스코 일렉트로닉스’를 인수했다고 밝혔다. 예스코 일렉트로닉스는 영국 런던의 피카딜리 광장에 있는 대형 광고판과 미국 라스베이거스 윈·코스모폴리탄·아리아 호텔 옥외광고판 등을 제작, 상업용 디스플레이 업계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업체다.

경쟁 심화로 수익성이 낮아진 LED 조명 해외사업에서는 철수한 반면 고부가 가치 사업으로 주목받고 있는 LED 상업용 디스플레이 사업 강화를 위해 시장을 선도하는 업체를 과감히 인수한 것이다.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 김석기 전무는 “상업용 디스플레이는 다양한 환경에서 사용할 수 있어 향후 성장성이 높다”면서 “이번 인수를 통해 전 세계 소비자에게 차별화된 디지털 사이니지의 가치를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예스코 일레트로닉스의 다양한 제품 라인업과 판매망을 LED 기술과 결합시켜 디지털 사이니지 사업을 본격 확대한다는 계획을 내놓고 있다.

디지털 사이니지(Digital Signage)란 LED나 LCD를 활용한 디스플레이 광고게시판으로 TV, PC, 핸드폰에 이은 제4의 미디어로 불린다. PC가 내장돼 있어 이동이 자유롭고 다양한 파일을 선명하게 표현할 수 있으며 디지털 간판 또는 DID(Digital Information Display)라고도 한다.

삼성전자는 이번 인수로 기존의 액정표시장치(LCD) 패널 기반의 실내용 제품부터 옥외용 대형 LED 상업용 디스플레이까지 풀 라인업을 갖추게 됐다. 올해 글로벌 상업용 디스플레이 시장 규모는 52억2714만달러(약 5조6450억원)로 추산되고 있다.

◆이재용의 삼성전자, 10개월간 인수만 8건

▲ 지난 2일 MWC에서 발표된 갤럭시S6와 갤럭시S6 엣지에 들어간 핵심 기능 삼성페이 역시 최근 미국의 루프페이 인수를 통해 완성될 수 있었다. ⓒ삼성전자

이번 일렉트로닉스 인수는 이건희 회장이 병상에 누운 뒤 이재용 부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선 지난 5월 이후 8번째의 외국 기업 인수다. 최근 삼성은 2차 전지나 모바일 솔루션 등 미래 먹거리에 도움이 되는 기술을 가진 업체를 과감하게 인수하고, 과거에 신수종사업으로 삼았던 분야라도 비전이 불투명하면 곧장 출구전략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이는 과거와 확연히 비교되는 변화다. 매출액 200조원이 넘는 삼성은 덩치에 비해 M&A에 지나치게 소극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삼성전자는 2007년과 2009년 각각 1곳을 인수하는 데 그쳤으며 2011년에는 헬스케어(건강관리) 사업 강화를 위해 메디슨과 넥서스 등 3곳을 합병했다.

2012년 5곳, 2013년 4곳으로 소폭 증가하기는 했지만 같은 시기 글로벌 경쟁 업체인 구글·애플·페이스북·야후 등 미국의 IT 기업들이 매년 신사업 확충을 위해 십수건의 기업을 인수한 것에 비교하면 지나치게 핵심 사업에만 치중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시장에서는 삼성이 트라우마 때문에 M&A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는 분석을 내려 왔다. 1995 10억 달러 이상을 투자했던 미국 PC 제조사 AST리서치의 인수에서 별다른 성과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삼성은 주력사업만 믿다가 그룹의 미래가 불투명해질 수 있다는 이재용 부회장의 판단 아래 M&A시장에서 전향적인 태도로 입장을 바꿨다. 실제 이재용 부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선 지난해 하반기는 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이 추락하면서 위기감이 번진 시기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5월 비디오 관련 앱 서비스 개발업체인 셀비를 인수한 것을 시작으로 거의 한 두달에 한 번씩 인수를 성사시켰으며, 지난달에는 모바일 결제 솔루션 업체인 루프페이를 인수, 올해 그룹 차원에서 사활을 걸고 있는 갤럭시S6에 들어갈 전략 기능 ‘삼성페이’를 완성시키기도 했다. 루프페이는 삼성페이의 핵심기능 중 하나인 마그네틱 보안 전송(MST) 특허기술을 보유한 업체였다.

삼성전자 뿐 아니라 그룹 전체적으로 M&A에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삼성전자 외에도 삼성SDI는 캐나다 자동차 부품업체 마그나에서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팩 사업(마그나슈타이어배터리시스템즈)을 인수, 약점이던 팩 분야를 업그레이드했다. 제일기획은 쇼퍼마케팅사 아이리스를 각각 인수했다. 삼성벤처투자는 이스라엘의 의료용 센서 벤처기업인 얼리센스에 지분을 투자했다.

반면 ‘선택과 집중’을 통해 비주력 사업이나 전망이 어두울 것으로 보이는 계열사는 과감하게 쳐내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지난해 11월 전국을 들썩이게 했던 한화와의 2조원대 ‘빅딜’을 들 수 있다. 당시 삼성은 방위산업·화학 분야인 삼성테크윈과 삼성탈레스, 삼성종합화학, 삼성토탈을 한화에 넘겼다.

화학 분야에서도 충분히 수익을 올릴 수 있겠지만 전자·금융 등 주력 사업군에 더욱 집중하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된다. 특히 당시 한화와의 빅딜에 걸린 시간은 3개월여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이재용 체제의 삼성이 과거보다 훨씬 민첩하고 빨라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0년 그룹의 5대 신수종사업으로 정한 LED·태양전지·2차전지·바이오제약·의료기기 가운데 고전하던 LED 조명과 태양전지 부문에서 빠른 사업 정리 및 축소라는 결단을 내리기도 했고, 동시에 삼성SDS와 제일모직을 잇따라 상장시키며 그룹 지배구조를 단순화하고 사업구조 개편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 60조원 이상의 실탄을 쥐고 있는 올해 본격적으로 부진 탈출을 선언하고 나선 삼성이 최근의 흐름처럼 적극적인 M&A 행보를 이어갈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지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사진 / 홍금표 기자

◆전문가들 “긍정적이나 더 큰 한 방 필요”
이 같은 삼성의 달라진 행보에 학계·산업계·금융계의 전문가들은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장세진 KAIST 경영대학원 교수는 “오래 전부터 시작했어야 다소 늦은 감이 있다”면서도 “선택과 집중은 경영의 기본”이라고 호평을 내렸다.

다만 M&A의 효과를 잘 살리기 위해서는 조(兆) 단위의 통 큰 베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종우 아이엠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삼성이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려면 과거 반도체를 처음 시작할 때처럼 기업의 운명을 걸고 조 단위의 베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학계의 한 전문가도 “IoT·의료장비·소프트웨어·반도체 중심의 경쟁력 있는 기업을 찾아야 시너지를 내야 한다”며 “보유 현금이 넉넉한 만큼 1조원대 이상 기업도 넘볼 만하다”고 말했다.

삼성그룹이 전체적으로 지난해 실적 부진으로 위기에 빠져 있다는 우려가 나오지만 M&A 행보를 가속화하는 데는 별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연결 기준 현금성 자산이 무려 61조8000억여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60조원 이상의 실탄을 들고도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했다는 얘기다.

물론 이재용 부회장 체제 이전의 소극적인 행보가 자금 부족 탓이었던 것은 아니지만 지난해처럼 영업이익이 크게 줄어든 상황에서도 적극적인 M&A 행보를 이어나갈 수 있는 실탄 만큼은 충분하다는 얘기다. 삼성전자의 현금성 자산은 2009년 20조원 대에서 5년여 만에 3배로 불어났다.

특히 삼성은 최근 미래의 먹거리로 사물인터넷(IoT) 시장 선도와 기업간 거래(B2B) 사업 강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에서 ‘달라진 삼성’의 한 방이 나올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올해 본격 쇼핑 나서나…부진 탈출 전략에 주목
따라서 삼성이 최근의 흐름대로 M&A에서 적극적인 행보를 보일 것이라는 예상이 쏟아지고 있다. 특히 최근 융·복합이 트렌드인 만큼 반도체·의료기기·가전 등 다양한 분야의 스타트업 기업들을 발굴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아울러 그룹 차원에서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의료기기 및 헬스케어 분야의 인수도 속도를 낼 것으로 점쳐진다. 삼성전자는 2011년 인수한 삼성메디슨을 자회사로 두고 있는데, 지난해 흡수 합병을 추진했지만 최종적으로 독자 운영을 통해 시너지를 도모하기로 했다. 따라서 삼성이 의료기기 분야의 강화를 위해 어떤 방식으로든지 움직일 것으로 보인다.

한 의료기기 업계 관계자는 “세계 의료기기 3대 메이저 ‘GPS’(GE·필립스·지멘스)도 M&A를 통해 커왔듯 이 분야의 신규 진입자인 삼성도 비슷한 전략을 취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밖에 가전 분야에서도 유럽·북미의 경쟁자들과의 차별화를 위한 M&A가 예상된다.

실제 윤부근 삼성전자 CE(소비자가전) 부문 대표는 최근 “우리와 추구하는 전략이 맞아 떨어지고 필요로 하는 기술을 보유한 업체들은 적극 M&A를 할 것”이라고 공식적으로 밝힌 바 있다.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가 이미 모바일과 반도체 분야에서 하드웨어 최고봉에 올라 있는 만큼 이제 소프트웨어적 발전이나 다른 영역의 성장 가능성 흡수에 무게를 실을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이미 모바일과 자체 OS인 타이젠의 발전을 통해 스마트홈 시대의 중추 확보 가능성에 청신호가 켜진 상황이고, 사물인터넷(IoT)의 기본 저력인 반도체를 잡고 있기 때문에 두 주력 영역의 발전에 확고히 매진하면 주도권 경쟁에서 어느 정도 여유가 있는 편이기 때문이다.

이재용 부회장이 그룹 경영 전면에 나선 지 1년여가 채 되지 않은 기간 동안 삼성그룹은 큰 변화를 맞고 있다. 임금 동결 및 인원 감축 등의 구조조정과 사업구조 재편, 그리고 적극적인 M&A로 대표되는 ‘선택과 집중’의 딜레마를 이재용 부회장이 어떻게 헤쳐나갈지 올해 삼성의 행보에 귀추가 주목된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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