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도(林道)를 따라서 심은 도라지

사기(史記) 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에 나오는 배수진(背水陣)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한(漢)나라 유방(劉邦)이 아직 제위에 오르기 2년 전인 204년, 한신(韓信)을 시켜 조(趙)나라를 공격케 하였다. 그런데 한신이 보니 조나라 가는 길이 천혜의 요새였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있어 접근이 어려웠고. 수도로 가는 길은 더욱 좁고 협소해 겨우 마차하나 다닐 정도였다. 만약 이런 길로 자신의 군사가 들어 갔다가 조나라가 앞뒤를 포위해 버린다면, 꼼짝없이 전멸이었다. 또한 조나라의 군사력또한 엄청났다. 이십만 대군을 집결시켜놓고 있는 상태였다.

이때 한신은 기병 2,000명을 조나라가 쌓은 성채 바로 뒤편에 매복시키고, 나머지 군사들은 누벽에서 멀리 떨어진 강, 금만수로 이동시켜 진을 치게 만들었다. 바로 배수진을 친 것이다.

퇴로 없이 진을 친 모습을 보고 조나라 군사들은 비웃었지만, 한나라 군사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싸울 수밖에 없었다. 한신은 적들을 유인하여 누벽에서 멀리 떨어지게 만든 한나라 군사들이 누벽을 점령해버렸다. 이렇게 되자 조나라 군사들은 우왕좌왕하게 되었고, 밀려가던 한나라 군사들은 막바지에 이르렀기에 죽기 살기로 싸웠고 결국 조나라를 물리치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농업을 생업으로 제2의 창업이라는 심정으로 귀농을 선택한 것이라면, 배수진을 치는 심정이어야만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도시로 돌아갈 여지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 진정으로 백척간두에서 진일보한다는 각오로 귀농·귀촌해야 한다.

도시화, 산업화와 더불어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온 도시민들의 마음 한구석에는 청산별곡의 첫 구절처럼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시골에서 살고 싶은 로망이 있다. 귀농·귀촌 하는 사람들 중에는 농촌 출신들도 있겠지만 평생을 도시에서만 살아왔거나 농사라고 지어본 적도 없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데 왜 그들에게 농업으로 돌아간다는 의미인 ‘귀농’을 쓰고, 농촌으로 돌아간다는 의미인 ‘귀촌’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가.

그것은 농촌이 고향이 아니더라도 아직도 우리 농촌의 모습은 지난날의 추억과 기억속의 모습들이 아직도 남아있기 때문에 마치 고향처럼 향수를 느끼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는 일은 인류가 최초로 가진 직업이었기에 전혀 부당한 표현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도시가 싫어서 또는 막연한 동경심에서 귀농·귀촌을 하게 된다면 100%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귀농·귀촌은 생활의 거주지가 도시에서 농촌으로 변동되는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삶의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는 것이다. 사전에 철저히 준비하고 귀농을 한다고 해도 적응하고 완전히 정착하기 까지는 넘어야 할 고비들이 많다.

농사는 자연과 동업해야 되므로 뜻하지 않는 재해를 입게 될 수도 있다. 또한 농사는 생명을 키우는 일이기 때문에 자칫 소홀히 하면 실패할 수도 있다. 시범농장이나 귀농학교에서 배운 대로 했는데도 잘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결국, ‘시골에 가서 농사나 지을까’ 하던 마음처럼 농사를 포기하고 다시 원래의 도시인으로 회귀하고 싶어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

설령 한두 번 실패하더라도,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다시 일어서 ‘기어이 성공하리라’는 각오로 임해야만 귀농·귀촌에 성공할 수 있다. 실패 할 것을 대비하여 돌아갈 여지를 두고 귀농한다면 실패는 이미 예견된 일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돌아갈 다리를 불태우는 전쟁터의 군인의 심정으로 단단히 각오하고 귀농·귀촌을 결심하기를 권하고 싶다.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