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감싸는 미국, 반미감정 확산되나?

▲ 웬디 셔먼 미 국무부 정무차관이 한중일 동아시아 3국의 과거사 논쟁과 관련해 3국 모두의 책임이라는 듯한 발언을 해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웬디 셔먼 차관의 개인적 견해인지, 일본 감싸기에 나서는 미국의 태도 변화인지 정치권과 외교가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뉴시스
  웬디 셔먼 미국 국무부 정무차관이 한·중·일 3국의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일본을 감싸기 하는 듯한 발언을 해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일본의 과거 제국주의 침탈 문제가 명확함에도 불구하고, 한·중·일 3국 모두가 잘못이라는 양비론적 태도를 취한데 따른 것이다. 문제는 웬디 셔먼 차관이 미 고위 당국자로서, 그의 발언들이 결코 가볍지 않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는데 있다. 더구나 그는 공개석상에서 이 같은 양비론을 펼쳤다.

일각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북 ‘햇볕정책’을 지지해왔고, 한·중·일 3국 역사에도 해박한 대표적 한반도 전문가인 그가 왜 이 같은 몰역사적 발언을 했는지 의문스럽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일본 정부의 대대적 로비 결과로 미국이 과거사에 대한 태도가 바뀐 것 아니냐는 관측부터, 웬디 셔먼 개인적 견해가 일본에 우호적으로 변한 것 아니냐는 관측까지 다양한 관측들이 쏟아지고 있다.

중요한 것은 가뜩이나 얼어붙어 있는 한일 관계에 미국이 찬물을 끼얹고 나섰다는 점이다. 한중 관계가 전에 없이 가까워지고 있는데 따른 미국의 견제 차원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한일-중일 관계를 더욱 악화시키고 한미 및 중미 관계에도 악재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한중일 과거사 갈등 실망스럽다”
지난달 27일 웬디 셔먼 미 국무부 정무차관은 워싱턴 싱크탱크인 카네기국제평화연구소가 개최한 ‘미 정부의 동북아 정책’ 세미나에 참석해 한·중·일 3국의 과거사 논쟁과 관련해 “한·중·일 과거사 갈등에 대해 실망스럽다”는 입장을 밝혔다. 미국이 동북아 주요 3국의 과거사 논쟁에 대해 적극적으로 개입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웬디 셔먼 차관은 이 자리에서 “한국과 중국이 위안부 문제를 놓고 일본과 논쟁하고 있으며 역사교과서, 심지어 바다 명칭을 놓고도 이견이 표출되고 있다”며 3국을 싸잡아 비판하는 모습을 보였다. 셔먼 차관은 “이해는 간다”면서도 “실망스럽다”고 덧붙였다.

셔먼 차관은 특히, “민족 감정은 여전히 악용될 수 있고 정치 지도자가 과거의 적을 비난함으로써 값싼 박수를 얻는 것은 어럽지 않다”며 “그러나 이는 진전이 아니라 마비를 초래한다”고 강한 비판적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다시 말해, 한중 양국의 정치지도자들이 일본에 대한 민족적 감정을 악용해 국내 정치를 펼치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그러면서 셔먼 차관은 “미국과 일본, 중국, 한국이 지속적으로 같은 방향으로 가고 힘을 합친다면 세계가 좀 더 안전하고 풍요로우며 더욱 안정될 것”이라며 “오바마 행정부가 지속적으로 강화할 메시지”라고 밝혔다.

◆韓-中, 美 속내 파악 신중
셔먼 차관의 이 같은 양비론적 발언에 외교적 파장은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다. 우리 정부는 즉각적으로 “셔먼 차관의 발언을 가볍지 않게 보고 있다”며 촉각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였다. 외교부 조태용 제1차관은 2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출석해 이 같이 말하며 “그동안 미국정부가 밝힌 과거 역사에 대한 입장에 변화가 있는 것인지에 초점을 맞춰서 미국정부에 외교통로로 문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조 차관은 “지난 주말, 미국정부의 입장에 아무 변함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덧붙여 설명했다. 그러면서 “셔먼 차관의 발언문을 보면 역사의 교훈을 배워야 한다는 언급이 있었지만, 변함이 없다고 하더라도 발언 중 따져봐야 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좀 더 구체적인 입장을 확인하기 위해 주초에 다시 한미 간에 의견을 나눌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설명을 들어보고 필요하다면 우리정부의 입장을 표명할 계획”이라면서 “하루 이틀 사이에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가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여 말했다. 아울러, “미국도 역사문제에 올바른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일본을 일방적으로 편드는 일은 없을 것이라 말하고 싶다”며 파장이 확산되는데 경계했다.

조 대변인은 특히, 일본정부의 국제적 로비 때문에 과거사에 대한 미국정부의 인식이 바뀌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정부는 경각심을 갖고 대처하겠다”면서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이므로 로비활동으로 옳고 그름을 바꿀 수 없다는 도덕적 우위를 바탕으로 자신 있게 외교를 하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중국 정부 역시 웬디 셔먼 차관 발언에 “미국 관료의 발언에 대한 확인이 필요하다”면서도 “70여 년 전 일본 군국주의가 일으킨 침략 전쟁이 아시아 각국에 극심한 재난을 초래한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화춘잉(華春瑩) 외교부 대변인은 2일 정례브리핑에서 이 같이 말하며 “역사를 새기고 거울로 삼아 공동으로 미래를 열어나가는 문제에 대해 국제사회에 공동의 인식이 존재한다”고 셔먼 차관의 인식에 문제제기했다.

또, “우리는 유엔 헌장의 정신과 원칙을 결연히 수호해 나갈 것”이라며 “역사를 거울로 새로운 정세에서 국제평화와 안보를 수호하는 효과적인 길에 대해 심도 있게 토론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여야 “당혹-개탄” 외교 비상
우리 정부는 이처럼 미국이 일본을 편들기 하는 것은 아니라는데 방점을 두고 정확한 의중을 파악하겠다는 입장인 반면, 여야 정치권은 웬디 셔먼 발언에 크게 분개했다. 새누리당 김을동 최고위원은 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과거사와 관련해 일본의 진정한 반성과 사과가 있을 때 한일관계가 발전할 수 있다는 박 대통령의 삼일절 기념사에 미국이 찬물을 끼얹었다”며 “웬디 셔먼 미국국무부차관이 한중일 사이에서 갈등을 빚고 있는 과거사 문제를 놓고 과거사를 덮자며 3국 모두의 책임이라는 양비양시론을 내세워 논란이 일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 웬디 셔먼의 한중일 동아시아 주요 3국의 과거사 논쟁에 대한 양비론 발언에 대해 여야 할 것 없이 비판적 목소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특히, 새누리당에서도 미국이 박근혜 대통령의 3.1절 기념사에 찬물을 퍼부었다며 강도 높은 비난이 나왔다. 사진 / 원명국 기자

김 최고위원은 그러면서 “미국이 유럽에 가서 나치를 용서하고 유럽 모두의 책임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반문하고 싶다”며 “미국이 피해자를 외면하는 입장을 견지한다면 세계 경찰국가의 위상은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동북아의 진정한 평화를 위해 미국은 애매모호한 태도를 버리고 갈등해결에 근본적 접근을 시도해야 할 것”이라고 일침을 놓기도 했다.

하태경 의원도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웬디 셔먼은 미 국무부에서도 가장 친북적인 인물이라고 평가받는데 이번에는 친일적 발언을 한다”면서 “미국 입장에서는 친북과 친일이 서로 통하는 모양”이라고 말했다.

하 의원은 그러면서 “그건 그렇고 한국 정부는 대미 외교를 어떻게 했길래 미 국무부 핵심이 박 대통령 발언을 면전에서 비난하는 일이 생기는지 한국 외교부 한심하다”며 “미국의 친일 경향 확대를 못 막으면 동북아에서 한국이 고립되는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에 이번 사건은 한국 외교에 심각한 메시지를 던져주는 것”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전병헌 최고위원도 같은 날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3.1절 기념사에 대해 “공허한 구호와 허황된 약속만 반복된 담화였다”고 혹평하면서 “그러다보니 대일 관계에 있어서나 남북관계에 있어서나 그 담화의 약효과 불과 하루도 가지 못하게 되어버렸다. 일본 역사문제에 대한 웬디 셔먼 미 국무차관의 양비론적 시각이 바로 그것”이라고 꼬집었다.

전 최고위원은 “참으로 우리 정부의 외교적 무능을 탓하지 않을 수 없다”며 “아울러 웬디 셔먼 미 국무부 차관의 양비론적, 안일한 역사인식에 유감을 넘어 개탄을 보내지 않을 수 없다”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오영식 최고위원도 이 자리에서 셔먼 차관의 발언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고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다”며 “올해 들어 벌써 두 분의 피해 할머님들이 평생 가슴에 맺힌 상처를 치유 받지 못한 채 돌아가셨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미 국무부 차관이라고 하는 사람의 과거사 인식은 참으로 개탄스럽다”고 맹비난했다.

오 최고위원은 “동북아 안전과 질서 유지만 강조한 채 미국의 전략적, 경제적 이익 극대화에 치중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발언들이 나오게 된 것 아닌가 생각된다”면서 “전쟁 당사자인 미국으로서는 일본에게 과거를 덮고 가자는 식의 입장정리가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우리처럼 식민지 침략과 강제병합을 당해서 지울 수 없는 역사적 참상을 겪었던 피해자에게는 과연 이런 말이 가능할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고 일갈했다.

우리 정부에 대해서도 오 최고위원은 “성의 있는 조치를 촉구한다는 정도의 무성의한 답변만 내놓고 있는 정부는 이제라도 미국에게 분명한 국민의 뜻을 전달해야 한다”면서 “일본의 진정한 사과와 용기 있는 반성을 통해 주변국의 아픔을 치유해야지만 미래를 향한 동반자적 파트너십 형성이 가능하다는 것을 분명하게 밝혀 전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특히, 최고위 차원에서 정부에 셔먼 차관의 발언에 대한 진위 파악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와 관련, 김영록 수석대변인은 이날 최고위 결과 브리핑에서 “웬디 셔먼 차관의 발언은 동북아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 없이 이뤄진 발언이 아닐 수 없다”며 “동북아정책에 있어 일본의 협조가 필요한 미국의 현실적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이나 유감을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가 과거사에 대한 진심어린 사죄를 하지 않는 한 한중일의 미래지향적 발전은 어렵다는 점을 미 정부가 분명히 인식하기 바란다”면서 “우리 정부도 셔먼 차관의 발언에 대한 진의를 파악하고, 미 정부의 분명한 입장을 확인할 것을 촉구한다”거 밝혔다.

아울러, “일본 아베총리의 미국 방문을 앞두고 일본의 적극적 대미 로비가 미국 행정부나 의회 인사들의 잘못된 발언을 이끌어 낼 수 있다”면서 “우리 정부는 동북아 역사문제에 대해 미국 조야 인사들이 올바른 인식을 갖고 발언할 수 있도록 외교적 노력을 강화할 것을 주문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북한도 웬디 셔먼 비난에 적극 가세했다. 북한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1일 ‘우리민족끼리’에 “외교관의 탈을 쓴 악녀”라는 글을 올려 “웬디 셔먼이 남조선 주재 미 대사관에서 열린 언론인들과의 인터뷰라는 데서 우리에 대해 인권문제니, 굶주림이니, 고립이니 뭐니 하는 악담질을 늘어놨다”며 “외교관의 탈을 쓴 악녀의 본성을 드러내고 무례무도의 극치를 보여준 넋두리”라고 맹비난을 퍼부었다.

조평통은 특히, “하긴 66살이라는 로망기와 건망증에 들어선 그 나이에 무슨 온전한 소리가 나오겠는가”라며 “셔먼이 노망기에 들어 황천길을 채촉하듯이 썩고 문드러진 침략의 제국 미국이 지구상에서 없어지는 것은 막을 수 없는 역사의 흐름”이라고 인신공격성 원색적 비난을 쏟아냈다.

◆美 “어떤 정책 변화도 없다” 해명하지만…
한편, 웬디 셔먼 차관의 발언이 파장을 일으키자 미국 정부는 “셔먼 차관의 발언이 어떤 개인, 국가를 겨냥한 것은 아니다”고 해명에 나섰다. 마리 하프 미 국무부 부대변인은 2일 정례브리핑에서 “솔직히 일각에서 이번 연설을 특정한 지도자를 겨냥하는 것으로 해석한 것이 약간 놀랍다”며 이 같이 말했다. 동아시아 역사 문제에 대한 미국의 ‘양비론적’ 시각에 파장이 일고 있는 것인데, 이에 대한 명확한 입장보다 언론 등이 확대 왜곡해석하고 있다는 반응을 보인 것이다.

하프 부대변인은 그러면서 “우리는 동아시아의 가장 중요한 동맹인 일본과 한국의 건설적 관계가 역내 평화와 번영 증진에 이롭다고 생각한다”며 “한미일 세 나라는 공유하는 것이 너무도 많다”고 강조했다. 이어, 셔먼 차관의 발언에 대해 “미국 정책의 어떠한 변화도 의미하지 않는다”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미 국무부는 또, 현지시간으로 2일 연합뉴스에 보낸 언론논평에서도 “우리는 과거사 문제에 치유와 화해를 촉진하는 자세로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다”며 “미국의 정책은 아무것도 바뀐 게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특히, 국무부는 “우리가 수차례 언급했듯 무라야마 총리와 고노 전 관방장관의 사과는 일본이 주변국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데서 ‘하나의 중요한 획’(an important chapter)을 그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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