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권 발행·유통 관리 허술 심각…“이래서 지하경제 양성화 할 수 있겠나”

▲ 상품권이 기업의 접대비는 물론 비자금과 탈세에도 이용되고 있어 논란이 불거졌다.(위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음)ⓒ뉴시스

설을 일주일여 앞두고 명절용 선물을 고르기 위한 소비자들의 움직임이 분주한 가운데 다양한 후보 중 가장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단연 상품권이다. 최근에는 모바일 상품권까지 등장하면서 상품권 시장의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고 있는 추세다.

상품권은 무난하고 실용적이라는 점 덕분에 소비자들 사이에서 꾸준한 사랑을 받아왔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상품권을 이용해 현금을 확보하려는 사람들의 ‘뒷골목 거래’가 성행하고 있어 상품권 운영과 관련한 투명성 논란이 불거졌다.

상품권이 기업의 접대비나, 비자금은 물론 탈세의 ‘고리’로 전락했다는 말까지 들리는 판국이다.

◆ ‘상품권깡’ 판쳐도 속수무책

일명 ‘상품권깡’ 혐의로 기소된 박광태 전 광주시장의 사례는 상품권 비리가 만연해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경우다.

박 전 시장은 재임시절인 2005년부터 2009년까지 업무추진비 용도로 발행된 법인카드로 145회에 걸쳐 20억원 상당의 광주 현대백화점 상품권을 구입해 현금화한 뒤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했다. 박 전 시장은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시민단체들의 반발은 여전히 뜨겁다.

사기업에서 ‘상품권깡’ 형태로 비자금을 확보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발견된다. 기업이 직원복지 등을 명분으로 법인카드를 이용해 상품권을 산 뒤 사채 시장 등을 통해 되팔아 현금으로 비자금을 확보하는 꼼수를 쓰는 것이다.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이 같은 편법은 흔히 나타난다. 특히 재래시장을 활성화시킬 목적으로 발행되기 시작한 온누리상품권의 편법 환전이 재래시장 상인들 사이에서 활개를 쳐 논란이 됐다. 해당 논란은 지난해 6월 소상공인진흥공단이 온누리상품권의 판매촉진을 위해 상품권 현금 구매시 10%를 할인해주는 제도를 도입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소상공인진흥공단 관계자는 “명절 때 온누리상품권을 많이 배포하면 중소시장 상인들은 매출을 늘릴 수 있고 구매자도 싸게 살 수 있어 모두에게 이익”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공단 측 기대와 달리 온누리상품권의 악용사례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대전에서 적발돼 경잘 고발조치를 받은 이모(51)씨의 경우 그 일가족이 인터넷 사이트에서 1만7000여명의 개인정보 데이터를 불법으로 다운받은 후 이를 이용해 사들인 49억원 상당의 온누리상품권을 가맹점에 되파는 수법으로 2억4000여만원을 챙긴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줬다.

경동시장의 한 소매상인은 “온누리상품권 매출은 다른 상가에 물어봐도 하루에 3만원이 될까말까한 수준이다. 시장에서 사용하는 것보다 은행이나 각종 환전창구에서 ‘깡’ 용도로 쓰는 게 더 많다”라고 말했다.

전국구 조직폭력집단이 관리감독 대상에서 빠진 상품권을 이용해 지방 조직 폭력배들을 관리하는 운용자금으로 활용했다는 사례도 유명하다. 바로 2006년 성인오락실과 상품권 이권을 둘러싸고 칠성파와 21세기파 사이에서 집단 혈투가 벌어졌던 사건이다. 조직폭력배들이 성인오락실에서 사용되는 경품용 상품권의 전국 유통망을 장악한 다음 환전 수수료를 통해 자금을 조성했다는 내용이다.

상품권 비리 관련 사태가 걷잡을 수 없는 양상으로 번지자, 상품권 시장이 감독 사각지대에 놓인 것 아니냐는 비난이 빗발치고 있다. 문제의 원인으로는 상품권 구입 시 신원확인이 필요하지 않는다는 점, 특히 고액상품권의 경우 누가 구매하고 어떻게 쓰는지 파악되지 않고 있다는 점 등이 꼽히고 있다.

▲ 지난해 6월 소상공인진흥공단이 온누리상품권의 판매촉진을 위해 상품권 현금 구매시 10%를 할인해주는 제도를 도입하자, 편법 환전이 성행하는 등 악용사례가 늘었다.ⓒ뉴시스

◆ 상품권 감독 사각지대 ‘캄캄’

정치권에서도 상품권 관련 법령 정비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 11일 강석훈 새누리당 의원에 따르면 상품권 발행 규모는 2009년 3조3782억원에서 2013년 8조2797억원으로 4년 만에 2.5배로 증가했다.

특히 50만원 이상의 고액 상품권 발행량이 4년새 9배로 크게 늘어난 점은 주목할 만하다. 구매자나 사용자가 누군지 파악할 수 없는 고액상품권의 급증은 뇌물과 비자금, 탈세 등 지하경제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홍종학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초고액 상품권의 경우 누가 사는지, 누가 쓰는지 전혀 확인되지 않아 뇌물, 탈세, 탈루 목적의 지하경제 수요 등 불법적이고 불투명한 자금 유통에 악용될 여지가 매우 높다고 지적했다.

홍 의원은 상품권의 발행 및 유통에 대한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정부가 지하경제를 양성화하겠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적어도 초고액 상품권에 대한 발행 현황 파악 및 유통에 대한 적극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상품권 자체의 폐해도 간과할 수 없는 수준이다. 일부 상품권에는 유효기간과 잔액환불 거부 등 발행처에 유리한 약관들이 한 눈에 보기 어렵게 기재돼 있어 소비자들이 낭패를 보는 경우도 많다.

실제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되는 상품권 민원은 연간 2000여건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피해구제까지 이어진 경우는 20103.3%, 201110.4%, 20124.7%, 20137.2%에 그쳤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김관영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기업들로서는 상품권이 회수되는 기간만큼 이자수익이 발생하는 등 내수진작에 도움이 되는 부분도 있다면서도 불투명한 유통 등 상품권 관리 부재로 인한 폐해가 심각한 만큼 관리를 강화할 필요성 있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 의원은 상품권 발행기관으로 등록된 기업이 고액상품권의 발행과 회수 정보를 주기적으로 당국에 통보하고 발행단계에서 의심거래보고 및 고액현금거래보고 등 기본적인 자금세탁방지 의무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시사포커스 / 진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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