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비닐 우산은 하늘이 보인다"

"비닐 우산은 하늘이 보인다". '비닐 우산'이라는, 지극히 한국적인 빈곤함의 표상을 제목으로 내세웠기에, 얼핏 창작연극이 아닌가하는 짐작을 하게 되지만, 사실 "비닐 우산은 하늘이 보인다"는 러시아 작가 라주모프스카야가 쓴 작품 "집으로"를 재창작, 재구성한 작품이다. 그리 오래지 않은 1995년에 씌어진 이 작품은, 페레스트로이카의 거센 물결 속에서 기성세대로부터 소외받고 만 청소년들의 고달픈 삶, 절망으로 그득찬 '새로운 러시아'의 청춘을 그려낸 작품으로, 성장소설 형식에 기댄다기 보다는 현 러시아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혼란과 도덕적, 종교적 고통에 대해 탐구하는 '고통의 서사극'이었다. 쌍뜨페쩨르부르크의 폐허를 전전하는 청소년들이 삶을 차분하게 조망하면서, 과연 자본주의가 러시아에 가져다 준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가치관의 혼란의 벌어지는 와중에 '인간의 구원'은 과연 어떤 형식으로서 다가올 수 있는지에 대해 토로하는 "집으로"는, 한국적 상황으로 번안, 재구성되면서 장기화되어가는 경제불황 속을 살아가는 요즘 청소년들의 의식세계를 관통하는 '정신의 연극'으로 재등장하고 있다. 모든 예술은 '고유문화'의 영역 속에서 살아나가고 있지만, 번안된 예술의 경우, 그 문화경 배경이 확연히 다른 상황에서 '주제'만을 알려주는 형식이기에 어딘지 조금 답답하다는 느낌이 드는 경우가 많지만, "비닐 우산은 하늘이 보인다"의 경우, 그 지극히 한국화된 제목만큼이나 한국의 문화와 정서에 고루 부합되는 쾌거를 보여주고 있으며, 무책임한 낙관주의로 비칠 수 있는 '희망'이라는 주제에 대해 보다 찬찬히, 면밀히 탐구해냄으로써,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절절히 절감할 수 있는 종류의 '희망', 비로소 성숙한 의미로서 재탄생된 '희망'의 메시지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 이미 청소년의 방황과 교육현실을 탐구한 "청춘예찬", 현대사회에서의 가족의 의미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한 <몽환곡>, 청소년 왕따 문제를 헤짚은 "나의 교실" 등의 작품으로 '청소년 문제'에 관해 '통달'하고 있을 법한 베테랑이 모여 만들어낸 "비닐 우산은 하늘이 보인다"는, 원작이 지닌 절대적 주제, 즉 각박한 현실 속에서 과연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구원받을 수 있는지, 그리고 '경제중심국가'에 살아가면서 '경제불황'이란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서 다가오는지에 대해 탐구하는, 흔치 않은 기회가 될 것이다. (장소: 동숭무대 소극장, 일시: 2004.01.21∼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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