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지원 등 호재 잇따라…재매각까지는 ‘첩첩산중’

 

▲ 올해로 60주년을 맞는 대한전선의 운명의 날이 다가오고 있다. 지난해 온갖 악재가 한 번에 터지며 상장폐지의 위기에 몰리기도 했으나 채권단의 신규 자금 지원으로 상장 폐지는 면할 것으로 보인다. ⓒ뉴시스

상장 폐지의 기로에 서있는 대한전선이 채권단의 신규 지원이라는 든든한 우군을 만났다. 업계에서는 대한전선이 자금 지원을 받고 상장 폐지를 면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이제는 향후 매각 재추진 가능성을 타진하는 분위기다. 창사 59주년이었던 지난해 온갖 악재가 한꺼번에 터진 대한전선이 60주년이 되는 올해 경영 정상화의 활로를 뚫을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여기에 지난 3일 주채권은행인 하나은행을 비롯한 대한전선 채권단 10개 은행은 대한전선이 요청한 1300억원과 영업을 위한 외화지급보증 2000만달러(약 220억원)를 지원키로 하는 내용의 경영정상화 방안을 가결했다. 대략 1500억원이 넘는 신규 자금을 지원받는 셈이다.

한국거래소 기업심사위원회는 그동안 “대한전선 상폐 여부는 채권단의 지원내용에 따라서 기본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며 “채권단에서 어떠한 지원을 약속하는지 여부가 이날 심의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할 것”이라고 수 차례 강조해 왔다. 따라서 업계는 조만간 재개될 것으로 보이는 상장 적격성 실질 심사에서 대한전선의 주식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물론 아직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한국거래소 기업심사위원회 관계자는 “기업심사는 분식회계로 인한 것”이라며 “때문에 채권단의 결정을 감안해서 심의할 수는 있지만, 지원의 여부가 상장 폐지 여부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한 바 있다. 어찌보면 모순되는 얘기 같지만 이 같은 언급은 원론적인 얘기일 가능성이 크다.

당초 상장 적격성 실질 심사를 통한 상장 폐지 여부의 결정은 지난달 23일 완료될 예정이었고 이에 채권단 역시 신규 자금 지원 결정을 같은 날 내리기로 했다. 하지만 채권단들의 동의를 받는 과정이 지연되면서 자금 지원 결정이 미뤄졌다. 그러자 상장 적격성 실질 심사는 주말을 앞둔 금요일 저녁에 진행되기는 했으나 늦은 시간까지 결론을 내지 못하고 추후 속개하기로 결정했다. 이 같은 흐름은 채권단의 자금 지원 결정이 역시 결정적인 변수라는 것을 보여준다는 평가다.

◆韓 전선사 이끈 대한전선 어쩌다...
수 년여 전까지만 해도 대한전선이 상장 폐지 직전까지 몰릴 것으로 예상했던 사람은 거의 없었다. 국내 최초의 전선 생산업체인 대한전선은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국내 전선업계 1위를 오랜 기간 고수해 왔고, 최근에도 LS전선에 이어 30%대의 점유율로 국내 전선업계 2위를 지켜 왔으며 재계를 대표하는 우량 중견그룹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60년 역사의 대한전선은 1955년 고 설경동 회장이 창업한 후 2008년까지 54년간 단 한 번도 적자를 기록한 적이 없었고 삼성·금성(현 LG전자)과 함께 우리 나라의 전자 산업을 이끌며 5~60년대 재계 5위권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2013년에는 세계 10위권을 유지했고 단일 규모로 세계 최대인 당진 신공장을 보유하고 있으며 2012년 전체 수출규모의 50% 이상이 중동지역에서 나오는 등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전선업체다. 주로 안정적인 전선 사업을 기반으로 우리 나라의 전선제품 발달사와 함께 해왔다.

하지만 창업 2세인 설원량 회장이 2004년 62세를 일기로 별세하면서 오랜 시간 자리를 지켜온 대한전선의 앞날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대한전선은 당시 타계한 설원량 회장의 비사실장 출신이자 2002년 대한전선 대표이사로 선임됐던 임종욱 사장 체제로 재편됐고 임종욱 사장은 정체되는 전선업계의 상황을 타개할 방법으로 신성장동력 찾기에 몰두했다.

이후 대한전선은 무주리조트, 선인상가, 남부터미널 부지, 쌍방울, 남광토건 등을 줄줄이 인수했고 이탈리아 프리즈미안과 진로 인수전에도 참여하는 등 무분별한 확장 시도가 급증하기 시작했고 약 2조원에 달하는 금액이 투자라는 명목으로 소요됐다.

결국 2008년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절반 이상을 차지하던 투자자산 가치가 곤두박질쳤고 이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2009년에는 차입금 규모가 임종욱 사장 체제가 시작된 2004년의 8배가 넘는 2조5000억원에 달하게 되면서 유동성 위기에 빠졌고 54년간 이어온 흑자 신화가 붕괴됐다.

2009년 대한전선은 채권단과 재무개선약정을 맺고 강도 높은 구조개혁에 나서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이 과정에서 안양공장 부지와 건물, 본사 사옥, 대한ST 보유 지분, 한국렌탈 지분, 트라이브랜즈, 노벨리스코리아 지분 등의 매각을 단행해 1조원가량의 유동성을 확보하기도 했다. 하지만 2013년 기준으로 대한전선의 부채 비율은 8000%가 넘는 1억 3000억원에 달했다. 그만큼 부채 규모가 지나쳤던 셈이다.

2010년 29세라는 젊은 나이로 경영에 관여하기 시작한 창업 3세 설윤석 사장은 대한전선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외로운 싸움을 시작했지만 상황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았다. 부채 규모가 영업이익과 자산 매각등으로 감당하기에는 지나치게 거대했다. 결국 오너인 설윤석 사장은 2013년 스스로 경영권을 내려놓고 말았다.

대한전선은 당시 설윤석 사장이 물러난 데 대해 “기업의 생존을 고려한 용퇴”라며 “경영권에 집착하다 주주나 임직원에게 피해를 줄 바엔 경영권 욕심을 놓고 회사의 신속한 구조조정을 통해 일단 회사를 살리는 게 우선이라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 50년대 창립된 대한전선은 70년대 일본의 도시바와 손을 잡고 당시 재산목록 1호라던 TV를 만들기도 했다. 사진은 당시 대한전선 TV의 지면 광고. ⓒ대한전선

◆실패한 매각 재추진 걸림돌은?
결국 채권단은 지난해부터 매각 절차에 들어갔다.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도 개선되지 않았던 상황은 오너일가와 전문경영인, 그리고 감독에 헛점을 드러낸 채권단의 합작품이었다.

전문경영인이었던 임종욱 전 부회장은 무리한 사업 확장과 더불어 590억원대의 배임·횡령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임 전 부회장은 2006년 자신이 실질적 오너인 기업의 자금난 해결을 위해 대한전선 자회사의 돈을 갖다 썼다. 2012년 1월 이 같은 혐의가 드러나 그는 결국 징역 4년형을 선고받았다.

현재 대한전선이 상장 적격성 실질 심사를 받게 됐던 사건인 2700억원대의 분식회계 사건은 오너 일가의 기업을 부당하게 지원해 돈을 떼이게 된 것을 가리킨다. 재무구조개선이 한창이던 2011~2012년 사이 대한전선은 오너일가의 기업을 지원하느라 매출채권의 대손충당금과 재고자산 평가손실을 과소 계상했다.

이 회사는 설윤석 전 사장(53.77%), 어머니인 양귀애 전 명예회장과 누나(46.23%)가 100% 지분을 보유한 오너기업이었다. 결국 대한전선은 대한전선은 금융위원회로부터 과징금 20억원과 대표이사 해임권고, 검찰고발 등의 조치를 부과받았다. 주식거래도 지난해 12월 4일부터 거래 정지 상태다.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실시하면서도 돈이 줄줄 새나가는 동안 감독기관인 채권단은 이를 알지 못했다. 최소한 분식회계는 조금만 신경 쓰면 방지할 수 있지만 누구하나 신경쓰지 않았다. 그것도 모자라 채권단 은행들은 2013년 말 대한전선의 대출금 7000억원을 출자전환해줬다.

익명을 요구한 한 증권사 연구원은 “채권단의 감시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로 인해 대한전선 직원들이 참고 견딘 구조조정은 물거품이 됐다”며 “채권단의 고질적으로 문제인 만큼 시스템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대한전선의 채권단(채권비율)은 산업은행(16.6%), 우리은행(14.7%), 하나은행(14.0%), 외환은행(12.8%), 국민은행(11.0%), 농협은행(10.6%), 신한은행(9.1%), 수출입은행(7.0%), 한국스탠다드차타드은행(2.2%), 광주은행(2%) 등이다.

여기에 단기차입금이 늘어난 점도 변수가 될 수 있다. 지난 5일 대한전선은 운영자금 명목으로 금융기관으로부터 600억원을 단기차입하기로 했다고 공시해 단기차입금 총액이 약 5700억원으로 늘어났다.

 

▲ 최근 초고압 케이블 등 하이엔드급 제품에서 여전한 경쟁력을 자랑하고 있는 대한전선은 시급한 현안이 마무리될 경우 향후 재매각도 순탄하게 풀릴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대한전선

◆‘고군분투’하는 채권단
여기에 지난해 12월 매각마저 유찰되면서 회사 정상화의 문은 쉽게 열리지 않고 있다. 7000억원 규모의 출자전환을 통해 대한전선 지분 72.7%를 보유하게 된 채권단은 최소 50% 이상의 구주를 매각할 계획을 세우고 약 1조~1조5000억원 수준의 매각 대금을 기대했으나, 입찰에 단독으로 참여한 한앤컴퍼니가 턱없이 모자란 금액을 제시하면서 견해차를 좁히지 못하고 유찰됐다.

현재 채권단은 조만간 재매각을 추진하기 위해 다양한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우선적으로 상장 폐지를 면하기 위해 1500억원대의 신규 자금 지원을 결정했고, 이에 앞서 지난해 말 채권단은 대한전선의 자본잠식률이 50%를 넘어갈 경우 관리종목으로 지정되기 때문에 우선 이를 피하고자 임시방편으로 5대1 비율의 감자를 단행했다. 감자로 인해 대한전선의 자본금은 5196억원에서 1039억원으로 줄어들고, 자본잠식률은 68%에서 10~15%대로 낮아졌다.

한편 지원받는 신규자금의 상당 부분은 대한전선의 운영자금이나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부과 받은 과징금의 납부에 사용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채권단은 이 자금을 대한전선의 우발 채무가 현실화되는 상황을 사전에 차단하는 용도로 사용하겠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현재 대한전선은 그동안 지속적으로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장 매약을 통해 우발채무를 줄여왔지만 현재 약 3000억원 규모의 우발채무를 떠안고 있다.

매각 입찰이 유찰될 당시에도 가격 조건 외에 우발채무 위험성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채권단 지원이나 영업을 통해 관리할 수 있는 은행권 차입금보다 언제, 얼마나 현실화될지 예상할 수 없는 우발채무가 매각에 가장 큰 관건이라는 것이다. 채권단 관계자는 “지금당장 대한전선 매각을 추진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신규자금 지원으로 영업력을 회복한 후 차입금을 상환받는 것이 효율적인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대한전선에 비치는 ‘한 줄기 빛’
따라서 상장 폐지를 면할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채권단은 장기적으로 매각 재추진을 염두에 둔 상태에서 당분간 주로 이 우발 채무를 낮추고 영업력을 회복하는 데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채권단 관계자는 “거래소 기업심사위원회 심사가 끝나는 대로 경영정상화를 위한 채권단 회의가 재개될 예정이다”며 “당장 재매각을 논하기보다 3월 주주총회를 기점으로 조직개편 등 영업력 회복을 위한 체질을 개선하는 데 집중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다행히 대한전선이 2·3순위 채권자로 있는 스톤건설의 매각이 조만간 성사될 전망이라 700억원에 달하는 스톤건설의 채무 중 일부가 변제되면 대한전선의 자금 사정에도 숨통이 트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법정관리중인 스톤건설은 91%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강남구 대치동 테헤란로의 옛 신한종금 사업부지의 가치가 뛰면서 매각 작업이 성사 직전인 상태다.

업계 관계자는 “대한전선은 스톤건설의 2·3순위 채권자이기 때문에 1순위 채권자에 우선적으로 매각 자금이 유입된 후 잔여분을 대한전선과 계열사들이 나눠 가질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스톤건설이 1순위 채권자에 진 채무는 900억원 규모로 알려졌다.

또 대한전선은 남부터미널 부지와 파인스톤 골프장 역시 인수 후보자와 매각협상을 벌이고 있다. 여기에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 등지에서 초고압 케이블 매출이 증가하고 있는 것도 대한전선에는 호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회계기준 위반으로 지적당한 손실 부분은 지난 2013년 재무제표에 모두 반영된 상태다.

채권단 관계자는 “대한전선이 고수익 제품군 위주로 포트폴리오를 개선시켜 실적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는데다 우발채무 해소를 통한 체질 개선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이 추세대로라면 올해 안으로 경영정상화와 지분 매각이 동시에 가능할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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